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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한 속도인가, 어른을 위한 속도인가

[입양 지연 프레임의 진실] ② 아동을 위한다는 착각

지난해 공적 입양 체계 시행 이후 투명성 부재 및 행정 절차 지연으로 결연이 미뤄지며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침해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재 나타나는 대기 지연 현상은 과거 부모의 선호에 입양을 맞추던 관행을 정상화하고, 아동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공공결연위원회'가 공정하게 작동하는 과정이다. 부모의 대기 시간을 단축하는 것보다 '아동에게 최적의 가정을 찾아주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 책무라는 점을 전문가·입양인·입양부모의 시선으로 연재한다. 편집자

내가 입양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서른 중반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내가 태어난 1980년대에는 비밀 입양이 흔했고,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내가 입양됐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살았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인생 중반부에 들어서 입양인이라는 내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위한 멀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입양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입양기관에 방문해 내 입양 기록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생후 3일이 되었을 때 입양기관으로 보내졌고, 생후 6주 무렵 입양되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버려졌고, 그만큼 빠르게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내 삶을 결정한 이 과정은 얼마나 깊은 고민과 철저한 검토를 거쳐 이루어진 것일까?

입양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아이가 어릴수록 좋고, 가능한 한 빨리 입양 가정으로 보내져야 하며, 절차는 효율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사회적 믿음은 2026년인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최근 입양 절차가 복잡해지고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른바 입양의 '골든타임'을 놓친다고 우려를 제기하는 뉴스를 봤다. 입양인 당사자로서 나는 그 속도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빠르게 입양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 정말 아동을 위한 '골든타임'인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입양의 '골든타임'에 입양된 '운 좋은 아기'였을까?

신속하게 결정된 나의 입양과 부실한 기록

입양 서류를 처음 봤을 때, 드디어 내 삶에 비어 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질 거라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내 입양 과정에 대한 기록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내가 받은 것은 종이 몇 장뿐이었고, 그마저도 의료 기록이 대부분이었다. 친생 부모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지만, 내가 입양 부모에게 오기까지, 그 과정에 대한 서술은 비어 있었다.

부모님은 어떤 고민 끝에 입양을 원했는지, 누가 나의 입양을 결정하고 허가했는지, 그에 대한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 예비 입양 가정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자란 입양 가족이 입양에 적합했는지를 뒤늦게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정을 아는 것 자체가 내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통 자신의 입양 기록을 찾는 입양인을 떠올리면, 으레 친생 부모의 정보만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정보공개 청구를 신청할 때 신청 양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항목은 친생 부모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 여부이다. 입양 기관에서도 친생 가족 찾기를 진행할 것인지, 재회를 원하는지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묻는다. 이는 물론 입양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나 역시 고민 끝에 친생 가족 찾기와 재회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궁금했던 것은 단지, 친생 부모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만큼이나 '왜 이 가정으로 보내졌는지'를 알고 싶었다.

입양은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입양인의 삶을 형성하는 중대한 선택의 연속이며,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확인하고자 하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현재 아동권리보장원으로 모든 입양 자료가 이관되었지만, 입양인에게 모든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양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면서 더 이상 내 삶의 뿌리를 물어볼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어떤 입양 부모는 입양인이 궁금해하는 만큼 차근차근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입양인의 여정을 지지해 줄 것이다. 하지만 입양 과정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 부재한 현재의 구조 속에서, 이러한 설명의 의무는 오롯이 입양 부모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돼 있다. 결국 입양인은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입양 부모의 기억과 설명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입양에 대해 묻는 나에게 돌아가신 아버지는 "키워 줬으면 됐지, 왜 부모의 과거를 파헤치느냐"라고 화를 낸 적이 있다. 어쩌면 연세가 많고 무뚝뚝하신 아버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 입양은 이미 끝난 일이었고, 나를 키우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은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입양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질문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질문을 책임지고 설명해 줄 기록과 제도가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일 나의 입양이 그토록 '신속하게' 결정되지 않았고 꼼꼼하게 기록이 남아있었다면, 입양 부모님이 입양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면 내 삶의 뿌리는 지금처럼 단절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속도가 만든 공백과 아동을 위한다는 착각

아동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입양을 원한다면, 입양 심의 과정은 단순히 불편한 행정 절차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는 친생 부모에 대한 사후 지원 가능성, 아동의 현재 상황, 예비 입양 부모의 준비 상태, 이후 안정적인 양육 환경이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이러한 절차는 복잡하고 지난할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은 훗날 입양인이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료이다. 그렇기에 입양기록은 투명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촘촘하게 남아 있어야 한다. 입양의 진짜 '골든타임'은 바로 속도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입양인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검토와 숙고의 시간을 가졌는가에 달려 있다.

입양은 단순히 가족을 형성하는 사적인 수단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이는 공공의 영역에서 행정적·법적 절차를 통해 한 아동의 삶에 개입하는 책임 있는 결정이다. 그만큼 공적인 단계를 분명히 해야 하며, 책임 주체가 명확해야 할 것이다. 입양 절차가 길어지면서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우려가 제기되지만, 입양은 몇 달의 행정 절차로 끝나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그 결정은 한 사람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과정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속도에 중점을 두는 입양은 아동 중심의 입양이 아니라 '어른 중심의 입양'이 된다.

입양의 '골든타임'을 강조하는 담론에는 또 다른 전제가 숨어 있다. 아이는 가능한 한 빨리 입양 가정으로 보내져야 한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보호시설에는 이미 성장한 아동들이 많다. 친권으로부터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된 보호대상아동의 연령은 신생아부터 18세 미만의 청소년까지 다양하다. 그렇기에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말은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와 '가정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입양이 늦어지는 문제가 단순히 절차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볼 때 입양인의 입장에서는 많은 입양 부모들이 '아이'가 아니라 '아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입양을 '신속한 배치'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는 과거의 제도적 관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입양이 늦어지는 것에 조바심이 날 수도 있지만, 입양 이후 아동과 함께 살아갈 삶은 훨씬 더 길고 무겁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예비입양부모는 입양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이 온전한 자신의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충분한 준비를 한 이후에 입양에 임해야 한다.

역사가 보여주듯 한국의 입양은 오랫동안 '신속한 배치'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운영돼 왔다. 그 과정에서 기록은 부실하게 남겨지거나, 불법적으로 조작되거나 아예 흔적조차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입양 절차의 마지막은 아동이 입양 부모에게 보내지는 순간의 해피엔딩이 아니다.

훗날 입양인이 자신의 입양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가 보장되는 시점까지가 그 과정에 포함되어야 한다. 어쩌면 나를 향한 그 질문은 평생을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만큼 왜 이 가족에게 보내졌는지도 간절히 알고 싶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이 결정은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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