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비핵화와 종전이 가시화된다면 남북경협이 재개되고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추진될 것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북한 비핵화와 남북협력에 거는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 북한 핵개발에 따른 대북제재는 특히 남북 간 에너지협력에 치명적인 장애물이었는데 이것이 제거된다면 다양한 에너지협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연일 언론에서는 남북 에너지 협력에 대한 다양한 제안이 다루어지고 있다. 접경지역 평화발전소, 해상풍력, 다수의 석탄화력, 마을단위 재생에너지 시스템 등 다양한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남북경협은 북한의 필요 충족과 남북의 공동번영이라는 원칙이 견지되어야 한다. 에너지 분야 협력도 마찬가지이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남북에너지 협력과 관련한 많은 제안이 때로는 북측의 여건과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거나 북측의 필요와 관계없이 남측의 특정 비즈니스 차원에서 등장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에너지 협력을 위해서는 북한 에너지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북한 에너지현황에 대해 국제에너지기구(IEA), 통일부, 수출입은행,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여러 기관에서 소개하지만 신뢰할만한 자료가 매우 부족하다. 북한의 에너지 통계 시스템이 매우 취약하여 아마 북한 당국도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남한이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북한은 역외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낮다. 경제난과 대북 봉쇄전략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에너지자립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석탄은 북한 1차 에너지공급의 63%를 차지한다. 북한은 석탄이 풍부한 편이다. 수력을 포함하는 재생에너지가 그 다음으로 25%의 비중을 차지한다. 수력은 전력생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 수입 석유가 일부 비중을 차지하고 천연가스는 인프라가 없어서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에너지 사정은 매우 열악하다. 과거 양호했던 북한의 에너지 수급체계는 자연재해와 경제난으로 1990년대부터 퇴보를 거듭하였다. 그 결과, 북한의 인구는 남한의 절반 규모인데 에너지 소비량은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전력사용량은 연간 600킬로와트시로 남한의 18분의 일에 불과하다. 전력공급률은 39%에 머물고 있고 송배전 손실률은 16%에 달한다. 인구의 다수가 적절한 전력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송배전망이 노후화되어 어렵게 생산된 전력이 공급 과정에서 상당부분 손실되고 있다. 남북경협을 통해 지원된 교육, 의료, 산업 및 농업시설도 에너지 부족 때문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에너지 시스템이 정상화되지 못한다면 각종 경제적 지원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북한의 발전설비용량은 7600메가와트(7.6기가와트) 정도로 추정되는데 수력의 비중이 가장 크다. 통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수력설비용량만 5GW가 넘는다. 결과적으로 전력 생산은 수력이 주력이고 석탄화력도 일정한 비중을 차지한다. 석탄화력은 용량이 부족한데다 가동 중인 설비도 노후화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은 단기적으로 화력발전 확대, 전력손실 감소, 중소형 수력발전소 정상화를 추구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를 통해 이런 방침을 명확히 밝힌 바가 있다. 이런 여건과 필요를 고려하여 예전에도 신규 발전용량 신설에 앞서 석탄화력과 수력설비의 개보수, 송배전망 정비와 개선이 에너지협력에서 강조되었다. 대북제제라는 장애물이 없어진다면 북한의 에너지시스템 정비와 개선을 위한 지원과 투자가 활발해질 것이다. 이 분야는 민간 투자의 유인이 적기 때문에 남북협력기금, 관계정상화에 따른 일본의 보상금 등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이미 북한의 필요를 고려하여 에너지협력 구축을 제안하고 있다.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구축에 수력발전소를 현대화하며 화력발전소를 신규 건설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이 협력한다면 러시아에서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가스관을 건설하는 구상도 추진될 것이다.
북한에 석탄화력 설비를 증설하는 제안이 보도되자 한편에선 화력발전 대신에 재생에너지를 지원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북한이 에너지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며 북한에 부존하는 재생가능한 자원을 활용하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난 극복을 위한 단기 처방과 관계없이 북한 역시 중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파리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유엔에 제출한 국가별 기여방안(INDC)에 따르면 북한은 온실가스 감축과 연계하여 계통 연계형 태양광 1000MW, 서해안 해상풍력 500MW, 육상풍력 500MW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또, 북한은 2013년에 재생에네르기법을 제정하고 2044년까지 수력 외에 재생에너지 5GW를 확대하는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또, 북한의 개방과 남북한 시장협력이 진행되면 재생에너지 분야에 민간 투자도 가능해질 것이다.
한편, 북한은 INDC에 원전 2000MW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포함하였다. 향후 남북 에너지협력에서 북한에 경수로 건설을 재개할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좌초된 북한 경수로 사업에 이미 4조 원이 넘게 투자된 바가 있고 북한 핵개발 인력의 전환 문제도 걸려 있어 경수로 건설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남한의 원자력산업계는 북한 경수로 건설을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탈원전 논쟁을 떠나서 대부분의 전력 전문가들은 북한의 낙후된 송배전망과 전력수급 현황을 고려할 때 경수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선 기존의 발전설비와 전력망 개선에 집중하고, 평양, 김책, 원산, 나선 등 주요 도시 인근에 열병합발전소를 건립을 지원하여 전력과 동시에 지역난방도 공급하는 한편 농촌지역은 마이크로그리드 기반의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구축을 돕는 것이 단기간에 저비용으로 북한의 에너지난을 해결하는 에너지협력 방향이다. 나아가 남북이 모두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태양광, 풍력, 소수력, 해양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한반도와 주변국가 간 전력망 연계도 재생에너지 확대와 계통 안정 차원에서 남북이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