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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사망 사건, 간호사 처벌해도 사고는 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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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신생아 사망 사건, 간호사 처벌해도 사고는 또 난다

[분석] 환자안전법 '의무보고' 조항은 왜 빠졌나?

"만약 아기 한 명이 잘 못 됐으면 모르고 그냥 넘어갔을 거예요."

7년 전,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은 김영희 씨가 입을 열었다. 아들의 사망 원인을 말해주지 않던 경북 모 병원과 싸운 그였다. 이대목동병원에서 사망한 신생아는 김영희 씨에게 남 일 같지 않았다. 의료진이 작은 미비점부터 미리 개선해 나갔다면 이런 큰일이 안 터졌을 것이다. 신생아 사망 사건을 안타까워하며 그가 말했다.

왜 아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엄마는 이유를 알아야 했다. 사망 이유를 찾아 다시는 비슷한 의료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 도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죽은 아들에게 해줄 유일한 보상이었다.

김영희 씨는 아들과 같은 이유로 세상을 떠난 어느 한 아이를 찾아냈다. 그때 아들 종현이가 세상을 떠난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종현이처럼 항암제 빈크리스틴 투약 실수로 사망한 사례는 이미 3명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알리지 않았다. 병원과 합의하니 사건이 묻힌 탓이다. 환자안전사고 정보는 다른 병원과 공유되지 않았다. 만일 빈크리스틴 투약 실수과정이 알려졌다면 종현이가 겪은 사고는 막았을 수도 있었다.

▲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숨진 신생아의 장례 절차가 19일 진행됐다. 유가족이 운구차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죽은 아들을 떠올리며 김영희 씨는 환자안전법 제정 운동을 했다. 그는 법안제정 운동을 하며 6년을 발로 뛰었다. 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기차역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의료사고예방 전문가와 국회의원도 만났다.

종현이 사망 6년 후, 2016년 환자안전법이 시행됐다. 제2의, 제3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담아 환자안전법은 ‘종현이법’으로 불렸다. 환자안전법은 의료사고나 오류가 나오면 병원이 보고하고 그 정보를 의료계가 학습하도록 하여 의료안전시스템을 만들자는 취지가 담긴 법이다.

"간호사 처벌해도 사고는 또 일어날 것"

현재 이대목동병원을 향한 검찰 수사는 사고 발생 원인의 맨 끄트머리를 짚어내며 진행 중이다. 검찰이 전담팀을 구성했고 경찰은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28일 병원 전공의가 소환 됐고, 28일 의사 1명과 간호사 2명을 추가로 소환해 조사가 진행된다. 검경은 의료진 과실에 초점을 맞췄다. 사고원인 규명이 될 때까지 보건복지부는 이대목동병원 상급병원 심사과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여론은 아기 4명을 사망하게 한 '악마'가 누구인지를 찾아내는데 혈안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악마는 시스템일 수도 있다.

우선 이대목동병원 사태에서 환자안전법이 실효성이 있었는지부터 살펴보자.
이대목동병원은 영아가 사망했지만 즉각적으로 담당 보건소에 보고하지 않았다. 유가족 지인이 경찰서에 신고했고, 경찰서가 보건소에 문의해 사고가 접수됐다. 만일 병원 측과 유가족이 합의했다면 영아 사망 사건은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고 묻혔을 것이다.

"의료진이 병원 내 안전사고에 대해 알게 되면 이를 신속히 보고하고, 그 내용을 전체 병원 및 의료진이 공유해야 한다.(환자안전법)" 해당 법안이 추구하는 골자를 이대목동병원은 지키지 않았다. 자율보고만이 법안에 전제되어 있을 뿐, 의무보고 조항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나라에서 의무보고와 자율보고를 병행하고 있고, 의료사고 보고체계가 있는 나라 중 의무보고가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 환자안전사고가 교통사고 사망자 2배라는 통계가 있다. 환자안전 보고학습시스템 포털 갈무리.

대안은 환자안전법을 개정해서 의무보고 사항을 넣는 것이다. 의료 사고 예방 전문가들은 의료 오류 및 사고에 대한 의무보고 시스템 확립이야말로 이대목동병원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보고 있다.

예방의학 전문가 이상일 교수는 "(문제를 일으킨) 간호사를 처벌하고 문책해도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 사고는 또 일어난다"며 "(의료사고나 오류가 일어나는 이유는) 개인 잘못도 있지만, 시스템으로 인한 여러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즉, 일부 병원은 의료 오류나 사고를 병원 자체 내부에서 공유해 사고를 예방하려 하지만 개별 병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특정 약품의 표지가 비슷하게 생겨서 자꾸 투약 실수가 일어난다면, 병원이 해당 사안을 정부부처에 보고함으로써 의료산업계가 약품 표지를 바꾸도록 강제해야 한다. 이는 개개 병원이 의료 오류를 숨겨서는 해결될 수 없는 지점이다.

의료계는 모든 환자안전 사건 보고를 의무화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사실은 그와 다르다. 미국에서는 의무보고 경우 모든 사건과 사고를 의무적으로 보고하지 않는다. 이른바 적신호사건(sentinel event) 혹은 신고대상 중대사건(serious reportable event) 목록을 정해 해당 사건만을 의무적으로 보고한다. 환자가 뒤바뀌어 엉뚱한 수술을 받은 사건이 그 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고 의무가 없어서 이러한 의료 안전사건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조차 보건당국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교수는 "사람 하나 찾아서 혼내고 문책하는 방식은 (문제가 된 사안을) 끝내기는 쉽다”며 "그 자리에 누구라도 간다면 또다시 비슷한 오류와 사고는 일어난다"고 말했다.

