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이 말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에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싫증 나기까지 한 표현이 됐다.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정작 필요할 때 멀기만 한 게 법이다.
지난 22일, 대법원은 여러 주요한 판결을 내렸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성완종 리스트' 무죄 확정 선고부터 민중당 윤종오 의원의 의원직 상실형(300만 원 벌금형) 선고 등. 이 중에서 눈에 띄는 선고는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 등 8명에 대한 유죄 확정 판결이다. 대법원은 유시영 회장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등을 이유로 징역 1년2개월 및 벌금 100만 원을 그대로 선고했다.
부당노동행위로 기업 사주가 구속형을 받은 사례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반대로 그만큼 악랄하기 그지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회사 말을 듣지 않는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친 사측 노조를 조직 및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직장폐쇄까지 단행했다.
직장폐쇄를 했음에도 공장 안에서 기존 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자 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경비용역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도 적극 개입했다. 경찰은 이들 노조원들의 행동이 불법행위라며 개입했고,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경찰이 상해 및 기물 파손을 당했다며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점이다. 그 금액이 약 1억1100만 원. 1심 재판부는 관련해서 총 34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루씩 이자가 붙는 배상금액이었다. 노조원들은 이 사건 외에도 파업으로 각종 송사에 휘말렸을 뿐만 아니라 회사가 청구한 40억 원의 손배소도 진행 중이었다. 결국, 지회는 항소로 재판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1심 판결 금액을 변제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경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노사 간 합의를 통해서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되레 경찰력이 투입돼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장비 파손이나 경찰의 부상 치료, 심지어는 정신적인 위자료 등을 명목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셈이다.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해보자. 만약 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는 폭력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을까. 법원이 빠르게 부당노동행위임을 판정했다면, 지금과 같은 손해배상금액이 만들어졌을까. 노동자들에게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표현한 이유다.
유성기업처럼 국가에 의한 손해배상청구 재판을 진행 중(유성기업은 소송 종료되었고 손해배상금도 모두 납입했다)인 노동자와 시민단체 회원 등이 상당하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쌍용자동차,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 광우병대책위, 민중총궐기 등.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청구된 소송이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 들어서 제주 강정마을 주민 등에게 구상권에 기해 청구한 소는 취하됐다. 정부가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인 결과다. 그렇다면 다른 손배소도 이렇게 취하할 수 없는 것일까. 그간 세월호 집회 참가자 형사소송을 비롯해 노조의 법적 분쟁을 대리해 변호해온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를 만나 해결법을 들어보았다.
"국가는 사인(私人)이 아니다"
프레시안 : 하나씩 이야기해보자. 어느 순간부터 국가가 개인에게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윤지영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손배소를 제기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져왔다고 보면 된다.
프레시안 : 외국에서도 이렇게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하는 경우가 있나.
윤지영 : 해외에도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이를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고 한다.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전략적으로 입을 막기 위해 하는 소송'이다.
프레시안 : 한마디로 피해에 대한 변제를 위한 소송이 아니라 재갈물리기 위한 소송이라는 의미인가.
윤지영 : 미국에서는 이 소송이 자주 일어난다. 국가가 개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이런 소송을 자주 제기한다. 그렇다 보니 이것을 막기 위한 제도까지 만들어졌다. 독일의 경우에도 이러한 소송이 존재한다. 하지만 소송을 통해 이익을 얻기 보다는 괴롭히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그쪽에서도 생각한다.
소송하는 권리, 즉 소권은 누구에게나 주어지기에 국가도 당연히 소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소권은 신의성실원칙에 맞게 사용돼야 한다. 권리가 있으니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니라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독일 연방대법원에서는 국민을 상대로 소송하는 게 소권남용이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프레시안 : 국가의 손해배상소송 제기에 앞서, 대상자들은 모두 형사처벌을 받지 않나. 적게는 벌금형부터, 크게는 징역형까지 받는다. 그런데도 민사, 즉 손해배상소송까지 제기한다는 것은 국가의 이중처벌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윤지영 : 이중처벌은 아니다. 누구나 형사와 민사를 모두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사는 범죄자를 국가가 처벌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피해자가 받은 손해가 보전되는 건 아니다. '피해자-가해자'간 문제는 민사로 풀어야 한다. 형사에도 보상제도가 있지만 극히 일부분이다. 민간인 사이 문제는 그렇게 많이 한다. 누군가 자기에게 사기를 치면 이를 형사로 가져가서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다. 또한, 사기로 인해 자기에게 손해를 끼친 부분은 별도로 돈을 달라고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프레시안 : 하지만 국가는 민간인, 즉 사인(私人)이 아니지 않나.
