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7일,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의 고급부 학생과 졸업생이 '고교무상화'제도 부적용에 항의해 일본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을 청구한 재판에서 나고야지방재판소는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부당판결을 선고했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발판으로 한반도가, 세계가 화해와 평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날, 일본정부의 차별정책을 정당화하는 판결이 선고되어, 일본이라는 국가의 고루함과 완고함을 한층 두드러지게 비쳤다.
맥빠지게 만든 부당판결
일본의 고등학교에 상당하는 교육시설 중에서 전국에 10개교 있는 조선고급학교의 학생들만 '고교무상화'제도에서 배제된 지 벌써 5년 여의 세월이 흘렀다. 이 노골적인 차별정책에 대해 오사카, 아이치, 히로시마, 규슈(후쿠오카), 도쿄의 5개 조선고급학교의 학생 혹은 학교법인이 일본국가를 상대로 길고 힘든 재판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2017년7월28일에 선고된 오사카지방재판소 판결에서는 원고가 전면 승소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얻었지만, 같은 해 7월 19일 히로시마지방재판소와 9월 13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는 원고 패소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네번째로 사법 판단이 내려진 이번 나고야지방재판소의 판결에는 현지인 아이치현뿐 아니라 일본 전국에서 조선학교 관계자, 지원자 등이 한걸음에 달려와 한국에서 온 지원자까지 포함해 약 500여 명이 재판을 방청하려고 길게 줄을 늘어섰다.
그러나 제소로부터 5년 이상의 세월을 끌어온 판결 선고는 맥빠지게도 단 수초만에 끝나 버렸다. 재판관은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들의 부담으로 한다"는 주문만 읽고 바로 자리를 떴다. 폐정 후의 법정에서는 커다란 분노로 가득 찼다. 방청석에 들어가지 못해 재판소 앞에서 판결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강하게 항의하며 구호를 되풀이해 외쳤다.
나고야 판결의 특징
나고야지방재판소의 판결 요지를 읽으며 히로시마나 도쿄의 부당판결과는 또 다른 문제점을 내포한, 어떤 의미에서는 한층 더 악질적인 판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로시마와 도쿄의 판결은 조선학교가 조선총련의 '부당한 지배'를 받고 있다는 의혹이 있어 조선고급학교에 '고교무상화'제도를 적용하면 학교에 대리 교부되는 취학지원금이 유용될 의혹이 있으므로 불지정했다는 일본국가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런데 나고야의 판결 내용은 히로시마와 도쿄의 판결보다 더 파고 들어가 '부당한 지배'의 의혹을 인정한 것이다. 그 근거로는 일본국가 측이 오사카재판에서 패소한 후 새롭게 증거로 추가한 조선고급학교 교과서의 기술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고야 판결의 특징을 보면, 먼저 학생과 학부모가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점을 중시해 조선고교를 진학 학교로 선택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민족교육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과 '부당한 지배'가 의심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단언한 부분을 지적할 수 있다. '민족교육의 가치'를 인정해도 그 '민족교육'은 '부당한 지배'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고 조선학교의 교육 내용은 폄훼했다.
또 하나, 판결에서는 조선고급학교에 대한 불지정 처분이 "납치문제 등의 정치 외교 상의 이유에 근거하는 것"이라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납치문제가 불지정 처분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원고 측이 주장하는 대로이다"며, 마치 정치적 외교적 이유로 인한 불지정 처분의 부당성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학교에 대한 조선총련의 '부당한 지배'가 의심되므로 "여하간에 문부과학대신으로서는 불지정 처분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끝내 그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원고 측의 주장을 거의 무시한 히로시마와 도쿄의 판결과 비교해 나고야의 판결은 언뜻 보면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듯한 자세를 취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논점을 '부당한 지배'로 몰아가 조선학교 측의 주장을 물리친 것이다.
리버럴을 가장한 오만한 판결
그러나 '부당한 지배'에 관해서는 판결에서조차 "합리적 의심이 존재했다"는 정도밖에 인정받지 못했다. '의혹이 있다'는 정도로 조선고급학교를 불지정 처분으로 한 것이 "교육의 기회 균등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고교무상화법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는 본질적인 물음에 대해, 나고야 판결은 답하지 않았다.
원래 '부당한 지배' 운운이 나중에 추가된 이유에 지나지 않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아베 신조 정권은 정치적 외교적 이유로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제도에서 배제하기 위해 그 근거가 되는 규정을 삭제하는 따위의 언어도단 적인 수단을 사용했으니, 무엇보다 먼저 이 점의 위법성을 물어야 된다. '부당한 지배'론은 일본국가 측이 그 규정 삭제의 위법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제기한 허구의 근거에 지나지 않는다.
판결은 민족교육에 대해 "자기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그 인격 형성에 즈음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에서는 '무상화'제도의 부적용이 "아이치 조선고교에서 민족교육을 실시할 자유", "원고들이 아이치 조선고교에서 배울 자유"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무상화'제도에서의 배제는 식민주의에 뿌리 내린 차별이라는 조선학교 측의 이의신청에 대해, 나고야지방재판소는 일본국가가 민족교육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형식론을 내세워 응하지 않았다.
즉, 나고야지방재판소는 민족교육의 가치를 인정하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 조선학교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이성'적인 면모를 내보이는 등, 뭔가 진보적인 입장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조선학교에서는 조선총련에 의한 '세뇌교육'이 행해지고 있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고교무상화'제도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했음을 시인한 것이다. 오늘날 '위안부'문제 등을 둘러싸고 일본의 진보진영 논단에서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한편, 식민주의 비판에 대해서는 소홀함이 눈에 띄는데, 이와 상통하는 듯한 오만한 사고 회로를 이 판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결의를 새롭게 한 보고집회
그날 저녁에 열린 보고집회에서는 우선 판결의 내용과 그 문제점에 대해 변호인단이 해설하고 조선학원과 원고, 지원단체 등이 항의성명을 읽었다. 또 도쿄, 오사카, 히로시마, 후쿠오카, 교토, 시즈오카 등 일본 각 지역의 대표와 한국의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의 손미희 대표가 연대를 호소했다. 그리고 집회에 참가한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대표 학생이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표명한 후, 다 같이 '금요행동'의 노래 <소리여 모여라, 노래여 오너라>를 불렀다. 매주 금요일 도쿄의 문부과학성 앞에서는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항의행동이 계속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연대 행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패소가 '고교무상화'제도 적용에 대한 전망을 한층 어둡게 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고야의 판결은 논리적으로 정연해 보이지만 그 내용은 공허해, 끈질기게 영위해 온 민족교육의 발자취, 나아가 재일동포들의 식민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 등이 의미하는 본질을 깨닫지 못하니, 가엾기조차 하다. 동아시아에서의 평화 구축이 현실성을 띠는 가운데 장기적으로 보면 어느 쪽이 승리하게 될까.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 깊이 감동하면서 역사의 심판이 정당하게 내려지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한편, 이날은 제1심에서 승소한 오사카에서 '무상화'재판 항소심의 제3회 변론이 열려, 오사카조선학원 이사장의 대표 의견진술을 마지막으로 결심(結審)이 되었다. 오사카고등재판소에서 판결 선고는 9월 27일 15시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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