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입던 늘어난 티셔츠만 입던 내 몸에 예쁜 블라우스도 입혀볼 수 있겠지."
"중2 아들 컴퓨터도 성능 좋은 걸로 하나 사주면 멋진 아빠라고 하겠지."
"당신 용돈도 쓰지 못하는 부모님께 돈 보내달라는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아이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학원 뺑뺑이를 돌지 않아도 될 거야."
"서로 양보하느라 적은 양임에도 남길 수밖에 없던 치킨, 한마리가 아닌 두마리를 시킬 수 있겠지."
최저임금 1만 원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결성된 '만원행동'에서 대선 기간에 '최저임금이 1만 원이라면'을 주제로 한 줄 스토리를 공모했다. SNS를 통해 많은 시민과 노동자들이 소망을 적어주셨는데, 그 중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던 스토리 중 몇 개다.
최저임금 1만 원, 일각에서는 영세상인·소상공인 모조리 망해 경제가 결딴난다며 공포심을 조장한다. 하지만 시민과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1만 원에 소박한 꿈을 담고 있다. 특히 위에 열거한 스토리에서는 '가족'과 '여유'라는 키워드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필시 가족을 구성하고 생계를 책임지는 중년층이 적어주셨을 얘기들, 한국의 저임금 구조는 가족과 함께 저 정도의 여유를 누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흔히들 최저임금은 젊은 층에게나 적용되는 것처럼 알고 있다.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1988년)된 초기에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숱한 구조조정·비정규직화를 거듭한 한국 사회는 저임금의 고통을 모든 세대로 확장해 놓았다. 낮은 최저임금과 저임금 구조는 우리 사회 오랜 기간 쌓여온 '노동 적폐'라고 부를 만하다. 그렇다면 좀 더 젊은 층은 어떤 소망을 적어 넣었을까?
'꿈'과 '여유'
"500원 더 싼 밥을 고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거야."
"종합건강검진도 받고 학자금 대출도 갚을 수 있을 거야."
"장학금과 아르바이트 사이의 고민이 없어질 것이다."
"편의점 계산대가 아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겠지."
"생계가 무서워 포기했던 꿈을 다시 꿀 수 있을 거야."
"매년 여름 20~30만 원을 들고 친구들과 휴가를 갈 거야."
"술 한 잔 할래? 친구에게 먼저 말할 수 있게 되겠지."
"파란신호를 5초 앞둔 신호등 앞에서, 막 닫히려는 지하철 문에 아슬아슬하게 뛰어들지 않을 거야."
젊은 층이 적어준 스토리에서 읽을 수 있는 키워드는 '꿈'과 '여유'다. 공부하는 알바? 알바하는 학생? 정체성이 헷갈릴 정도로 알바와 학업을 병행해야 했던 이들이 여유를 갖고 꿈을 꿀 수 있게 된다는 스토리가 대부분이다.
앞선 스토리들은 이런 여유를 '가족'과 누리려 했다면, 젊은 층은 그 자리에 '친구'를 추가한다. 다시 말해 최저임금 1만 원은 가족·친구와 함께 여유와 꿈이 충만한 사회를 상징한다. 단순히 '월급 액수'가 아니라 '삶의 가치'를 말하고 있다.
기업의 후원을 받은 학자들이 경제학 원론을 들이밀며 최저임금 1만 원은 고용불안을 야기한다고 떠들어대도,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최저임금 1만 원 요구에 환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저임금 1만 원은 돈이 아니라 사람답게 여유롭게 살 권리, 즉 인권이다.
경제위기 진짜 해법, 최저임금 1만 원
"재벌들이 시장에 와서 물건 팔아주나요?"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쉽게 들을 수 있는 얘기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재벌들의 소득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들의 사치품 구매가 일부 늘어났을지는 모르지만 서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소비는 늘리지 않았다.
