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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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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최저임금을 올려야 전체 임금 오른다

신문을 봐도 최저임금, 모바일을 열어도 최저임금, TV를 켜도 최저임금, 바야흐로 '최저임금' 시즌이다. 최저임금 인상 집중심의가 보통 6월에 진행되는데, 예년보다 몇 개월은 일찍 최저임금 이슈가 달아오른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바로 경제다."

이런 신조를 갖고 있는 <인사이드 경제> 입장에서, 최저임금처럼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 경제적 이슈가 공론화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이 쟁점을 놓고 정말 치열하게 토론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1만원 요구의 토대는 박근혜 정부 시절?

보통 정책 결정의 핵심에 서있는 청와대·정부·여당 관계자들의 입장은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들의 입장은 대부분 의사결정과정에서 '정부 안'으로 등장하며,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정부 안’을 기초로 해서 약간의 수정을 더해 이뤄지기 마련이다.

물론 최저임금은 정부 기구가 아니라 '최저임금위원회'라는 심의기구에서 결정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구가 정권과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 임명되어 지난해 최저임금 심의를 주도했던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도 "최저임금 결정에 문 대통령 영향? 안 받으면 바보지"라는 취지의 공개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인터뷰에서 어수봉 위원장은 양 노총의 최저임금 1만원 요구에 대해서 이상한 주장을 펼친다. "박근혜 정부 시절 최저임금이 가장 높게 오르면서 받는 쪽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최저임금 1만원 요구가 터져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도 이 대목에서 깜짝 놀라서 이런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문) 잠깐, 박근혜 정부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많이 올랐다고?
(답) 실제 의미가 있는 것은 보통 근로자의 평균 임금 상승률과 최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상승률 간의 격차다. 이 격차가 있어야 최저임금 인상은 의미가 있다.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일반 근로자의 임금이 오르면 결국 하나도 안 오른 것과 마찬가지다. 노태우∼박근혜 대통령까지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가 높았지만 그때는 전체 근로자의 평균임금 상승률도 높았다. 반면에 박근혜 대통령 때는 일반 근로자 임금 상승률보다 매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2∼3%포인트가 더 높았다.
(동아일보 2017. 12. 25.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 인터뷰 기사 “최저임금 결정에 문 대통령 영향? 안 받으면 바보지” 중에서)

<인사이드 경제>는 어수봉 위원장의 견해에 단 한 가지도 동의하기가 어렵다. 우선 최저임금 1만원 요구가 시작된 시점은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12년으로, 지금 알바노조의 전신인 알바연대 등이 전면에 걸기 시작했다. 다만, 민주노총을 비롯한 주요 대중조직이 최저임금 1만원을 전면에 걸기까지 그로부터 2~3년이 더 걸렸을 뿐이다.

잠깐만요. 팩트 체크 좀 하고 가실께요.

어수봉 위원장이 언급한 최저임금 인상률과 보통 근로자의 평균 임금 인상률 사이의 격차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우선 매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최저임금위원회 홈페이지만 접속해도 연도별 데이터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럼 평범한 노동자의 임금 인상률은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인사이드 경제>는 고용노동부가 수행하는 ‘임금결정 현황 조사’에 나오는 ‘협약임금 인상률’을 사용해 보았다. 노동조합이 있는 100인 이상 사업장 임금교섭 결과에 따른 임금인상률을 조사해 평균치를 낸 것인데, 이 수치는 매년 최저임금 심의에 실제로 활용되는 지표이기도 하다.

다행히 이 데이터는 1998년 것부터 사용할 수 있어서, 김대중~박근혜 정부 시기를 두루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1998년부터 2017년까지, 연도별 협약임금 인상률(A), 최저임금 인상률(B)을 나타낸 후, 양자의 격차(B-A)를 표로 나타내 보았다. (연도에 따라 정부 시기를 나누었으며, 2017년 협약임금 인상률은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태라서 공란으로 두었다.)


