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은 대통령-국민 괴리에서 와…개헌은 국민 생각과 먼 아젠다"
"지역구 활동에 바쁠텐데...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어떤 말들을 많이 하나?"
"뭔가 마음으로 썩 흡족해하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분석적으로 얘기하라 하면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고, 경제도 세계적인 금융 위기 속에서 어느 정도 살아나고 있다고들 말씀하신다. 그러나 경제 지표가 살아나고, 무역 흑자가 나는 것이 나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들 하신다.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이 마음을 어루만져주지를 못한다'고 하신다. 결국 민주화 이후의 국가 경영이라는 문제에 대한 성찰이 새롭게 필요한 시기다. 이제는 권위주의, 근대화 시기의 성과 중심 국정 운영으로는 동의를 얻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과정의 산물이다. 국민들은 성과를 내는 과정 속에 참여를 하고, 동의를 하고, 그 결과가 나의 삶이 나아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원한다."
"정책 결정 과정,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민들과 함께 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얘긴데, 이명박 대통령에게 그렇게 고치라고 주문하는 게 실효성이 있을까?"
"쉽진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리더십 스타일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고, 우리 사회의 정치 제도와 시스템, 문화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
"설명해 달라"
"개인 스타일로 보면 이 대통령은 민주적 정치 과정에서 리더십을 익힌 분은 아니다. 성과 중심의 분위기 속에서 기업을 이끌어왔던 분이다. 기업은 성과로 말을 한다. 그런 부분이 몸에 배어 있는 분이다. 그래서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과정이 성과를 내는 데 걸림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5년 단임제, 대통령제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와 관련된 것이다. 국민들은 싸우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현실 정치와 국정 운영은 늘 갈등과 충돌의 이전투구 양상으로 간다. 이는 5년 단임제의 큰 폐해다."
▲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
"개헌을 말하는 것인가?"
"개헌은 현실적으로 안 된다. 정치 시스템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것이다. 지금은 각 정치 세력들이 대통령 권력을 잡기 위해서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에는 국민의 대표가 모여 있는데 독립적인 역할과 기능을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 권력을 잡기 위한 정당의 도구가 되어 있다. 정당은 현실적으로 정권을 쟁취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 다음 날부터 '5년 후에 어떻게 정권을 연장할 수 있을까' 여기에만 몰두해서 국회를 정권 연장의 도구로 만든다. 야당도 여당에게 협조하면 자기들에게 기회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야당은 '실패한 여당, 실패한 대통령'을 바라게 된다. 그 때문에 무리해서 발목잡고 제동을 건다. 여기에다가 공천 족쇄에 얽매어 국회의원 개인의 자율성 보다는 정당과 지도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구조가 굳어져 있다. 사실 5년 단임제 하에서는 국민과의 대화는 필요가 없다. 역사와 대화하면 된다.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국정운영을 어떻게 하는 게 옳을까?"
이명박 정부에게도 정치의 근본 틀을 바꾸는 중요한 3대 아젠다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게 개헌이었고, 두 번째가 행정구역 개편, 그리고 선거구제 개편이었다. 이 문제를 1년 내에 할 수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촛불 정국을 맞으면서 아젠다를 추진할 힘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기회를 자꾸 붙잡고 연연해하면 안 된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고 과제였지만 이제는 접어야 한다. 아쉽지만 다음 국회와 정권의 과제로 돌리는게 순리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개헌론에 대해 '안 될 것을 자꾸 하려고 하면 레임덕만 가속된다'고 했다. 같은 맥락인가?"
"비슷하게 생각한다. 레임덕은 국민들의 생각과 정권이나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일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 오는 것이다. 정치권이 말을 듣고 안 듣고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이 대통령을 지지해주고 박수 보내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개헌은 국민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아젠다가 돼 버렸다."
"MB 탈당? 속단할 수 없지만 그렇게 되면 불행"
필자는 지난 3년 간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면서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국민들의 요구나 기대는 '경제를 살리라'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실용적인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으니까. 그러나 이 대통령은 대북정책이나 세종시 수정 추진 과정에서 보듯, '역사적 소명 의식'을 갖고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국민은 실용주의자를 뽑았는데, 국정 운영은 정작 근본주의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느낌이다. 권 의원에게 이 대목을 짚어 봤다.
