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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큰 흠결이 '서울대 법대 입학' 사칭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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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제일 큰 흠결이 '서울대 법대 입학' 사칭이라면…"

[기고] 네가티브 공세를 바라봐야 하는 비애

박원순은 오래전부터 나의 연구 대상이었다. 현대사 공부를 업으로 하면서, 명멸해간 수많은 사람들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 보는 나름의 요령을 터득했고 많은 정보들을 축적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성미마저 까탈스러운 나에게 박원순이란 인간은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젊은 혈기에 혹은 한 두 번쯤은 대의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이들은 많다. 하지만 수십년을 그렇게 일관되게 살아온 사람은 정말 드물다. 박원순은 철들기 시작한 이래, 기득권을 포기했고 또 이미 가진 것들마저 바쳤다. 이번 보궐선거 출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이전 글에서 말했다.(바로보기)

그는 반듯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유능한 사람이었다. 양 측면을 겸비한 이는 정말 드물다. 인권변호-참여연대-아름다운재단(가게)-희망제작소 등은 그 영역과 성격이 다르다. 하던 일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면 그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 미련없이 떠났다.

그가 새로운 일을 벌일 적마다 나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다. 새로운 일을 벌이면서 그가 얼마나 초인적인 노력을 경주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최근에 박원순을 연구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면서, 박원순의 활동을 글로 다 적기에 너무 방대하다는 점에 새삼 놀랐다.

그런데 이번의 선택은 블루오션이 아니라 레드오션인지라 성공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두고만 보았지만 이번에는 글쓰기를 통해서라도 그의 성공을 돕고 싶었다. 그래서 '박원순의 10대 불가사의'라는 제목을 일찍 정해두었다. 그 작업을 이미 완성했어야 하는데 다섯 편의 글을 쓰고 중도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예민한 주제들만 남았다.

본지에 실린 지난 번 글은 그 1편에 해당하는 글이었다. 그 글에서 나는 박원순을 '털어 먼지만 날'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감히 말했지만 은근히 걱정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도 나약한 인간인지라 실수한 부분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또 이례적으로 약점도 적은 사람이고, 적도 적은 사람이지만 정치판에 들어서는 순간 가혹한 신고식을 치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 신고식은 예상했던 것보다 가혹했다. 검증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네가티브 공세는 도를 넘었다. 집권여당과 언론의 흑색선전을 바라보며 절망감과 비애감을 느꼈다. 수준 이하의 자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에 분노한다.

한편 나와는 정반대의 목적으로 박원순을 집중 연구하는 막강한 세력이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지경에서 박원순에 대한 글쓰기가 오히려 네가티브 공세의 꼬투리를 제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냥 당하고 있는 박원순을 옹호하기에 급급한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더 이상 글조차 쓸 수 없었다. 대신 네가티브 공세를 총정리하는 글을 쓰기 위해 면밀하게 관찰했다.

네가티브 공세는 박원순을 위선자로 낙인찍는데 일정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기성 정치와 언론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 네가티브 공격들을 꼼꼼히 살피면서 '털어 먼지만 날' 것이라는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여태까지 발견한 가장 큰 먼지는 소위 '서울대 법대 입학'이라는 학력 위조 공세뿐이었다. 나머지 문제는 구태여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한해서는 박원순이 자기 불찰을 솔직히 인정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는 그러지 않았다(뒤늦게 자기 불찰을 인정했지만). 자기 책에 그렇게 부정확하게 쓰여 있었다면(그렇게 쓰여진 것이 소수이긴 하나) 분명 그의 불찰이었다. 그런데 박원순은 '출판사들이 그렇게 적은 것이고,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한 적 없고, 크게 틀린 말도 아니고, 학교를 어디 다녔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식으로 번거롭게 해명했다. 네가티브 공세에 일방적으로 시달리면서 자기 방어 본능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뉴스가 연일 신문 지면을 도배하다시피했다. 그 작은 실수를 빌미로 박원순을 파렴치한 학력위조범으로 몰아갔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논란거리가 되고 기사거리가 되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박원순의 결정적 약점을 찾지 못한 것의 반증으로 여겼다. 관찰자인 필자도 어이가 없었는데, 본인은 말문이 막히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결코 학력으로 승부하지 않았다. 1980년 봄에 서울대 법대로 복학할 수 있었지만, 외국 학위 한두 개쯤은 확보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흔한 명예박사 학위도 구하지 않았다. 학위 대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견문과 자료들만 잔뜩 안고 귀국행 비행기를 탔었다.

학력위조와 함께 또 하나의 주공세 지점은 병력의혹이었다. 박원순 형제의 6개월 방위를 만들기 위해 '호적쪼개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박원순에게 그렇게 심각하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었다. 병역문제는 본인이나 그 어버이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13세에 불과했다.

