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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후보, '갈등조정형'이라면 입을 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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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나경원 후보, '갈등조정형'이라면 입을 여십시오"

[기고] "'장애인 알몸 목욕'에 침묵하는 건 '무시'하는 겁니다"

저는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15년 정도 장애인 차별에 대응하는 활동을 해왔고, 최근에는 <탈시설-자립생활운동>에 중심을 두고 시설 거주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영화 <도가니> 때문에 한국 사회가 장애인 인권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사회 전체가 들썩들썩 하고 있는 이 상황을 마냥 좋다고만 해야 하는지, 좀 씁쓸합니다.

물론 2007년도 야심차게 준비했던 '사회복지사업법' 전면 개정의 꿈을 실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진행하고 있어 모처럼의 호기라고 생각합니다. 법 개정을 하는데 있어 정부와 시설운영자 등이 넘어야 할 장벽이었는데, 여론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자연스런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당신이 장애인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이 한 단계 진일보 할 수 있는 활동에 힘을 싣거나 함께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국회의원이란 입법권자로서 어떤 장애인 정책을 만들었는지 그 실체를 확인한 바는 없지만, 당신은 '위 캔(we can)'이란 단체를 만들었고, 늘 '장애인을 위한다'고 말해왔으니까요. 하지만...우리는 시작도 전에 희망이 아닌 절망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오마이티비> 화면 캡쳐
당신은 지난 9월 26일,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중증장애아동시설인 「가브리엘의 집」을 수많은 언론을 대동한 채 방문했더군요. 실은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앞 다퉈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는 현상을 저는 답답한 심경으로 지켜봐 왔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사는 '그들'을 대상화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소외계층과 함께할 것이다"라며 시설을 방문하곤 합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몸이 불편해 손을 올리기 힘든 사람들인데도 묻지 않고 자기 혼자 막 잡고 흔들기 일쑤죠) 심지어는 남성 정치인이 몸을 움직이기 힘든 다 큰 여성장애인의 얼굴에 볼을 비비고 손을 만지작거리기도 합니다. 거기다 카메라를 들이밀고 사진을 찍는 것은 기본이죠. 하지만 그 누구도 상대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거나 묻지 않습니다. 그곳에 사는 거주인과는 어떤 합의나 양해도 없이 시설장의 허락만 있으면 그곳을 자기 집처럼 휘젓고 다니며 '그곳'에 사는 '그들'에게 함부로 합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시설이고, 그러니까 그곳 시설장에게만 허락을 구하고 가면 그곳에 사는 장애인들에게는 어떠한 설명이나 양해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런데 주목할 것은 과거에는 보육원(과거 고아원)을 뻔질나게 방문하더니, 이제는 장애인시설, 그 중에서도 장애아동시설을 선호하는 것 같더군요. 아마 아무리 가족이 없다고 하더라도 민감함 시기의 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곳을 보여주기식 선전용으로 이용하는 것에 당사자들이 반대하는 분위기도 있을 테고, 관련법과 아동권리협약 등에 의해 입양정책으로의 방향전환이 대세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장애인 시설에 대해서도 그런 문제인식이 보편화되어 상식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는 "장애가 있고 가난하면 '시설'이란 곳에 가는 게 당연하지 않아?"라고 반문합니다. 시설은 어느덧 '당연한 곳'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정책 입안자이자 독립적인 입법기관으로서 역할을 하는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시설을 방문해서 '봉사'랍시고 하는 행태들을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분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서글픈 마음까지 갖게 됩니다.

어쩌면 '시설'이란 곳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곳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니까요. 그곳에 사는 장애인들이 최대한 불편하지 않고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게 하려면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조용히,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겸허히 경청해야 합니다.

