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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생 김정은'의 북한, '86세대'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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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생 김정은'의 북한, '86세대'의 한국?

[프레시안 조합원 강연] 이병한 박사 <유라시아 견문> 북콘서트

기자는 그의 첫 독자였다. 유라시아 대륙 100개 나라, 1000개 도시를 도는 그가 현지에서 보낸 메일에선 때론 모래 바람 소리가 들렸고, 때론 시큼한 땀내가 묻어났다. 물론 비유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그의 원고를 편집하는 건, 그저 문장을 손질하는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 대한 감각을 새로 다듬는 일이었다.

역사학 박사 이병한의 원고를 담당했던 소감이다. 그가 연재한 '유라시아 견문'을 꾸준히 챙겨본 독자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세상에 대한 감각을 바꾸는 글.

약 1000일 동안의 유라시아 공부 길을 마치고 돌아온 이 박사가 최근 귀국했다. <프레시안> 연재를 묶어 낸 <유라시아 견문> 2권도 출간됐다. 아울러 그는 곧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다. 경사가 겹친 그가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 및 독자들을 만났다. 그 역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이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강연에 앞서 그는 72장짜리 파워포인트 자료를 준비했다. 사진을 곁들인 강연은, 확실히 감각을 뒤흔들었다.

하노이 회심

첫 번째 파워포인트 화면 제목은 '하노이 회심(回心)'이었다. 이병한 박사가 유라시아 대륙을 누비게 된 계기에 대한 설명이다.

"유라시아 여행에선 3년 만에 돌아왔는데, 한국을 떠난 지는 7년 만이다. 2011년에 박사 학위 논문을 쓰러 미국으로 떠났었다. 그 사이 한국과 소통한 건 <프레시안>을 통해서였다.

귀국이 왜 이렇게 늦어졌는지부터 이야기하겠다.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동아시아 냉전사였다. 남북한과 중국-대만, 일본-오키나와 등을 다룬 논문을 쓴 뒤 박사 후 과정을 위해 베트남 전쟁의 현장인 하노이를 찾았다. 그때까지 공부했던 틀이 거기서 완전히 깨졌다. 한국으로 그냥 돌아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라시아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였다."

대체 하노이에서 무엇을 봤기에? 그가 가리킨 파워포인트 화면에는 오페라 하우스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 ⓒ이병한

프랑스 사람들이 지은 건물이다. 그리고 다음 화면. 오페라 하우스 안이다. 베트남 전통복장인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이 보인다. 사진 찍은 날짜는 2013년도 12월 31일이다. 프랑스식 오페라 하우스 안에서 새해맞이를 하는 모습이다.

▲ ⓒ이병한

또 다음 화면. 우리로 치면 국립 도서관이다. 100년 전엔 인도차이나 대학원 건물이었다.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의 엘리트를 프랑스가 길러내던 곳이다.


▲ ⓒ이병한


다음 화면. 레닌 동상이다. 베트남은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다. 아침마다 청소를 한다.


▲ ⓒ이병한


이어진 화면. '이 태조'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중국 당나라가 망하고, 월남이 독립했을 때 첫 번째 왕의 동상이다.

▲ ⓒ이병한


"2013년 하노이에 갔을 때, 딱 이런 감각이었다. '베트남은 유교 문명과 중화 세계의 한 귀퉁이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아니었다. 서유럽의 흔적, 러시아-소련의 흔적이 곳곳에 선명했다. 그걸 보니까 20대 후반부터 10년 동안 공부했던, 동아시아에 대한 감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다. 아울러 영국 식민지였다. 그 전에는 중국의 영향만 생각했다. 화교가 경제권을 장악했다는 점에만 주목했다, 실제로 가보면, 이슬람과 불교와 힌두교 영향도 크다. 또 화교 못지않게 인도 경제권도 비중이 크다.

역사적으로 동남아시아는 모두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식민지 경험도 공유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중심의 동아시아 관점이 흔들렸다. 이대로 한국에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북이 바뀐 지도, 감각의 좌표를 재설정하다

동남아시아는 중국과 인도, 유럽과 아랍의 영향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아울러 동아시아는 그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물리적 합이 아니었다. 아시아와 유럽은 통념보다 훨씬 깊이 맞물려 있었다. 이왕 눈이 트인 김에 서쪽으로 더 가보자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그는 동아시아 지도 대신 유라시아 전도를 봤다.

"국경을 지우고 남과 북이 거꾸로 된 지도를 들고 다녔다. 몽골 사람들이 이런 지도를 본다. 이 지도에선 아시아가 서쪽이다.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유라시아에 대한 감각이 달라진다."

