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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몸 던진 부산, '한나라 썰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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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무현이 몸 던진 부산, '한나라 썰물'이 시작됐다"

[고성국의 정치in]<63>민주당 김영춘 최고위원

부산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의 인터뷰가 나간 후 많은 분들이 부산 민심이 과연 그렇게 심상치 않느냐는 질문을 주셨다. 여권 인사들은 그들대로 야권 인사들은 또 그들대로 부산의 민심변화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필자도 이런저런 일로 부산-대구를 다니면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지역의 민심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민주당 김영춘 최고위원과의 인터뷰도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졌다.

"부산 바닥 정서 보면 '해볼만 하다'는 생각 든다"

"부산진갑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했다. 그 곳이 고향인가?"
"그렇다. 태어난 곳은 부산 부둣가인데, 초·중·고등학교를 다 나온,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곳이 부산진갑이다."
"'출마의 변'을 듣고 싶다."
"정치를 그만 둘까도 생각했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2007년 대선 국면에서 대통합신당을 탈당해 문국현 캠프에 합류했었다) 18대 총선 불출마 후 '정치가 나에게 잘 안 맞는 옷인 것 같다. 정치 체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부산 출마를 하겠다면서 돌아왔다. 대한민국이 너무 잘못된 길로 치닫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나라가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계층적 양극화가 극심해졌고, 이 정부 들어와서 그게 더욱 조장 촉진되고 있다. 재벌과 대기업에 의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수탈당하는 구조의 심화, 수도권에 의한 지방의 식민지화 등, 이명박 정부를 보며 폭주 기관차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절박했다. 이런 모순들이 총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지방에서 다시 정치를 시작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출발점으로 부산을 선택했다."

▲ 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부산에 18개 지역구가 있다. 해운대구, 수영구 이런 곳은 서울로 치면 강남 3구 같은 곳이고, 그런가하면 구도심, 서민들이 모여 사는 중구, 동구, 영도구 이런 곳도 있다. 부산진 갑의 지역 특성은 어떻나?"
"조금 개발이 돼 아파트가 들어선 지역도 꽤 있다. 그러나 지배적인 주민 구성은 옛날부터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계신다. 전통적인 구도심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 강세 지역 아닌가?"
"부산 전체가 다 그렇지만, 부산진갑은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이 센 지역이다. 공장 지대인 북구, 사하구, 강서구 등 낙동강 벨트 쪽은 상대적으로 민주당이 세지만... 그 쪽에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구)이 있다. 부산진구는 부산의 지리적 중심이다. 교통의 교차로다. 서울로 치면 종로나 중구와 비슷하다. 부전시장, 서면시장 같은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전통시장이 많이 있는 곳이다."
"지역 특성만 보면 한나라당에 유리하다 민주당에 유리하다 이렇게 보기가 애매할 것 같은데? 대형 평수 고층아파트도 별로 없고."
"재밌는게 서울도 비슷할텐데, 고학력층, 중산층 이상 소득 수준의 국민들 사이에서 한나라당 표가 적다. 저학력층, 저소득층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고.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득표 구조가 그렇다. 앞으로는 많이 바뀔 것이다. 부산의 서민들, 나이 드신 어르신들 중에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맨날 한나라당 찍어줬는데 나아진 게 뭐 있노' 하는 말씀들도 많고."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당적으로 부산에서 출마하는 것을 '죽으러 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길 가능성이 있다?"
"꼭 이긴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 하겠다. 그러나 적어도 50%의 가능성은 있다. 두 가지 의미에서다. 부산 시민들이 '맨날 한나라당 찍어줬지만 우리에게 남은 게 없다'고 하신다. 식자층은 한나라당과 야당이 경쟁하는 정치 구조를 만들어줘야 부산도 새로운 활기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한나라당이 아닌 대안 찾기의 목소리가 밑바닥에서 꽤 크게 분출되고 있다. 그래서 해볼만 하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부산 사람들이 찍을만한 사람들을 출마시켜달라는 것인데, 저 한사람으로는 안 되겠지만 내년 총선에서 시민들이 인정할만한, 참신성, 전문성을 갖춘 분들을 입후보시키면 충분히 한나라당과 자웅을 겨뤄볼 만한 선거가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 최고위원의 어조가 한결 강해졌다. 의지와 열정이 느껴졌다.