'비밀이 보장 된 의무보고'가 이대목동병원 사태의 대안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무보고 과정에서 '익명성과 비밀보장'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 편에 서서 의료운동을 해온 그가 왜 의료사건에 대해 비밀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할까. 안 대표의 발언은 '의료사고 학습 시스템 구축'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의료사고를 보고했다고 해서 의료진과 병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의료사고가 덮어지지 않고 활발히 보고되기 때문이다.

한 예로, 2003년도 세계 최초로 환자안전법을 제정한 덴마크는 전국단위의 의료사고 보고·학습시스템을 구축했다. 보건의료인, 의료기관은 의료 사건을 국가보건청에 강제로 보고해야 하지만 보고자 의료인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 의료 사고와 관련된 보고 자료는 의료인과 병원을 문책하는 데 쓰이는 대신, 의료 사고 예방을 위해 활용됐다. 1년 뒤, 2004년 덴마크는 6000건을 보고 받아 137건에 대한 개선안을 마련했다. 의료 사고 보고 내용에 따라 형사 절차나 징계절차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덴마크 환자안전법은 작동 중이다.

물론 이대목동병원 사건처럼 ‘사망 사건’이 일어난 경우에는 의무보고를 했다고 해도 관련 담당자는 민사형사상 처벌을 피할 수 없다.

한국환자단체연합 최성철 이사는 2013년 환자안전법 입법토론회에서 "정직하게 보고를 한 의사에게 주는 혜택이 없으면 대부분 의료사고는 현재와 같이 합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며 "법적 책임을 감면하는 것도 적극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 환자안전법은 발생한 사건을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홍보하는 시안물. 환자안전 보고학습시스템 포털 갈무리.

의무보고 사항 환자안전법에 추가 가능할까?

현재 한국은 어떨까? 2017년 11월 30일 자로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환자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여전히 의무보고 조항이 빠져있다. '의무보고 사항'이 환자안전법에서 빠진 이유는 의료계의 반발과 보건복지부의 우려 때문이다. 환자안전법 초안에 의무보고 조항이 있었으나, 의료계 반대로 법률심의 과정에서 의무보고 조항이 삭제되고 말았다.

김상희 의원실은 "(의무보고 조항을 넣고자) 복지부와 합의를 해봤다"면서 "해당 조항이 들어갔으면 좋겠지만 (법안을) 제재 위주로 가져가면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보고하지 않고 회피할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안전법이 만들어졌을 때는 센세이셔널 했지만 법으로써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더 많은 병원이 보고할 수 있게 포지티브하게 독려해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한 관계자는 "환자안전법을 다시 논의할 시점이 왔다”면서도 "(여전히) 예민한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진이 의료 사고에 사과나 유감을 표현했을 때 자기 과실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며 "해당 부분은 국회 차원에서 합의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의료계는 환자안전 사고 보고에 인색한 편이다. 2016년 7월 29일에서 2017년 11월 30일까지 총 3978건이 보고되었다. 이는 내부 보고가 활성화되어 있는 1개 상급병원의 보고 건수보다 작은 건수이다. 영국의 경우 월 10만 건 이상이 보고되고 있다. 영국은 보고 건수가 많은 병원을 '정직하고 개방적인 조직문화'를 지닌 우수 기관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인센티브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뿐만 아니라, 의료오류와 사고보고 횟수가 많으면 안전하지 않은 병원이라는 시민의 그릇된 인식도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이다. 한 예로 미국 존 홉스킨 대학병원은 스스로 안전한 병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를 드러내면서 거꾸로 자기들 병원이 안전한 병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홍보한 것이다.

▲ 의료사망 데이터를 분석하여 미국에서 사망요인 중 세 번째가 의료오류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홍보하는 존스 홉킨스 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 홈페이지 갈무리

안전사고 내부 보고가 활성화된 A 상급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 병원에는) 솔직하게 의료 오류를 보고하는 문화가 갖춰져 있다"며 "의료 오류를 보고한다고 해서 특정 개인이나 과에 질타하거나 혼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당 병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의사 본인이 자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감염 관리를 위한 필요사항을 점검하고 병원에 보고하는 곳이다. 의무보고 사항을 추가하면서도 동시에 자율보고 문화를 의료계에 정착시켜야 하는 이유다.

의료사고 보고는 환자안전으로 가는 길목

"결국 또 간호사의 실수로 인해 빚어진 일로, 의료진의 과실로 치부되어 시스템 문제를 점검하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간호사 일을 하려고 할까요?"

이번 목동 사태를 지켜보며 어느 한 간호사가 던진 말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27일 성명을 발표했다. 개개인 문책보다는 시스템 개선에 집중했다. △의료기관 내 의료 사고 방지와 감염예방 및 관리 시스템 △신생아 적정 인력확보를 위한 대책 △상급종합병원 규정 강화 △의료기관평가 인증제도 개선이 그것이다.

이대목동병원 사태를 두고 무수히 많은 대안 쏟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에 앞서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면 자율보고 활성화와 의무보고 강제다. 7년 전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은 종현이 엄마 김영희 씨는 말끝을 흘리며 이 말을 전했다.

"만약에 (병원이 의료 사고를) 알렸더라면 종현이가 살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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