그리고 물었다. 역시 우리 감각의 좌표를 점검하는 질문이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는 어디일까?

흔히 미국이라고 대답한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은 표가 약 1억 표였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약 5억6000만 표를 얻어서 당선됐다. 세계에서 두 번째 규모 민주주의 국가가 미국이다. 지도자가 얻은 표만 놓고 보면, 2등부터 10등까지 합쳐도, 인도에 못 미친다.

세계 최대의 종교는 뭘까?

이슬람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50년에는 유라시아 인구의 절반이 무슬림(이슬람 교도)이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는 어디일까?

인도네시아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어디 있을까?

두바이에 있다."

아랍에미리트 연방을 구성하는 7개국 중의 하나인 두바이는 쇼핑으로도 유명하다. 이 박사가 촬영한 두바이 쇼핑몰 사진에는 중국 식 배 모형이 있었다. 중국 명나라 영락제 시절 인도양을 항해했던 정화의 함대다. 정화 역시 무슬림이었다.

"이슬람 세계에선 국가와 민족을 중시하지 않는다. 이슬람을 믿으면 하나가 된다."

두바이 사람들에게 정화는 중국인이 아니라 무슬림이다.


▲ 정화의 배 모형이 있는 두바이의 쇼핑몰. ⓒ이병한

반동인가? 반전인가?

이번엔 역사 감각을 다듬을 때다. 마오쩌둥 중국 주석이 1949년 건국을 선언할 때 내건 구호가 '반제, 반봉건'이었다. 제국주의와 봉건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전통을 타파한다고 했다.

그런데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지난 2012년에 내건 표어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었다. 시진핑은 동양 고전을 종종 인용한다.

인도가 독립할 때 초대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가 사망할 때 남긴 말이 "마지막 영국사람(Last English Man)"이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 법률가이면서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였던 네루는 평생 영국 사상과 제도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2014년에 집권한 모디 인도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영어를 쓰지 않는다. 국정 목표 역시 "힌두 문명 국가 만들기"다. 중국이 중화문명을 구현하는 현대적 국가를 만들려는 것과 비슷하다.

모디가 집권한 2014년 탄생한 이슬람 국가(IS)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아닌 '칼리프'를 내세웠다. 이슬람 세계의 전통적인 주권자 칭호가 칼리프다. 황제, 천자 등과 비슷한 개념이다. 오스만 제국에서 칼리프가 폐지된 게 지난 1924년이었다. 그런데 칼리프가 다시 등장했다.

"이슬람 지역을 여행할 때, 알자지라 방송을 자주 들었다. 거기서 여론조사를 하면, 북아프리카부터 동남아시아까지 14억 명을 상대로 한다. '저 사람(IS의 칼리프)을 칼리프라고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하면, '그렇다'라는 대답이 10퍼센트 미만이다. IS의 칼리프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칼리프가 부활해야 하느냐'라고 물으면, 반응이 달라진다. 60퍼센트 이상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선거로 대통령이나 총리를 뽑는 현대적인 정치가 이슬람 문명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인구가 절반 이상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칼리프로 꼽히는 게 누굴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다. 터키의 전신이 오스만 제국이다. 600년 동안 유지된 오스만 제국은 북아프리카와 유럽 일부, 서아시아에 걸쳐 있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일 년 가운데 절반가량을 옛 오스만 제국 지역에서 보낸다. 그는 터키 대통령이라기보다 이슬람 세계 대표로서 발언하고 행동한다. 그가 석 달에 한 번꼴로 아프가니스탄을 찾는 것도 그래서다. 이슬람 지역에 모스크와 학교를 짓도록 지원하는 나라 역시 터키다.

지난해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었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1917년에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렸다. 그런데 100년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위대한 러시아'를 강조한다. 근간은 러시아 정교회다. 천 년 가까이 이어진 전통을 되살리겠다는 뜻이다."

방금 소개한 중국, 인도, 이슬람 세계, 러시아. 모두 비슷한 흐름이다. 인구로는 약 50억 명을 포괄한다. 이걸 뭐라고 포착해야 할까?

"내(이병한)가 제일 좋아하는 영미권 매체가 영국 <이코노미스트>다. 그들은 이렇게 본다. '시진핑은 시황제가 되고 있다.', '에르도안은 술탄이 되려고 한다.', '푸틴은 차르다.' 일종의 퇴행이며 반동이라는 설명이다.