우선 지난 20년 동안 최저임금 인상률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협약임금 인상률보다 상회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어수봉 위원장이 말하는 ‘격차’는 매년 빠짐없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그 ‘격차’의 크기는 어떠한가? 눈으로 보더라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격차가 가장 크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 <인사이드 경제>는 각 정부 시기 평균치를 계산해 보았다. 김대중 정부 5.1%, 노무현 정부 5.5%의 격차가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1.0%로 확 줄었다가, 박근혜 정부 시기에 3.8%로 약간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수봉 위원장 주장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지 않는가.

그래, 어디 말이나 되는가. 박근혜 정부 시기에 최저임금이 가장 많이 올랐다니? 그런데 학자이자 교수이며 일국의 최저임금 심의를 책임지는 양반께선, 도대체 무슨 데이터와 수치를 사용하시기에 저런 주장을 대놓고 한단 말인가.

"격차가 있어야 최저임금 인상은 의미가 있다"

한 가지 조건을 달아서 <인사이드 경제>는 위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 무슨 조건일까? ‘격차’가 B-A가 아니라 A-B라면 말이 된다. 즉, 협약임금 인상률이 최저임금 인상률에 비해 훨씬 높아진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진실로 밝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1980년대 후반, 노동자들의 입사 직후의 임금, 즉 초임(初賃)은 대부분 최저임금에 기반한 경우가 많았다. 곳곳에 민주노조가 결성되어 임금인상 투쟁이 벌어지고, 상여금이나 제수당·성과급이 지급되면서 연봉 총액이 늘어나긴 했으나, 여전히 신입사원들의 경우에는 최저임금 변동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기업의 노동자 임금구조는 대부분 맨 아래 신입사원의 임금이 놓이게 되고, 그 위로 근속년수가 더해지며 임금이 높아지는 피라미드 구조이다. 맨 아래 신입사원 임금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그 폭만큼 올라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근속 1년차 사원의 임금과 비슷하거나 높아지는 사태가 벌어진다.

자본가들은 노동자 사이의 위계질서를 잡아야만 통제가 가능하기에, 원하든 원치 않든 1년차 사원 임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려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들의 임금이 2년차 사원 임금과 비슷해진다. 같은 이유로 2년차 사원 임금을, 똑같은 이유로 3년차 사원 임금을 … 이렇게 해서 전체 사원 임금을 최소한 최저임금 인상폭만큼 올려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자연스럽게 전체 노동자 임금이 최소한 그만큼은 올라간다는 것이다. 여기에 노동조합의 역할이 더해진다면? 그렇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최소’ 수준일 뿐, 협약임금 인상률은 자연스럽게 그보다 더 높아지게 된다. 만일 협약임금 인상률이 최저임금 인상률과 비슷하다면, 그건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에 거의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임금의 위계질서는 1990년대를 거치며 좀 더 심화된다. 이제 정규직 노동자들의 초임은 민주노조운동의 역할로 최저임금 수준보다 높아지게 된다. 그러자 자본가들은 이제 그 밑바닥을 비정규직으로 채우기 시작한다. 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게 되었고, 바로 그 위에서 정규직 임금이 형성되는 그림이다.

옆의 <그림>은 최저임금 1만원 요구가 처음 세상에 등장한 2012년 당시 최저임금 캠페인에 사용된 것이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임금 피라미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자동으로 비정규직 임금이 그만큼 올라간다.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규직 신입사원 임금 수준 또는 그를 넘어서게 된다. 자본가들은 정규직-비정규직 위계질서 유지를 위해 신입사원 임금을 그만큼 올려줄 수밖에 없다. 똑같은 논리로 결국 전체 노동자 임금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곳의 임금을 올려야 전체의 임금이 오른다

다시 말해 최저임금 인상은 전체 노동자 임금인상을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게 진정한 최저임금의 밝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낮은 곳을 올려서 전체를 올려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원리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 도입되기 시작된 저상버스, 그리고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결과, 장애인만이 아니라 수많은 거동 부자유자(노약자, 임산부, 유아동반자 등)의 이동권도 큰 향상을 이루지 않았던가.

