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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의 '룰라 바람', 동막골, 그리고 최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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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의 '룰라 바람', 동막골, 그리고 최고은

[기자의 눈] 재집권의 동력? "그저 잘 멕여야"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진보정당인 민중당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주도하다가 대학에서 제적당한 뒤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영입돼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30년 넘게 그는 '좌파'였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 5번이나 투옥됐던 그가 1990년 김문수 경기지사 등과 함께 만든 민중당은 미군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연방제 통일 등을 당의 강령으로 했다.

이런 이력을 보면 이 장관이 이명박 정부 내에서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하자는 주장을 펴는 게 '모순'이라고만 하기 힘들다. 혹자는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 내에서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 출신인 룰라 전 대통령을 따라 배우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에 대해 "뭘 알고 하는 얘기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경제대통령', 'CEO대통령'을 내세웠던 이 대통령이 퇴임 후 첫 공식행보로 전세계의 '좌빨'들이 모인다는 세계사회포럼(WSF)에 참석하고 있는 룰라 전 대통령을 모범으로 삼겠다니! 하지만 이것도 "선거 때 표 좀 얻으려고 한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이 대통령은 "실용주의자"를 자처한다.

여권, 정확히 말하자면 이 대통령 주변에서 '룰라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정말 '실용'적인 이유에서다. 룰라 전 대통령은 현재 이 대통령 앞에 놓은 가장 큰 과제 '성공한 대통령'과 '정권 재창출' 두 가지를 모두 이뤘다. 룰라 전 대통령은 8년 동안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당시 지지율이 87%를 기록했다. 또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주면서 정권재창출에도 성공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언론을 통해 친이계의 '룰라 벤치마킹' 움직임 보도가 나온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물론 친이계 내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포지션에 충실한 이들은 룰라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대표적으로 "룰라에게 배울 게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7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룰라를 놓고 특임장관실과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상반된 입장이다. '룰라 벤치마킹'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이재오 장관이 이끄는 특임장관실이라는 것.

소련 등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가 원인이 됐든, 자신의 정치적 이해가 원인이 됐든, 이미 한번 '이념의 강'을 건너봤던 이 장관이기에 'CEO 출신 대통령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 따라 배우기'라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를 잘 아는 한 정치평론가는 재야운동가 시절에도 이 장관은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 스타일이었다고 평했다.

▲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이 대통령과 룰라 전 대통령. ⓒ뉴시스

이명박과 룰라라는 전혀 안 어울리는 조합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이념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정치적 '실용주의'다. 룰라 전 대통령이 87%라는 경이적인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물러날 수 있었던 배경도 잘 보면 그 나름의 '실용주의'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브라질 노동당(PT) 출신인 그는 2002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당시 하원에서 PT 의석은 18% 밖에 안됐다. 또 그의 등장으로 외국자본이 브라질을 떠나 증시가 곤두박질치는 등 이미 세계경제질서에 어느 정도 편입돼 있는 상황에서 좌파 일변도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룰라 정부의 경제정책은 당시 팽배했던 신자유주의 노선을 크게 거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좌파들에게는 '신자유주의 추종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고 룰라 전 대통령이 브라질 경제의 가장 큰 문제였던 빈곤, 극심한 양극화의 문제를 외면한 것도 아니다. 롤라 정부는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 '볼사 파밀리아', 빈곤층 자녀 대상 학자금 지원 프로그램 '프로우니' 등 복지정책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룰라 정부에서 2000여만 명이 빈곤층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이런 복지정책은 동시에 저소득층의 소비를 촉진시켜 내수경기 활성화라는 경제 선순환 구도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를 통해 룰라 정부는 2006년 재집권 이후 4~5%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에서 가장 빨리 탈출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룰라 전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과 '정권 재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경제'였다. 영화 <동막골>에서 동막골 이장이 그토록 오랫동안 평화롭게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방법을 묻자 "그저 잘 멕여야..."라고 답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PD수첩> 사태 등으로 대표되는 언론자유의 후퇴, '미네르바' 사태 등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억압, 3년 연속 예산안 날치기 통과 등 '민주주의의 후퇴' 뿐 아니라 연평도 사태, 구제역 사태 등 위기.재난 관리의 실패 등 여러 실정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40%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은 '경제' 덕분이다.(물론 이 대통령의 지지율 자체를 놓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올해 <프레시안>과 신년 인터뷰에서 "현재 이명박 정부가 돌아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 정도로 버틸 수 있는 것은 경제가 좋은 덕분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굉장히 운이 좋은 정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를 빠르게 벗어난 국가로 평가된다. 2010년 경제성장률은 8년 만에 최고치인 6.1%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런 높은 성장률이 '윗목'에도 영향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첫해와 그 다음해까지는 세계경제위기 때문이라지만 집권 3년 차인 2010년 들어 엄청난 경제효과를 창출한다는 'G20 정상회의'까지 성대히 치렀는데도 서민들의 삶은 별반 나아지는 게 없다. 2011년 들어 생활물가 급등, 전세대란, 구제역 사태 등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일들이 불거져 점점 그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 경제위기를 맞아 '해법'을 내지는 못했지만 '관리' 차원에서 어느 정도 해나갔던, 그래서 정치적 차원에서 가장 큰 버팀목이 됐던 '경제'가 스텝이 꼬이고 있다는 얘기다.

어제, 오늘, 인터넷 상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뉴스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요절이다. "남은 김치나 밥을 달라"는 말을 사실상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젊은 작가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념은 불판 위의 고기와 달라 한번 뒤집은 것을 다시 뒤집기는 힘들다." 진보에서 보수로 전향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 대학교수가 사석에서 했다는 말이다. 이미 한번 '뒤집힌' 이재오 장관이 또 한번 뒤집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왕에 룰라에 주목했다면, 또 이명박 정권의 2인자로 정말 정권 재창출을 바란다면, 룰라식 '실용주의'를 따라 배우는 건 어떨까. '임기말 개헌'이라는 낮은 수준의 전략으로는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개헌에 대해 이 장관 본인 뿐 아니라 여권 인사들이 대거 쏟아 냈던 부정적인 발언으로 빈축을 살 뿐이다. 좀 더 크고 과감한 그림을 그리는 건 어떨까. 어쩌면 그게 이 장관이 '한국의 호세프'(혹시나 꿈꾼다면)가 되는 유일한 길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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