"盧 도전 때는 한나라당 밀물…지금은 썰물이 시작됐다"

▲ "아직은 물이 채 빠져나가지 않아 힘들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분이 일찍 몸을 던졌기 때문에 시민들도 변하고 있다."ⓒ프레시안(최형락)
"찍을만한 사람을 좀 내보라는 주문이 있다고 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여러 번 떨어졌다. 찍을 만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랬나?"
"그 때는 한나라당 중심의 '싹쓸이 투표'가 막 시작된 때였다. 한나라당의 밀물이 막 들어오는 상황이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몇 사람이 막아내기에는 힘든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썰물이 시작된 상황이다. 싸워볼만 하다."
"주관적,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고 있다?"
"아직은 물이 채 빠져나가지 않아 힘들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분이 일찍 몸을 던졌기 때문에 시민들도 변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선구적인 길을 갔고 정윤재, 최인호, 조경태 이런 분들이 이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저도 달리는 것이다."
"한나라당 부산 지역 의원들을 만나보면 '안심할 수 있는 지역이 한 군데도 없다'고 하는데, '엄살'도 있겠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건 분명한 것 같다. 그런 게 느껴지나?"
"(웃음) 느껴진다. 부산 의원들 중에는 저랑 오래전부터 아는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이 '우리 지역에는 제발 오지 말라'는 얘기를 농반진반으로 한다.(웃음) 제가 출마하겠다고 밝힌 지역구 의원(한나라당 허원제 의원)의 경우는 최근에 부쩍 열심히 지역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
"저도 3주 전 쯤에 그 지역 행사에 가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지역에 갔더니 허원제 의원이 부쩍 열심히 한다는 얘기가 들리더라. 또 김영춘 최고위원이 출마한다더라는 얘기도 들리고. 야권쪽 사람들은 '허원제 vs. 김영춘' 구도면 해볼만 하다는 얘기들을 하더라. 한나라당쪽 일각에서는 김영춘이 나오면 한나라당도 좀 더 젊은 새인물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더라. 역시 사람이 구체적으로 거명되니까 민심의 움직임도 활발해지는 것 같았다. 출마선언 하나로 부산 전역에 충격을 준 셈인데, 어떻게 느끼나?"
"'부산에 내려가기로 결정하길 잘했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부산이 살려면 변해야 하는데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면 감사한 일이다."
"얼마 전에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과 인터뷰를 했는데, 부산 인구가 그렇게 많이 줄었는지 몰랐다. 깜짝 놀랐다."
"성장 동력이 없고 일자리가 없어 인구가 줄었는데 특히 젊은 인구가 자꾸 빠져나간다. 아주 악성이다. 과거 30년 전,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오던 80년대에는 부산이 없는 사람들, 서민들이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없는 사람들이 부산으로 몰렸다. 일자리가 많고 물가가 싸니까, 몸만 갖고 와도 노동을 해서 자리를 잡고 살 수 있는 곳이었다. 호남 뿐 아니라 충청도 경상북도 이런 곳에서도 내려와서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전국 16개 시도 중에서 경제 성적표로는 대략 14위, 15위 정도밖에 안 된다. 활기를 잃어버렸다. 고층 건물이 올라간다든지, 하는 식으로 껍데기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부산 전체의 경제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런 부산에 대한 제대로 된 발전 비전을 갖고 있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겠다.' 이런 충심 하나 갖고 일단 간다. 지난 6.2지방선거 때 부산 시장 출마 권유를 받았었는데, 준비가 안돼서 고사했다. 지금 미리 부산진갑에서 출마 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아예 배수진을 치고 부산 사람 되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부산을 제대로 학습하고 온몸으로 느끼고, 그 속에서 비전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러면 내년 총선을 거친 후 2014년 부산시장 도전도 생각하고 있나?"
"그렇다. 제 역할이 부산에서 다선 의원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치 전체로 보면 내년 총선 출마를 통해 부산발 정치혁명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 연장선에서 부산 시민이 원하고 민주당이 원한다면 부산시장 출마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
"김두관 경남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단체장을 거치면서 지역적으로 지지를 공고히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도전을 한다는 얘기들이 많다. 김 최고위원도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2014년에 부산시장이 돼 부산 시민들의 지지를 잘 받아낼 수 있다면 영남 기반을 갖는 대선 후보로 다음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열릴 것 같은데."
"(웃음) 너무 앞서가는 얘기 같다. 당장 내년에 민주당으로서 정말 어려운 지역인 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 되는 것에 집중하겠다.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는 건 부산 시민들에게 좋은 자세가 아닌 것 같다."

