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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과잉 눈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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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과잉 눈치 사회

[민미연 포럼] 비교와 눈치의 고충

지난달 삼성증권이 큰 물의를 일으켰다. 있지도 않은 유령 주식을 전산 실수(?)로 창조한 데다, 직원 일부는 그 유령주를 팔아 이득을 보려 한 것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사측의 자필 반성문 조치였다. 삼성증권이 직접 제공한 자성결의대회 사진에는 구성훈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200여 명이 모여 '엄근진(엄격·근엄·진지)'한 표정으로 반성문을 쓰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을 본 첫 느낌이 뭐랄까. 표준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아스트랄'한 광경이었다.

삼성증권 사태가 벌어지기 며칠 전, 전기차 제조기업 테슬라의 창업주 엘론 머스크는 만우절 기념이라며 테슬라가 파산했다는 우스꽝스러운 셀프 사진을 찍어 올렸다. 테슬라의 위태위태한 경영 행보 때문에 머스크의 처신은 욕을 좀 듣기도 했다. 안 그래도 테슬라가 망할 거라는 비관론이 계속되는데, 아무리 만우절이래도 심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으니 부적절한 처신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엘론 머스크의 여유가 괜찮아 보였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이 기업가는 주변의 눈치를 너무 보지 않은 자학 농담으로 말썽을 일으켰다. 한데 한국은 그 정반대가 아닌가 싶다. 너무 눈치를 많이 보고 사느라 피곤한 게 한국의 고질병 중 하나다.

임직원 수백 명이 심각한 얼굴로 반성문 쓰는 사진을 언론사에 뿌렸던 삼성증권으로 돌아가 보면, 물론 그런 비장한 겉치레가 전혀 쓸모없진 않지만, 지나친 '눈치 보기' 풍토의 일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삼성증권의 고위직이라면 상위 0점대 퍼센트의 상류층일 텐데, 굉장한 압박을 받은 끝에 집단 반성문 이벤트까지 마련했다. 그 배포된 사진에서 받은 인상은 그들이 진짜 무서워하고 눈치를 보는 대상은 피해를 입힌 투자자가 아니라 특권층 중의 특권층, 삼성 일가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촌스러운 보여주기식 행사까지 열었을까?

▲ 삼성증권 임직원 200여 명은 지난 4월 15일 '삼성증권 배당 사고'와 관련해 자성결의대회를 갖고 자필 반성문을 썼다. ⓒ

한국의 만연한 과잉 눈치 세태는 막대한 부를 가진 최상류층조차 희생자로 만들 수 있다. 요컨대, 한국의 대기업은 여타 국가에 비해 가족의 경영권 승계가 유난히 빈번하다. 나는 그 주요인 중 하나가 2, 3세들의 주위 시선 의식과 비교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조)부모 세대만큼 능력이든 뭐든 발휘해서 그들 못지않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또 주변의 동류층 후대들도 다들 경영의 최전선에서 부모의 기업을 이끌고 있으니, 자신 또한 능력이나 적성과 무관하게 회사를 직접 경영해야 한다는 비교의 압박을 받게 된다.

대기업 창업주의 후손들이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고 보유 주식으로 배당금이나 받으며 좀 한가롭게 산다 해도 '능력이 없어서 저런다'는 눈치 주기가 없다면, 대한항공과 같은 사주 자식들의 흉측한 전횡은 일어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그러니까 2, 3세들에게 괄목할 성과를 내보라는 압력이 사라진다면, 기본 자질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부적격자들이 한사코 부모 기업의 리더를 맡으려는 일만은 막을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다.

한국 특유의 눈칫밥을 먹고 사는 괴로움은 덜 가진 이들에게 당연히 더욱 심해진다. 일례로, 뭐든 잘하는 엄마 친구 아들을 '엄친아'로 줄여 부르기 시작한 데는 타인과의 비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팽배해진 현실이 있다. 공부를 잘 못 하면, 공부 외의 특출난 능력이 없으면, 대학 간판의 명성이 높지 않으면, 쟁쟁한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으면 주눅이 들고 자존감이 낮아진다. 또한 결혼을 안 하면, 결혼해도 자식이 없으면, 반대로 결혼을 안 했는데 자식이 있으면, 임대주택에 살면, 혹은 일하다 다치거나 장애라도 있으면 괜스레 눈치를 보며 심적 불안에 시달린다. 한국식 눈치 압력은 너무도 체화되어 성실히 일하는 이들조차 '혹시 내가 일 안 하고 노는 것은 아닐까?' 수시로 스스로를 검열한다. 윗사람에 찍히지 않을까 항시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추는 것도 한결같은 일상이다. 가장 밑바닥으로 가면 생존 자체에 위협을 느끼며, 행여 이 형편없는 일자리라도 잘리지 않을까 간, 쓸개를 내어놓고 노심초사 살아간다.