▲ "이명박 정부에게 국민들이 무엇을 요구했던가? '경제 살리기'를, '국민 통합을 이루는 정치적 과정'과 연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지표만 보여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프레시안(최형락) |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이념 중심으로 사물을 바라봤고, 이념 중심으로 국정 운영을 해왔다. '이념을 떠나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중심으로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면에 있어서는, 이명박 정부가 전임 YS, DJ, 노무현 정부보다는 틀림없이 실용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그런 실용적인 면이 자신의 삶에 체화돼 있을 텐데, 왜 근본주의적으로 보였느냐? 이 문제도 아까 말했던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과, '과정의 정치'에 대한 고민들을 놓친데서 연유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에게 국민들이 무엇을 요구했던가? '경제 살리기'를, '국민 통합을 이루는 정치적 과정'과 연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지표만 보여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세종시의 경우, 대통령은 '문제 제기자'의 역할만 하고 말았어야 했다. 나머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였다. 그런데 소명 의식을 가지고 끌고 가려고 했던 것이 이명박 정부에게 주어졌던 시대적 소명의 큰 축이었던 국민 통합과 사회 통합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아버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고 했다. 정치 과정을 통한 국민통합이 시대적 요청이었으나 대통령이 정치를 모르면 집권당이라도 그 역할을 주도적으로 했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우리가 당청 관계에 있어서 수평적 협력 관계를 계속 얘기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중심을 잡고, 대통령을 도우면서 때로는 대통령을 설득도 해야 한다. 대통령 당선 후 한나라당에서는 박희태 대표가 관리형 대표로 나왔다. 이것부터 잘못됐다. 민심에 부응하는 정치과정보다 청와대에 부응하는 정치 과정을 당이 수동적으로 추종해 왔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나라당이 잘못해 왔다."
"그렇게 한 3년쯤 하니까 당대표가 대통령에게 '잘못했습니다. 잘하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질서가 만들어진 것 아닌가?"
"이명박 정부만의 얘기는 아니다. 민주화 이후 국민들이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들이 다 그랬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청와대 중심으로 가다가 말기에 가면 대통령과 차별화해서 다음 선거를 치러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이대로 가면 이명박 대통령도 탈당하게 될까?"
"속단할 수 없다. 그렇지 않도록 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명박 대통령도 불행이고 집권당도 불행이고, 국민도 불행이다. 수사적인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대통령과 당이 일체가 돼, 공동 운명체가 돼, 국민들로부터 지지받고 신뢰받는 집권 세력으로 마무리하는 게 국민들을 위해서도 좋은 길이다. 대통령도 마지막 임기를 마무리하는 2년은 더디고 늦게 가더라도 국민과 함께 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시기를 바란다."
"'대권후보 조기 가시화'로 총선 치르는 것도 고민해야"
"민주당도 그렇지만 한나라당도 대선을 앞두고 지도부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한나라당의 '리더십'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정말 젊고 새롭고 진취적인 리더십, 국민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리더십(안상수 대표)은 상처받은 리더십이다. 이런 상처받은 리더십으로 내년 4월 총선까지 간다면 전망이 상당히 어둡다. 필요하다면 외부에서 영입해서라도 새로운 기운과 흐름을 가져와야 한다. 만약 새로운 지도 체제를 만드는 게 어렵다면, 차선으로 대권후보 조기 가시화를 통해 대선 후보 중심으로 총선을 치루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공천 문제도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이 대통령이)새로운 국정 운영의 자세와 방향을 가다듬는 것, 한나라당에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것, 그리고 좋은 공천, 이 세 가지가 내년 총선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요소다. 공천의 경우, '친박연대'를 탄생시켰던 친이계 일부의 '과두 지배' 구도를 깨고 밀실 공천이 아니라 상향식 공천, 완전한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는 아니더라도, 국민경선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 공천개혁특위에서 논의 중이다."
