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특별법 개정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 한EU FTA 후속 대책 법안은 차기 여야 원내 지도부 몫으로 남겨졌다. 부담을 느낀 박희태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짜증'낸 박희태 "반대 토론 이제 그만 하세요, 아 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날 오후 8시 30분 경 의원총회를 각각 열었고, 한나라당은 강행 처리를, 민주당은 본회의 불참을 결정했다. 여야가 의총을 열고 있는 동안 민주노동당은 본회의장 의장석을 잠시 점거하기도 했으나 국회 경위들에 의해 끌려 내려와야 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우리의 반대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해산했다"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는 "우리의 요구는 한나라당에 대해 오늘 심의하지 말고 좀더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원내수석 부대표에 따르면 의사일정을 공식적으로 합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의 입장이 이만큼 하루종일 보도됐고 입장이 밝혀진 마당에 한나라당이 그것도 못 참고 강행처리하는 것은 집권여당의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 한나라당 의원들을 독려하는 김무성 원내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이날 본회의는 밤 10시를 넘겨 열렸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제한 시간인 3분을 넘겨 10분 여 동안 반대 토론을 했다. 시간이 초과되자 한나라당은 이 대표에게 "그만해"라고 고함을 질렀고, 박희태 국회의장은 "이제 그만하세요. 아 참..."이라며 짜증을 냈다.
이어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등의 토론이 이어질 예정이었지만 김무성 원내대표는 '토론 종결 동의안'을 즉석에서 발의했고, 박희태 의장은 곧바로 표결을 실시했다. "더이상 토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제2의 날치기를 하려는 것이냐"는 등 항의가 쏟아지자 박 의장은 "법대로 하는 거라니까", "(토론) 할만치 했다. 의석 비율로 따져봐"라고 대꾸했다. 항의가 거세지자 박 의장은 "이게 무슨 짓이야"라고 버럭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비준안 통과 직후 한나라당은 논평을 내고 "당리당략과 정치적 계산 앞에 국익을 위해 이뤄낸 초당적 합의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대화와 타협, 민주주의를 헌신짝처럼 버린 민주당에 실망감을 금할 수 없지만, 한나라당은 여전히 여야정이 함께 만들고 약속한 합의문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한-EU FTA는 서민에게 최대의 복지인 2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물가 안정과 소득 향상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토론에 나섰던 강기갑 의원은 "1290페이지 짜리 방대한 조항을 16일 동안 검증했다. 이래도 졸속 검증이라고 안할 수 있나. 한EU FTA는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으로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영향 미치는 것"이라며 "EU 국가들은 미용실 등 서비스업 자국민 보호법을 다 마련해 놓았는데 우리는 졸속 협상으로 충분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재보선 참패 1주일만에 정치적 부담 또 걸머진 한나라
결국 한나라당은 재보선 참패 일주일만에 '일방 처리 강행'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극심한 몸 싸움은 없었지만, 불과 16일간의 후속 대책 논의 끝에 졸속이라는 비판을 들으면서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또한 논의된 후속 대책을 함께 처리하지 못한 것은 여야 모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한나라당의 정치적 부담이 야당보다 더 크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물리력을 동원한 법안 처리시 19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던 남경필 의원 등 22명의 국회바로세우기 모임 소속 의원들도 머쓱하게 됐다. "합의를 먼저 파기한 것은 민주당이고 물리력을 동원하지도 않았다"는 명분은 지킬 수 있었지만, 처리 과정 자체가 172석을 내세워 밀어붙인 형태여서 일부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추진하고 있는 직권상정 제한법안, 필리버스터 도입 등 국회 시스템 개혁 역시 탄력을 받기 힘들게 됐다.
민주당 역시 후폭풍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비준안 합의 처리에 동의했다가 이를 번복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등 다른 야당과의 연대 정신에 상처가 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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