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영동대로 '천지개벽' 수준 개발계획 확정. 지하, 잠실야구장 30배 ‘지하도시’. 지상, 서울광장 2,5배 크기의 대형광장 - (00동 00협의회)"
지난해 6월, 서울시가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 기본계획안을 발표한 뒤 강남구 대로변에 나붙은 현수막들의 문구다. 낯 뜨거운 개발욕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이 현수막을 두고 할 얘기가 많지만, 일단 이 사업 자체를 살펴보자. 삼성역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가 지날 것으로 예상하며 지하 복합환승센터를 만드는 등 지하 6층의 다목적 공간을 조성하며, 지상에 현대차가 매입한 구 한전 부지부터 코엑스에 이르는 대형 광장을 만드는 대신에 차량은 광장 아래로 설치되는 터널로 지나게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위한 복합개발 사업 설계공모와 전시회까지 이미 마쳤고, 2019년 5월경 첫 삽을 뜰 계획이라 하니 그야말로 일사천리다, 1조 원이 넘게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대규모 사업인데다 상권 수요 분석이나 에너지 소비 증가, 교통 영향 등 따져볼 게 굉장히 많을 텐데, '청책'이든 타운홀 미팅이든 박 시장이 즐겨 쓰는 시민참여 제도는 활용되지 않았다. 그동안 앙숙이었던 박원순 시장과 신연희 강남구청장의 사이조차 모처럼 좋아진 듯 보인다.
물론 보행과 만남의 공간을 지상에 넓게 조성한다는 것, 지하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는 것, 대중교통의 물리적 허브를 만든다는 것 등 긍정적으로 볼 측면들이 있다. 하지만 지하 공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리고 영동대로를 그렇게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이거나 효과적인가 하는 질문이 생략되어선 안 된다. 새로 구조물을 만들거나 변경하지 않고 지금의 대로를 광장으로 활용하고 대중교통 허브를 만들 수 있다면 당연히 그것이 우선 고려해야 할 대안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영동대로는 큰 공연이나 행사 때 한시적 교통통제를 통해 광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코엑스몰 아래에 GTX 시설을 추가해도 될 일이다. 반면에 계획 중인 대규모 지하도시가 수십년 뒤까지 경제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것이 될지는 미지수다.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교통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영동대로 지하공간 사업은 보행권을 위하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동차의 권리', 즉 자동차의 원활한 운행을 저해하지 않기 위한 지하화 계획이다. 서울시가 구상 중인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에서도 차량을 지하로 돌리는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역시 자동차의 소통을 돕기 위한 것이다. 차량은 편리하고 빠르게 서울시를 오가야 하며, 동시에 보행권도 높이고 환경도 보전하고 에너지 소비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가능한 논리 또는 최선의 논리일까?
가능하거나 최선의 논리가 아닐지라도 서울시가 교통 문제에 접근한 방식은 결국 이 틀을 그다지 벗어나지 않았다. 오세훈 시장 시절에 혼잡통행세 확대나 교통유발 시설의 주차요금 의무 부과 이야기가 나왔다가 부정적인 여론이 일자 이내 백지화되었고, 박원순 시장도 서울시 진입 차량에 대한 통행세 부과를 언급했다가 금방 꼬리를 내렸다. '서울로 2017'(서울역 고가공원)이 보행권 증진을 내걸었다지만 자동차 억제책의 성격은 아니었다. 여전히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따릉이'를 보아도 공유경제 측면이 우선이지 도로 교통량 분담 차원은 부차적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교통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계기와 기회, 조건들이 있다. 무엇보다 최근 크게 논란이 된 미세먼지 대책이다. 서울시에서 총 사흘 동안 적용된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요금 면제는 그 효과를 두고 말이 많지만, 서울시 교통량 조절이 미세먼지 대응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더 실효성 있는 교통량 감축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서울시와 국회에서도 승용차 강제 2부제 적용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어쨌든 교통량이 환경 문제와 본격적으로 결부되어 거론되는 것 자체가 큰 진전이다. 하지만 미세먼지 대책을 포함하여 서울시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도로 교통량, 특히 승용차의 통행 수요 자체를 구조적으로 줄이자는 이야기를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
서울시에도 그동안 적지 않은 진전이 있었다. 무엇보다 조밀하게 구축된 지하철과 버스의 네트워크가 있다. 파리와 런던에 뒤지지 않는 이 물리적 자산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은 서울시민 대다수가 승용차 없이 살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다. 오히려 핵심은 당근 보다 채찍을 강구하는 데에 있다. 지금까지 다소라도 채찍 역할을 하는 게 있었다면 남산터널 통행료 과금과 버스 중앙전용차로 정도다. 이제는 한 발 두 발 더 나가야 한다.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 고시를 통해 서울시의 한양도성 내부에 해당하는 구역이 '녹색교통진흥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즉 이 지역 내에서 더 강화된 교통 수요 관리책을 시행하기 용이하게 된 것이고, 서울시는 이 지역의 특별종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국회에서 별도의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도 강제 2부제를 포함하여 미세먼지 대응을 위한 수단을 강구할 수 있고, 종합대책에 교통 수요 자체를 구조적으로 줄이는 더욱 과감한 방안을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승용차 교통량과 수송 분담률의 단계적 축소와 자전거 수송 분담률의 향상 목표를 명시할 수 있다. 승용차 교통량 감축이 수량적 목표로 설정되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도심 주차면 제한과 주차요금 인상, 대중교통 전용지구 확대, 혼잡통행 과금 구간 추가, 공공 셔틀버스 확충이나 트램 설치 등의 세부 정책들이 자연스럽게 뒷받침될 것이다. 도심 간선도로 통행 속도를 시속 50km가 아니라 30km 정도로 과감히 제한할 수도 있다. 생계형 차량이나 비상 차량 운행을 보장하는 보완책들이 필요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승용차 운행이 불리하거나 번거롭게 될 수준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서울시가 이런 정책을 강구하지 않고, 이런 교통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인기가 없고 반발이 심하고 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정책이고 전환이다. 만약 오는 6월에 박원순 시장이 또 한번 선거에 나선다면, "제가 3선을 하게 되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한국 사회를 바꾸는 게 더욱 중요한 일이니,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서울에서 자동차 시스템을 바꾸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으니, 아무리 욕을 먹고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이것부터 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좋겠다. 박 시장뿐 아니라 서울시를 책임지겠다고 나설 다른 여러 진지한 후보들에게도 바란다. 자동차와 싸울 포부와 의지가 있는 서울시장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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