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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체제 경쟁은 여전히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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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체제 경쟁은 여전히 진행중

[민미연 포럼] 물질적 보상체계 아닌 사회심리적 보상체계가 필요하다

1960년대의 북한은 무척 잘 나갔다.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 '포스트 케인주의자' 중 가장 저명한 경제학자였던 조앤 로빈슨(Joan Robinson)는 북한의 경제를 보고 '코리아의 기적(korean miracle)'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경제는 그에게 경이로운 기적으로 다가왔다. 경제 발전은 보편적 교육과 무상의료를 포함하는 다양한 복지정책의 밑바탕이 되었다. 70년대까지도 북한 경제는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였다.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식인 중 한 사람인 윈톄쥔은 그의 책 <백년의 급진>(김진공 옮김, 돌베개 펴냄)에서 "개방 시기 중국의 농업 목표는 북한 수준으로 올라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북한 경제는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제3세계 실패 국가의 대표 사례가 됐다. 물론 군수공업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 상품의 질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와 비교해 뒤떨어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시공사 펴냄). ⓒ시공사
북한의 몰락을 이해하기 위한 대표적인 서술은 다음과 같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이 공저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시공사 펴냄)의 한국어판 머리글에서 남북한 경제의 성공과 실패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남한에서는 경제적 삶을 지배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규칙인 경제제도가 국민의 저축과 투자, 혁신을 보상해준 반면,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 남한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수출과 혁신을 장려하고 공공재를 제공했지만 북한은 탄압과 통제를 위해 권력을 휘둘렀을 뿐이다. 세상의 다른 가난한 나라들과 북한의 공통점은 대다수 국민의 인센티브를 꺾어버려 필연적으로 가난을 초래하는 착취적 경제제도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착취적 경제제도를 지탱해주는 것은 착취적 정치제도다."

최근 가장 많이 읽힌 경제학 책 중의 하나인 이 책이 제시하는 설명은 사실 흔한 '시장경제 만세론'의 다른 버전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이용한 포용적이고 효율적 제도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절반의 진실만을 보여준다. 이런 상투적인 설명은 6.25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대단했던 경제성장 앞에서 호소력을 잃어버린다. 동일한 사회주의 정책과 동일한 공산당 중심의 정치제도를 가지면서도 전반기에는 성장을 후반기에는 몰락을 상징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면 무언가 다른 원인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북한의 침체는 구(舊) 사회주의 진영의 해체에 따른 연쇄 작용의 결과였다. 세계체제론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처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권을 자본주의에 이미 포섭된 자본주의 경제의 하위체제로 무시하는 이론가도 있지만, 북한에 있어서 자신들의 존립을 위한 중요한 대안적 세계체제였다. 그 체제가 소련의 해체로 사라졌다. 또한 중국의 자본주의화가 진행되면서 북한은 극도로 고립되어갔다. 이때 북한은 남아있는 미국 중심의 또 다른 세계체제에 편입되기 위해 그들은 그들의 방식을 시도했다. 그러나 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난 20여 년간 북한은 세계체제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다. 북한의 핵과 미국의 '북한 악마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은 세계체제의 외부자로 남아있었고, 그들의 고립과 함께 경제도 무너져갔다.

'화성-15호' 미사일 발사로 북미관계는 전쟁과 평화 공존의 갈림길에 다가섰다. 워싱턴까지 도달하는 핵미사일을 가진 북한을 적으로 둔 채 외면만하는 전략적 인내는 드디어 한계점에 도달했다. 미국은 선택해야만 한다. 예방적 선제공격이 100% 완벽할 수 없다면, 반드시 북한의 핵 보복을 받게 된다. 북한은 EMP를 포함해 자신들이 가진 핵전력을 모두 사용할 것이다. 선제공격으로 북한 핵 무력의 99%를 제거한다고 해도 나머지 1% 역시 핵무기다. 남아있는 1%의 핵전력은 미국인 수백만 명의 삶을 빼앗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전쟁의 언저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평화의 언저리이기도 하다. 만약 미국 정부가 1%의 가능성을 우려해 북미관계를 새롭게 설정한다면 한반도는 대대적인 해빙 무드의 격랑으로 빠져들 수 있다. 이 해빙은 전쟁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좋은 평화다. 그러나 이 해빙은 남북한 사이에 새로운 체제 경쟁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평화는 평화이되, 긴장이 감지되는 평화일 것이다.

