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4.27 김해 재보선 패배 후 50여 일 만인 7일 참여당의 진로에 대해 입을 열었다.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어쨌든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유 대표가 발표한 '당의 진로 발제문'에서 재미난 것은 진보정당과의 통합에 나름의 '전제 조건'을 달았다는 점이다. 유 대표가 민주당과의 통합보다는 진보정당과 손을 잡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미 정책합의문을 마련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연석회의'에는 참여당의 포함 여부를 놓고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동당 일부에서는 참여당의 참여에 적극적이다.
반면 민주노총 등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참여정부 시절의 한계에 대한 참여당의 반성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진보정당, 집권의 의사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참여당의 참여 검토해야"
이런 가운데 유 대표는 오히려 "기존 진보정치세력의 변화"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유 대표는 이날 참여당 '당의 진로 토론방'에 올린 글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기존의 진보정치세력이 민주당과의 차별화에 중점을 두고 정부의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활동에 집중하는 이른바 '소수파 전략'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단순히 합당을 하는 것이라면 우리당이 함께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그러나 그분들의 통합을 계기로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변화하여 스스로 국가권력 운영을 맡으려는 '집권 권력'으로 나아갈 의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참여당이 함께 하는 문제를 검토해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당원들이 어떤 진보정당을 새로 세울 것인지, 그 구상과 의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고 머지않아 그분들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 1일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연석회의'가 '정책합의문'을 마련했지만, 유 대표는 여전히 "그 구상과 의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직은 진보진영이 새롭게 만들겠다는 진보정당의 구체적인 상을 모르겠다는 표현이면서 동시에, 이날 합의문조차 동의하지 못하는 세력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이런 유 대표의 발언은 '연석회의'의 다수가 "참여당이 들어오고 싶으면 합의문에 대해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히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전혀 동떨어져 있다.
"야권연대, 해 봐야 경쟁적일 게 뻔하고 안 하면 최악의 결과"
유시민 대표는 "2012년 총선에서 다른 야당들과, 특히 민주당과 전국적 차원의 '협력적 연대'를 해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기존의 '다당제 구조 아래서의 연대연합 노선'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 될 것이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타 야당과의 '협력적 연대'가 잘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경기도와 김해을 선거에 진 데는 후보 경쟁력 부족, 당의 조직력 결여, 부적절한 선거 전략과 선거운동 방법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야권연대 효과가 충분히 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중요한 패인"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유 대표는 "경기도와 김해을 선거의 야권연대 성격은 '협력적'이기보다는 '경쟁적', '대립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2012년 총선에서 우리당 후보들은 단일화 없이 완주하거나 단일화를 하는 경우에도 지방선거와 재보선 때처럼 지역마다 다른 방식으로 '경쟁적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당은 2010년 경기도와 2011년 김해을 단일화 경쟁과정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정치공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렇다고 만약 야권연대를 하지 않는다면 꿈을 추구하는 우리의 선한 의도가 곳곳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들일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참여당, '협력적 연대' 강제할 힘도 없다"…순천 보며 깨달았나?
그는 "기존의 연대연합 전략을 그대로 견지하면서 타 야당과의 '협력적 연대'를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의와 명분으로만 타 야당을 설득할 수 없고 '협력적 연대'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많은 당원들이 매력을 느끼는 '독자노선'이 최대한 후보를 내서 완주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내년 총선은 참여당이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영원히 버림받는 선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독자 완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국민 지지율 5% 남짓한 수준"으로 민주당과 '협력적 연대'를 할 힘도 부족하다는 판단은 유 대표로 하여금 '진보통합'에 관심을 갖게 한 것으로 보인다. 김해에서의 '경쟁적 연대'와 대비됐던 순천에서의 이른바 '협력적 연대'는 유 대표의 이런 결론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참여당은 김해에서 치열한 경선을 치르고 후보가 되고도 떨어졌고, 민주노동당은 순천에서 민주당의 '무공천' 방침으로 사실상 손쉽게 단일 후보 자리를 꿰차 당선됐다.
힘을 키워야하는데, 민주당은 참여당이 꾸었던 꿈 '사람 사는 세상'과 어울리지 않으니 그나마 비슷한 진보정당과의 통합을 통해 힘을 키워보면 어떨까라는 고민인 셈이다. "참여당은 '대중적 진보정당'이 되고자 한다. '대중적'인 동시에 '진보적'인 정당이 없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은 대표적인 '명분'이다.
"어느 것도 나쁘진 않지만 어느 것도 즐겁진 않은 선택, 그래도 해야 한다"
유 대표는 그러나 "참여당은 '현실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최대한의 진보'를 지향하며 '다수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 직접 국가 권력을 운영할 수 있는 대중적 진보정당'이 되고자 한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지금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 것은 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이 아니"라며 "광범위한 진보세력이 손잡고 '민주복지국가' 건설의 과제를 껴안을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세운다는 것을 전제로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품은 우리당이 여기에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원들을 향해서도 "우리는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선택 앞에 서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원들의 글을 보면 해묵은 감정, 이념적 문화적 차이에 대한 우려, 막연하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두려움, 당에 대한 애착, 정치지형의 변화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본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어느 것도 나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동시에 어느 것도 마냥 즐겁고 행복한 선택은 아니"라며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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