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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전 문재인의 '베를린선언'을 다시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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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6개월전 문재인의 '베를린선언'을 다시 주목한다

[김민웅의 인문정신] 한미동맹, 이제는 '군사'에서 '외교'로 중심축 이동해야

위기 돌파형 한반도 정치 절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결빙(結氷)된 남북관계를 과연 해빙(解氷)으로 이끌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물론 과정상 서로의 기대치와 주장이 엇갈리는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기본이나, 대화체제의 복원과 군사적 대치상황 종식에 대한 남과 북 양측 최고 지도부의 의지는 분명하고도 강력하다. '위기돌파의 정치'가 펼쳐질 수 있는 적기다.

올림픽 기간 중 한미군사훈련은 남북 관계를 떠나서라도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을 수 있다. '세계평화에 이바지하자'는 정신을 가진 올림픽 주최국 위상을 스스로 훼손하는 이율배반적 결과를 자초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 상태의 지속으로 올림픽 분위기를 냉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군사훈련 연기는 너무도 당연한 조치이다.

따라서 이를 미국 트럼프 정부의 특별한 정책 선회로 보는 것은 올림픽 정신을 먼저 떠올리지 않은 채 한반도 입지만을 고려한 무리한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군사훈련 연기라는 한미 간 합의가 한반도 평화체제 조성에 중대한 기여를 할 것은 분명하다. 관련국들이 한반도에서 상호 군사적 대치 상황 전개를 맞교환하듯 중단하자는 이른바 '쌍중단(雙中斷) 단계'로 진입할 수도 있는 조건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경로는 절대 간단치 않다. 하지만 그동안 사실상 막혀 있던 '평화의 제도화'로 이르는 길을 뚫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은 문재인 정부가 이룬 성과라고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7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에 초청장을 보냈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이에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응답한 것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베를린 선언 되돌아보기: 평화의 제도화


이 지점에서 당시 베를린 선언의 중요 대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선언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약 70년 동안 준전시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평화의 제도화'에 가장 결정적 조처라는 것은 분명하다. 남북대화는 대화 자체로서도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전쟁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가 일상이 되는 현실로 가는 통로다.

"평화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중략)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곧,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그 자체가 탄압의 대상이 되어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런 현실을 역전시켰다. 평화협정은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든다'는 주장에 대한 반격이자, 냉전정치의 오랜 희생제물이었던 상황에 대한 반전이다. 문 대통령은 이 발언 뒤에,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여 '평화 올림픽'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중략) 스포츠에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힘이 있습니다. 남과 북, 그리고 세계의 선수들이 땀 흘리며 경쟁하고 쓰러진 선수를 일으켜 부둥켜안을 때 세계는 올림픽을 통해 평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올림픽과 평화를 정확히 일치시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 남북 정상회담도 제안했다.

"올바른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된다면 나는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습니다.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습니다."

이어 문 대통령의 제안은 "한 번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 논리를 더해 "북한의 결단을 기대합니다"로 마무리된다.

김정은 신년사: 평창 그리고 결정적 대책

6개월 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답신한다.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입니다."

남쪽에서 열리는 국제대회를 "동족의 경사"이자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평가하고,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는 덕담과 함께 "필요한 조처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의지표명에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는 남쪽의 정치변화가 남북관계 변화로 이어지지 않은 상태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남조선에서 분노한 각계각층 인민들의 대중적 항쟁에 의하여 파쑈 통치와 동족대결에 매달리던 보수'정권'이 무너지고 집권세력이 바뀌었으나 북남관계에서 달라진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략)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태를 끝장내지 않고서는 나라의 통일은 고사하고 외세가 강요하는 핵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른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주제가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결정적 대책을 세워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본격적 핵무장과 미국의 선제공격 전략

결국 결정적 대책의 내용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가 남아 있다. 우리가 그의 발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외세가 강요하는 핵전쟁의 참화"라는 대목이다. 북한의 핵무장 체제가 한반도 위기의 근본요인이라고 보고 있는 남쪽의 인식과 다르면서도, 상황이 악화되면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비극적 전망은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정상회담 제안에 '핵 문제'를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양측의 최종 관심사는 동일하다.

북한의 핵무장 체제의 국제적 맥락을 짧게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발적 행위를 일삼는 비이성적 정권이 저지른 난데없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탈퇴를 선언한다.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핵발전소 자체 건설에 대한 독자적 조처를 밀고 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북미 고위급 회담으로 탈퇴는 유보되었고, 경수로 원전 지원 논의와 협상이 이어지게 된다. 이는 우리가 이미 잘 알다시피, 실패로 끝난다.

