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에 '제4교섭단체'가 다시 등장하게 될까. 원내 4당인 민주평화당(14석)이 5당 정의당(6석)에 공동 교섭단체 구성을 제안했다.
평화당은 5일 오전부터 열린 당 소속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논의를 거친 결과 "정의당과의 공동 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당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이날 오후 이용주 원내대변인이 밝혔다. 평화당은 이날 오후 장병완 원내대표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를 직접 찾아가 제안을 공식적으로 전달했고, 노 원내대표는 "평화당의 제안을 정중히 접수했다. 내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기자들과 만나 밝혔다.
평화당은 공동 교섭단체 구성의 명분으로 "저희 당이나 정의당이나 마찬가지로 국회 의사결정 구조에서, (특히) 중대한 문제인 개헌이나 선거제 등 정치특별법 개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고 국회(운영)에 의사를 반영할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을 들었다. 이용주 원내대변인은 "(국회 의사결정에의) 적절한 참여를 위해 공동 교섭단체 구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앞서 조배숙 평화당 대표는 의원 워크숍에서 "교섭단체가 아닐 경우에는 국회 의정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없다"며 "현재 국회 내 교섭단체가 진보진영 하나, 보수진영 둘인 상황인데, 저희가 교섭단체를 구성하면 진보 둘로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바른미래당을 '보수'로 분류한 것이다. 장병완 평화당 원내대표도 같은 자리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선거제도 개혁 등 (정의당과) 공통점이 많다"며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협상을 시작, 최단시일 내 협상을 마치고 교섭단체를 구성해 지방선거 필승을 뒷받침하는 체제를 만들겠다"고 했다.
평화당과 정의당의 정체성이 상이한데 '한 집 살림'이 잘 되겠느냐는 지적에 대해 이 원내대변인은 "공동 교섭단체 구성은 국회 의사결정 과정에 관한 것이고, 각 당 정체성 문제는 배제된다"며 "각 당이 자기 정책을 양보하거나 폐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 원구성이나 상임위(배분) 등에 국한되는 것이지, 총체적인 입법 표결에서의 강제라든지 이런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미리 선을 그었다. 그는 "정당 활동은 교섭단체에 영향을 받거나 귀속되지 않기 때문에 정의당은 정의당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활동을 그대로 해나가면 된다"며 "정체성이 훼손될 논의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지방선거에서의 선거연대나 정책연대 문제는 교섭단체 구성과 아예 별개라고도 했다. "공동 교섭단체가 구성된다고 해서 그것이 정책연대나 선거연대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공동 교섭단체가 무산된다 해도 정책연대·선거연대는 가능하다"는 것.
이 원내대변인은 또 평화당 소속 의원 14명 외에 무소속 손금주·이용호 의원의 합류도 기대할 수 있다면서 "이 의원은 이미 공동 교섭단체 구성시 참여하겠다고 서명을 했고, 손 의원과는 어제도 통화했는데 긍정적으로 본다"며 "손 의원은 (교섭단체에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입당 자체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것"이라고 희망 섞인 전망을 밝혔다.
교섭단체란?
교섭단체는 20인 이상의 의원이 모여야 구성할 수 있으며, 국회 운영의 정식 '파트너'로 취급된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1자리 이상 차지하는 게 보통이고, 각 상임위별로 간사를 두고 협상을 할 수 있다. 정기국회 및 임시국회 때마다 본회의장 연설 기회도 길게 주어진다. 정당 보조금, 사무공간 배정 등 편의도 비교섭단체와는 차이가 상당하다. 한 정당이 하나의 교섭단체를 이루는 게 통례이지만, 과거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18대 국회 당시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라는 연합 교섭단체를 만든 전례가 있다.
앞서 2016년 총선 후 20대 국회가 출범했을 때, 교섭단체는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등 3개였다. 그러나 탄핵 사태를 분기점으로 '개혁적 보수'를 내세운 의원 33명이 새누리당에서 탈당, 바른정당을 만들면서 국회는 4교섭단체 체제가 됐다.
2017년 1월 33명으로 창당한 바른정당은 대선 과정에서 김성태·장제원 의원 등 13명이 탈당하면서 간신히 교섭단체 기준선(20명)을 유지해 왔으나, 같은해 11월 김무성 의원 등 9인이 추가 탈당하며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이에 따라 현재 국회 교섭단체는 민주당(121석), 한국당(116석)과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 정당인 바른미래당(30석) 등 3개로, 20대 국회 초기의 3교섭단체 체제로 되돌아간 상황이다.
