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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페미니스트 책방 '꼴'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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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퀴어페미니스트 책방 '꼴'을 소개합니다

[ACT!] 다름으로 연대하는 이들의 머물 자리

대형 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페미니즘 도서를 발견할 수 있는 요즘이다. 베스트셀러 자리에 놓인 페미니즘 도서들을 보면서, 이 호황을 견인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우리는 페미니스트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책을 사고 또 읽는 과정 속에서 이런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어떨까. 퀴어페미니스트 책방 '꼴'에서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책방 '꼴'은 페미니스트들이 만들고, 페미니스트들이 운영하는 서점이다. '꼴'은 책을 팔고, 책을 매개로 만남을 만든다.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에게 위안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책방 '꼴'을 운영하는 나기, 뽑, 지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책방 '꼴'의 매력을 전한다. 인터뷰는 2018년 2월 13일에 진행됐으며, 사진과 녹취는 김주현 ACT! 편집위원이 담당했다.

퀴어페미니스트 책방 '꼴'을 소개합니다

책방 '꼴'은 홍대 번화가 인근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해있다. 주상복합 아파트 1층 상가에서 무지개깃발을 찾아냈다면, 바로 그 곳이 책방 '꼴'이다. 퀴어페미니즘을 표방하는 '꼴'의 지향이 잘 드러난다. 바깥 쪽 진열대에는 운영진인 '꼴키퍼'들이 고른 책들이 행인을 반기고 있다. 일반적인 서점에 비해 운영 시간이 짧은 편이지만, 기억해두었다 들르기에 나쁘지만은 않다. 책방 '꼴'을 운영하는 언니네트워크의 상근자와 책방 '꼴' 운영진인 '꼴키퍼' 회원들이 책방 '꼴'을 지키고 있다.

책방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의 넓은 서가가 가장 눈에 띈다. 커다란 책장 가득 단행본들이 들어서있다. 보통 서점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일반 서점의 페미니즘 섹션 크기와 비교해본다면 상당하다. 이론서나 에세이 뿐 아니라 시, 소설과 같이 기존 '페미니즘 도서'의 범주를 넘어서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책 리스트는 언니네트워크의 책방 '꼴' 운영진들이 함께 정한 것이다.

나기: (책방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은 책 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고요.

지은: 기준점 잡는 것도 각자의 생각이 다르니까 오래 걸리고.

뽑: 이 공간은 언니네트워크 사무실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필수적인 가구만 있으면 공간 문제는 해결되는 거였거든요. 서점에 무슨 콘텐츠를 꽂아놓느냐가 준비 과정의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저희가 좋아하는 책을 다 뽑아봤는데 이걸 다 넣을 수는 없는 거예요.

나기: 우리가 책방 꼴을 통해서 어떤 주제를 보여줬으면 좋겠는지 정하는 작업부터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 언니네트워크는 비혼 운동을 굉장히 오래 해 왔고, 이성애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 문제제기를 해 왔으니까 비혼 관련 서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퀴어페미니즘을 보여줄 수 있는, 퀴어가 두드러지는 서가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문학이 있어야 한다.

뽑: 여성 시인 시집을 들여놓지 않고 퀴어페미니즘 서점이라 할 수 없다! 최승자 다 넣어야 하지 않겠냐! 김혜순 다 넣어야 된다!

나기: 저희가 책방을 준비하던 그 즈음이 문학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지금의 미투 운동에 앞서 굉장히 활발하게 일어나던 때였어요. 이 시인 좋아하고 이 소설 좋아한다고 올렸다가 그 사람이 성폭력 성희롱 이런 걸로 폭로돼. 그래서 100퍼센트 안전하다는 건 없지만 어쨌든 퀴어페미니스트가 읽으면서 고통 받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책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리고 한국 문학선이라고 했을 때 남성 작가 중심으로 정전이 이어져 오니까, 페미니스트가 즐겁고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정전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문학 코너를 좀 열심히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책장 옆에는 정기간행물을 모아놓은 섹션이 있다. 책방 가운데 놓인 테이블에는 책자로 된 독립출판물들이 모여 있다. 이들 콘텐츠는 주로 텀블벅과 같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제작되고 있는데, 시기를 놓치면 구하기 어려운 콘텐츠들을 한 데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출판물들은 책방 '꼴' 운영진이 입고를 요청한다. 입고 신청서를 받기도 한다.

꼴키퍼 3인에게 물었다! 가장 소개하고 싶은 책

지은: <끝나지 않은 노래>(최진영 지음)

"제가 퀴어 문학을 좋아하는 편인데, 2대에 있는 주인공 중 한 명이 수선이라는 인물이 레즈비언 성향이 있어요. 이 소설이 3대에 걸친 여성 수난사라서 굉장히 읽는 게 고통스럽고 힘든데도 그런 에피소드들이 나올 때는 깨알같이 귀엽고 마음이 훈훈해져가지고 제가 되게 좋아하는 작품인데 안 팔려서 속상해요. 어떻게 이걸 팔지?"

나기: <양성애 : 열두개의 퀴어 이야기>(박이은실 지음)

"제가 정체화하던 시기에 이 책이 나왔다면 붙잡고 펑펑 울었을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한국에서 나온 바이섹슈얼과 관련된 유일한 책이예요. 인터뷰를 통해서 바이섹슈얼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를 다양하게 드러낸 책인데, 이런 책이 나와서 너무 기쁘고,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읽으면 충분히 많은 도움이 될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뽑: 퀴어페미니스트 매거진 <펢>(언니네트워크 <펢> 기획단)

"저는 원론적으로 가겠어요. <펢>을 추천합니다. 햇빛서점을 비롯한 독립서점 중 많은 곳이 출판 레이블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잖아요. 자기가 전하고픈 메시지나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결국에는 <펢>이 저희가 얘기하고 싶은 것들을 가장 잘 담고 있고, 그런 콘텐츠가 없어서 만든 잡지이기 때문에, 퀴어페미니즘에 갈급하신 분이라면 <펢>을 읽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대답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저희한테 제일 많이 남아서……. (제일 많이 팔리기도 했어요!)"

