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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에 면죄부 주려 하나?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문재인 정부의 '시험대'

지난 30년 사이 한국에서 완성차 공장이 폐쇄된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 2월 13일, GM이 한국 제조업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려는 오만한 일을 시작했다. 군산공장을 폐쇄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 우리는 가히 ‘GM 사태’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상황을 겪고 있다.

그런 GM과 교섭을 하는 주체가 둘 있다. 하나는 노동조합이며 현재 2018 임단협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한국 정부인데, GMI의 배리 엥글 사장이 한 달에 2번씩 한국에 들어와서 기재부·산자부·산업은행·금융위 등을 만나며 교섭을 벌이고 있다.

노동조합이 벌이는 교섭은 노조 소식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들을 수 있지만 한국 정부가 GM과의 교섭을 어떻게 풀고 있는지는 베일에 감춰져 있다. 당사자인 GM 노동자와 한국 국민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 등 다양한 경로로 이들이 GM과의 교섭에 임하는 태도나 방향 등은 추론이 가능하다. <인사이드 경제>가 보기에 한국 정부가 잡고 있는 방향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오늘은 교섭을 실제 벌이고 있는 정부 인사들의 언급을 통해 우려 지점들을 짚어보려 한다.

백운규 산자부 장관, "GM이 한국 법을 잘 파악 못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9일 한국GM에서 경영 정상화를 위해 제출한 외국인투자지역 신청에 대해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갖고 한다”고 밝혔다. 백 장관은 이날 저녁 세종시에서 출입기자단과 만찬 간담회를 갖고 “제너럴모터스(GM) 측이 우리나라 법을 잘 파악 못했는지 처음 받아보니 요건이 아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뉴스1>, 3월 30일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GM이 정부와 벌이는 교섭에 현재 법무법인 김&장이 밀착해 지원을 하고 있다. 김&장이 장관급 변호사 5명을 투입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GM이 제출한 외국인투자지역 신청서 역시 김&장이 직접 작성했거나 최종 감수를 맡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장이 한국 법을 잘 모른다는 얘기인가?

신규 설비

부평공장의 경우 ▲차세대 소형 SUV 제조 ▲CSS 엔진 생산시설 R&D 센터 내 충돌테스트 시험시설 등 설비 신·증설

고용 인원

현재 17000명에서 11000명으로 감소 (5년 내 신규 고용은 비정규직 7)

생산량

현재 연간 50만대 30만대


오히려 백운규 장관이야말로 GM을 잘 모르고 있다. 언론 및 관계자에 따르면 GM은 외투지역 신청서에 어이없는 내용들을 포함시켰다.(위 표) GM과 김&장은 법을 잘 모르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려할 테면 해봐라”며 저런 엉터리 신청서를 제출함으로써 문재인 정부를 시험에 들게 만들었다.

우선 잘 알려진 것처럼 유럽연합은 작년 연말에 한국을 조세회피지역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려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이유는 한국 정부가 외투기업에 너무 많은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부랴부랴 유럽연합과 협상을 벌여 세제 혜택을 감면하도록 법제도를 바꾸겠다는 약속을 해서 블랙리스트 대신 그레이리스트(집중 감시대상)에 오르게 되었다.

만일 GM의 어처구니없는 신청을 받아줄 경우, 유럽연합에 한 약속을 정면으로 어기게 되어 국제 망신은 물론이고 블랙리스트도 당연지사가 된다. 유럽연합에 올해 연말까지 법제도 개선을 완료하기로 약속했는데, GM은 그 시한 이전에 특혜를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외교분쟁과 법제도를 교묘하게 활용한 것. 상황이 이러한 데도 GM이 한국 법을 잘 모른다고?

GM에 대한 외투지역 지정은 유럽연합과의 국제 분쟁만 낳는 것이 아니다. 쌍용차를 소유한 마힌드라, 르노삼성을 소유한 르노 자본에도 각종 특혜를 주라는 요구가 쇄도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 입장도 매우 난처해진다. 고용도 생산도 줄인다는 GM에 특혜를 준다면, 마힌드라와 르노의 요구를 무슨 논리로 거부한단 말인가.

