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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이 들고온 '독자 생존'은 사실 '철수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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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이 들고온 '독자 생존'은 사실 '철수 플랜'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GM이 철수해야 힘을 갖는 협약

현재 GM과의 협상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구조조정 원칙으로 ‘독자생존’을 강조한다.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기업의 회생에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것. 다만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면 구조조정과 산업은행 지원을 통해 홀로 생존할 능력을 갖추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금호타이어는 해외매각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중국 더블스타로의 매각을 밀어붙였고, STX조선해양은 은행 관리 아래 대규모 비용감축을 동의해야 했다. 전세계 각국 정부를 상대로 갑질 협상을 벌이는 GM은 협상 파트너에 대한 분석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GM이 한국 정부를 만날 때 들고 간 문서 제목이 ‘viable plan(독자생존 계획)’이었다.

독자생존 계획이 아니라 철수 PLAN(계획)

하지만 GM이 문서에 담은 내용은 제목과 완전히 달랐다. 이제는 상당히 알려져 있지만, GM은 독자적으로 생존하겠다는 계획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특혜와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해서만 한국에 남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특혜와 희생이 없을 경우 철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GM이 ‘viable plan(독자생존 계획)’을 들고 정부를 찾아간 시점은 아무리 늦어도 1월 중순 경으로 파악된다. 이 플랜을 제시한 뒤 GM이 가장 먼저 실행한 중요한 행동이 무엇이었던가? 2월 13일, 전격적으로 군산공장 폐쇄 계획을 발표한 것이었다. 노조에게도, 정부에게도 사전에 이 문제를 전혀 상의하지 않고 말이다.

법인세·관세 등의 특혜를 달라며 GM이 정부에 제출한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신청서’에는 무슨 내용이 담겼던가? △ 고용인원을 1만7000명에서 1만1000명으로 줄임(6000명 인력 감원) △ 연간 생산량을 50만 대에서 30만 대로 축소 △ 5년간 신규 채용인원은 비정규직 7명…

한국 정부가 아무리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을 정도의 계획이 담겼다. 오죽했으면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 백운규 장관이 GM 신청서가 법적 요건을 아직 충족시키지 못한다며 “보완해 오라”, “신성장 기술에 대한 것들을 더 가져오라”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고 있을까 말이다.

사실 그동안 GM의 행태는 너무 많은 것이 폭로되어서 이제 국민들도 GM의 계획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GM은 한국을 떠날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떠난다고 결정하더라도 2~3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한국의 R&D 센터에 맡긴 업무들이 아직 너무 많고, 트랙스·스파크 차량을 전세계에 공급할 수 있는 건 한국 공장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GM은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와 노조에게 이렇게 던진 것이다. “너희들이 아낌없는 지원과 희생을 해준다면 우리가 5~6년 더 남아 있는 걸 고려해볼게. 대신 그 기간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너희들이 부담해야 돼.” 다시 말해 GM은 2~3년 뒤 철수, 아니면 5~6년 뒤 철수, 둘 중의 하나를 한국 정부와 노조에게 택하라고 던진 것이다. 다시 말해 GM이 던진 것은 ‘독자생존 계획’이 아니라 ‘철수 플랜’이라는 것.

‘독자생존’ 계획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이 설마 저런 계획을 ‘독자생존’이라고 인정해주진 않을 것이다. 독자생존 계획이라면 최소한 “GM이 철수하더라도 독립된 자동차회사로서 생존이 가능한 계획”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운 좋게도 <인사이드 경제>는 그런 계획이 명시된 문서 하나를 입수했다.

□ CSA 개정과 관련하여

◦ 현행 CSA는 공동개발기술의 소유권이 GM으로 이전되고, GM대우는 GM의 사전동의 조건하 제한적인 무상사용권만을 보유함으로써, GM 철수시 GM대우는 독립된 자동차 회사로서 생존이 어려운 것으로 판단되어, 산은은 GM대우 장기 독자생존을 위한 기술기반 구축을 목표로 협상을 추진하여 왔는 바,

◦ 이번 협상을 통해 GM대우가 공동 개발한 기술에 대하여 항구적인 무상사용권과 이에 대한 권리보호 장치 마련 및 CSA 해지 후에도 비용분담율에 따른 로열티 수령권을 확보하여 실질적으로 공동소유권에 준하는 권리를 확보함.

◦ 이에 따라 GM대우는 독자적으로 신차개발, 수출, 해외생산, 합작투자 등이 가능하게 되어, GM이 철수하더라도 독립된 자동차 회사로서 생존이 가능하고, 향후 국내·외 자동차사와의 전략적 제휴 및 M&A를 통한 계속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음.