▲ "정치 전체로 보면 내년 총선 출마를 통해 부산발 정치혁명을 만들어보고 싶다." ⓒ프레시안(최형락)
"한나라당 부산 지역 의원들과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공동으로 부산저축은행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법안 발의를 했다. 그런데 김 최고위원이 쓴 소리를 했다고 하더라. 어떤 법안이길래 그랬나?"
"부산 지역 국회의원들이니까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를 한다. 실제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돈이 많아서 거기에 맡긴 게 아니다. 정말 서민들이다. 시장에서 평생 장사해서 피땀 흘려 모은 돈, 이자 몇 % 더 준다고 하니까 보호가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고 돈을 맡겼다 떼이게 된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이 있다. 그런 억울한 피해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되고 구제가 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부산 의원들이 발의해 놓은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은 올해 1월 1일부터 내년 12월 31일까지 2년 동안,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 발생할 부실까지 보호해주자는 것이다. 내년이라는 시한을 왜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18대 대선이 끝나는 시점이다. 그런 법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게 통과되면 대한민국 전체의 금융 기반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게 피해자들을 제대로 도와주는 길인가. 피해자들은 뭐라도 붙잡고 싶은데, 던져준다고 던져준 게 잡으면 끊어지는 썩은 동아줄이다. 피해자들은 더 깊은 절망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관리 소홀 책임도 있다. 그래서 특별법으로 부산저축은행 등,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특정해서 보호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하는 것이다."
"표 떨어지는 소리라는 반론도 있다."
"악성 주장이다. 제가 주장하는 대안이 전달이 잘 되면 피해자들도 제 주장에 동의를 하고 그 법안이 잘못됐다고 이해를 할 것이다."

"가지라도 땅에 박히면 줄기가 될 수 있다"

