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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재앙 희생을 대가로 돈 버는 세력 있다면…

[양준호 칼럼]<5> '상실의 시대' 넘어 '사회적 공황' 위기로…

미증유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본사회가 휘청거리고 있다. 일본 동북지방에서 관동지방에 걸친 대재앙으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수만 명에 달하고,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피난소에 몸을 맡기고 있는 사람들도 무려 4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파악하는 작업 역시 장기화되고 있다. 전후 최악의 사태다.

게다가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중대 사고가 발생해 방사성 물질 노출 및 전력 부족 위기에 직면해 있고, 일본이 '국책'으로서 추진해온 원자력 인프라 및 원자력 발전 행정에도 지대한 타격이 가해졌다.

일본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의 심각한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인적, 물질적 피해 뿐 아니라 향후 일본의 사회경제 시스템에 미칠 영향 역시 매우 심각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대지진 이전에도 휘청거리던 일본 국가 재정이 파탄 지경에 처할 수 있다.
▲ 대지진 직후 센다이 교외의 모습ⓒ프레시안(최형락)

취약한 일본의 에너지와 식량 수급, 완전 노출

대참사 이후,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 주식시장도 휘청거리면서 세계경제의 향방에 관한 불안감 역시 크게 고조되고 있다.

이미 일본 대지진 이전부터 북아프리카의 튀지니, 이집트, 그리고 산유국인 리비아에서 끊이지 않는 정변과 체제불안이 고조되어 왔다. 그리고 작년 이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러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가뭄현상과 브라질 등 남미 국가를 습격한 홍수 등 이상 기후 현상으로 전세계 곡물 생산 역시 큰 폭으로 줄고 있다. 나아가 중국과 인도 등과 같은 신흥국에서는 석유와 곡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맞물려 전 세계 원유 및 곡물 가격이 급등하게 되었고, 내려갈 줄 모르고 있다.

이같은 세계적 악조건 하에서 일본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지진을 맞게 되었는데, 참사 이후 피해지역에 석유와 식량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지진의 직접적인 피해지는 물론 동북 및 관동 지역 전체에서 식량을 비롯한 물자 공급 전반의 위기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없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식량 등 물자 수급에 대한 불안감을 넘어 생활 자체에 대한 불안감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일본 국민들의 심각한 불안감은, 우리 언론에서 소개되고 있는 모습과 달리, 휘발유·등유·쌀 같은 기본 물자에 대한 경쟁적 사재기 현상을 낳고 있다. 일본 정부는 피해지역 이외 국민들에게는 사재기 자제를, 유통업자들에게는 석유제품의 시장 공급을 공식 요청하고 있을 정도다.

지진 피해지역에 있는 일부 일본 국민들이 보여준 '냉정함' 이면에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많은 일본 국민들의 '서두름'도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피해지역과 인근지역의 물자부족 패닉현상은 일본사회 전체에 장래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이나 석유제품 품귀 현상으로 불안해 본 적이 없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치명적 상처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사회는 석유와 전기에 의존하는 생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다. 생활의 근간이랄 수 있는 석유는 100% 외국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식량 역시 60%를 외국에 의존해왔다. 부유한 나라로 소문이 나 있는 일본의 에너지 및 식량에 대한 취약함이 이번 대지진에 의해 완전히 노출됐다.

이른바 'Japan as Number One'으로 불리던 1980년대 말까지의 일본사회에 형성되어 있던 강한 자존심과 자신감은 그 후 약 20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오랜 불황에 의해 많이 상실되어 왔다. 이런 와중에 닥쳐온 대지진 참사는 일본 국민들에게 더없는 상처를 안겨주며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시키고 있다. 지금 일본은 이른바 '사회적 공황(Social Panic)'의 수렁 속으로 빠지고 있다.

사상 최대 국채 발행 기다리던 예산안, 더 악화될 듯

향후 일본경제의 향방 그 자체에 대한 불안감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의 심각한 재정위기는 지금도 중대한 불안 요소다. 일본의 2011년도 예산안은 대지진 전의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은 채 표류하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증유의 대지진을 맞으면서 예산안 성립 및 통과 과정은 보다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진 이전에도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 국채로 충당하겠다던 예산안이 이번 대지진의 영향으로 더 악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수익 악화로 세입의 대규모 축소와 복구 예산 등 세출의 확대가 점쳐지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경제 불안감의 확산에 지진 피해 복구에 소요되는 엄청난 재원 충당이 복합되는 '국가 재정 파탄'의 현실화다. 대지진 이전 일본이 직면했던 가장 큰 난제였던 국가재정 재건에 치명상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유례없는 재난으로 일본의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있는 가운데, 4월 이후의 실물경제 역시 급속히 침체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다가 달러화를 매각하고 엔화를 사들이는 추세가 현저해지면서, 한 때 1달러=76엔에 이를 정도의 급격한 엔고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수준의 이런 엔고 현상은, 엔화가 안정성이 있는 통화이거나 국제 외환시장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일시 피난처로, 또는 투기적 목적으로 엔화가 활용되어 엔고 현상이 지속되어 왔으나 이번에 일어나고 있는 급속한 엔고 현상은 전혀 다른 사정에 의한 것이다.