'북한 같은 삼류 독재국가와 선진공업국 남한이 체제 경쟁을 한다고?'라며 웃어넘길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가난을 내재적 원인에서 찾지 않고 세계체제로부터의 고립에서 찾는다면,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유라시아 대륙 국가와 일본과 미국이라는 해양 국가 가운데 북한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의 천연자원은, 이 방면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작게 잡아도 7000조 원에 이른다. 개성공단 성공을 통해 북한 노동자의 임금 대비 높은 생산성은 이미 확인했다. 북한 정부의 중앙집권적 행정력은 남한과 대만에서 보듯 초기 산업화에 마이너스(-) 대신 플러스(+)로 작용할 것이다. 지경학적 이점, 천연자원, 임금 생산성은 경제적 발전으로 직결되는 요소다. 덧붙이자면,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했고, 사회주의는 기본적인 복지시스템에서 자신들의 체제 정당성을 찾는다. 북한 정부가 자랑하는 완벽한 무상교육·무상의료·무상주거는 외부용 선전일 가능성이 크지만, 나름의 복지 시스템은 갖추고 있을 것이다. 가난한 국가의 복지는 적은 돈으로도 가능하므로, 경제성장은 복지의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남한의 절대적 우위는 새로운 경쟁에서 상대적 우위로 변하게 될 수 있다. 선진국의 경우 고성장이 계속되기는 어렵다. 남한 역시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 지 오래다. 물질적 보상체계를 절대화한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끝없는 고도성장을 전제로 한다. 고성장 국면으로 다시 돌아가기 어렵기에 물질적 보상체계를 절대화해서는 곤란하다. 이제 상대적 우위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심리적 보상체계가 그것이다.

사회의 보상체계는 보통 한 사회의 물질적 보상체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물질적 보상체계만으로는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만족과 갈등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물질적 보상이 순조롭게 추구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물질적 보상에 집중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심리적 보상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갈등 양상에는 물질적 보상 이외의 다른 요소가 잠재되어 있다.

정신치료의 한 분파인 교류분석에 따르면, 인간은 끊임없는 정서적 자극과 반응을 다른 상대와 교류한다고 한다. 밤 10시에 퇴근하는 아들에게 '밥 먹었느냐?'고 묻는 아버지는 아들의 저녁 식사 유무를 묻는 것이 아니다. 아들에게 묻고, 아들이 자신에게 또 다른 질문을 고대하는 정서적 활동인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정서적 자극을 '스트로크(stroke)'라고 한다. 자신을 둘러싼 이 스트로크 관계망에 문제가 생기면, 인간의 정신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한국 사회는 물질적 부유함을 효율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이 관계망을 극도로 억압적이고 위계적으로 운영해 왔다. 조직과 직장 내부에서 그 관계망은 가장 억압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윤 일병 사건'에서 드러난 군대 내 폭력, '태움문화'로 불리는 간호사 내부의 억압, 갑질에 대해 사회 구석구석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물질적 보상만을 추구하다가 놓친 사회심리적 보상에 대한 요구다. 이런 요구는 물질적 보상이 저성장으로 한계에 이르면서 증폭되고 있다.

물질적 보상이 형편없는 북한의 경우, 사회심리적 보상을 집중적으로 추구했다. 북한 체제에 대한 격렬한 반대자인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기자 주성하가 '희망제작소'와 진행한 인터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남한에 온 탈북민 대부분은 공통적으로 '자유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탈북자들 중에 정말 자유롭게 사는 사람을 거의 못 봤습니다. 과거 사회주의 노선을 걸을 때 북한에는 분명 이동의 자유가 없었고, 경제활동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남한보다 자유가 큰 부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하는 환경 안에서의 자유예요. 직장 생활에 스트레스라는 게 거의 없거든요."

사회심리적 보상이 부족하면, 사람들은 물질로 부족한 보상을 대체하려 한다. '공돌이'라는 사회적 무시를 벗어나기 위해 조직 노동자들은 '이기주의'라는 오명을 감수하고 노동쟁의에 나서게 된다. 각자가 자신이 받고있는 '을'로서의 멸시를 벗어나고자 각자도생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모습이다.

저성장시대에는 충분한 물질적 보상이 국민에게 제공되기 어렵다. 물질적 보상과 함께 사회심리적 보상을 같이 추구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두 종류의 보상이 완비되어야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직장 민주화'는 사회심리적 보상체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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