"박근혜 리더십? 과제는 '박근혜식 광폭 정치' 보여주느냐 여부"
권 의원은 박근혜 리더십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른 '친이계' 의원들과는 다소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권 의원뿐 아니라 '중립 성향'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는 범친이계 의원들은 특정 후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특정 후보를 맹목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 '골수' 친이계나, '골수' 친박계와 다른 모습이다.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늘어나는 '중립지대'는 향후 대권 판세의 주요한 '가늠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박근혜 전 대표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폭넓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쪽으로 확장해 나가는, '광폭 정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문제가 또 다른 숙제로 부여돼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최형락) |
"밖에서 보기에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게,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박 전 대표가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아서 하지 않았다. 저는 그래서 지난번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대표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여러 가지 불신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박 전 대표가 책임 있는 자리에서 수평적 관계를 만들어갔으면 좋지 않았겠나. 지금은 물론 늦어버린 얘기긴 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영영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표는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다. 그 분이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차별화의 길'을 가거나, '후계자의 길'로 가는 게 아니라, 정말 수평적인 협력 관계로, 공동 운명체로 정권 재창출의 길을 가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 반드시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본다. 역사는 계승과 발전이니까."
"박근혜 전 대표가 대세라고 하는 얘기도 있고 아니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 평가는 국민들의 몫이다. 정치권에서 (박 전 대표를 따르는) 국회의원 숫자가 몇 명이냐 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없다. '박근혜 우위'의 구도가 계속 유지될 것인지 아닌지는 국민이 결정해줄 것이다."
"친이 쪽에서는 '어차피 당내 경선에 의해 후보가 되는 것인데, 당내 경선에서 국민지지 비중은 여론조사 20%에 불과하다. 그래서 당 내 의원들의 계파 분포가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까지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친이계가 똘똘 뭉쳐 친이계 단일 후보를 내면 경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주장도 하는 것 같더라."
"그것은 우리 당원들의 변화, 민심의 무서움을 모르는 소리다. 당심이 민심을 배반하고서는 어떤 선거에서도 이길 수 없다. 우리 당원들은 성숙돼 있다. 한나라당이 10년 만에 정권을 다시 찾아올 수 있게 된 원동력은 당원들의 변화였다. 국회의원들의 변화가 아니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 이후 한나라당에 있었던 중요한 경선들을 한번 보라. 2002년 대선 직후에 있었던 서청원 대표와 최병렬 대표의 당 대표 경선, 국회의원 숫자로 보면 서청원 대표에게 최병렬 대표가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당원들은 새로운 변화를 원했다. 그것이 국민들의 뜻이라 본 것이다. 지금 저는 집권하고 난 이후에 오히려 당원들의 선택이 민심하고 동떨어진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회의원 숫자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박근혜 리더십을 평가해달라."
"우리 정치가 국민들에게 불신을 넘어 혐오를 받는 원인 중 하나가, 우리 정치가 원칙 없고 일관성 없고, 국민들의 이해를 쫓기보다 정치인들 개개인이나 권력의 이해를 쫒아 국민의 기대를 배반해서 그런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원칙과 일관성은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다. 큰 장점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더 숙고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에게는 국민 통합 사회 통합의 과제가 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폭넓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쪽으로 확장해 나가는, '광폭 정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문제가 또 다른 숙제로 부여돼 있다고 본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 박 전 대표가 이미지만 있고 콘텐츠가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수첩 공주'라는 별칭이 그런 뜻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국민들이 이미지만 보고 그렇게 높은 지지를 보낼까? 그 얘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박 전 대표가 정제된 언어를 쓰기 때문에 문제를 복잡하게 설명을 하거나 충분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설명의 양이 콘텐츠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짧게 얘기하더라도 국가적 아젠다나, 국민적 생각 속에서 그 말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데에 동의 안 한다. 국민들이 콘텐츠 부족한 지도자를 몇 년째 지지하고 있다? 글쎄...전문가들 입장에서 보면, 사물을 분석적으로 보고, 복잡한 변수를 헤아려서 보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 분(박근혜)이 충분치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분은 교수 출신도 아니고 전문 분야에서 일을 한 분도 아니다. 국민은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다."
"오세훈·김문수, 현직 유지하고 대선 도전 할 수 있다"
"박 전 대표 지지율이 높다지만 대항마로 꼽히는 인사도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두 사람이 대선 경선에 나올 수 있다고 거론되는데 어떻게 보나? 두 사람은 선출직 임기를 막 시작한 사람들 아닌가?"
