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이면 미세한 모래먼지인 황사로 뒤덮이는 날이 많아진다. 여기에 꽃가루까지 가세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호흡기질환과 기관지염, 천식 등으로 곤욕을 치르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진다.
사실 황사와 꽃가루는 오래된 자연적 현상에 불과하다. 문제는 최근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 가는 미세먼지다. 흔히 '죽음의 먼지'라고도 불리는 미세먼지는 석탄이나 석유 등과 같은 화석연료가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이다. 미세먼지는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1군 발암물질'로 지정됐으며, 폐뿐만 아니라 전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몸속에 쌓인 미세먼지는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돌아다니며 인체의 각종 기관에 염증과 암을 유발하고, 뇌 신경계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된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은 인간뿐 만이 아니라 강아지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에도 심각한 것으로 얘기된다.
그런데 미세먼지를 이렇듯 두루뭉술하게 일반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그 심각성을 감안할 때 너무 초연하고 안이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단순히 이런 식의 말을 늘어놓는다면 늘 그렇듯 미세먼지 문제는 당장의 현안이 되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과 같은 문제보다는 중요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시급하지도 않은 그저 흔한 환경문제 중 하나로 보일 뿐이다. 쉽게 말해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별 상관없는 시답잖은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미세먼지와 같은 대기오염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심각하며 긴박한 문제인지를 보다 더 극적으로 드러내 보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는 두 가지 사례의 비교를 통해 가능하다. 한 사례는 9.11테러(September 11 attacks)다. 2001년 9월 11일에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Pentagon)에서 벌어진 항공기 자살테러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미국 본토가 공격당한 사건이자, 최악의 공격으로 꼽힐 정도로 끔찍했던 사건이다. 여객기가 무역센터에 꽂듯이 들이받던 끔찍했던 장면은 당시 전 세계로 생생하게 전달되었으며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이 사건으로 결국 313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배기가스 및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수많은 차량이나 발전소, 공장 등의 사례다. 이것은 사건이라고 할 것도 없다. 9.11테러 사건처럼 전 세계로 생생하고 긴박하게 전달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전율을 느낄 정도로 충격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최근 그 결과에 대한 보도는 나름 충격적이다. 재작년, 그러니까 2016년도 11월경 "인도에서는 하루 3283명이 먼지와 오존 등 대기오염 물질 때문에 숨지고 있고, 중국에서는 하루 3233명이 숨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보고가 언론보도에 잇따라 등장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미세먼지 조기 사망자 수가 한해 700만 명(2014년 기준)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2050년에는 전 세계 조기 사망자 수가 현재의 두 배까지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보도도 잇따랐다.
이것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초미세먼지 노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농도가 날로 급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망자가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악 수준으로 나타났다. 실제 우리나라 미세먼지 사망자 수는 1990년 연간 1만5100명에서 2000년과 그 이듬해에 1만3100명으로 줄었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2015년에는 1만8200명에 달했다는 보고가 있다(☞관련기사 : 한국 미세먼지 농도 날로 급증…OECD 국가 중 최악 수준). 미세먼지로 조기 사망하는 사례가 이보다 더 많은 1년에 2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이렇듯 대기오염과 관련된 사정은 얼추 보아도 아주 심각하다.
위의 두 사례는 사건 유형이 다르기에 서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결과만 놓고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앞에서 보았듯이 9.11테러로 하루에 죽은 사람이 3130명이다. 그리고 대기오염으로 인해서 죽는 사람은 인도에서 하루 3283명이고 중국에서 하루 3233명이다. 이렇듯 사람이 죽은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인도와 중국에서 대기오염으로 하루에 죽는 사람의 숫자가 조금 더 많으니 이 두 나라에서는 9.11테러보다 더 끔직한 사건이 일어난 격이다. 더 끔찍하고도 충격적인 것은 9.11테러와 같은 사건은 그나마 기나긴 인류역사에서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사건이지만, 대기오염으로 인한 비참한 죽음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이것은 지금 어떤 대책을 세워 당장 끝장낼 수도 없는 지속되는 사건이다. 그러니 사실 따지고 보면 9.11테러는 대기오염에 비교대상도 못된다.
