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날이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번갈아 넘는 모습은 감격적이었다. 현실적 목표로서 종전선언와 평화협정이 공식적으로 언명되고, 비핵화와 평화의 과정에 대한 대강의 합의가 이루어 진 것은 역사적이었다.
그러나 회담을 복기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북한의 정치체제를 잘 모르는 관찰자가 이번 회담을 지켜봤다면 의아함을 느꼈을 만한 대목도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에 참석한 남과 북의 공식 수행단의 상이한 스케일은 그 중 하나다.
남측의 참여 인사는 청와대, 국정원 등 대통령 직할 조직, 내각의 관련 장관 등 주로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기관의 장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북측의 공식 수행원은 거의 전 국가적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십 노구를 이끌고 참석한 김영남은, 북의 법제에 따르면 일상적 시기의 최고주권기관이자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이다. 김영철, 최휘, 리수용은 북측의 집권당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다. 이들은 노동당의 최고위급 인사일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에서 외교에 이르는 각 분야의 책임자들이다. 특히 리수용은 2017년, 19년 만에 부활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의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역시 형식상 당 인사이다. 군령권을 가진 총참모장, 군부를 대표하는 인민무력상, 남북관계 관련 국가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까지 포함하면 말 그대로 북한을 지탱하는 당정군의 핵심 인사가 모두 망라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북한은 수령-당-국가가 일체화된 체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정치체제인 우리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북한의 공식 수행단이 포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나 명목상의 역할을 가진 형식적인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 형식이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비롯 향후 대남, 대미 관계의 전환과 관련해 지난 4월 20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당적인 결정으로 이를 추인했다. 1인 통치의 전체주의지만, 형식적으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절차와 합의과정을 밟고, 그에 상응하는 스쿼드를 구성해 판문점에 나온 것이다.
일체화된 북한과 달리 우리는 다원적 정치체제이다. 시민의 대표기관인 의회, 그리고 의회를 구성하는 정당들이 모두 실질적인 권한과 힘을 갖고 있다. 의회는 예산, 외교 및 안전보장과 관련된 각종 조약에 대한 비준 동의권, 나아가 선전포고에 대한 동의권 등 그 권한은 매우 강력하고 실질적이다. 의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은 평화협정도, 전쟁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의회는 외교안보를 포함한 국정 전반에 있어 중요한 통치기구이다. 동시에 시민의 의사를 나누어 대표하고 정치과정을 통해 통치에 관여하는 야당들 역시 내일의 여당들이다. 언제든 집권세력이 될 수 있는 대안정부들이다. 금석문처럼 변하지 않는 남북 간의 합의를 만들고자 한다면, 야당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의회와 정당이 가진 통치, 외교안보에 관한 중요성을 감안 할 때, 집권당과 야당의 대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정도는 공식 수행단의 일원으로 참여해 남북 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보증하는 역할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소한 만찬행사에는 의회와 야당의 대표단은 참여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대통령의 스텝들과 우리 정치의 일부만을 대표했다.
행사가 끝날 무렵 TV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린 현송월 단장에게 "우리는 1번"이라며 엄지를 꼽도록 한 집권세력 관계자의 깨알 같은 디테일은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포함한 외교를 자신의 스텝과 일개 정파의 것으로 밀고 가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과거 남북관계에 대한 중대한 합의를 도출하고도 정권의 변화에 따라 정책이 널뛰기 하듯 냉온탕을 반복한 것은 국내정치적 합의 또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당대 집권세력의 정치력 부재도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회담 다음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일성은 "위장 평화 쇼"라는 것이었다. 그의 발언은 당내에서조차 비판이 제기됐지만, 진보파들 사이에서는 조롱이 그치지 않았다. "미친 것 아니냐", "바보 아니냐"라는 비웃음도 있었지만, 홍 대표의 설익은 말을 은근히 즐기는 듯한 태도도 있었다. 내가 만난 집권당 간부는 "홍 대표는 민주당의 숨어 있는 권리당원"이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냉전보수세력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강경한 말도 들린다.