어떤 재벌 2세가 시장에 와서 물건을 사고 있다면 여러분은 의심해봐야 한다. 그 친구는 민간 소비 활성화 목적이 아니라 조만간 다가올 선거에 출마할 생각임에 틀림없다. 당선 뒤에 그들은 최저임금 1만 원을 반대할 테고, 다음 선거까지는 시장에 그림자도 비추지 않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앞선 스토리들을 보시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여유를 누리는 것조차 돈이 필요하다. 예쁜 블라우스, 성능 좋은 컴퓨터, 치킨 한 마리 더, 술 한 잔과 휴가비…. 최저임금 1만 원은 여유로운 삶을 위해 '자연스럽게' 민간 소비를 늘린다.
글로벌 경제가 위기라고, 한국 경제도 위기라고 공포심을 조장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바로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세력이다. 최저임금 1만 원에 반대하고 노동자들의 여유로운 삶을 반대해온 세력, 그들에 맞서 이제 외쳐야 한다. 최저임금 1만 원이야말로 당신들이 말하는 위기에 대한 진짜 해법이라고.
최저임금 1만 원은 분명히 어떤 고용을 없애게 된다.
아니, 지금까지 잘 나가다가 왜 갑자기 이상한 주장을 하느냐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2015년에 독일에서 최저임금제가 시행된다. 시간당 8.5유로, 한국 돈으로 1만678원이었다. 최저임금제 시행 뒤에 독일의 일자리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을까?
우선 미니잡(Mini Job), 즉 독일의 저임금 일자리의 개수가 20만800개나 줄어들게 된다. 미니잡은 청년 실업자나 조기 퇴직자들에게 제공되는 시간제 일자리, 즉 질 낮은 일자리의 대표명사였다. 반대로 사회보험이 적용되는 좋은 일자리는 무려 71만3000개가 늘어난다.
최저임금 1만 원은 분명히 일부 고용, 즉 질 낮은 일자리를 없앨 것이다. 그 대신 시간당 1만 원 이상을 보장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대폭 늘릴 것이다. 올해 독일 정부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8.84유로(한국 돈으로 1만1106원)로 인상하게 된다.
최저임금 1만 원은 국가 재정도 탄탄하게 만든다
올해 최저임금 시간당 6470원, 월 209시간 기준으로 135만2230원이다.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면 월급은 209만 원으로 오른다. 하지만 월급만 올라갈까? 노동자들이 내는 세금, 즉 갑근세도 올라간다. 세금만 올라가나? 4대 보험료도 올라간다.
내년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오르게 되면 노동자들이 내는 갑근세와 사회보험료 부담분 증가액만 최소 3~4조 원에 달한다. 독일처럼 양질의 일자리가 더 늘어난다면 이 액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세금 깎아주는 대책 말고, 세금 떳떳하게 낼 테니 최저임금 1만 원으로 당장 올리시라. 국가 세입도 늘어나고 사회보험 재정도 탄탄해진다.
탄탄해진 국가 재정으로 공공부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더 만들자.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미명 하에 무기계약직·중규직 만들지 말고, 차별 없는 온전한 정규직으로 전환하자. 양질의 일자리 증가는 또다시 세입과 국가 재정을 탄탄하게 만드는 선순환의 고리가 된다. 국가 재정 확장은 민간투자와 일자리 확대에도 청신호로 작동하지 않겠는가.
우울증 특효약, 최저임금 1만 원!
영국 옥스퍼드대학, 리버풀대학,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LSHTM) 학자들이 학술지 '보건경제학' 2016년 상반기에 독특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최저임금제가 도입되어 임금이 오른 노동자들의 우울증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 자본가들도 칭송하는 유명 대학 연구진이니 그들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영국은 1999년에 최저임금제(당시 시간당 3.6파운드)가 도입됐다. 연구팀은 시간당 3.6파운드 미만을 받던 저임금 노동자들 가운데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3.6~4파운드를 받게 된 사람들의 변화를 추적 조사했더니 정신건강이 크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터클러 옥스퍼드대 교수는 "그 개선 정도가 항우울제 복용 효과와 같은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반대로 최저임금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법을 지키지 않아 임금이 오르지 않은 노동자들의 경우 정신건강 개선 효과가 없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흡연 등 건강을 해칠 위험이 증가한다."