최근 백운규 장관은 “자율주행차 등 미래형 신기술이 접목되는 이런 것(투자)들이 와야 한다”는 언급을 자주 하고 있다. 이건 사실상 GM에 ‘꼼수’ 하나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외투지역 지정을 해주려면 최소한 당신들이 이런 내용 정도를 보완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메시지를 은근히 던지는 것이다.

GM의 신차는 빨라야 4년 뒤, 2022년에나 투입되는 차량이다. 이미 대부분의 완성차업체들은 중앙선 침범방지, 비상 자동제동은 물론이고 운전자의 졸음 상태까지 진단하는 장치들을 상용화해 2~3년 안에 기본 사양으로 포함시킬 계획이다. 2022년에 출시될 차량에 자율주행 기술이 탑재되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무시당할 게 뻔하다. 신기술 접목은 요청하지 않아도 당연히 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걸 근거로 해서 특혜를 주겠다는 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 2002년, 2010년 협약은 토끼의 간?

"자금 지원의 근거가 될 보고서에 담을 증거(Evidence)가 있어야 한다고 엥글 사장에게 말했고, 그가 가능한 방법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4월 4일 기자간담회)

이 기사를 보고 <인사이드 경제>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업은행이 자금 지원을 하려면 보고서를 근거로 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 보고서에 자금 지원의 객관적 타당성을 입증해줄 증거가 필요한데 이걸 배리 엥글 사장에게 부탁했다니? 이거야말로 실사 보고서가 GM과 산업은행의 '짬짜미'로 나올 것이라는 말 아닌가.

엉터리 같은 외투지역 지정 신청을 곧바로 승인해주기 어려우니 ‘신기술을 접목해오라’고 코치해주는 백운규 장관의 태도와 완전히 일치한다. 이런 분들이 협상의 달인 GM을 상대하고 있으니, GM 입장에선 땅 짚고 헤엄치기 아닌가.

GM은 최근에 임금을 체불했다. 임금 체불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근로기준법은 사업주가 노동자들에게 보장해야 할 '가장 최소한의 기준'을 명시한 것이다. 최소한의 기준조차 위반했다는 것은 그 사업주가 ‘파렴치범’이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는 의미이다. 마찌꼬바도 아니고 수만 명을 고용한 대기업 사업주 아닌가.

노동자들에겐 일 시켜놓고 임금도 체불한 상태인데, 산업은행은 임금 체불을 한 파렴치범에게 자금 지원의 근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꼴이다. 돈 꿔주는 사람이 큰소리를 쳐야 정상인데, 돈 빌리러 온 사람에게 제발 돈을 꿔줄 명분을 만들어 달라니 이건 무슨 경우?

"2010년, 2002년에 주주간 협약서 놓고 시간 있을 때마다 그걸 많이 쳐다본다. 내가 새로 해가지고 들어갈 때 주주간 협약서 또 써야 하는데 내가 과연 이만큼 얻어낼 수 있을까." (3월 20일 기자간담회)

2002년 대우차를 매각할 때 산업은행과 GM이 체결한 주주 간 계약서, 마찬가지로 양자 사이에 체결한 2010년 GM대우 장기발전협약은 이미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어 있다. 이 협약서만 공개되면 높은 매출원가율의 비밀이 풀린다. 해마다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지출하면서도 라이센스 하나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가 밝혀진다. 국정조사 따로 할 이유조차 없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비밀보장 협약이 되어있다며 지난 15년 동안 단 한 번도 협약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한 김대중 정권, 그리고 후임인 노무현 정권도, 그리고 2010년 협약을 체결한 이명박 정권, 그리고 그 후임인 박근혜 정부, 그리고 지금 문재인 정부도 이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적폐냐 아니냐를 불문하고 비밀에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동걸 회장은 이걸 시간 날 때마다 꺼내본다고 한다. 이게 무슨 토끼 간이라도 된단 말인가? 용왕님 병을 구원할 간을 달라니까 나만 볼 수 있도록 비밀장소에 널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본다고? 이동걸 회장님, 그놈의 협약서 우리도 좀 구경합시다! 그래야 모든 국민이 GM에 품고 있는 의혹을 풀어내고 GM의 의도가 뭔지 정확히 알 수 있단 말이오!