평화당 내부 상황은?
평화당 내에서는 조배숙 대표, 장병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앞장서 공동 교섭단체 구성을 추진했고, 당의 대주주 중 한 명인 정동영 의원도 적극 찬성파였다. 그러나 평화당 내에도 반대 내지 회의론이 있다.
앞서 박지원 의원은 지난 2일 불교방송(BBS) 인터뷰에서 "평화당은 중도개혁이고 정의당은 진보다. 국민·당원들이 납득되겠느냐"라며 "나는 반대"라고 했고, 김경진 상임선거대책위원장도 이날 평화방송(CPBC) 라디오 인터뷰에서 "20석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비교섭단체로 의정활동을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인위적인 공동 교섭단체를 만들어야 되나"라며 "크게 반대할 생각까지는 없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탐탁하지 않다. 가부간 의사를 묻는다면 저도 개인적으로 반대 쪽"이라고 했다. 천정배 의원은 이날 "굳이 내가 입장을 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당의 중론에 따르겠다"며 중립적 태도를 보였다.
이용주 원내대변인은 다만 이날 오후 당의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논의 과정에서 일부 이견이 있었으나 표결 과정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됐다"고 강조했다.
한편 평화당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서 기존에 '민평당'으로 써오던 당의 약칭을 '평화당'으로 바꾸기로 의결했다. 또 당 정책연구원장에 바른미래당 소속 비례대표인 이상돈 의원을 임명했다. 타 정당 소속 의원이 법정직(정당법 38조)인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는 경우는 전례가 없지만, 이 의원과 평화당 측은 선관위 확인 결과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 입장은?
정의당은 평화당의 제안에 대해 우선 당내 논의를 거쳐 입장을 정하겠다는 반응이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공식 제안이 들어오면 그 때 가서 우리 당내 절차부터 논의하겠다"며 "당원들이 '공동 교섭단체 구성'을 '합당'으로 잘못 아는 경우도 있어 당원 의견수렴 절차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 의원총회를 열어 (가부 간에) 답을 내린다면 당원들이 서운해하거나 이탈할 수 있는 만큼 의결 단위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평화당의 제안에 대해 공식 답을 할 기구가 의원총회인지, 상무위원회(타 정당의 최고위원회에 해당)인지, 당원 총투표 등 별도 절차를 거칠지 등부터 논의를 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김종대 정의당 원내대변인 역시 "일단 제안이 오면 내일 예정된 의원총회에서 논의하고, 그 의총 결과를 가지고 목요일 상무위에 부치게 될 것"이라며 "상무위에서 당원 의견수렴 절차를 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의당 내에서는 평화당과의 공동 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찬반 양론이 모두 존재하는 만큼, 지도부 논의나 그 이후의 의견수렴 과정에서 당내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당원 의견수렴 절차를 놓고도 "이게 합당이나 해산처럼 전당원투표까지 할 사안은 아니다"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원내 사안이지만 당의 진로·노선과 관계된 것인 만큼 총투표나 (대의기구인) 전국위 인준을 거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평화당 측에서는 "정의당도 내부적 검토가 끝났을 것이다. 이번 주 내라도 정의당 입장이 정해지면 곧바로 구성될 것"(이용주 원내대변인)이라고 서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의당이 당론을 모으는 작업에만도 최소 1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이날 장병완 원내대표를 만난 뒤 "사안의 성격상 길게 논란을 벌이면서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중하면서도 빠르게 판단과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하면서도 "엊그제 독일 사민당(SPD)이 (메르켈 총리의) 집권당과 연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全)당원 투표를 한 것으로 안다. 사안이 다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각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하되 최대한 폭넓은 당원 의견 수렴 과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즉 노 원내대표, 최 대변인, 김 원내대변인 등의 말을 종합하면, 다음날 의원총회나 8일 상무위에서 곧바로 최종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의총이나 상무위는 당내 논의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 원내대표는 '당원총투표나 전국위 개최를 하게 되면 2주 이상 시간이 소요될 텐데, 이를 감안하고 총투표 이야기를 한 것이냐'는 물음에 "그런 문제까지 다 감안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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