가려면 혼자 혹은 친구들과 조용히 가서 봉사하고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십시오. 그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저 생색이나 내보려는 심사라면, 더 이상 시설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봉사'는 사람들과의 구체적 관계맺음이며 공감과 소통이어야 합니다. 물론 단순 노동으로 운영에 도움을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설'의 주인은 시설장이 결단코 아닙니다. 100% 국가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그곳'의 주인은 바로 시설 거주인들입니다. 혹시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셨나요? 그게 진정한 봉사인지,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시설'은 몸이 불편하고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살게 된 거주공간입니다. 국가가 장애인들을 가족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살 만한 기본적인 조건들을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저희 단체는 오래 전부터 '시설'을 방문 조사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지역사회에 나와 살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명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이라고 하는데, '시설정책'에서 '자립생활 정책'으로의 방향전환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적게는 10년 많게는 40-50년 동안 시설에서 살던 분들과 만나 인터뷰를 해보면, 그들은 우리 사회의 피해자였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도가니'열풍에 휩싸여 있는데, 드러나지 않은 '도가니'에서 숨죽여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2005년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상황 실태조사-국가인권위 연구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시설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교육과 노동에서 배제된 채 일상적인 폭력과 방임, 방치, 성폭력 등에 노출돼 있었습니다.

그 당시 "외부인이 사진을 찍거나 인터뷰를 했을 때 동의를 구하고 했습니까?"란 질문에 응답자의 35.4%가 "동의를 구한 적이 없다"고 답했고, 13.0%가 "가끔 동의를 구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런 경험 자체가 없다"는 29.4%를 빼면, 1/2 이상이 시설에서 시켜서 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를 두고 "1차적인 책임은 시설에 있다"고 항변 하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장애아 부모로서, 법률가로서, 정치인으로서, 서울시장 후보로서...그 무엇으로 보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당신은 "이번 시설 봉사가 일회성으로 진행된 이미지 만들기가 아니라꾸준히 해 온 봉사활동"이라며 "장애인 인권 부분에 있어 누구보다도 열심히 생각했고, 활동했다"고 주장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인권운동이란 혼자 좋은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권의식의 부족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권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인권 감수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깨닫지 못함과 무지가 '인권'의 저해 요소란 겁니다.

장애에 대한 무지는 소외와 외면, 차별까지도 이어지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당신은 "내 선의는 그게 아니다"라고 항변할 게 아니라 정치가로서, 장애아 부모로서, 법률가로서, 그리고 서울 시정을 책임지겠다는 제1 여당의 시장 후보로서, '그들이 왜 거기에 사는지' 의문을 가져야 마땅했습니다.

왜 그들은 당신 자식처럼 가족과 함께 학교를 다니며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살지 못하는지, 깊은 책임감을 갖고 거주인들과 대화를 했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인권을 말하는 사람의 기본적 태도일 것입니다.

또 하나, 당신이 입을 열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지적과 항의에 대해 당신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지요. 참담했습니다. 장애인인권단체들의 문제제기에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무시'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은 '갈등 조정형 정치인'이라고 했더군요. 죄송합니다만, 너무 기가 차서 허허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희 장애인단체 사람들이 보기에 당신은, 갈등 '조정'형이 아니라 갈등 '조장'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지가 바로 차별로 이어지는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실수'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바로 '인정'이죠. 당신은 사람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시종일관 "문제될 게 없다. 난 그런 게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상처받고 심각한 인권침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령 선의였다고 해도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상처와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대화해야 합니다. 오해나 미처 몰랐던 사실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갈등 조정' 아닌가요?

9월 27일 이 문제와 관련해 장애인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선거캠프를 방문했죠. 하지만 당신은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캠프 사무국장에게 목요일까지 답변을 달라 하고 장애인단체들은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월요일인 오늘(3일)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군요. 대신 측근들을 통해 여전히 "난 잘못없고,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진심을 알아줄 것이다"는 언론 보도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오만과 독선이 벌써부터 겁이 납니다. 정치인들의 오만과 독선이 얼마나 역사를 후퇴 시킬 수 있는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대화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번 선거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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