"그 것이 아마 그 분들에게는 큰 부담일 것이다. 결국 국민들이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수용할 수 있도록 할 책임은 당사자들에게 있다. '오세훈, 김문수는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보다는 더 큰 국가 경영의 길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국민들이 원하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이 닫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열려 있다고 본다. 그러나 굉장히 좁게 열려 있는 문이다."
"김문수 지사는 '경선할 때 지사직을 갖고 나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국민들은 그것을 어떻게 볼까?"
"지금 당장 국민들에게 여쭤보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을 것이다. (지사직을 갖고 출마하고 싶다면) 국민의 우려를 뛰어넘는 자기의 비전과 정치적 길을 보여줘야 한다. 그럴 경우 현직을 가지고 경선 출마하는 문제에 대해 국민들께서도 조금 포용적일 필요가 있다."
▲ "현직을 가지고 경선 출마하는 문제에 대해 국민들께서도 조금 포용적일 필요가 있다."ⓒ프레시안(최형락) |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관련 논란, 주민투표 논란 등이 대권 행보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실제 속내는 어떤 것인가?"
"대권 행보는 아니다. 주민투표 문제와 관련된 오세훈 시장의 행보를,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여 주는게 필요하다."
"오 시장은 왜 그렇게 '세게' 나갈까?"
"지난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은 전면 무상급식에는 반대했고, 저소득층부터 단계적으로 30%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한 한명숙 후보는 떨어졌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서울시의원 선거에서 서울 시민은 전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민주당을 절대 다수로 선택했고 곽노현 교육감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오세훈-민주당-곽노현'의 정치적 타협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 시장도 무상급식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타협을 보지 못했다. 시민들은 불안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된다면 최상의 방법은 아닐지라도, 하나의 해결 방안으로 시민들이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주민투표)도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 오세훈이 옳다…김문수는 비굴한 타협"
"무상급식 문제로 오세훈 시장과 인터뷰를 하던 중에 오 시장이 김문수 지사에 대해 '나는 죽었다 깨나도 김문수 지사처럼 못한다'는 말을 했다. 그런가 하면 김문수 지사는 오세훈 시장에 대해 '학생들 밥먹이냐, 안 먹이냐 하는 문제로 주민투표를 해야 하느냐'고 받아쳤다. 서로 처한 환경의 차이에 따른 처방의 차이로 이해하고 어깨동무하고 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왜 그렇게 안될까? 당이 서로 다른 것도 아니고."
"숲을 보느냐 나무를 보느냐의 차이다. 제가 봤을 때 (김문수 지사 방식은) 마지못한 타협이나, 비굴한 타협이다. '무상급식이 보편적 복지의 영역이냐'에 대한 큰 틀에서의 철학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 저는 급식은 보편적 복지의 영역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복지는 그 사회의 발전 속도와 그 사회가 처해진 복지 환경에 따라 계속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보면, 이른바 '4대 보험'이 보편적 복지의 영역이다. 그리고 나머지, 지금 얘기되고 있는 급식, 의료, 보육의 문제는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혜택을 주는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그 사회의 발전 속도,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맞춤형으로 가야 하는 '복지 서비스'의 영역이다. 대한민국에는 지금 250만의 절대 빈곤층, 400만의 근로 빈곤층 그리고 400만의 또 다른 저소득층이 있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것들을 도외시해 놓고 맞춤형 복지에 해당하는 영역을 보편적 복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은 위장된 복지다. 김문수 지사는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복지의 틀 속에서 철학적인 선택을 했어야 했다."
▲ "그래서 한나라당을 '웰빙 정당'이라고 얘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더 치열해야 한다. 전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망설이거나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는 비겁한 사람들도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전면 무상급식은 우선은 달콤하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결국 내 호주머니에서 더 내 놓거나, 내 호주머니에서 내 놓은 세금 중 다른 데 쓰던 것을 무상급식에 쓰는 것이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초등학교 3개 학년을 무상급식 하기로 했다. 문제는 새로운 재정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교육청 예산이 많이 들어갔다. 학교 시설 예산, 이를테면 학교 화장실 개선 예산 1400억 원을 삭감하고 무상급식으로 돌린 것이다. 학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던 사교육 없는 학교, 방과후 학교 운영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이것을 다 설명하면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반대가 많다."