그렇게만 볼 일인가. 과연 반동(反動)인가? 아니면 우리가 20세기에 겪었던 흐름이 반전(反轉)되고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유라시아 여행 도중이던 2016년에 잠시 귀국했었다. 그때 일종의 중간보고를 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이제 그 다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 ⓒ프레시안(최형락)

'구미'와 '아태'가 멀어지고, '구아'가 나타났다

이병한 박사가 앞서 낸 책 제목이 <반전(反轉)의 시대>였다. 동양과 서양, 옛날과 현재 사이의 '반전'이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날 강연에선 이런 내용을 더 깊이 다뤘다.

"유라시아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경합, 경쟁의 핵심은 이렇다고 본다. 한쪽에는 서세동점(西勢東漸) 이래의 정복과 점령하려는 힘이 있다. 다른 쪽에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연결하고 묶어내려는 힘이 있다. 그 두 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만나는 사진을 보라. 둘이서 웃고 있을 때가 거의 없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

'더 웨스트(The West)', 그러니까 '구미(歐美)'는 유럽과 미국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대서양 연합이다.

'아태(亞太)'라는 말도 있다. 아시아와 태평양인데, 주로 미국과 동북아시아를 아우르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구미''아태'가 모두 멀어진다. 유럽과 미국, 아시아와 미국 사이가 각각 벌어지고 있다.


▲ ⓒAP=연합뉴스

대신 '구아(歐亞)' 개념이 나타난다. 그걸 영어로 옮기면 '유라시아'다. 유럽과 아시아가 가까워진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인) 리스본에서 (동쪽 끝인) 블라디보스토크까지'라는 표현을 쓴 사람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그가 메르켈 총리를 만나서 한 이야기다.

두 사람이 만나면 영어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메르켈이 러시아어로 농담을 하면, 푸틴이 독일어로 되받아친다.

푸틴은 KGB 요원 출신이다. 동독이 망할 때, 독일 드레스덴에서 근무했다. 냉전의 최전방, KGB에서 최정예 엘리트가 배치되던 곳이다.

메르켈은 동독의 과학 영재 출신이다. 물리화학 박사인데, 청소년 시절 과학경시대회 입상자로 소련을 방문했었다. 당시 동독에서 과학을 공부한 이들은 러시아어에 익숙하다. 교재가 대부분 러시아어로 돼 있었다.

미국 CIA가 메르켈을 도청했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독일이 대서양 연합에서 이탈해서 러시아로 가면,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다. 이런 불안감이 반영된 일일 게다."

▲ ⓒAP=연합뉴스

레닌과 푸틴 가문 : 고(古)와 금(今), 성(聖)과 속(俗)이 만난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과 서쪽이 가까워진다는 설명이다. 이번에는 고(古)와 금(今), 그러니까 옛날과 현재가 만나는 이야기다. 아울러 성(聖)과 속(俗)의 만남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영향력 일인자는 역시 푸틴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이인자는 누구일까? 키릴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다. 푸틴 옆에는 늘 키릴 총대주교가 있다. 세속 지도자인 푸틴과 영성 지도자인 키릴 주교가 함께 현대 러시아를 이끈다. 실제로 러시아 사회에서 러시아정교회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소련이 망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지금도 레닌의 시신에 예를 갖춘다. 이유가 뭘까.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레닌은 20세기에 러시아에 내려오신 예수였다'고 생각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신(神)'이었다고도 여긴다. 러시아 정교회 전통 속에서 레닌을 자리매김 한다.

레닌과 푸틴 사이에도 아주 묘한 연결 고리가 있다. 레닌이 1917년 혁명에 성공하고, 1924년에 사망했다. 죽기 전 3~4년은 시골에서 요양했다. 그때 간호했던 사람의 성(姓)이 푸틴이다. 그가 푸틴 대통령의 할아버지다.

푸틴 대통령은 아주 독실한 러시아 정교회 신자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한다. 정세 분석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다. 그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푸틴은 러시아에서 아주 희귀한 성(姓)이다. 인구 가운데 1%도 안 된다. 푸틴 가문은 어디서 왔을까. 18세기 러시아에 표트르 대제가 있었다. 그가 건설한 도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수도를 서쪽으로 옮기고, 더 유럽에 가까워지려 했다. 아울러 '세속화' 역시 가속화했다. 그걸 보고, 모스크바에 있던 러시아 민중들은 내심 반발했다. '저건, 러시아가 아니야.' 결국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엘리트가 서쪽으로 갈 때, 러시아 민중들은 우랄 산맥과 볼가강으로 향했다. 그들은 정교회 전통에 충실한 자신들의 마을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푸틴 마을이다.

1917년 혁명이 일어나고, 표트르 대제가 만든 러시아가 붕괴하니까 그들은 다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갔다. 그리고 백 년 뒤, 푸틴 가문의 후손이 러시아 대통령이 돼 '위대한 러시아'를 이야기한다."