비교와 눈치의 고충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 '실용적인 벽'을 세움으로써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 남의 사, 신경 쓰고 말고 살아야 피차 이득이 크다. 쉬운 예로, '왜 결혼 안 해요? 왜 애가 없어요? 남편은 뭐해요? 집은 샀어요? 어디 나왔어요? 애는 공부 잘해요?' 등 사생활 대화는 상호 가급적 삼가는 게 예의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또 우리 학교에서 누가 어느 대학에 갔다는 현수막을 거는 행태 등에는 차별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있어야 한다. 공교육의 주된 목표는 뒤처지는 학생들을 최대한 끌어주는 것이지 일부 고득점 학생들의 들러리로 만드는 게 아니다. 사교육 업체처럼 사업상의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닌 공교육 기관이 특정 학생의 특정 대학 입학을 마치 경사인 양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눈치 사회의 고단함은 실용적 개인주의를 물질의 차원에서 확립할 때 가장 확실하게 해소할 수 있다. 바꿔 말해, 폭넓은 계층의 세금을 늘리고 복지를 발전시켜 격차를 줄여야만 부질없는 눈치 보기가 타파된다. 복지강국의 주요 가치관은 철저한 개인주의와 실용주의다. 타인에게 사적으로 의존할 필요가 없는 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심지어는 가족 간에도 금전적 의존 관계를 극복할 수 있어야 개인의 자유가 최대로 보장된다는 극대화된 개인주의가 바탕에 있다. 또 강한 사회가 교육, 의료, 보육, 양로 등 개인의 자유를 확장해야 각자의 능력이 십분 계발되고, 바로 그때 공동체가 부강해진다는 실용주의가 복지국가의 기본 노선이다.

이 같은 실용적 개인주의가 가장 잘 구현되는 사회가 복지선진국 중에서도 북유럽 국가들인바, 이들은 자유가 확대된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가장 활발할 뿐 아니라 청년층의 독립 비율 또한 두드러지게 높다. 격차가 작고 삶의 안정성이 높은 만큼 남과 비교하느라 힘들어하지도 않고, 강력한 개인 존중의 제도와 문화에 따라 사생활에 침범하여 '눈치 없는 눈치'를 주고받지도 않는다. 이 속에서 뿌리내린 수평적 인간관계가 권위주의적 위계질서를 구축(驅逐)함은 물론이다.

좋은 사회는 벽을 잘 다루는 사회이기도 하다. 단단하게 세워야 할 벽과 허물어뜨려야 할 벽을 잘 구분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캐물으면 실례가 되는 개인의 영역에는 금단의 벽을 세우고, 반대로 돈의 영역에는 세금과 복지를 늘림으로써 개인 간의 장벽을 낮추고 사회의 분열을 예방한다. 각 기업의 노동자가 초기업적 노조를 통해 임금까지 양보하는 행위 역시, 노동자 간 돈의 교류를 늘려야만 차별과 반목의 벽이 약화되어 그들에게 이로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 구성원 사이의 벽에 대한 높낮이 조절이 잘될수록 '단절과 연대'가 조화를 이루며 각자의 자유와 안녕이 고르게 증진된다.

한국은 다들 잘 알다시피, 세금과 복지가 발전하지 못해 물러져야 할 벽이 도리어 철벽같이 강고하다. 또 기업별 노조로 분할되어 노동자 간 돈의 교류가 미미하며 노동 분단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실정이다. 반면, 존중해야 할 개인사의 벽은 아무렇지 않게 침범한다. 한국처럼 사람 사이의 벽이 고약하게 둘러쳐진 사회에서 삶의 만족감이 고르게 낮고 특히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지대한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 낮출 벽은 무엇이고 높일 벽은 무엇인지, 남북 간의 무용한 벽이 무너져가는 이 시대에, 아울러 생각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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