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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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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기자의 눈] 잘 되는 일 낚아채고, 안 되는 일 떠넘기는 청와대

"이야기 한 적 없어서 할 말도 없다…우리한테 묻지마라."

최근 뜨거운 현안에 대한 청와대 공식 입장이 대체로 이렇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요즘 청와대 정말 이상하다. 참 이상한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매일 얼굴 맞대는 사이에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9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 대해 "청와대는 어떤 입장도 정한 바 없다"면서 "입지 발표를 연기하거나 재검토하는 등 어떤 이야기도 다룬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은 <조선일보>의 "청와대에서 신공항 백지화 검토 기류" 보도에 대한 부인이었다.

이어 김 대변인은 '그렇다면 기존 로드맵 대로 진행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해당 부처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해양부에서 진행하니 앞으로 그쪽을 통해 취재하기 바란다"고 답했다.

김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불을 붙인 한나라당의 개헌 의총에 대해서도 "당에서 진행되는 일이라 할 말이 없다"고만 말했다. 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에 대한 청와대의 모범 답안도 "부처가 알아서 할 일이다"는 것이다.

▲ 이 대통령은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 작전은 직접 발표했었다ⓒ청와대

물어봤자 예상 답변이 뻔하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진행되는 청와대 질의응답은 맥이 빠진다. 대신 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대한 브리핑은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진행된다.

이날만 해도 이 대통령이 일선 학교와 청소년 쉼터 등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모범 교육자 20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 대한 설명은 시시콜콜하기까지 했다. "어려운 형편에서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이 'EBS교육방송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더라", "이 대통령이 청각장애 학생 야구부를 다룬 영화 관람을 권유했다"는 설명까지 뒤따랐다.

물론 중요한 사안에 대해 청와대가 항상 "부처에서 알아서 할 일"식으로 발을 빼는 것은 아니다.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 직후 이 대통령은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내가 지시했다"고 말했고 하루가 멀다하고 석해균 선장의 병세를 챙기는 모습을 노출했다. 심지어 "작전 중 해적들이 못 알아듣게 우리 군인들이 선원들과 한국말로 대화하라는 아이디어는 이 대통령이 냈다"는 관계자의 말까지 보도됐다.

물론 석해균 선장의 위중한 용태가 길어지고 석 선장의 몸에 박히 총알 중 하나가 우리 군 총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선 삼호주얼리호에 대한 청와대의 언급도 끊겼지만.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직접 챙기겠다"를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가히 만기친람이다"는 말을 듣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에서 뜨거운 현안들에 대해 "논의된 적도 없고 할 말도 없다"를 모범답안으로 삼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언론사에서 잔뼈가 굵은 홍보수석에 당료 경험과 국회의원 이력까지 지닌 대변인이 있는 청와대 홍보수준이 '공보 담당' 공무원만 못하다.

물론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안의 경우 "지금 우리가 공개적으로 나서면 일이 더 어려워진다"는 청와대의 항변이 맞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무엇을 우선 순위로 두고 일을 진행하는지 조차 베일에 가려두면 될 일도 안 되기 마련이다. 세종시 문제가 그랬다. 정운찬 전 총리가 총대를 메서 일을 터뜨리고 일사천리로 민관합동위원회까지 꾸렸지만 반대측 민심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미 물 건너 갔다는 관측이 많은 개헌 문제도 다르지 않다. 여기에 과학비즈니스벨트와 신공항 문제도,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던 청와대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그 때도 "해당 부처에서 결정했다. 거기다 물어봐라"고 떠넘길지 모르겠지만 해당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사람은 바로 이 대통령이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한미FTA관련 당정회의에서 "당정회의를 자주 해야 하는데 정부에서 당정회의를 하는 것을 얼마나 아끼는지, 감정이 많았다"면서 "국민에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자꾸 당정회의를 안하려고 하고, 이리 빼고 저리 빼고 오늘 어렵게 시간을 잡았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기 바란다"고 정부를 질타했다고 한다.

당연한 거 아닌가? 일이 잘 되는 건 청와대가 가져가고, 어렵고 잘 안되는 건 해당 부처에 떠넘기는데, 대통령 임기도 후반으로 넘어가는 마당에 어느 관료가 소신껏 일을 열심히 하겠나? 레임덕이 특별히 다른 어디에서 오는 게 아니다. 그 진원지는 바로 청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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