▲ 푸틴과 키릴 총대주교. ⓒAP=연합뉴스

"알프스 소년, 김정은"

한국 언론은 영미권 매체만 소개한다. 그래서 놓치는 게 많다. 예컨대 터키는 세계 드라마 수출 순위 2~3위를 오르내린다. 터키 드라마 가운데 큰 화제가 된 게 <찬란한 세기>다. 오스만 제국 전성기를 이끈 슐레이만 대제를 다뤘다. '소프트 파워' 면에서 터키는 옛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있다.

이병한 박사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을 소개했다.

"미래를 향해서 과거로 돌아간다."

고(古)와 금(今), 그리고 성(聖)과 속(俗)의 만남이 새로운 방향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20세기의 과제가 건국이었다면, 21세기엔 복국(復國)이 과제"라고 했다. '좌우합작' 대신 '고금합작'이 새로운 과제라고도 했다. 지난 백 년 역사에서 밀려나 있던 흐름이 새로 떠오른다. 거기에 올라타자는 이야기다. 특히 동북아시아는 구세계와 신세계가 만나는 허브다. 아울러 한반도는 가장 역동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곳이다. 좌와 우가 갈리고, 동구와 서구가 대립했던 최전선이었던 탓이다. 새로운 반전 앞에선 변화의 폭도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4월에 썼는데, <프레시안>에 발표하지 못한 글이 있다. '제네바 알프스 소년, 김정은'이라는 제목이다. 당시 한반도 정세에서 이런 글을 발표하면 감당하기 힘들 듯 했다. 돌아보니, 발표했어야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대 시절을 스위스 제네바에서 보냈다. 가장 글로벌한 지역이다. 아울러 관광 대국이다. 거기서 보낸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정은은 건강만 허락한다면, 향후 30년은 집권한다. 사회를 바꾸려면, 적어도 한 세대의 시간은 있어야 한다. '젊은 지도자' 김정은에겐 그게 보장돼 있다. 스위스 제네바는 다문자 도시다. 간판마다 여러 언어로 표시돼 있다. 그런데 북한 바로 위에도 그런 도시들이 있다. 훈춘에는 모든 도시 문자 표기가 한글, 한문, 로마자, 키릴 문자로 돼 있다.

김정은은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며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라고 적었다. 한반도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면, 곳곳에 훈춘이나 제네바 같은 '다문자 도시'가 들어설 것이다."


▲ ⓒ이병한

"한국인으로 떠나서 고려인으로 돌아왔다"

이 박사는 반전(反轉)과 복국(復國), 고금합작을 이야기했다. 서세동점의 관성을 어떻게 뒤집어서, 어떤 과거와 손잡으려는 걸까. 그는 말했다.

"(유라시아 여행을) 한국인으로 떠나서, 고려인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고려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어차피 영어 표현도 'Korean(코리안)'이다. 남북 교류 물결과 함께 한반도 곳곳에 제네바 같은 '다문자 도시'가 들어서길 바라는 그는 이슬람 상인들과 교역하던 고려의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

유라시아 전체가, 아니 세계가 하나로 묶이고 있다. 중국은 광동성과 홍콩-마카오를 잇는 해양 다리를 짓는다. 베링해협에 해저터널과 다리가 놓인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연결함으로써 유라시아와 아메리카가 이어진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북아메리카와 연결하는 해저터널을 추진하고,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홍해에 다리를 놓고, 인도와 스리랑카도 다리로 연결한다.

이처럼 '정복'이 아닌 '연결'이 대세인 세상에선, 상업국가 고려의 역사와 현재가 만날 수 있다.

마침 내년은 3.1운동 백주년이다. 3.1운동은 그저 독립운동이 아니었다. 독립선언을 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15명이 개신교인이었다. 15명은 천도교인이었다. 동학의 후신이 천도교다. 요컨대 3.1운동은 동학파와 서학파가 손잡고 새로운 문명을 열려던 운동이었다. 독립선언문에 세계 평화를 아우르는 큰 비전이 담긴 건 그래서였다.


▲ ⓒ프레시안(최형락)

시대 변화, 새 세대가 이끌어야 한다

세계사의 반전, 지난 반세기 적폐를 몰아낸 촛불 혁명. 나라 안팎에서 거대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세대는 아직 떠오르지 않고 있다.

강연 말미에 이 박사가 강조한 것은 이 대목이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구시대의 막내'라고 했다. 굉장히 통찰력 있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바뀐 시대에도 여전히 '구시대의 막내'의 후예가 주도한다. 북한도 '84년 생 김정은''88년 생 김여정'이 이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86세대'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시대 교체에 어울리는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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