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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이 '볼드모트'인가?

[정욱식 칼럼] 문정인의 화두, 보수의 색깔론, 그리고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

주한미군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직접적인 계기는 문재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포린어페어> 기고문의 일부 내용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데에 있었다.

상당수 언론은 문 교수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의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한 부분을 마치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것처럼 둔갑시켰다. 하지만 문 교수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 문제가 "딜레마"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진단은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지속적으로 거론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이고, 이에 따라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또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 교수에게 전화해 "대통령의 입장과 혼선이 빚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그리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의 군사적 긴장과 대치 속에 중재자로 역할을 하는 데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공론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그렇다면 주한미군 문제는 이것으로 종지부가 찍힌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하는 것은 맞지만 평화협정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는 없다. 평화협정과 그 이후 탄력을 받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핵심적인 과제와 의제는 군비통제와 군축이다.

주한미군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이는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유리알을 다루듯 비핵평화로 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열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 짚어볼 문제가 있다. 주한미군은 한미 양국의 합의에 따라 존재한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재인 정부는 평화체제 구축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고립주의적 성향을 품고 있다. 최근 그가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아니라 미국의 재건을 원한다"고 말한 것이나, 심지어 한국과의 통상 압력 수단으로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만지작거린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주한미군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은 트럼프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 것이다.

북한의 입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주한미군을 용인하겠다는 데에는 주한미군 및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를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미 군사 훈련 실시에 이해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앞으로는 조정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것이나, 북한이 주장해온 "조선반도 비핵화"에는 미국의 "핵 전략자산"의 철수 및 재배치와 전개 금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어려운 문제는 '주한미군이 과연 동북아에서 중재자와 안정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이는 한반도 차원을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정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다.

일단 동아시아 갈등의 중심축은 미일 동맹 대 중국(혹은 중러협력체제) 사이의 경쟁에 있다. 그런데 주한미군은 미국 군사력의 일부이고 갈수록 미일 동맹과의 일체화를 추구해왔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주한미군은 '안정자'가 아니라 '불안정자'가 될 공산이 크다.

동북아 비핵지대 창설이 필요한 이유

주한미군이 천재일우처럼 다가온 한반도 비핵평화로 가는 길에 혼선을 드리워서는 안 된다. 조심스럽게 다뤄나가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금기의 영역'에서 끄집어내 활발한 공론화와 대안 마련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문정인 교수는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고 봐야 한다. 또다시 보수 진영의 색깔론과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으로 화두의 싹을 밟아서는 안 된다.

대안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하나는 '주둔이냐, 철수냐'는 이분법을 넘어 상기한 문제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가령 핵우산을 비롯한 '전략 자산 없는 주한미군'도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또 하나는 6자회담의 재개다. 6자회담에는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이 있다. 그리고 이 실무그룹은 6자회담이 열릴 때에는 '아이디어 공백' 상태에 있었고, 6자회담 결렬이 10년째를 맞이하면서 이 그룹의 존재도 까맣게 잊혀졌다.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에서 우선적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바로 동북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공동의 목표로 삼은 남북한과 '비핵 3원칙'을 채택한 일본이 지대 '내' 국가로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 핵보유국들이 지내 '밖' 국가로 조약을 체결하며, 유엔 안보리와 총회에서 국제법적으로 이를 승인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동북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은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신냉전이 거론되고 있는 동북아에서 공동 안보로 가는 초석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틀이 마련되면 '전략 자산 없는 주한미군'도 가능해진다.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를 넘어 추구해야 할 비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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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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