그럼에도 아마 사람들은 당장 9.11테러와 같은 사건이 벌어지거나 벌어질 것이 예상된다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대응할 것이지만, 미세먼지와 같은 대기오염이 발생하는 경우는 아마 대부분 그저 시답잖은 문제로 취급하여 내팽개쳐두거나 한가하고 미온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이런 차이는 아마도 이 두 사례가 가지는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세먼지와 같은 대기오염 문제를 비롯해 대부분의 환경문제가 갖는 특성은 장기적이고, 간접적이고, 복잡하며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9.11테러 공격과 같은 사건은 즉시 그 자리에서 결과가 나타나지만,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결과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미세먼지는 장기적으로 아주 서서히 사람들에게 질병을 일으키면서 조기사망에 이르게 할 것이다. 바로 이런 특성으로 인해 미세먼지는 흔히 '조용한 암살자',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린다.
그리고 9.11테러의 경우 공격으로 인해 사람들이 직접 죽지만 자동차 배기가스의 경우는 그 가스의 흡입으로 사람이 바로 죽기보다는, 그것이 점차 어떤 질병을 유발하고 결국은 그 질병의 악화로 죽게 된다는 점에서 간접적이라고 할 수 있다. 9.11테러의 경우 그 피해가 미국 무역센터나 펜타곤이라는 장소와 특정인들에 국한되지만,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오염은 국경을 넘나드는 전 지구적인 범위에 걸친다는 점에서 광범위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9.11테러로 인한 죽음의 경우는 왜 죽었는지를 어린 애들도 알정도로 간단한 일이지만,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오염으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는 죽음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연관관계를 분명히 밝히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아마도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전문지식은 물론, 고성능의 장치나 기구들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환경 문제의 특성들이 이렇다보니 미세먼지와 같은 대기오염 문제 또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장기적이고 간접적이기에 당장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위협도 아니고, 광범위하기에 내가 있는 곳에서 나에게만 집중되는 위협도 아니며, 복잡하기에 제대로 알기도 어렵다 보니 사람들이 이를 긴박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여기거나 심지어 전혀 문제가 안 되는 것으로 여겨 관심 밖에 두게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렇다 보니 당연히 그 대응 또한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더하여 이 사건들 간의 중요한 차이로 언급될 수 있는 것은, 테러의 경우 그 행위 동기가 분명하지만 대기오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테러는 공격 대상에 타격을 주거나 그로 인한 모종의 목적을 이루려 함이 분명하지만, 대기오염은 그 동기가 특정 대상에 질병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은 분명 아닐 테고, 혹시 동기가 있다고 해도 저마다 다를 것이며 심지어 분명치도 않거나 없다. 게다가 테러나 전쟁 등은 대부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행위 주체나 위협의 주체가 되기에, 개인이나 대표자들의 결단으로 단박에 그 위협이 중단되거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생길 경우는 그들에게 책임을 묻기도 쉬울 수 있다. 하지만 대기오염과 같은 환경문제는 집단행동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라는 특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자동차를 운행하거나 요리 등을 하면서 대기를 오염시켜 결국 하루 수천, 수만, 수백만 명이 죽더라도 이를 당장에 방지하거나 해결하기 어렵고 책임 주체를 특정하여 누구를 처벌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특성들은 결과적으로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를 사소한 문제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하면서도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거나 책임의식을 거의 갖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개개인이 산업사회에서 문명의 이기와 혜택을 누리고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으면서도 혹여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 정책 담당자들에게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경우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환경문제의 유별난 특성으로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음에도 최근에 대기오염과 관련한 문제에의 인식을 달리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들어 언론에는 '미세먼지 대공습'이니 '미세먼지 습격'이니 '공격'이니 하는 섬뜩하고 자극적인 말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게다가 이러한 대공습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들을 가리켜서도 '미세먼지와의 전쟁'이니 '미세먼지와의 전쟁선포'니 하는 말들을 사용한다.