지난 19대 국회 정무위 한 의원실에서 산업은행에 질의해서 받은 답변 내용의 일부이다.(강조와 밑줄은 인용자가 그은 것임.) 질의 내용은 2010년에 GM과 산업은행이 체결한 ‘GM대우 장기발전 협약’ 합의서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당시 합의서에 비밀유지조항이 있어서 공개하기 어렵다며, 대신 협약 체결 당시 산업은행 내부 보고자료를 답변으로 보내왔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문구는 “GM이 철수하더라도 독립된 자동차회사로서 생존이 가능”하다는 표현이다. 실제로 2010년 12월 위 협약이 체결된 직후 산업은행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GM이 철수하더라도 독자생존 가능하도록 한 협약”이라는 말을 몇 차례나 반복하며 강조한 바 있다.

그래? 그렇다면 지금 GM이 철수하니 마니 하는 걸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말 아닌가! GM이 철수하더라도 독자생존이 가능한 2010년 협약을 발동시키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 GM대우가 공동 개발한 기술에 대한 항구적인 무상사용권 △ CSA 해지 후에도 비용분담률에 따른 로열티 수령권 확보 조항도 있다고 한다.

독자들 중에서는 이게 뭔 소린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인사이드 경제>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긴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이 부분은 좀 세부적인 설명을 곁들이기로 하겠다.

과도한 연구개발비 지출에 기술 소유권까지 넘어가

현재 산업은행의 실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미 언론에서 뜨겁게 다뤄온 문제점 하나가 한국GM의 과도한 연구개발비 지출이다. 매출액 대비 비율로 따지면 전세계 어느 완성차업체보다 높은 지출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GM이 가진 차량 라이센스는 단 한 개도 없다.

사실 산업은행은 이런 문제점을 굉장히 일찍 간파하고 있었다. 2007년부터 갑자기 연구개발비 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2007년부터 적용된 CSA(Cost Share Agreement), 즉 비용분담 협정의 문제가 놓여 있다.


2009~2010년에 산업은행 법무실에 근무하며 GM과의 협상에 참여했던 이지은 변호사가 월간 <중재>라는 잡지에 투고한 글이다.(밑줄은 인용자가 그린 것임.) 위 글에 따르면 2007년부터 적용된 CSA로 인해 △ GM대우가 자체개발한 기술 소유권을 GM 본사에게 이전하고 △ GM대우가 부담하는 연구개발비가 급증했다고 지적한다.

산업은행은 바로 이 지점에 발끈했고 2009~2010년에 대출금 상환 압박, 국제분쟁 압박, 법정관리 신청 압박 등 GM을 상대로 전방위적 압력을 가하며 협상을 진행했다. 그 결과로 2010년 12월에 ‘GM대우 장기발전 협약’이 체결되었고, 이 과정에서 비용분담협정(CSA)도 크게 개정된 것이다.

GM이 철수하면 로열티를 수령한다

CSA 개정 내용은 산업은행이 답변한 내용에 잘 나와 있듯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GM대우가 공동 개발한 기술에 대한 항구적인 무상사용권’이다. 이런 기술에는 뭐가 있을까? 기술로 따지면 <인사이드 경제>가 아는 게 없지만, 차량으로 보자면 쉐보레 스파크·아베오·크루즈·트랙스 등 소형차와 소형 SUV를 의미한다.

2010년 12월 당시 산업은행의 기자회견 내용을 들여다보면, GM이 철수하더라도 위 차량들에 대해서는 생산·판매·수출이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7년간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도 나오고, 일부에서는 항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나오는데 큰 차이는 없다. 7년 넘게 똑같은 차량을 계속 만드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 다음에 담긴 내용도 꽤 흥미롭다. “CSA 해지 후에도 비용분담률에 따른 로열티 수령권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CSA가 해지된다는 건 결국 GM이 철수하는 경우뿐이다. 따라서 GM이 철수할 경우 한국GM은 오히려 로열티를 챙긴다는 말이 된다. 오호라~ 그렇다면 GM이 철수할 경우 과도한 연구개발비 부담을 떠안을 필요도 없고, 오히려 로열티 수입이 생긴다?

<인사이드 경제>가 보기에 2010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GM이 머지않아 철수할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GM이 철수하더라도 독자생존이 가능한 계획, 즉 GM 철수에 대비한 플랜(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GM 본사로 넘어간 기술소유권을 찾아오진 못했지만 항구적인 무상사용권을, 그리고 지금까지 지출한 연구개발비를 토해내진 못하더라도 이후 짭짤하게 로열티 수입을 챙길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이다.

독자생존 플랜은 가능하다!

“GM이 철수하면 한국GM은 일체의 라이센스도 없고 독립적인 해외판매망도 없는데 무슨 수로 독자생존을 한단 말인가?”