'투기집단'의 용납될 수 없는 '머니 게임'까지 겹쳐

달러화를 팔고 엔화를 사들이는 이는 다름 아닌 생명보험 및 손해보험 등과 같은 보험회사와 금융기관 등 이른바 기관투자가들이다. 또 대지진 이후의 일본의 정황에 편승하여 헤지펀드 등과 같은 투기세력들에 의한 '달러화 매각-엔화 매입' 역시 엔고 양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론 생명보험회사, 손해보험회사, 그리고 은행 등이 달러화 기반 자산을 매각하여 엔화를 대량 매입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보험금 지불 및 지진 피해 복구비용으로 거액의 엔화 자금이 필요하다는 예측 때문이다. 그러나 '헤지펀드'로 불리는 투기집단의 목적은 위기에 편승한 '머니 게임'을 통해 거액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이들은 한 나라의 대참사가 낳은 비극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 뿐이다.

이들의 수법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하다. 거액의 자금을 움직여서 이번과 같이 엔화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반면에 달러화를 팔아 달러가 1달러=82엔의 상황에서 1달러=76엔의 상황이 되는 시점에서(엔화가 최고치에 달하는 시점에서) 엔화를 대량으로 팔아 달러로 다시 사들이는 것이다.

엔화가 올라 비정상적인 수준의 엔고 현상이 나타나게 되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정부를 비롯한 G7 각국이 협조하여 시장개입을 하게 된다. 무려 10조 엔 규모로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인다. 헤지펀드와 같은 투기집단은 이와 같은 대규모 시장개입이 이루어질 것을 예상해 엔화 매입과 달러 매각을 준비하게 된다.

일본의 비극을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편승해 이익을 챙기는 투기집단의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투기집단이 전 세계의 '시장(market)'에서 주식, 채권, 외환, 선물 거래로 거액의 자금을 움직이며 암약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의 유례없는 국가적 위기를 비즈니스 기회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전 세계인들이 마땅한 비판을 해야 하며 이에 관한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큰 틀에서 일본을 돕는 일이다. 왜냐하면 헤지펀드가 일본의 국가 재난을 통해 큰 돈벌이를 했다는 것을 일본인들이 인지하게 되면, 이는 앞에서 거론한 일본의 '사회적 공황'이 제어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의 공황은 생산능력을 폭력적으로 축소 조정하여 경기를 다시금 회복국면으로는 갈 수 있게 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헤지펀드가 대지진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이익을 얻는다는 어두운 사실은 일본을 회복하기 어려운 완연한 '상실의 시대'로 빠지게 할 수 있다.

대지진, 쓰나미, 원자력 사고에만 그치지 않고 국제 자본의 폭력에 노출된 일본은 그야말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도, 또 보이지 않는 것도 잃어버린 일본 국민들의 상실감으로 인해 더욱 그러하다.

'엔고-->엔저'로 인한 국채 폭락은 최악의 시나리오

향후, 엔고 현상이 엔화의 대량 매각에 의해 엔저 현상으로 반전될 경우 일본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석유와 식량을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는 일본은 환율이 올라가게 되면(엔저 현상으로 반전되면), 달러화 등 외화로 결제하는 수입가격이 급등하기 때문이다. 즉 현재 대지진 피해지역을 중심으로 턱없이 부족한 휘발유, 등유, 식료품 등 수입 관련 상품의 가격이 일본 전체 지역에서 상승하게 된다.

이같은 경우, 대참사 이후 사회 전체의 불안감과 상실감 하에서도 '새로운 사회' 구축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본 국민들이 마지막까지 놓지 않으려고 하는 희망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게다가 도쿄전력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의해 전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못 하는 상황에서 향후 일본의 전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질 것이며, 이 때문에 석유 등에 의해 화력발전소를 풀로 가동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석유 수요는 한층 더 증대하여 석유 관련 상품의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전기요금 역시 급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번 대지진과 그 후 나타나는 일련의 사회경제적 현상들에 의해 만약 일본의 주식, 채권, 엔화의 동시 매각을 의미하는 '일본 버리기'가 시작된다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일본의 국채는 폭락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남발해 온 이른바 '적자국채'는 2011년도 말 기준으로 1000조 엔을 돌파할 것이 확실하여, 일본의 국가재정은 그야말로 위기적 상황에 처해 있다. IMF(국재통화기금)도 일본에 남아 있는 재정 재건 작업의 유예기간을 지금부터 약 2~3년 정도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일본의 국채의 대부분을 우편저축은행(과거의 우체국)을 비롯한 일본 국내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이 은행 등에 맡기고 있는 예금의 대부분이 '적자국채'에 투자됐다는 것이다. 일본의 금융기관이 더 이상 국채를 사들일 수도 없거니와, 지금 보유하고 있는 국채를 손에서 놓아야 되는 상황이 오게 되면 일본 재정은 파산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행은 금융기관이 방출하는 국채를 사들일 수밖에 없게 되며 또 이를 위해 대량의 일본은행권을 발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결국 최악의 시나리오인 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을 초래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상실의 시대'로부터의 해방되지 못한다면…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도래된, '잃어버린 세월'로 불리는 일본의 장기불황 하에서 일본 국민들은 자신감을 상실하였으며, 이를 해결해보기 위해 단행된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경제 회복은커녕 양극화 현상이 구조화된 이른바 '격차사회'를 도래시켰다.

이는 전후 일본 국민들이 자랑으로 삼던 '모든 국민이 중산층'이라는 '1억 총 중류' 인식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해 '상실의 시대'를 만들었다.

바로 이러한 일본의 사회심리적 상황이 고이즈미, 아베와 같이 '네오콘(neo-conservatives)'으로 불리는 극단적 극우주의자들의 전면 대두를 초래하지 않았나.

이번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사회는 이미 만연되어 있던 상실감이 깊어져 이른바 '사회적 공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상황이 자칫 이전보다 더욱 극단적이고 강한 극우주의자들을 불러내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지진 이후의 피해 복구 과정이 일본 국민들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상실의 시대'를 접을 수 있는 일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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