실제로 4년 전인 2014년 3월 4일 중국의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전국인민대회장에 모인 3천여 명의 전국 대표자들과 이를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중국인들에게 "기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것처럼 환경오염에 대해 결연히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그 선언이 있은 지 4년이 지난 현재 각종 통계는 중국이 환경오염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음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은 공기 중의 미세먼지 농도를 4년 동안 평균 32%까지 저감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국민들의 수명을 수개월 혹은 수년 연장시키는 의미 있는 개선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언론이나 정부에서 심각성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국민이 정부 미세먼지 대책의 실효성 등에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정부는 중장기적인 미세먼지 저감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세먼지 관련법안도 국회에서 통과하기까지 험로가 예상된다고는 하지만, 40여건이 현재 계류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앞 다투어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까지도 앞 다투어 미세먼지 대책을 공약으로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문제에 대한 이러한 반응은 사실 대단한 진전으로 보인다. 그동안 4대강 개발, 새만금개발 등의 환경쟁점들에서 보았듯이 정부는 경제적 이익이나 특정 이해관계 집단의 이익 등을 이유로 환경문제를 오히려 조장한다는 인상을 받기 일쑤였다. 해결을 위한 노력에서도 늘 경제적 이유를 앞세워 임시방편적이거나 미온적인 정책으로 일관했고, 심지어는 방치해왔다는 인상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지난 정부에서 미세먼지 대응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아 일부 시민이 한국정부와 중국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기도 하다. 환경을 보호하고 보존하고 걱정하는 일은 정부보다는 정부에 맞서 시민이 하는 일쯤으로 여겨졌던 것이 바로 엊그제였다. 그럼에도 표를 의식해서인지 사명감 때문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이제 중앙정부건 지방정부건 앞 다투어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환경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리 삶을 위협하는 것은 테러나 미세먼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있다. 핵무기나 전쟁과 같은 국가 간 군사적 위협이 있고, 기아, 빈곤, 실업을 비롯해 비정규직 차별, 양극화와 같은 불평등은 물론 질병, 인권침해, 학대, 고문, 폭력, 테러, 중독 등과 같은 사회·정치·경제적 위협 등이 있다. 여기에 더하여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오염, 환경파괴 등의 환경적 위협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위협은 유형이 다르고 그 정도가 다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이중에서도 환경적 위협은 풍요롭게 사느냐, 편리하게 사느냐, 인간답게 사느냐의 문제를 떠나 죽느냐 사느냐 하는 우리 건강이나 생명과 관련된 절박한 문제다.
그렇기에 이러한 위협에 국가의 대처가 미온적이거나 안이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위협에 특히 국가가 절박한 태도로 철저하게 대처함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고 절박하지 않은 문제들이 없겠으나, 특히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위험한 환경요인으로 꼽힌다는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문제에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전통적으로 군사적 문제에만 통칭되던 안보 개념을 환경문제에 적용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문제 해결에 이제 시민이 아니라 국가가 주체로서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앞으로 중국 발 미세먼지와 같은 대기오염은 물론 지구 온난화, 지구적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한 물 부족, 식량부족 그리고 자원부족 사태 등이 국가 간, 지역 간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기 때문에도 그렇다.
실제로 지구역사상 전례 없는 환경위기와 생태적 파멸에 직면한 위중하고 급박한 상황에서 환경보호니 환경보존이니 하는 말들은 너무 한가로운 표현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정치학자들에 따르면 안보 개념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개념이다. 그래서 이제는 단순히 별 자극이 없는 환경보호니 환경보존이니 하는 말을 사용하기보다는 '환경안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관심에서 뒷전으로 밀려 있던 환경적 위협에 시민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도록 하고, 아울러 그 해결을 위해 정책결정자들은 물론 많은 시민이 더욱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일도 한 번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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