우선 이 얘기부터 하자. 만일 독자생존의 길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결국 한국GM이 살 길은 어떻게든 GM 치하에 남는 길뿐이다. 그렇다면 GM 본사는 30만 일자리를 볼모로 노조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온갖 갑질을 할 것이고, 그때마다 정부와 노조는 퍼주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독자생존의 길을 준비하면서 GM과 교섭을 벌인다면, GM이 갑질을 벌일 때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떠나라!”며 대등한 교섭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떠나라”고 말할 수 있어야만 못 떠나게 만들 수 있고, 설사 떠난다 하더라도 다른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따라서 "무슨 수로 독자생존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자생존 플랜을 짜야만 한다. 게다가 한국GM의 경우 GM의 철수에 대비해 체결된 2010년 협약이 있다는 점에서, 독자생존 플랜을 짜는 것이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우선 라이센스가 없다 하더라도 향후 2~3년간은 현재 생산 중인 차량을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2010년 협약에 따르면 GM이 철수하더라도 쉐보레 스파크·아베오·크루즈·트랙스의 생산·판매·수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걸 GM이 용인하겠느냐고? 당분간 스파크와 트랙스의 공급은 한국 공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당연히 GM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독립적인 해외판매망 역시 2~3년간은 기존 차량을 OEM 방식으로 수출할 수 있기에 기존 수출시장에서 판매가 가능하다.

이런 사례가 또 있느냐고? 멀리 갈 것도 없다. 작년에 GM이 PSA에 매각한 오펠이 현재 어떤 차량을 생산하고 있을까? 오펠 코르사·아스트라 등 GM 자회사 시절에 만들던 차량들을 그대로 생산하고 있다. 심지어 독일 공장에서는 뷰익 리갈과 홀덴 코모도어를 생산해 각각 미국과 호주에 수출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OEM 방식 수출이 가능한 2~3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 게다가 GM 철수에 대비한 협약답게 2010년 협약에는 이런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국내·외 자동차사와의 전략적 제휴 및 M&A를 통한 계속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음" - 그렇다면 우리가 독자생존의 길을 포기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산업은행이 2010년 과오를 씻는 길

비용분담협정(CSA)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GM과 대등한 협상을 벌였던 2010년의 산업은행, 그 결과로 GM 철수 시에도 기술사용권, 로열티 수령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협상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CSA의 문제점 중 ‘과도한 연구개발비 지출’ 항목은 개정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GM 연도별 감사보고서를 통해 연구개발비 지출액 규모의 추이를 그래프로 나타내보면 문제점이 시각적으로 확 드러난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CSA가 체결되어 적용된 2007년부터 연구개발비 지출은 갑자기 2배 이상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그런데 잘못된 CSA를 개정한 2010년 이후에도 연구개발비 지출은 전혀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2010년 협약을 체결할 당시 과도한 연구개발비 지출을 산업은행 역시 합의해 주었다는 얘기가 된다. 기술사용권은 확보했지만 실제로는 라이센스 하나 갖지 못하면서 매년 6000억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본사에 상납하는 일은 중단되지 않았다. 아니, 산업은행이 사실상 이 문제를 눈감아 주었고, 따라서 이후에도 전혀 문제제기를 받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산업은행이 이번 실사에서 과도한 연구개발비 문제를 지적하고 밝혀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2010년에 이미 자신들이 합의를 해줘버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다시 들춰내려면 과거 자신의 잘못을 만천하에 공개해야만 한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지금이라도 그 과오를 바로잡을 다른 길이 없는 게 아니다. GM 철수에 대비한 2010년 협약을 전면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GM 철수시 한국 정부와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독자생존의 길이 무엇인지를 밝혀내야 한다.

좋게 해석해 주자면 2010년에 과도한 연구개발비를 용인해준 이유는, GM이 철수할 경우 ‘비용분담율에 따른 로열티 수령권’을 염두에 두었던 때문으로 보인다. 즉, 지금 비록 지출이 많더라도 나중에 GM이 철수하면 오히려 이득을 챙길 수 있다고 보았던 게 아닐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2010년 협약은 GM이 철수해야만 오히려 빛을 보는 협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협약의 존재로 인해 오히려 GM은 최근까지 철수 플랜을 가동시키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철수하면 GM이 오히려 손해가 나니까 말이다. 그래서 GM은 철수하기보다 한국에서 이자놀이로 매년 1천억, 연구개발비 매년 6천억 등 현금을 빼가는 용도로 활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2010년 협약을 공개하고 이걸 발동시킬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제 GM의 패악질은 스스로 부도를 내니, 법정관리를 신청해 버리겠다느니 수준으로 추잡해진 상태 아닌가.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도 ‘독자생존’을 구조조정 제1의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과거 산업은행의 과오를 씻기 위해서도 이제 독자생존의 길을 노동자와 함께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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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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