보다 중대한 상황은 2002년에 발생한다. 당시 미국의 부시 정권은 북한을 '악의 축'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선제공격 전략을 선포한다. 이에 앞서 '핵 태세 보고서(Nuclear posture report)'가 발표되었고, 선제공격 전략은 '핵 선제공격 전략(Nuclear Pre-emptive strike)'으로 규정된다. 그런데 NPT 체제는 기존의 핵무기 보유국가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대신, '핵무기 보유국가가 미보유국가를 핵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규정으로 가지고 있다. 부시 정권의 핵 선제공격 전략은 이러한 원칙을 결정적으로 위반한 사태다. 따라서 북한의 탈퇴를 NPT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것은 본말의 전도이다.

미국의 핵 선제공격 전략의 대상이 된 북한으로서는 NPT 체제의 보호막이 해체된 상태에 놓이자, 자구책을 강구하게 된다. 그 결과가 지금 북한의 본격적인 핵무장 체제다. 게다가 부시 당시 핵 선제공격 전략은 지금까지 철회되거나 폐기된 바 없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는 북한의 핵무장이 원인이라는 진단은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진 논리다.

미국의 정책 변화가 답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폐기와 함께 비핵화 논의가 진전될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도' 많았지만, 적대 정책이 유지된 채 비핵화 논의가 대화의 전제가 되었다. 따라서 북한이 응할 리가 없었다. 리비아와 이라크의 사례는 미국에게 치명적 반격이 가능한 강력한 무장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국가 해체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했음은 물론이다.

해법은 하나다. 비핵화 논의를 선결조건으로 하는 대화가 아니라,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토대 위에 핵무장 대치가 없는 상태로 가는 경로를 마련하는 것이다. 미국은 핵 선제공격 전략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선언을 해야 하며, 북한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통해 비핵화정책의 현실적 조건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서야 한다.

남북대화 역시 이러한 경로 수립에 기여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으면, 남쪽은 미국을 대신해 핵무장 국가 북한의 무장해제를 압박하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미국의 정책교정을 유도하지도 못한 채 항상적인 군사적 긴장에 시달리는 처지에 빠질 뿐이다. 남쪽은 미국에게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끊임없이 설득해야 하며, 북에게는 무장체제의 강화에 대한 자제를 최대한 요구해야 한다. 전자가 없는 후자는 실효성이 없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미동맹의 미래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미동맹의 군사적 결속력은 본질적으로 반비례한다. 남북대화가 한미동맹에 대한 이간질이라는 논법은 한미동맹의 기본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대북군사정책의 산물이며, 적대적 상황의 해소는 한미동맹의 군사적 비중을 완화 내지 궁극적 해소로 이어진다. 이는 한미동맹의 바람직한 상황이자 목표이다.

이러한 인식이 없다면, 한미동맹을 위해 대북 적대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자리 잡게 되어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 상황은 영구적으로 된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예수의 논법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한미동맹을 위해 남북관계가 희생되는 것은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비극이다. 한미동맹의 지휘자는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한미동맹의 군사적 근거가 사라지는 것은 평화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군사적 근거의 소멸은 남과 북, 북과 미국 사이의 적대적 상황 종료를 뜻하며, 이를 위해서는 외교적 해법 외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군사적 충돌 내지 공격을 통한 일방의 다른 일방에 대한 정복 내지 점령 체제 외에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무장 국가와 외교를 통한 평화적 관계 수립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핵무장 강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와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 해체는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 변화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핵무장 해체라는 흐름이 주도하는 환경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 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일과 미국이 유엔의 핵무기 철폐 결의안에 반대하자 한국은 기권한 상황이 핵무장 해체가 인류적 현안이면서도 현실적으로 풀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도,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협정 체결은 한반도 비핵화와 핵전쟁을 막는 중요한 조건이다. 한미군사훈련과 한미일 삼각 군사체제는 이러한 흐름을 역행하는 선택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임무는 막중하다. 민족의 새로운 활로가 열리는 동력이 평창에서 이루어진다면,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성과를 총괄해 결론짓는 위업을 남기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시민들의 의견은 물론이고 지난 시기에 평화와 통일을 위해 진력했던 통일부 장관들을 비롯하여 정책 구현의 실질적 경험을 했던 이들과 우리 사회의 양심적 원로들, 그리고 시민활동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와 구조를 만들어낸다면, 추진력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정책이 반드시 성공하기를 기원해 마지 않는다. '쌍중단'은 마침내 '쌍해결'의 길을 열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과 핵전쟁 저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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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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