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세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지난 17일 '환자안전 및 의료질 향상에 관한 법률(환자안전법)'을 대표 발의했다. 환자 안전사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킨 '종현이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8개월 만이다.
2010년 5월 19일, 백혈병 치료 중이던 아홉 살 정종현군은 정맥으로 주사되어야 할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의료진의 실수로 척수강 내로 잘못 주사되었고, 열흘 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사망했다.
종현이 부모는 장례를 치르고 난 뒤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사망자가 종현이 외에도 우리나라에 여러 명이 더 있으며, 캐나다와 영국 등 외국에서는 빈크리시틴 사망 사고가 오래 전부터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현이 부모는 "종현이는 이미 하늘나라로 갔지만 제2의 제3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때부터 ‘환자안전법(일명 종현이법)’ 제정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환자단체들은 종현이 부모와 함께 2012년 8월 18일부터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1만 명 문자 청원 운동'을 전개했고 지난해 4월 9일 1만 명의 이름으로 국회 오제세 보건복지위원장에게 환자안전법 제정 청원을 했다. 오제세 위원장은 지난 8개월 동안 간담회 및 입법 토론회 개최, 이해 당사자 단체, 기관들의 의견 청취 과정을 거쳐 지난 17일 대표 발의를 한 것이다.
환자안전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환자 안전에 관한 국가 차원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국토 개발이나 경제 개발처럼 보건복지부 장관은 5년마다 "환자 안전 관리 종합 계획"을 수립해 시행해야 하고, 합의제 심의기관으로 "국가환자안전위원회"를 두고, 보건복지부령으로 "환자 안전 관리 기준"을 만들어 보건의료인이 하여금 준수하도록 했다.
둘째, 보건의료기관으로 하여금 환자 안전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급 의료기관은 "환자 안전 위원회"를 설치해야 하고, "환자 안전 전담 인력"을 필수적으로 두도록 했고 이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이 경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율 보고하면 비밀 보장·재판 증거 사용 불가
셋째, 환자 안전사고 재발 방지 방안 마련을 위한 보고와 관련해서는 "자율 보고"를 원칙으로 하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아닌 경우 30일 이내 자율 보고하면 보건의료관계법령에 따른 처분을 감면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보고된 정보의 비밀을 철저히 보호해 보건의료기관이나 보건의료인의 자율 보고를 활성화했다. 보고된 정보를 행정 처분이나 수사, 재판의 증거 자료로 사용한다면 아무도 보고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장관은 자율 보고된 환자 안전사고 정보를 비공개로 할뿐 아니라,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직무 외의 목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보건의료기관의 장이 보고한 자에게 신분이나 처우와 관련한 불리한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고의나 중대한 과실을 제외하고 보고·학습 시스템이나 환자 안전사고 보고에 따라 수집된 자료나 정보는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강력한 보호 장치까지 두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모두 형벌로 엄하게 처벌하도록 했다.
넷째, 환자 안전사고 학습 시스템을 도입했다. 종현이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 사망 사고가 2010년 5월 19일 발생한 후 같은 해 11월 9일 보건복지부장관이 종현이 부모의 민원을 받아들여 대한신경과학회와 대한병원협회을 통해 전국의 의료기관에 "빈크리스틴 적용 관련 유의사항 및 피해 예방법 안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는 2012년 8월 19일 문화방송(MBC) <시사매거진 2580>을 통해 공중파 방송으로도 보도되었지만 불과 두 달 만인 2012년 10월 16일 가천의대 길병원에서 또 동일한 빈크리스틴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보고뿐 아니라 예방·재발 방지책까지 포괄한 법안"
이로써 환자 안전사고는 보고도 중요하지만, 보고된 환자 안전사고 정보를 잘 분석해 효과적인 재발 방지책을 만들고 이를 의료기관이 서로 공유하며 더 나아가 병원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학습 시스템이 더 중요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주로 보고 시스템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우리나라의 환자안전법은 학습 시스템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장관은 보고된 환자 안전사고 정보를 조사․연구․공유하기 위해 "환자 안전사고 보고, 학습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해야 한다. 중대한 환자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재발 방지를 위한 주의경보를 의무적으로 발령하도록 했다. 보건의료인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뿐 아니라 보건의료인이나 환자 안전 전담 인력이 필수적으로 교육을 받도록 했다.
다섯째, 의료법에 있던 환자 안전 및 의료의 질을 평가하는 의료기관 평가 인증에 관한 규정을 모두 환자안전법으로 옮겼다. 여기에 의료기관의 인증 참여율 저조의 원인으로 지적받았던 인센티브 부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양병원, 정신병원과 같이 의무 인증 대상 의료기관과 종합 병원이 아닌 300병상 미만의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인증 소요 비용을 보조할 수 있고, 인증받은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한 요양급여 비용을 가산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했다.
또한 인증받은 의료기관은 1년 경과시미다 자체 조사 결과를 인증 전담 기관에 보고하고, 인증 전담 기관은 확인을 위해 현장 조사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인증받은 의료기관 대상의 사후 관리를 강화하였다.
여섯째, 환자안전법의 두드러진 특징은 환자 안전사고 예방 활동의 주체를 의사, 간호사 등의 의료기관 직원으로 한정하지 않고, 그동안 객체에 불과했던 환자나 보호자도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환자안전법의 목적, 보건의료기관의 책무, 환자 안전 종합 계획의 내용, 전담 인력의 업무 등을 규정한 조항에서 환자나 환자 보호자를 환자 안전사고 예방 활동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체단체는 환자가 안전사고를 자발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환자 안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도록 했다.
미국, 유럽 등의 환자 안전 및 의료 질 향상을 위한 관련 법률들은 대부분 보고 체계와 비밀 보장에 치우친 반면 오제세 의원이 발의한 환자안전법은 환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망 사건까지 '자율 보고' 대상 삼은 건 아쉬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우선 환자 안전사고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중장애를 입는 적신호사건(Sentinel event)이 발생한 경우까지 의무 보고 대상이 아닌 자율 보고 대상으로 한 것은 문제가 있다. 보고된 환자 안전사고 정보를 "비공개 의무, 비밀 유지 의무, 목적 외 사용금지, 불리한 조치 금지, 증거 능력 배제, 위반 시 형사처벌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강력히 보호하고 있다면 당연히 적신호 사건은 의무 보고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1999년 미국의학원은 미국에서 한 해 동안 예방 가능한 병원 내 안전사고로 사망하는 환자 수가 최소 4만4000명에서 최대 9만8000명에 이른다는
우리나라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6000여 명인 것을 고려하면 거의 3배에 달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좋은 약으로 환자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야 할 환자가 병원에서 안전사고로 죽는 불행할 일을 막는 것 또한 중요하다. 국회에서 환자안전법이 하루라도 빨리 통과되어 시행되면 그만큼 더 많은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국회의 신속한 환자안전법 통과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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