부산저축은행 문제에 대해 얘기할 때 김 최고위원의 목소리 톤이 다시 올라가는 걸 느꼈다. 사실을 왜곡 당했을 때의 억울함 같은 느낌이었는데 김 최고위원은 곧바로 평소의 톤으로 돌아왔다. 그런 김 최고의원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손학규 대표가 영남권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을 지명할 때, 부산의 재선 현역 의원인 조경태 의원을 지목했어야 하는데 그 몫이 김영춘 최고위원에게 갔다는 얘기가 있다. 그 때문에 조경태 의원이 김 최고위원에게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는 얘기고..."
"조경태 의원은 누가 뭐라 해도 부산의 유일한 민주당 재선 의원이다. 소중한 존재다. 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이 됐다고 해서 제가 자동적으로 부산의 정치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당직을 맡고 있을 뿐이다. 정치 리더라는 게 당 대표가 '너 리더 해라' 해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부산 시민들이 인정을 해줘야 하는 문제다."
"질문하면 정답만 얘기한다."
"정답을 찾아서 실행하는 것, 이게 정치를 제대로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정답인가?(웃음)"
"손학규 대표가 왜 김 최고위원을 지명직에 임명했을까. 두 사람이 가깝나?"
"별로 안 가깝다. 지난번 (2007년) 대선 경선할 때도 도와달라는 것을 거절했다."
"그 때 손 대표 제안을 거절하고 문국현 후보를 만들기 위해 당을 떠났던가?"
"그렇다. 진짜로 별로 안 가깝다.(웃음)"
"그런데 왜 김 최고위원을 지명했을까?"
"그 분(손학규 대표)이 제가 (경선에서 도와달라는 것을) 거절할 때부터 유심히 관찰했다고 하던데, '저 사람은 자기 잇속이나 정치적 성공을 위해 정치하는 것 같지는 않다. 뭐가 됐던 나라에 대한 충정을 가지고 정치를 하려는 사람 같다.' 이런 진정성이랄까 저에게 좋은 방향으로 평가를 한 것 같다. 손 대표는 '나와 함께 전국정당을 만들어보자,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호남과 영남을 아우르는 전국정당을 함께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을 하신 것 같다. 그래서 최고위원직을 제안했다고 하더라."
"정장선 사무총장, 박영선 정책위의장을 임명한 것도 그런 '전국정당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나?"
"사무총장은 대표가 당신과 제일 잘 호흡을 맞춰온 사람과 해보고 싶다는, 그런 차원의 포석이라고 볼 수 있겠고, 박영선 의원은 전국정당화 차원보다는 당의 개혁성 강화 포석으로 선택을 한 것으로 본다. 대표는 정책위의장 자리에는 호남을 배려하고 싶어했다. 그런 쪽으로 많이 가다가, 그래도 지금 당의 혁신을 화두로 삼고 가고 있는데 개혁성 강화라는 포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본다."
"'전국 정당'하니까 언뜻 떠오르는 게 동진정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진하다가 실패한,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하다가 실패한 이 동진정책을 손학규 대표가 또 하려고 하는 것인가?"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당연히 해야 할 방향이다."
"그 실패의 내용이 이런 것이다. 김태일 전 열린우리당 대구시당위원장의 얘기를 인용하겠다. '김 전 대통령은 동진정책을 한다고 과거 5공인사를 핵심 요직에 앉히는 등 지역의 기득권층에게 눈치를 보다 말았다. 그 결과 TK 지역의 개혁 세력은 소외됐다. 동진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 지역을 대상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 이런 비판이 다시 제기될 수 있지 않을까?"
▲ "영남 지역의 중산층, 다수 서민 대중에게 '민주당이야말로 진정한 당신들의 대변자다' '당신들을 위한 정당이다' 이런 인상을 확실히 심어줘야 한다."ⓒ프레시안(최형락)
"비판의 맥점이 뭔지 잘 알겠다. 맞는 비판이다. 일시적으로 영남 지역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혹은 그럴듯한 인물들을 영입해 자리를 줘서 당장의 선거에 내 보내는 데 급급한 그런 식의 정책은 길게 가기 힘들다. 영남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얻기 힘들다. 제가 생각하는 대 영남 전략은, 영남 지역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영남 지역의 기득권층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여러 문제들이 중첩돼 나타나는 게 지방이다. 양극화 현상도 서울에서 나타나는 양극화보다 더 가중돼 나타나는 게 지방의 양극화다. 영남 지역의 중산층, 다수 서민 대중에게 '민주당이야말로 진정한 당신들의 대변자다' '당신들을 위한 정당이다' 이런 인상을 확실히 심어줘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민주당이 그런 서민 정책을 제대로 내놓고, 반복적으로 꾸준히 실천하면 영남권 분들이 마음을 열어주실 것이다. 한번 (선거) 나갔다가 안 된다고 돌아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낙선을 하더라도, 민주당의 깃발을 세우고 확대해나가는 정치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그럴 때 영남이 바뀔 것이다."
"조금 거북한 질문이 될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몸 담았던 한나라당을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
"참 많이 가진 집인데, 그래서 과거의 영화, 과거의 어떤 권력, 그런 데서 못 벗어나는,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틀대는 공룡과 같은 느낌이다. 공룡은 환경 변화에 적응 못하면 도태되고 멸망할 수밖에 없다."
"애정은 좀 남아 있나?"
"솔직히 애정은 별로 없다. 한나라당에 있을 때는 저는 정말 좋은 보수 정당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개혁하는 보수, 시대를 선도하는 보수, 이런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10년 만에 깨달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스스로는 변화를 못하니까 (밖에서) 변화를 강제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한나라당을) 나와서 열린우리당을 만든 것이다."
"요즘도 그런 소리 듣나. 한나라당에서 온 사람."
"듣는다. 벌써 8년이 지났는데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낙인을 찍고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마음이 아픈가? 속상하고."
"업보인데 어떻게 하겠나.(웃음)"
"손학규 대표도 그 점을 힘들어하는 것 같다."
"4년밖에 안됐으니 낙인 효과가 더 있겠죠."
"어떻게 극복하는 게 현명한가?"
"왕도가 있겠나. 내가 왜 그랬는지 말로만 설명을 해서는 '저 사람 또 자기 변명만 하네. 자기 계산만 하고 나왔으면서' 이렇게 볼 것이다. 손 대표가 지난 대선 경선에서 낙방한 후 민주당을 향해 보여줬던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 칩거하고 성찰하는 모습, 그리고 분당 출마처럼 '그래, 내가 십자가 질게' 하는 노력들이 축적돼 세월이 지나야 씻어지는 것이지 말로 한다고 씻어지는 게 아니다."
"김부겸 의원이 눈물의 편지를 썼다. 제발 더 이상 그 꼬리표 얘기 그만해달라고. 50대 중반의 3선 중진 의원이 소속 의원들에게 그런 편지를 아직도 써야 하나 하는 안쓰러운 느낌도 들더라."
"민주당 당원들이 마음을 더 열어줬으면 한다. 김부겸 의원 글을 보면서 저도 마음이 짠했다. 그러나 말로써 씻어지지는 않죠."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문화제에서 손학규 대표를 얘기하면서 '줄기론'을 내 놓았다. 요약하면 손 대표는 '장자'와 '상주'의 큰 줄기가 아닌 가지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어떻게 보나?"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가지도 땅에 박히면 줄기가 될 수 있다."