최종구 금융위원장, 실사 가이드라인 제시?

전문가들 의견에 따르면 매출 원가율이라는 게 결국 매출이 높아지면 매출 원가율이 떨어지게 돼 있다. 한국 GM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매출이 제대로 안 된 게 크다. 매출원가율이 높은 원인이다. 얼마로 매출 원가율을 떨어뜨려야 한다기보다 생산과 매출이 제대로 되게 하는 게 중요하다. (<뉴스1>, 3월 14일자)

매출이 늘면 매출원가율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회계의 기초만 배우면 알 수 있는 상식이다. 무시무시한 금융당국의 수장인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설마 이런 기초상식을 몰라서 하는 얘기일까? 그럴 리가 없다.

한국GM 매출원가율 문제는 최종구 위원장이 말하는 것처럼 매출과 원가율의 단순 함수관계 문제가 아니다. 최종구 위원장 말처럼 한국GM의 매출이 늘어난다면 과연 원가율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아니다. 불가능하다. 이건 <인사이드 경제>가 자주 제시해온 국내 완성차 원가율 비교 그래프만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독자들도 잘 아는 것처럼 한국GM을 제외한 3개사 매출원가율 평균은 80%, 그러나 한국GM 원가율만 유독 90%대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2012년, 2013년 한국GM은 통상임금 소송 관련 비용을 매출원가에 포함시킨 바 있는데, 2012년에는 6360억을 충당금 처리했다가 2013년에는 7890억을 다시 환입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시기 한국GM의 매출원가율은 통상임금 소송 관련 비용 처리 왜곡을 없애기 위해 조정한 수치를 사용했다.)

한국GM은 물론이고 현대기아차, 쌍용차 모두 매출이 늘면 원가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GM의 경우 2010~2012년에는 공장 가동률이 100%를 넘어설 수준이었고, 과로사가 걱정될 정도로 거의 모든 공장에서 잔업·특근을 엄청나게 해야 했다. 공장가동률과 매출 모두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런데 그 시기에조차 한국GM 매출원가율은 90%가 넘는다.

매출이 높아지면 원가율이 떨어지게 되어 있지만, 한국GM의 경우 매출을 아무리 높여도 원가율이 90%를 넘더란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를 밝혀내는 것이 이번 실사의 임무 아니던가? 그런데 실사도 끝나기 전에 최종구 위원장이 저런 발언을 하는 것은, 사실상 실사 결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즉, "매출과 공장가동률이 낮았던 것이 높은 원가율과 부실의 원인이니, GM이 신차도 배정하고 물량도 늘리면 해결된다" 이렇게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이야기 아니겠나. 최종구 위원장님, 그 얘기는 회계학 원론 시간에 대학 학부생들하고 토론하셔야지, 100년 넘게 세계자동차산업을 쥐락펴락 해온 GM과 할 얘기가 아니지요!

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교섭의 상대방인 GM을 아는 것이 첫 번째 일 아닌가? 사실 GM이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이제 전문가가 아니어도 한국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다.

GM은 한국에 오래 남아 있을 생각이 없다. 오래 남을 기업이 스스로 부도를 내니 어쩌니 한단 말을 할까? 빠르면 2~3년, 늦어도 5~6년 안에 한국에서 공장 운영을 중단할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이전에도 얘기했던 것처럼 당장 철수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철수를 결정하더라도 최소 2~3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GM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국 정부와 노조를 상대로 벼랑 끝 협상을 벌이기 시작한 거다. "패키지 협약을 체결해 3~4년 더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체류 비용은 한국 정부와 노조가 책임져라" 이게 GM이 보내고 있는 메시지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부는 정확히 GM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주고 있다. 실사도 하고 교섭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GM이 3~4년 체류하기 위한 비용을 지원해 주려고 알아서 명분도 만들고 근거도 만들어주고 있지 않은가.

실사도 하고 교섭도 하는 걸 보면 완전히 떠날 생각은 아니지 않을까?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GM은 최소한 생산을 오래 지속할 생각은 아니다. 대신 디자인&엔지니어링 등 연구·개발 관련 하청 업무를 지속시키고, 미국과 멕시코에서 GM 차를 수입해서 계속 팔아먹을 생각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 지점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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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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