영국에선 이런 식의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도 있었단다. 연구진들에 따르면 임금이 오른 노동자들의 흡연율과 흡연량은 전혀 늘지 않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수고스럽게 검증하다니, 어쩌면 연구진들은 저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더 궁금했던 게 아닐까?
여유가 있는 삶이 만들어낼 파생 효과
세계사를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번성한 국가일수록 문화·예술이 발전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여유를 누리면 누구나 문화·예술에 관심을 더 쏟는다. 최저임금 1만 원이 된다면, 일을 마치고 대학로에 가서 연극도 한 편 보고 싶어진다. 노동자와 시민 누구나 영화·연극 비평가가 된다.
유튜브에 각종 영화·연극을 소개하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비평 영상이 올라오고 토론이 시작된다. 폐간되었던 문화 잡지들이 부활하고, 문화·예술 관련 일자리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당연히 늘어나는 일자리는 모조리 최저임금 1만 원 이상을 보장받는 일자리들이다.
왜 한국에서는 옥스퍼드대학도 하는 연구, 즉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찾아볼 수 없을까? 학술지들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 뭐 이런 논문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재벌기업의 후원을 듬뿍 받는 학자들의 작품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것들이 궁금하다. '임대료 인상, 수수료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 '저임금으로 재벌들이 얻는 개이득' - 재벌기업이 절대로 관심을 갖지 않는 이런 주제를 연구하고자 하는 가난한 학자들에게, 최저임금 1만 원은 노동자·시민의 후원을 조직해줄 것이다. 노동자들의 여유로운 삶은 문화·예술과 다양한 학술 산업을 번성시키게 할 원동력이 된다.
재벌에게 책임 묻기, 지금 당장!
어떤 이는 말한다. 최저임금 1만 원, 주장은 좋지만 너무 급진적인 변화여서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다고.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겁다고. 지면 관계상 자영업자·소상공인 관련 대책은 다른 글을 통해 자세히 논하기로 하되, 한두 가지 얘기만 덧붙이기로 하자.
부모가 재벌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서부터 수십억의 자산가가 된다. 대를 이어 수십조의 매출을 기록하는 기업집단을 쥐락펴락 한다. 유력 정치인들은 그들의 뒤를 봐주고 정치인생 연장을 보장받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겪어야 했던 이런 현상들은 과연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었을까? 이런 현상들에 급진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는 또 얼마나 감당 못할 일들을 감당해야만 할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우리 사회 참상들이 낱낱이 드러난 지금, 1700만 촛불의 힘으로 절대권력처럼 보이던 대통령을 끌어낸 지금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 최저임금 1만 원은 온전히 재벌들의 비용과 부담으로,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변화로 실현 가능하다. 지금 당장 이런 급진적인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어떠한 변화도 감당하기 힘들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여유와 꿈이 충만한 사회를 향해 함께 걷자!
'만원행동'은 오는 6월 17일,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위한 걷기대회 '만원:런'을 개최한다. 오후 2시, 홍대입구에서 시작해 여의도 한강공원까지, 성인의 보폭이라면 만 보가 조금 넘는 거리를 노동자·시민들이 함께 걷는다.
박근혜 퇴진 그 이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질문했던 방송인 김제동 씨는 스스로 "최저임금 1만 원"이라고 답했다. 이제 '만원행동'이 그 질문에 화답하고자 한다. 최저임금 1만 원, 아니 여유와 꿈이 충만한 사회로 함께 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초대한다.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환영한다. 최저임금 1만 원에 대해 이런저런 견해를 가진 방송인, 언론인, 정치인들도 함께 걷자. 함께 걸으면서 토론하고 논쟁도 해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은 토론과 논쟁을 할 여유가 아니던가. 최저임금 1만 원이 가져올 우리 사회 어마어마한 변화와 긍정적 에너지로 함께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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