"민주당, 박근혜 이길 수 있다…단, 혁신이 전제다"

'업보'라는 말을 할 때도 김 최고위원의 표정은 담담했다. 정치를 그만 둘까까지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그간의 고심참담이 오죽했을까 싶기도 하고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어쩌랴 싶기도 했다. 화제를 대선으로 돌렸다.

"16대, 17대 국회의원을 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의정활동을 8년 정도 했다. 박근혜의 경쟁력을 어떻게 보나?"
"세다. 아주 경쟁력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의 후광 효과도 분명히 있을 거고, 그게 박근혜 전 대표의 큰 자산이었다. 그 자산으로 출발을 했다. 근래 몇 년간 박근혜를 보면 정치인으로 상당한 내공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박근혜가 가진 대중적 지지는 그 두 가지가 결합됐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많이 변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복지를 강조하는 등 노력을 많이 하지만, 바로 직전 대통령 선거(2007년), 경선 과정에서 보여줬던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치 바로 세우자)와 같은 발상이 앞으로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끌고 나갈 수 있는 그런 비전이 될 수 있는가? 저는 그런 점에서 박근혜에게서 과거를 본다. 박정희, 그 후계자로서 박근혜 의원, 그렇게 본다. 박근혜 전 대표 주변에 모이는 사람들도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걱정이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현재 가장 유력하겠지만, 대통령이 돼 이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 "박근혜,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기본 전제가 있다. 민주당의 변화,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프레시안(최형락)