윤지영 : 그렇다. 형사사건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구형하는 검사는 국가다. 그런 국가가 또다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건 매우 불공평한 운동장 구조다. 그들(국가)은 개인(국민)을 다룰 여러 개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반면, 개인은 그런 국가에 의해 무방비로 당하는 식이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형사재판에서 검찰은 노조원의 폭력 증거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진단서를 제출했다.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것을 증거로 집시법 위반, 특수공무집행 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하고 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그런데 그것을 또다시 증거로 내밀며 민사 손배소를 하는 식이다.
프레시안 : 그렇지만 사법부가 각각 독립돼 있지 않나. 검찰이 그렇게 제기한다 해도 법원에서 독립적으로 판단하지 않는가.
윤지영 : 법원이 판단하기도 힘든 증거들이다. 세월호 집회 관련, 박래군 씨와 김혜진 씨의 형사사건을 맡았다. 이 재판에서 검찰은 전경들이 맞았다고 하면서 진단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 진단서가 거의 대부분 '뇌진탕 2주'였다. 이상해서 이것 관련, 의사 자문을 구했더니, 의사왈, '뇌진탕 2주'는 외상은 없지만 본인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써주는 진단서라고 했다. 그렇게 작성된 진단서를 피해의 증거로 제출한 것이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검찰은 노조원들이 헬기를 파손했다며 관련 증거를 제출했지만, 우리는 이를 방어할 증거도, 정보도 부족했다. 그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누가 채증을 하고 있었겠나. 인력과 장비 등을 다 갖추고 있는 국가가 개인을 죽이려고 작정하면 답이 없다.
더구나 간첩단 사건만 해도 국정원과 검사가 짜서 조작하지 않았나. 그리고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이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재판부는 정부가 조작할리 없다는 신뢰를 가지고 있다. '검찰은 공익의 대변자'. 이런 도식이 성립된다. 그래서 검찰 증거에 신뢰를 둔다. 그렇다 보니 민사재판에서 진실을 다투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판사마다 성향은 다르지만 '저 사람들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저항했고 기중기가 파손됐다' 이 도식이 성립하면서 이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이렇게 많은 판사들이 생각하는 듯하다. 의심되면 하나씩 증거를 따지고, 정확한 손해가 노동자로 인해 얼마나 발생한 것인지 살펴봐야 하지만 국가가 피해자인 사건, 국가를 대리해서 검찰이 기소한 사건에서는 이러한 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손배소 취하, 법무부 장관 의지만 있으면 된다”
프레시안 : 현재 6개 정도의 국가 손배소가 진행 중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윤지영 : 간단하다. 법무부 장관이 소를 취하하면 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제2조(국가의 대표자) '국가를 당사자 또는 참가인으로 하는 소송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국가를 대표한다'고 법무부 장관에게 국가소송의 대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법무부 장관은 대표권의 일환으로서 소를 취하할 수 있는 정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프레시안 : 하지만 직무유기나 배임 등 문제가 있다. 국가가 당연히 이길 재판에서 갑자기 소 취하를 할 경우, 국가라는 조직에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윤지영 : 직무유기부터 이야기해보자. 형법 제122조(직무유기)는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자격정지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직무유기란 직무에 관한 의식적인 방임 내지 포기 등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일단 직무 집행의 의사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 경우에는 직무유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소 취하는 적극적인 직무 수행이기에 직무 수행 거부나 직무 유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법무부 장관이 직무 집행 의사로 이 사건 소를 취하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에게 부여된 권한의 행사, 직무 수행이기에 직무유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소 취하는 직권남용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 성립하는데, 소를 취하하더라도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배임은 어떤가.
윤지영 : 이는 약간 애매하다. 배임의 범위가 넓다. CEO가 손해를 끼쳤다고 배임이라고 봐야 하나. 업무상 배임은 단순 손해만으로 따지기 힘들다. 사장이 회사에 1000억 손실을 끼쳤다고 배임이 되는 게 아니다. 의도적이냐가 중요하다. 개인이 어떤 대가를 받고 그에 따른 투자를 했다가 1000억 원 손실을 끼쳤다면 이는 배임이 된다. 하지만 그런 의도없이 투자를 했고 손해를 끼쳤다면 투자를 잘못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된다.