과연 한국 보수가 냉전반공주의라는 이념에 매몰된 미치광이거나 바보일까? 물론, 국내정치에서 한국 보수는 냉전보수적이었다. 냉전보수주의를 국내정치에 강요하며 권위주의 시기에는 민주화 세력을 억압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적대적인 정치 양극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딱 '물가에 나가기 전'까지만 그랬다. 바다를 건너면 그들은 꽤 능력 있는 외교관이자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들의 능력은 현실주의에서 왔다. 현실주의는 힘을 중심으로 국제관계를 보는 시각이다. 그래서 한국전쟁 후 그들은 미온적이던 미국에 매달려 이례적으로 군사동맹을 체결했고, 냉전시대 내내 미국 편에 서서 싸웠다. 그러면서도 국제정치의 힘의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했다. 북방정책으로 당시 자유주의권의 어느 나라보다 빨리 변화하는 동구권․소련과 수교했고,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이를 통해 기업에게 새로운 투자처와 방대한 교역시장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국내에서라면 분명 경기(驚氣)를 일으켰을 공산당, 그 간부들과 레닌의 초상이 올려 보이는 홀에서 거리낌 없이 와인잔을 부딪혔다. 카메라를 물리고 나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익을 추구했다.
보수파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다. 그들 역시 국제정치에 있어 필요한 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정치적 부담과 손실을 감당했다. 대표적인 것은 한일 수교다. 한일 수교는 국제질서 상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보수가 주도한 협상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들이 필요한 일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보수는 이 과정에서 국내의 민족주의적 열정과 부딪혀야 했으며, 끝내 민족주의자들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 당시 야당 지도자 중 유일하게 한일 수교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DJ조차 한동안 '사쿠라'로 몰려 곤욕을 치러야 했다. 북방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북방정책은 "매우 해괴하고 위험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보수 주류의 강경한 반공주의를 넘어선 결과이다.(주1)
한국 보수파는 결코 바보이거나 미치광이가 아니다. 그들 역시 공동체의 안정과 안전에 기여해 온 우리 정치의 중요한 자산이다.
외교안보에 대한 보수의 기여와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과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한 국가의 중대 이슈인 외교안보 문제를 가능한 한 합의 쟁점으로 다루고 이를 통해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치의 규범 때문만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적절하게 표현했듯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긴 과정의 "출발선에서 신호탄을 쏜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우리가 평화의 과정에서 다뤄야 할 상대는 북한만이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국제체제의 최강자들이 게임의 상대이다. 외교안보를 둘러싼 국내정치의 적대구조를 그대로 두고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협상과 대화는 의견이 같기 때문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미국을 설득하고, 북한을 설득할 수 있다면, 국내정치의 가장 중요한 협상 파트너를 설득해야 한다. 협상은 적폐청산과 같은 담론으로는 할 수 없다. 이는 냉전반공주의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상대를 제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통치의 수단이 되면 증오와 적대만 키울 뿐 조정과 타협, 협력과 공존은 불가능해 진다. 정치에서 외교안보는 선거처럼 누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공동체 모두에게 공존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내전을 벌이며, 밖으로 평화를 추구할 수는 없다. 이제 남은 가장 큰 숙제는 문재인 정부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주1) 노태우 정부 당시 민병돈 육사 교장은 북방정책을 추진하는 대통령 면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정부의 북방정책과 남북한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기도 하며, 적성국과 우방국이 어느 나라인지도 기억에서 지워버리려는, 매우 해괴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 당시 민병돈 총장의 발언을 보도한 <한겨레>는 민병돈의 발언 배경에 대해 '군 지휘부는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 이후부터 심각한 인식의 혼란을 겪어 왔다'고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현정국 군부 불만 대변"(한겨레. 1989년 3월 26일)
(주1) 노태우 정부 당시 민병돈 육사 교장은 북방정책을 추진하는 대통령 면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정부의 북방정책과 남북한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기도 하며, 적성국과 우방국이 어느 나라인지도 기억에서 지워버리려는, 매우 해괴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 당시 민병돈 총장의 발언을 보도한 <한겨레>는 민병돈의 발언 배경에 대해 '군 지휘부는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 이후부터 심각한 인식의 혼란을 겪어 왔다'고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현정국 군부 불만 대변"(한겨레. 1989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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