"얼마 전 천정배 최고위원과 인터뷰를 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강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언행이 일치하는 게 강점이다'라고 하면서 '그것 때문에 걱정이다'라고 하더라. 한나라당의 다른 의원들은 필요에 따라 보수적인 얘기를 하더라도 지나가면 흐지부지될 것 같다고 느껴지는데, 박근혜라는 사람은 얘기하면 진짜로 할 것 같은데, 그게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방향일 가능성이 높아서 정말로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하더라."
"재미있는 포인트다."
"언행일치라든지, 자기가 한 말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든지, 그런 면에서는 정치인으로서 인정을 받을 만한 대목이 있는 모양이다."
"중요한 덕목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게 사실이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자산이다."
"민주당은 그런 박근혜를 상대로 내년 총선,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 박근혜 손학규 양자 대결 구도가 만들어진다면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본 전제가 있다. 민주당의 변화,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 손학규든, 다른 누구든 박근혜를 이길 수 있다. '저 사람이라면 미래를 맡길 수 있다' 이런 믿음을 주는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 민주당이 치열하게 혁신해야 한다."
"야권 인사들은 박근혜 대 야권 후보간 1:1 구도가 만들어지면 결국은 혼전, 초박빙으로 간다고 주장을 하는데, 왜 다들 야권이 단일화만 하면 30만 표, 50만 표의 초박빙 선거가 된다고 전제를 할까. 나는 그 전제에 대해 동의를 못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 대선에서 (김영삼, 이명박) 한나라당, 보수 쪽 후보는 큰 승리를 했다. 진보 개혁 대통령이 될 때(김대중, 노무현)는 단일화를 해서 간신히 이겼다. 우리나라의 보수대 진보개혁의 세력 관계. 유권자 성향이 그렇게 분류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야권 쪽에서 우리가 이겨도 신승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그런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래서 단일화하면 이긴다? 그런 전제는 별로 좋은 상황 인식은 아니다. 그게 또 선거 전략이 되기도 힘들다고 본다. 이길 수 있는 선거 전략은 대다수 국민 대중이 야권 세력이 정말 우리 삶을 이 나락으로부터 구해줄 세력이고, 그런 통치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우선순위를 혼동 안 했으면 좋겠다."
"민주당이 혁신하고 쇄신하고 대안적 정당으로 발전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만들어낼 때 이길 수 있다?"
"그렇다."
"지금 한나라당 민주당 모두 쇄신 경쟁을 하고 있는데, 인물 교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대중적으로 승인받기 어렵다. 역으로 얘기하면 쇄신 내용상 다소 하자가 있어도 인물을 바꾸는데 성공하면 대중에게는 쇄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7.4 전대에서 수도권의 40대 젊은 리더를 내는지 못 내는지, 이것이 한나라당 쇄신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이 그렇게 갈 수 있을까?"
"한나라당 당원들이 느끼는 위기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이게 문제일 텐데, 저는 비관적인 입장이다."
"민주당은 어떨까. 제가 '손 대표가 먼저 대표직을 던져 조기 전대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수도권의 젊고 진취적인 새 지도부를 만들어가야 쇄신에 성공하고, 손 대표도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한 포럼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한 적이 있다. 이런 '프로세스'는 어떻게 보나?"
▲ "이길 수 있는 선거 전략은 대다수 국민 대중이 야권 세력이 우리 삶을 이 나락으로부터 구해줄 세력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당 대표를 내 놓는 것, 그것도 기득권이라면 기득권인데, 그 기득권을 내놓는 효과, 그리고 대표를 하면서 남은 6개월 동안 당의 쇄신, 변화를 책임지고 끌고 나가는 효과, 어떤 게 더 나을까. 저는 후자가 더 손 대표가 해야 할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 6개월 동안 쇄신과 혁신을 밀어붙이지 못하면 하는 일 없이 대표직만 유지한 모양새가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게 잘 안되면 저는 내년 대선도 희망이 없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연말에나 지도부가 교체될 텐데, 그럴 경우 40대 젊은 지도부의 출현이 가능할까?"
"민주당의 저변의 정서로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 변화가 나타날 수 있는데, 문제는 사람이다."

