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저녁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둔 내년도 예산안 협상 과정은 3당 지형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법정시한(12월 2일)을 넘겨서도 여야 협상이 교착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예산 기조의 큰 틀을 유지한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실질적인 첫 번째 '문재인 예산'으로 내년 한 해를 이끌어갈 동력을 얻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 과반 의석을 점하지 못한 자유한국당 비토권의 한계, 국민의당과의 성공적 협상이란 삼박자가 어울려 난관이 예상됐던 쟁점 분야에서도 성과를 냈다.
최대 쟁점이던 공무원 증원은 9475명을 늘리기로 해 정부안보다 3000여 명 줄어들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일자리 공약이 이행 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만 5세 이하 아동 전원에게 월 10만 원을 주는 아동수당은 '2인 가구 기준 소득수준 90% 이하' 아동에게 내년 9월부터 지급하기로 했다. 만 65세 이상(소득 하위 70% 이하)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도 기존 월 20만 원에서 월 25만 원으로 올려 지급키로 했다.
아동수당의 경우 협상 과정에서 소득수준 상위 10%에 해당하는 아동이 지급 대상에서 빠지고 지급 시기가 내년 9월로 연기된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기초연금 인상 시기도 내년 4월에서 9월로 늦춰졌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야당의 주장을 수용해 시기가 지연됐지만, 문재인 정부 복지 정책의 방향을 유지한 점에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법인세의 경우, 과표 3000억 원을 초과한 기업에 25%의 세율을 적용키로 해 정부안(2000억 원 초과 기업)보다 후퇴했으나, 과거 정부의 '부자 감세' 기조를 바꾸어 놓은 의미가 있다.
특히 야당에서 시행 시기 유예를 주장이 나왔던 소득세 인상안은 '과표 3억~5억 원 40%, 5억 원 초과 42%'로 규정한 정부안대로 합의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모처럼 살아날 기미 보이는 경기회복 성장 마중물을 부을 준비를 마쳤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존재감 입증한 국민의당, 통합론은 휘청
민주당이 쟁점 분야 협상에서 성과를 낸 데에는 40석을 보유한 국민의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국민의당이 요구한 호남 KTX 2단계 사업의 무안 공항 경유 방안을 수용한 뒤부터 양당의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국민의당은 호남권의 실리를 챙기는 한편, 당력을 집중하고 있는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도 향후 민주당의 우호적 협조를 끌어냄으로써 '캐스팅보터' 프리미엄을 누렸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첫해 예산안인 만큼 입장 차도 컸지만 국민의당이 타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자평했다. 정부여당이 칼자루를 쥔 예산안을 반대하기에는 부담이 큰 반면 한계가 분명해 대승적 협조를 통해 명분과 실리를 얻는 선택을 한 셈이다.
하지만 당내 논란의 핵심인 바른정당과의 연대론은 일정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예산안 공조를 정책연대의 시작점으로 간주했던 국민의당과 바른정이 결과적으로 각자의 길을 갔기 때문이다.
예산안 '당론 반대' 입장을 정한 바른정당은 국민의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유승민 대표는 이날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이 정부를 제대로 견제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잘못된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책임있는 정당으로서 최대한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고충이 있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적정한 선에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동철 원내대표도 이날 바른정당에 양해를 구하는 등 정책연대의 끈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책연대의 현실이 사안별 공조라는 점이 드러난 탓에 안 대표가 추진하는 선거연대나 통합에 이르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예산 이어 개헌 공조 경계
단독 과반을 점하지 못한 자유한국당은 국민의당이 민주당과 손을 잡을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절감했다.
자유한국당은 3당 예산안 합의를 놓고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공무원 증원과 법인세 인상 문제에서 의원들의 반대론이 강해 내부 혼선을 겪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어제 합의된 내용으로 가는 데 대해 찬성할 수 없다는 게 의원들의 결론"이라며 "오후에 있을 예산안 상정에서 우리 당의 행동 지침과 국민들에게 반대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지 등이 남았다"고 했다.
합의문 무효화, 본회의 보이콧, 본회의 필리버스터 등이 대응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는 제1야당 반대에 따른 '반쪽 처리'라는 절차적 흠집은 낼 수 있으나 실효성이 없다.
일부 의원들은 정 원내대표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역시 정 원내대표의 임기가 오는 12일로 종료되는 탓에 큰 의미는 없다.
예산안 협상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자유한국당은 향후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문제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될 수 있어 경계하는 눈치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우 사상 최악의 예산을 밀어붙였다"고 비난하며 "양당 간에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싸고 뒷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이 민주당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의 카톡 사진에 의해 사실로 드러났다"고 했다.
장 대변인은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개헌안 마련과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다하며,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확고히 추진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민주당 박홍근 의원의 카카오톡 사진을 근거로 이 같이 주장했다.
예산안 국면 이후 개헌 및 선거구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돼 자유한국당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자유한국당은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을 추진하는 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물론 예산안과 달리 개헌은 자유한국당 단독으로 저지선(100석)을 확보하고 있어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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