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부질없다. 법리공방이 아무리 치열하게 전개된다 한들 그건 '개인'의 '법적' 문제다. 곽노현 교육감 개인의 유죄 여부를 가르는 의미만 있을 뿐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개인'의 '법적' 문제가 아닌 서울시 교육행정에 관한 문제다. 교육감의 권위와 교육행정의 엄중함과 관련된 문제다.
곽노현 교육감이 취임을 엿새 앞둔 지난해 6월 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반부패 인권교육감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7월 1일 취임식에서 행한 연설도 있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부패 비리는 교육행정·학교행정이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리고 실행에 들어갔다. 곽노현 교육감 취임준비위원회는 취임식 날 펴낸 정책검토보고서에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존속을 제안했다. '공금 횡령 및 직무 관련 적극 금품·향응 수수자는 누구든지 금액에 관계없이 한 번에 공직에서 퇴출한다'는 방안과 '100만원 이상 금품 수수자는 파면·해임한다'는 방안이었다.
▲ 지난 교육감 선거의 상대 후보였던 박명기 교수에게 2억원을 지원했다고 밝힌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부응할까? 곽노현 교육감이 펴온 이런 '반부패 정책'과 2억 원 전달 사실이 모순없이 공존할 수 있을까? 그렇지가 않다.
곽노현 교육감은 형편이 어려운 박명기 교수를 돕기 위한 '선의'였다고 하지만 그래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다. 후보단일화 대가 여부 이전에 부당·변칙 증여인 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 차례 목도하지 않았는가. 고위 공직자 후보가 아들 통장에 수천만원을 입금해 줬다는 이유로, 아들 부부에게 집을 사줬다는 이유로 인사청문회에서 난타당하는 걸 보지 않았는가. 이들이 난타 당한 이유도 세금 안 내고 증여를 했기 때문이다. 피가 섞인 가족 간의 증여에도 이같이 엄정한 잣대가 적용되는 판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도 후보 단일화 협상 대상자였던 사람에게 2억 원이란 거금을 증여한 것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더구나 자기 이름이 아니라 주변 사람의 통장을 동원해 건네기까지 했는데….
곽노현 교육감은 다른 사람의 통장을 이용해 돈을 건넨 이유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봐' 라고 했는데 바로 그게 문제다. '불필요한 오해' 수준이 아니라 '상식적인 선입견'을 살 수밖에 없다. 대가성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 이전에 서울시교육청의 반부패 정책에 대한 '상식적인 선입견'을 살 수밖에 없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 엄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곳이 교육계이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가면서, 방과 후 학교를 실시하면서 해당 업체로부터 수 십 수 백 만 원의 '푼돈'을 받은 교장·교감을 지탄하는 것이다. 이런 판에 서울시 교육행정의 수장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돈을 건넸으니 어찌 권위가 살겠는가.
곽노현 교육감은 잘못했다. 후보 단일화 대가로 돈을 건넸는지 여부와는 별도로 그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서울시교육청의 반부패 정책에 초를 치는 일을 저질렀다.
곽노현 교육감은 2억 원에 대가성은 없었다며 사퇴할 뜻이 없다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야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를 법리 공방을 벌이는 건 그의 자유이자 권리일지 몰라도 그 기간 동안 멍들 서울시교육청의 반부패 정책의 곽노현 교육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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