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받는 것을 좋아하고 모든 일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려는 트럼프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접근이 불가피하다고 봤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러한 시도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에는 저자세 논란과 "정권이 바뀐 게 맞냐"는 불만이 나올 정도로 트럼프 행정부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였었다.
하지만 신년 들어 문 대통령의 '칭찬 외교'는 빛을 발하고 있다. 기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문 대통령의 통(通)이 한미관계의 화(禍)로 이어질 조짐과 전망이 컸다. 미국은 북한의 평창 대회 참가와 남북대화에 대해 불편한 기색과 그 의미를 폄하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칭찬 한마디가 한미관계에서도 '기회의 창'을 여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1월 4일 트럼프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평창 대회 참가와 남북대화의 공을 트럼프에게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한반도 비핵화 목표 달성을 위해 확고하고 강력한 입장을 견지해온 것이 남북대화로 이어지는데 도움이 됐다"며 사의를 표한 것이다. 그러자 트럼프는 한국이 제안한 한미 군사훈련 연기에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100%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화답했다.
'남북대화가 잘 되나 두고 보자'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던 트럼프를 문 대통령이 칭찬 외교로 견인해 낸 셈이다. 트럼프가 1월 6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전화통화에서 나의 발언과 강경한 태도가 없었다면 남북한이 올림픽에 대해 대화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내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고 발언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남북대화 재개를 자신의 공으로 간주한 트럼프는 남북대화의 의미 격상 발언으로도 이어졌다. 국무부 대변인이 4일 "남북대화는 올림픽 문제로 제한될"이라고 했던 것과는 달리, 트럼프는 6일 "남북이 대화를 올림픽 그 이상으로 가져가는 걸 보길 원한다"고 말했다. "적절한 시점에 우리도 관여하게 될 것"이라며 김정은과의 직접 대화도 시사하면서 말이다.
미국 대통령의 남북대화 지지 및 기대감 표명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우선 한미 공조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남남갈등을 완화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또한 '통남통미(通南通美)'를 추구하는 북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평양이 서울을 거쳐 워싱턴으로 갈 수 있다고 여기게 되면 남북대화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거꾸로 북미대화와 6자회담과 관련해 한국의 발언권 강화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성급한 낙관은 금물이다. 또한 앞으로 갈 길도 고속도로가 뻥 뚫려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신년 들어 첫 단추가 잘 채워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존재하지도 않는) 핵 단추를 누를 가능성보다 통화 버튼을 누를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평창에서 이들의 여동생(김여정)과 딸(이방카)이 만나는 장면도 상상만은 아니다.
이제 남북대화와 평창 대회의 성공과 더불어 다음 단계도 준비해야 한다. '칭찬 외교'는 성과를 하나둘씩 내어야 '최대의 관여'로 이어질 수 있다. 당면 과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 선언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인공위성 발사가 복병이 될 수 있는 만큼, 이 문제도 포함시키면서 말이다.
만약 북한이 이러한 선언을 내놓는다면,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공이라고 자랑하면서 더 큰 관여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북한의 시험 중단 선언은 미국이 레드라인으로 언급해온 '북한의 핵탄두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가 명확해지지 않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한미 군사훈련이라는 변수가 살아있다. 한미 양국은 평창 대회 기간 동안 군사훈련을 안 하기로 했지만, 펜타곤은 그 이후에 실시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자칫 이게 악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하나는 군사 훈련 중단이 최선이겠지만, 설사 실시하더라도 최대한 그 규모와 공개를 축소해 '로우키'로 진행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미 회담의 재개이다. 북미 협상의 역사를 복기해보면,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은 북미 고위급 회담 지속과 가장 잘 맞는 짝이었다. 그래서 "북미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을 이용한 모든 발사를 중단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모든 발사'에는 위성 발사도 포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민생과 직결될 대북 제재 완화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최대의 칭찬을 통한 최대의 견인'의 백미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정상회담이 아닐까 한다. 트럼프는 북한에 최악의 말 폭탄만 던진 인물이 아니다. 그는 북미정상회담 의사를 가장 강력히 피력한 인물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얼굴의 트럼프' 가운데 후자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의지를 칭찬함으로써 최대의 관여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은-트럼프 회담의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 지도자의 전략적 셈법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미국 대통령이 유일하지만, 아직 이러한 시도를 한 대통령이 없었다며 "적절한 시기"에 북미 정상회담을 권유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평화의 토대를 구축한다면, 이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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