"작년 6.2지방선거 때 송영길, 안희정, 김두관, 이광재 등 이미 40대의 젊은 지도자들을 전면에 세웠다. 광역단체장이 간단한 자리가 아니지 않나. 작년 10월 3일 전당대회에서도 40대 돌풍이 불었다. 단일화를 못하는 바람에 4등으로 가라앉았지만, 당시 출마했던 이인영, 최재성 두 사람의 표만 단순 합산해도 이인영 최고위원이 2위가 된다. 이인영 최고위원이 '나도 대권 나가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면 손 대표가 내놓는 자리를 이인영 최고위원이 메우는 식으로 가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최근 민주당 지도부 회의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이인영 최고위원과 김 최고위원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 민주당의 얼굴이 이런 식이면 좋지 않을까? 제가 너무 작위적으로 보나?"
"(웃음) 저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 최고위원 정도까지는 몰라도 당 대표로 젊은 기수를 승인해줄 수 있는가. 그만큼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대중적으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것인가. 이런 것은 지켜봐야 하겠다."

"이제 '정치 노마드' 청산하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정치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고 했는데, 그동안 고민이 굉장히 깊었던 것 같다. 만약 그만뒀으면 뭘 했을까?"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저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니까 어떤 형태로든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학부가 영어영문과고 대학원을 정치외교학과를 갔다. 원래 문학소년이었나?"
"문학도였다."
"작품이 꽤 있을 것 같다."
"대학 때는 있었다. 교내 신문에 발표도 했고. 신춘문예까지는 못 갔다. 학생운동을 하느라고."
▲ 고성국 정치평론가 ⓒ프레시안(최형락)
"요즘도 글쓰기를 하나?"
"시는 못 쓴다. 시심이 많이 없어졌나보다. 요즘은 페이스북에 잡문을 많이 쓴다. 그런데 사실 짧은 글쓰기는 재미가 없다. 길고 진중한 글에 대한 갈증이 있다. 제 경험으로는 정치와 시는 공존하기 힘들다. 그런데 김영환 의원이나 김성순 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쓰니까 존경스럽다."
"정치 입문을 YS 밑에서 했다. 상도동 비서로는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과 함께 막내고 마지막 세대다. 야당으로 오면서 파문당하지 않았나?"
"저를 못 마땅해 하신다. 매년 세배하러 가는데 막내가 당신 말을 안 듣고 마음대로 하니까 못마땅하신 거다. 가끔 뵙는다.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 아파 누워계실 때 두 분이 화해했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래서 또 야단맞았나?(웃음)"
"(웃음) 그 때는 '그래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셨다."
"그 후에 김 전 대통령이 의식이 없을 때 문병가서 '화해했다고 봐도 된다'고 했다."
"저는 대화가 가능할 때 가시라고 말씀 드렸었는데, 조금 늦으셨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한나라당에서 시작해서 복잡하게 돌아 여기까지 왔다. 저 나름대로는 이상과 애국심의 발로로 정치적 유목민 생활을 계속 해온 것인데, 이제는 좀 정착해서 이 안에서 뭘 만들어내고 힘들더라도 이겨내고, 길게 인내심을 갖고 정당정치를 숙성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제 정치 노마드 생활을 청산하려 한다. 그런 마음으로 부산에 가서 자리를 잡으려고 한다."
"부산에서 3선을 하면 민주당 지지자들도 조금 봐줄 것이다."
"(웃음)"

김 최고위원과 웃으며 헤어졌지만 짠한 느낌은 마음 한 구석에 남았다. 김부겸의 편지를 봤을 때처럼.

내년 총선, 대선이 이런 '업보'를 훌훌 털어내는 한바탕 난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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