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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받는 건 '낡은 정치'일 뿐…문제는 정치다"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시평]<19> 2008년의 촛불과 2011년의 촛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무효를 주장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매 주말저녁 도심에서 진행되고 있다. 경찰의 봉쇄와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 밤에도 1만여 명의 시민들이 청계광장에 모였고, 명동과 종로 일대를 행진했다. 한미 FTA 비준 무효를 주장하는 촛불시위는 여러모로 2008년의 촛불시위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첫째, 의제와 이슈의 성격이 갖는 유사성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는 미 통상대표부(USTR)와 미 의회가 요구한 이른 바 한미 FTA의 4대 선결조건 중의 하나다. 또한 한-미간 2008년에 좌절됐던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에 대한 사전 협의 사실이 알려졌다. 비준발효 다음 단계는 쇠고기 개방 폭의 확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이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당시 '검역주권', 한미 FTA의 투자자 국가소송제(ISD)로 대표되는 '정책및 사법주권' 문제 등 주권의 문제가 걸려있다.

둘째, MB의 반민주적 일방통행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라는 유사성이 있다. 2008년 MB 정권은 밀실협상을 통해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합의하고 한-미 정상회담 석상에서 발표했다. 국민은 물론 비준권을 갖고 있는 국회조차 철저하게 무시했다. 이번 한미 FTA 또한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미국의 재협상에 응했다. 심지어 '점하나 고치지 않겠다'는 호언장담을 깨고, 자동차 부문을 비롯해 개방 폭을 확대했다. 급기야 야당과 여론의 거센 반대와 비판을 무릅쓰고 국회에서 기습 날치기로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당시나 지금이나 국민의 비판과 반대를 '괴담'으로 치부하며 보수언론을 통한 여론조작과 물 타기도 재현되고 있다. 분노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재협상', '비준무효'를 넘어 '명박 퇴진(또는 MB OUT)'으로 나타나는 이유다.

▲한미 FTA 비준무효를 주장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매 주말저녁 도심에서 진행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셋째, 주체의 측면에서도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촛불시위의 주역은 조직된 운동이 아닌 '촛불소녀', '유모차 부대', '배운 여자'들이다. 기존 정치사회적 이슈의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주체들이 대거 출현했다. 한미 FTA에 대한 저항 또한 조직된 운동세력만의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비판여론의 중심이 되고 있고 집회와 시위 현장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나서는 배경에 두 이슈 모두 '생활의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시민들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문제나 한미 FTA 모두 '나의 문제', '생활의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촛불시위 현장에서는 의료비, 약값, 투자자 국가소송제(ISD) 등을 나의 문제,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보통 사람들의 참여와 발언이 이어진다. '생활정치'가 다시 폭발하고 있다.

넷째, 온라인의 역할이다. 2008년 인터넷 카페와 다음 아고라는 온라인의 광장이었다. 당시에도 놀라웠던 온라인의 공론 기능은 지난 몇 년 사이 눈부시게 진화했다. 트위터로 대표되는 소셜네트워크(SNS)는 실시간 비판과 저항의 근거지가 됐다. 2008년 아고라 토론방이 그랬듯, 트위터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와 한미 FTA 비준 날치기 처리를 전후로 폭발했다. 단지 이명박 정권을 욕하고 조롱하며, 비난하는 글만 달린 것이 아니다. 대대적인 투표참여 행동을 이끌어냈고, FTA 문제점을 전문가 수준으로 분석한 이른 바 '개념 멘션'들이 넘쳤다.

이런 유사성들에도 불구하고 2011년의 촛불은 2008년의 촛불시위와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 핵심은 문제해결 가능성의 차이 즉 정치적 전망의 차이다. 2008년 광장과 거리의 정치는 분명 강렬했고, 경이로웠다. 기성 정치의 한계를 날카롭게 드러냈고 정치의 혁신과 재구성의 필요성을 강하게 압박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쇠귀에 경 읽기'와 같은 MB 정권의 태도 앞에서 현실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대선도 총선도 패배했고, 가까운 시일 내에 예정된 선거도 없었다.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광우병국민대책회의도, 정치권도 뚜렷한 문제해결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팽배했지만, 새로운 정치를 말하기는 아직 막연했다. 이 상황에서 촛불은 '될 때까지 모여라'는 구호처럼 모이고 또 모이는 것에 절박한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의 촛불은 다르다. 2010년 6,2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들, 특히 직전에 열린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승리의 경험을 갖고 있다. 2011년의 촛불은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진보 진영의 승리를 통한 비준무효-재재협상, 더 나아가 한미 FTA 폐기라는 손에 잡히는 문제해결의 전망을 갖고 있다.

전망의 차이는 전개양상의 차이를 가져온다. 2011년의 촛불은 2008년에 비해 전개양상이 소극적인 면이 있다. 촛불시위 규모나 폭발성의 정도가 다르다. 2008년 촛불시위는 5월 2일 최초로 청계광장에 2만여 명이 모였다. 그 후 5만 명, 10만 명 이상의 집회를 반복하다 6월 10일 광화문에 최소 70만 명 이상이 모이는 기념비적인 저항을 만들었다. 반면 지금 촛불은 그렇게 폭발적인 규모로 커지지 않는다.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에 대한 열렬한 호응도 없다. 이런 전개양상이 한미 FTA에 대한 비판여론,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가 당시보다 못해서는 아니다. 시민들은 여전히 SNS에 분노와 비판을 쏟아내며 촛불집회를 지지하고 모인다. 그러나 거리의 저항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는 않는다. 대신 나꼼수에 환호하듯, 분노와 저항을 표현하는 경로가 다양해졌고, 선거와 투표를 통한 심판, 정치를 통한 문제해결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특히 박원순 서울 시장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전면무상급식, 시립대 반값등록금, 비정규직 정규직화, 한미 FTA 비준반대 입장표명은 '정치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을 한층 높이고 있다.

전망의 차이는 목적의식의 차이도 가져온다. 2011년의 촛불은 2008년에 비해 전개양상은 소극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목적의식은 더 강렬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를 바꿔야하고 바꾸겠다는 강렬한 의지와 행동이 두드러진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정치인은 강기갑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 정도가 유일했다. 그 외 모든 정치인은 거부와 불신의 대상이었다. 강기갑 의원도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그가 보인 헌신적인 투쟁과 '지사'의 이미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2011년 촛불 현장은 다르다. 시민과 소통하며, 가치를 대변할 정치인, 정치세력을 오히려 열망한다. 시민들은 더 이상 정치에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정치와 정치인을 찾고 있다. 안철수 현상 또한 그와 같은 정치변화의 의지가 투영된 것이다. 시민들이 불신하는 것은 모든 정치가 아니라 낡은 정치다.

2008년 촛불은 경이로웠다. 거대한 시민의 자발성, 청소년과 네티즌이라는 새로운 주체의 출현, 창조적 저항의 수많은 본보기들, 100일을 넘는 완강한 저항은 새롭고도 놀라웠다. 2008년 촛불은 또한 용광로처럼 모든 것을 다 녹이는 거대한 에너지의 분출이었다. 새것과 낡은 것, 민주적인 것과 비민주적인 것,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이 한데 뒤섞여 끓었다. 그와 같은 새로운 저항의 밑불, 변화를 요구하는 강렬한 열망이 한반도 대운하를 포기시키고, 의료민영화를 막았으며, 2010년의 지방선거 승리와 재보궐 선거의 승리를 일구고 한미 FTA를 지연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2008년의 촛불은 거리의 저항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확인시켰다. 그 경험과 교훈 위에서 한 단계 진화한 2011년의 촛불은 외친다. '문제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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