실제 업무상배임이란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하는 범죄다.
프레시안 : 한마디로 조직에 손해를 끼칠 경우, 그 의도성이 있어야 배임이 성립된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윤지영 :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하는 게 공무원은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국민의 봉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여러 관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설사 손해가 발생했다고 해서 이것을 배임이라고 하지 않는다. 업무상 배임을 공무원에게 적용하려면 말 그대로 돈을 받고 의도적으로 돈을 빼돌리는 일을 해야 한다.
항소심까지 간 쌍용자동차노조 관련, 고법은 11억7000만 원을 노동자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손배소를 국가가 취하하는 것은 국가의 손실을 입히는 게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소 취하가 사회의 합목적성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말이다.
쌍용자동차 관련해서 법무부 장관은 여기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본인 이익을 위해서 소 취하를 하는 게 아니다. 합목적성으로 취하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 배임이 성립할 수 없다.
프레시안 : 하지만 법적으로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당장 제주 강정마을 구성권을 철회할 때도 보수언론에 공격을 받았다. '법치를 무시한 처사', '폭력을 방조한다' 등의 비난이 제기됐다. 그나마 제주 강정마을은 법원의 조정권을 받아들이면서 해결됐지만 다른 경우, 즉 쌍용자동차노조의 경우, 그렇게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윤지영 : 아마 현 정부도 의지는 있으나 고민스러울 듯하다. 정치적 공격이 들어올 것을 걱정하는 듯하다. 그래도 정공법으로 가길 바란다. 적폐 청산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이명박근혜' 정부 동안, 발생한 '재갈물리기'식 손배소는 취하하는 게 적폐 청산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에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합목적성에 부합하는 선택을 한 뒤, 이를 좀더 설명하면서 풀어나가야 하지 않나 싶다.
“보수단체 집회도 손배소를 제기할 것인가?”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 들어서 그러한 재갈물리기식 손배소는 없지 않나.
윤지영 : 사실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안이 가결된 날, 헌재 앞에서 있었던 집회다. 당시 어버이연합회, 친박 부대 등 보수단체들이 경찰 기물을 파손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경찰 버스까지 탈취해 운전하다 1명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관련해서 경찰은 기물 파손 및 정신적 피해 보상을 어버이연합회 등에 제기할 수 있다. 국가에 의한 손배소다.
프레시안 : 형사처벌은 진행됐으나 민사가 진행됐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윤지영 : 안 한 것이다. 현 정부로서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경찰 차량 등이 파손되는 등 손해를 입었는데 가만히 있는 것이야 말로 직무유기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보다는 더 큰 합목적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러 관계의 갈등을 조정하고 그에 따른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게 국가다. 그것을 보여준 게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에게 제기하지 않은 민사소송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과거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궤와 함께해서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잘못된 손배소도 해결하는 게 필요하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윤지영 :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2009년 정부가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한 적이 있다. 당시 박 상임이사는 자신이 국정원으로부터 감시당하고 있다고 언론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자 정부, 즉 국정원이 박 상임이사에 의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당시 그 사건을 대리했는데, 상당한 충격이었다. 국가가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다니... 언뜻 보면 그럴듯했다. 누구나 소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법원 판결은 단호했다. 국가는 특수한 기관이고 봉사자이기에 누구나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일반적 사인(私人)이 주장하는 명예를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국가가 말하는 명예의 범위는 좁다고 결론 내렸다.
이러한 결론은 똑같이 쌍용자동차노조, 세월호 1주기 집회, 민중총궐기 등에도 적용된다. 그 상황에서 국가는 민간인과 같은 피해자 입장에 있지 않는다. 공권력 집행 기관이고, 국민 봉사자로서의 국가다. 그런데 마치 민사 사인처럼 교묘하게 포장해서 손배소를 제기하고 있다.
박원순 당시 상임이사건과 똑같은 맥락에서 국가는 국민의 봉사자로서 비판을 많이 받아야 한다. 그것을 기본으로 해서 국가가 제기할 수 있는 손배소 청구 지위는 좁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