신지호는 며칠 전 국회에서 박원순의 '제적등본'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추가 폭로한 내용이 없는데도 제적등본을 공개하는 쇼를 연출했다. 폭탄주에 취해 방송토론에 임하더니 술이 덜 깬 것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제적등본이 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기에는 수많은 존비속들의 사적이고 매우 민감한 정보들이 담겨있다. 주민등록번호 생몰년 출생지는 물론, 결혼과 이혼, 부자관계, 양부(모)와 계모(부), 친자와 서자(庶子) 등이 기재되어 있다. 심지어 창씨개명한 일본식 이름도 그대로 남아 있다. 제적등본을 보며 그 존재조차 몰랐던 가족 구성원을 발견하고 놀라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제적등본은 직계 가족이 아니면 뗄 수도 없다.

그런데 그 제적등본을 어떻게 입수했던 것일까? 그리고 만천하에 그 내용이 낱낱이 공개되었다. 신지호는 면책특권을 남용한 것이다. 나는 선거에서 제적등본을 공개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내 수중에 나경원의 '제적등본'이 있다면, 합리적 의혹 수십 건을 제기할 수 있다고 감히 자신한다. 신지호의 만용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의 범죄행위를 지적하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신지호는 제적등본을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전달 받았다고 했다. 박원순의 작은아버지(양조부)의 딸이 1937년 사할린에서 출생했다는 등의 동아일보 보도들을 보면서, 동아일보가 이미 제적등본을 확보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특히 이명박 정권에 올인한 동아일보는 마녀 사냥들에서 악질적 보도를 자행해 왔는데, 이번에도 그러했다. 신지호의 만용은 그 제적등본이 그들의 수중에 이미 있었음을 확인해주었을 뿐이다.

박원순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그의 작은 할아버지는 물론 그 서자들의 신상정보까지 폭로되었다. 그런데 나경원은 아버지 학교(홍신학원) 문제를 자신과 결부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위의 홍신학원 등기부에서 보듯이 그녀는 적어도 2001년 6월 19일부터 홍신학원의 이사였다. 그리고 현재도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사재직 중에 홍신학원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문제이다. 이런 것이 논란이 되고 뉴스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글을 구태여 쓴 또 하나의 목적은 지난 번 글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그 글에 오류가 두 가지 있었다.

그 하나는 박원순의 가족사진(그림 참조)에 대한 설명에서 잘못이 있었다. 중간에 있는 이를 '어머니'라고 캡션을 달았는데, '넷째 누님' 인 듯하다. 나중에 사진을 자세히 보니 어머니라고 하기에 너무 젊어보였다. 또 박원순을 다룬 대중적인 책에 '넷째 누님'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이 사진은 '원순닷컴'에서 자료를 확보했는데, 글을 쓸 적에 재확인하려 했더니 그 사진들이 모두 사라졌다. 아마 사적인 것들이라 일단 삭제한 것이리라(최근에 이 사진은 '원순닷컴'에 캡션 없이 다시 올라왔다). 부득이 기억에 의존해서 어머니라고 했었는데 잘못이었다.

어머니가 아닌 것은 분명한데 넷째누님인지 여부는 확언할 수 없다. 아마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그 나이 즈음의 사진이 두 장 있는데 그 중 한 장에 대해 형과 나는 자기 사진이라고 서로 우기고 있다.

이러한 필자의 잘못은, 그림에서 보듯이, 조선일보에서도 되풀이 되었다. 야권 단일화 경선 다음날(10월 4일) 조선일보는 박원순 소개 기사를 크게 실었다. 그 기사 내용은 필자의 글에 대폭 의존한 것처럼 여겨졌다. 조선일보 사진 설명마저 필자와 동일한 잘못을 범한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 사진마저도 내 글에서 취한 것으로 추정한다.

내가 범한 오류는 일등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에서 되풀이 되었으니 앞으로 오류는 재연될 것이다. 박원순의 학력위조문제도 어느 출판사에서 잘못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되풀이된 것이리라. 역사공부를 하면서 이러한 경우를 무수하게 보아왔기에 글쓰기에 임하면서 항상 두려움이 앞선다.

또 하나의 오류는 박원순의 단국대 입학과 졸업시기이다. 1976-1983년이라고 추정했지만 박원순이 선관위에 제출한 문건에 따르면, 1979-1985년이다. 조중동의 인물정보에 따르면 졸업연도가 각각 1982년, 1979년, 1983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그 외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하여 1976-1983년으로 추정했지만 역시 잘못이었다. 여기서도 살필 수 있듯이 박원순은 자기 학력에 대해 거의 무관심한 사람인 듯하다. 학력위조 공격을 받고서야 자기 학력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첨언>

박원순답게 잘 감당해 낼 것이라 믿는다. 그는 겉보기와는 달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어떤 공직도 맡은 적이 없지만 이미 우리사회를 많이 변화시켜왔다. 박원순은 양김시대처럼 정치권의 새 피로 수혈된 게 아니라 기존의 헌 피를 대폭 갈아치울 가능성이 높다. '박원순 쓰나미'를 기대한다. 그 쓰나미가 두려운 이들은 결사적으로 저항하겠지만.

청바지에 백팩 메고 지하철과 버스로 출퇴근하는 '서울시장 박원순' 모습을 그려본다. 박원순의 승리와 성공을 통해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이 있다. 그의 정치권 진출을 더없이 반긴 축인지라 부담감도 느낀다. 그를 너무 험한 곳으로 내몬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만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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