널찍한 책상과 의자들 또한 책방에서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는 독서용으로 마련된 책이나 구매한 책을 읽어볼 수도 있고,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책방 '꼴'에서는 짝수 달마다 '꼴좋다'는 이름으로 행사를 연다. 언니네트워크의 소모임도 '꼴'에서 열린다. 책읽기 소모임 '같이읽는책'은 한 달에 한번 '꼴'에서 비회원에게 열려 있는 모임을 갖는다. 올해부터는 유료 강의도 비정기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동료를 만나고 싶은 퀴어페미니스트에게 '꼴'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책방 '꼴'에서의 순간들

책방 '꼴'은 작년 11월 25일에 문을 열었다. 이제 3개월 남짓 운영된 셈이다. 오픈 시간이 바뀌는 등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지금까지 큰 무리 없이 운영되고 있다. 적지만 수익도 내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세 '꼴키퍼'들에게 그간 '꼴'을 운영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물었다.

현재 총 8명의 '꼴키퍼'가 책방 '꼴'을 운영하고 있다.

뽑: 저는 개인적으로 걱정을 했었어요. 페미니즘 서점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하면 진짜 이상한 사람이 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술 취한 아저씨가 와서 책을 다 들어 엎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아직까지 그런 일은 있지 않았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와서 우리 것을 본다는 위험이자 기회가 항상 열려있기는 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위험한 일일 수도 있고. 닫혀있는 공간, 닫혀있는 인간관계와 운동을 넘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거고. 지금은 걱정보다는 기대가 약간 커진 상황이기는 해요.

나기: 사실 여기 공간 만들어질 때부터 주민들이 올 때 관심이 되게 많았어요. 우리가 처음에 공간 만들 때 다 직접 만들었거든요. 책상도 다 우리가 만들고. 싱크대도 우리가 만들었고. 저 냉장고 칠도 우리가 한 거예요. 저 타공판도 다 우리가 달았고. 막 매주 여자애들이 우르르 와가지고 뭔가를 만들고 사포질을 하고 있는 거예요.

뽑: 돈을 아끼자는 의미로 시작을 했죠. 근데 진도가 안 나가. (웃음) 한 달 내내 그러고 있는 거야 사람들이. 게다가 막 머리 짧은 이상한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를 사람들이. 여성단체에 남자가 드나든다고 민원이 들어오고 막 그랬어요.

나기: 여성단체에도 남성 있을 수 있고 실제로 남성도 있는데. 하지만 걔는 남자가 아니었다. (웃음) 그리고 우리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여성주의 문화운동 단체다. 우린 늘 이럴 거고 무지개가 걸려 있을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이 공간이 있음으로 인해서 여기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뽑: 공간으로 1인 시위 하는 기분이에요. 서 있는 거죠, 무지개로.

오랜 시간 운영하진 않았지만, 책방 '꼴'의 시간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동네 길고양이가 가게에 들어오기도 하고,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상담처를 물어오는 사람도 있다. 지방에서 찾아온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서점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외연을 넓히는 만남의 순간들이 '꼴'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 인터뷰를 함께한 책방 <꼴> 운영진 '꼴키퍼' 뽑, 나기, 지은 ⓒACT!

'꼴' '펢'으로 퀴어페미니즘 하기

언니네트워크의 다양한 활동 중 이들의 지향을 가장 선명히 드러내는 것이 있다면 책방 '꼴'과 퀴어페미니스트 매거진 <펢>일 것이다. 언니네트워크는 '꼴'과 '펢'을 만드는 '꼴펢'단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책방 '꼴'이 만들어진 이유도 매거진 <펢>이 만들어진 이유도 퀴어페미니즘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퀴어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는 페미니즘의 참된 의미에 가깝다고 '꼴키퍼'들은 말했다. 퀴어페미니즘은 '동일한 여성'들의 '공통된' 경험에 기반한 '여성 운동'을 문제 삼는다. 빈곤 여성, 장애 여성, 이주 여성, 레즈비언 여성, 트랜스젠더 여성, 청소년 여성 등 다양한 여성의 경험은 하나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퀴어페미니스트들은 여성 간의 차이를 인식하는 한편, 이들을 '여성'이라는 범주로 단일화하는 사회에 함께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기존의 '여성' 범주를 넘어 다양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을 페미니즘의 주체로 본다.

2018년 지금 퀴어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필요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여성가족부에서 지자체의 성평등 조례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제외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리고, 성소수자를 배제한 성교육 표준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게이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이 세력화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책방 '꼴'은 '페미니즘'의 이름을 빌린 혐오발화를 마주하는 퀴어페미니스트들에게 위안이 되고자 한다.

특정한 이념에 기반을 두고 매체를 큐레이션하는 공간이 콘텐츠를, 사람을, 이념을 어떻게 지속되게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책방 '꼴'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페미니스트들의 펀딩으로 시작했다. 모금된 300만원은 퀴어페미니스트 서점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욕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제 첫걸음을 내딛은 책방 '꼴'이 그런 이들의 마음과 함께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길 바란다.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꼴'은 기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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