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년까지의 한국 에너지 미래의 비전을 수립하고 정책 방향을 담게 될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수립 과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산업부는 '2040년 에너지전환 종합비전'을 표방하면서 지난 3월에 70여 명 수준의 민간워킹그룹을 구성하였다. 현재 분과별로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다뤄져야 할 주요 쟁점들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너지전환'을 위해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야 할 쟁점들이 많다. 예컨대 작년에 결정한 '탈핵로드맵', '3020 재생에너지 계획', 그리고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모두 전력 부문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전력이 에너지의 모든 것이 아니다. 건물 및 산업 부문의 열 그리고 수송 부문의 연료의 전환 문제도 다뤄야 한다. 또한 환경 및 사회적 비용을 반영하는 에너지 세제 개편도 중요하며, 에너지전환을 촉진하면서도 에너지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 산업구조 개편도 미뤄둘 수 없다. 또한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외교적으로 공표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달성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하나같이 중요한 쟁점들이다. 물론 이외에도 더 많은 쟁점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산업부와 환경부 사이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는 것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과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의 정합성을 유지하는 문제로 보인다. 익히 알려진 일이지만,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이 에너지 부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두 계획의 핵심은 사실상 동일하다. 에너지 수요량과 이를 공급할 에너지원 믹스를 어찌 구성할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산업부와 환경부가 가진 각기 상이한 정책 임무와 목표로 인해서, 두 계획의 정합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4월 16일 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이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정합성 유지와 관련된 두 가지 핵심적인 쟁점이 드러났다. 축사를 한 안병옥 환경부 차관은 배출전망(BAU) 대비 –37%라는 2030년 감축목표 설정 방식을 변경하고, 탄소시장에서 구입할 것으로 분류된 –11.3% 감축량을 국내에서 감축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미래의 배출량을 고무줄처럼 늘릴 수 있어서 감축량을 과장할 수 있는 배출전망 대비 감축율 설정 방식은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지 모호한 해외 감축량 목표 설정도 단골 비판 대상이었다. 이 점에서 안 차관의 문제 설정 자체는 타당하다.
이에 대한 산업부의 입장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지난 해 수립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0년 전력부문 배출전망(BAU) 대비 –26%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생에너지 3020년 계획과 환경급전을 통한 LNG 발전량 비중 확대 계획에도 불구하고, 핵발전 비중 축소 등으로 인해서 2030년 전력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도 보인다. 대개 현 정부의 탈핵 에너지전환 정책에 불만을 가진 이들로부터 나오는 억측일 수 있지만, 전기요금 인상 불가 입장 등으로 현 정부가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쟁점이 제대로 검토되고 있지 않아서 우려스럽다. 우선 계획 기간의 불일치 문제다. 올해 말까지 수립될 것으로 예고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과 6월까지 수정보완 예정인 온실가스 감축로드맵이 엇박자가 날 수 있다. 환경부가 계획대로 6월까지 로드맵을 완성하면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의 2030년까지 계획 내용은 미리 확정짓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질 것이다. 논리로는 그렇지만, 산업부는 6월까지 목표 수요안을 정리할 것이라고 알려진 상황을 보면 혼란스럽다. 환경부가 산업부를 견인해낼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미션이 환경부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2년 뒤, 2020년에 한국 정부는 유엔이 새로운 감축목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도 승인한 파리협약에 따라 2020년까지 새로운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시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제출한 배출전망(BAU) 대비 –37% 감축목표는 국내의 평가와 다르게 국제 사회에서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 환경단체들의 연합체(CAT)는 한국의 목표가 "매우 불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올해 환경부가 산업부 등을 설득해 해외 감축분을 국내에 돌려서 국제사회에 공약한 2030년 목표 배출량(536백만톤)을 재확정한다고 하더라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파리협정은 새로운 감축목표(NDC)를 제시할 때는 '후퇴금지 원칙'에 따라 보다 진전된 목표를 요구하고 있다. 협정 발효 이후에 처음이라서 당장 이 원칙이 강제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2도씨 목표도 부족하다고 1.5도씨 캠페인을 시작하고 있는 국제사회가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스톨록홈 환경연구소 등이 계산하고 있는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 배출 목표치는 3억8800~2억4700만 톤이다. 국제사회의 생각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깨달아야 한다.
게다가 파리협정은 같은 해(2020년)에 2050년까지 장기저탄소발전전략를 각국이 제출하도록 정하고 있다. 지구가 2도씨 이상으로 더워지지 않으려면, 전세계의 배출량을 2050년까지 2010년 대비 40~70%를 감축해야 한다.
책임 배분의 계산 방식에 따라 구체 수치는 다르겠지만, 한국도 무거운 감축 부담을 피하기 힘들다. 스페인 카탈루니아대학 연구팀(GGCC)의 지구적인 기후정의(climate justice) 원칙에 따른 계산에 의하면, 한국은 2050년에 3490만 톤으로 배출량이 극적으로 줄어야 한다. 정말 한국이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혹은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채택해야 하는지, 많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자면, 새로운 2030년 감축목표(NDC)와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을 이년 뒤인 2020년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2018년) 산업부와 환경부가 진행하고 있는 2040년까지의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과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로드맵 수립 과정에 2년 뒤의 일정을 어떻게 고려하고 있는지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눈앞의 과업을 달성하기에 바쁘니, 2년 뒤 일이 보일까 싶다. 그런 마당에 2030년과 2050년 계획이라니 가당키나 하나. 비관적 생각부터 든다.
최근 녹색성장위원회에 김정욱 위원장을 비롯하여 여러 환경운동가와 전문가들이 들어갔다.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과 온실가스 감축로드맵 수정보완본을 심의할 예정이다. 이명박의 악명이 서려 있어 꺼림직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에너지와 기후변화 정책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녹색성장위원회는 파리협정의 규정을 꼼꼼히 살펴서, 보다 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과 에너지전환의 구조적 변화 경로가 마련될 수 있도록 심의해주길 바란다. 현재로서는 각론이 아니라 큰 틀을 볼 수 있는 곳은 녹색성장위원회 뿐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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