그런 밝은 역할을 하던 시절에는 협약임금 인상률이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높았다. 기본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은 전체 노동자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게 되며, 노동조합으로 단결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력과 투쟁으로 그만큼의 보상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게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노조가 결성되는 힘으로도 작용했다.

그러나 IMF를 전후로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그리고 비정규직화 공세는 민주노조운동에 크나큰 타격을 입히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이런 공식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 이전의 통계를 구할 수 없어 입증하기가 어렵지만, 1998년부터는 정반대로 최저임금 인상률이 협약임금 인상률보다 높아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최저임금 수준에 허덕이는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딱 최저임금 인상만큼만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폭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구조조정과 노조탄압으로 중소사업장에 조직된 민주노조들도 하나둘씩 무너졌다. 아래 그림처럼 미조직노동①에 해당하는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이 밑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대기업의 경우 노동조합과 함께 임금인상률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오른쪽 그림처럼 점차 고립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기에, 상대적 고임금을 이유로 대기업 정규직이 마치 모든 죄의 온상인양 손가락질을 받기 때문이다. 중소사업장 임금인상률이 하락하며 결국 협약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덜 오르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의 탄생 배경

자본의 탐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소사업장을 공략해 협약임금 인상률을 하락시켜 놓고는, 이제 와서 최저임금 인상률이 너무 높다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사실 재벌과 대기업은 최저임금 인상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중소 자본가들이 임금인상 압박에서 헤어나자, 재벌과 대기업은 이들을 상대로 도급단가를 후려치며 충분한 이윤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러자 이명박 정권은 아예 최저임금 인상률 자체를 ‘최저’ 수준으로 낮춰버렸다. 앞에 제시한 표에서 보는 것처럼, 대한민국 역대 정권 중 가장 낮은 최저임금 인상을 기록한 것이 이명박 정권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쉽게 극복되지 않고 '저성장'이란 형태의 장기불황으로 이어졌다.

다들 아는 것처럼 이 기간 동안 재벌과 대기업은 다시한번 중소 자본가들을 후려치며 위기를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중소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윤 확보를 위해 더 착취율을 높여야 했다. 무슨 좋은 꼼수가 없을까? 그때 '상여금'과 '수당'이 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거야!" 상여금과 수당을 기본급으로 전환하면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2010년대에 이르면 상여금·수당의 기본급 전환은 웬만한 공단에서 연례행사가 되기 시작한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서 최저임금 인상률은 이명박 정권보다 높아졌으나 협약임금 인상률은 그대로였다. 최저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상여금·수당의 기본급 전환이라는 방식을 사용하면 임금 한푼 올려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제 최저임금과 협약임금이 완전히 따로 놀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를 되돌릴 건가

이런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이제 노동자들도 새로운 수를 내놓아야 했다. 가장 낮은 곳을 올려서 전체 임금을 올리는 최저임금의 본래 기능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이 대목에서 ‘최저임금 1만원’이 등장한 것이다. 협약임금과 최저임금의 역전 현상과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아예 노동조합이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을 내걸고 전면에 나서기로 한 것!

알바연대, 그리고 알바노조, 최저임금 1만원 연대의 희생과 헌신으로 시작된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2015년이 되면 민주노총·한국노총의 공식 슬로건과 요구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꼭 2년 만에 치러진 대선에서는, 주요 후보들의 공약에도 선명하게 박히게 되었다.

그러나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하고 당선된 문재인 정부는, 아예 법까지 바꿔서 상여금을 편하게 기본급으로 전환하도록 해주겠단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그토록 하고 싶었으나 엄두도 내지 못했던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개악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게 아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인정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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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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