"그런 것들을 잘 설명하면 시민들도 무상급식에 반대하게 된다는데, 일일이 만나 설명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 면에서 정치권이 솔직해져야 한다. 민주당이 '무상복지'로 국민을 솔깃하게 만드는데는 5분이면 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그 허점을 얘기하고, 한나라당의 선별적, 맞춤형 복지를 설명하는데는 50분이 걸린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10배의 노력을 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안타깝게도 당도 그렇고 국회의원들도 그렇고 이 문제와 관련해 진정성 있게 자기 몸을 던져서 하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한나라당 당적을 가진 서울시장이 거의 '올인'하다시피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있는데, 서울지역 의원들 중에 이것을 진정성을 갖고 자기 일처럼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얘긴가?"
"그래서 한나라당을 '웰빙 정당'이라고 얘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더 치열해야 한다. 전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망설이거나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는 비겁한 사람들도 있다. '오세훈 대권행보를 왜 우리가 도와줘야 하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이 추운데 무슨 서명을 받으러 다니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
"많이 섭섭해 하는 것 같다."
"섭섭하다기보다는 답답하다."
"지역 민심? '야, 이거, 내년에 한나라당 어렵다'고 한다"
"권 의원 지역구는 노원을이다. 지역 민심이 어떻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권 의원 힘들지. 더 열심히 해야 하겠더라.' 이렇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면에는 '야, 이거, 내년에 한나라당이 어렵다'는 생각들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걱정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늘었다. 답답하다. 그 분들이 걱정하는 바를 모르는 게 아니다. 나 보고 열심히 하라고 하는 게 권영진 개인에 대한 요구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니까.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좀 잘 해야 하겠다. 이런 얘기니까."
"구민들이 권 의원에게 제일 많이 하는 얘기가 뭔가?"
"주민들 만나면 늘 말씀하시는게 '싸움하지 말라'는 것이다. '초심 잃지 말라'는 것이다. 국회의원 되고 나서 매일처럼 듣는 말이다. 제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번 떨어져 봤기 때문에, 4년 간 원외 생활 하면서 '내가 뭘 할지' 구체적으로 설계했다. 바닥에서부터 주민들 사정 살피고 소통하고 느낀 것이, 결국 정치는 나눔과 실천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 어려운 분들이 너무 많다. 자본주의 사회, 시장 경제에서는 일시적으로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고 낙오자도 있고 뒤처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다시 승자가 될 수 있도록 희망을 가지고 도와줄 수 있는 게 정치다. 그런 정치를 하고 싶다."
"이대로 가면 총선에서 이기기 쉽지 않다고 했다. 권 의원은 경북 안동출신이다. 영남은 그래도 한나라당이 지켜낼 것 같은데?"
"영남 국민들 우습게 보지 말라. 결코 녹록지 않다. 제가 보고 듣고 있는 상황은."
"많은 사람들이 승부는 수도권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권 의원이나, 많은 수도권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금 상태로 가면 안된다'고 생각을 하면 발상의 전환이나 특단의 대책 같은 것을 강구해야 하지 않나. 권 의원은 어떤 생각, 대책을 갖고 있나?"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원론'이 중요하다. 보수 정당이 국민들에게 신뢰받고 지지받는 길은 끊임없이 자기 기득권을 버리고 애국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나라당은 더 치열해야 한다. 더 헌신적이어야 한다. 지금 한나라당의 모습은 기득권에 너무 안주해 있다. 너무 무사안일이다. 이런 생각과 자세부터 바꿔야 한다. 두 번째는 리더십의 문제다. 국민들은 그 정당의 모습을 정당의 지도자를 보면서 선택하고 판단한다. 신뢰받고 믿음을 줄 수 있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 내야 한다."
▲ 권영진 의원과 고성국 박사 ⓒ프레시안(최형락) |
"민주당도 내년 총선 대선을 절대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일단 마땅한 대권 주자가 없다. 민주당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확인은 되지만 당 지지도는 여전히 한나라당에 미치지 못한다. 양쪽 다 고민이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정말 좋은 사람을 공천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좋은 사람을 많이 내 놓느냐, 이 부분에서 1차적으로 승패가 갈릴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당 지도체제 개편이다. 한나라당도 수도권 정면 돌파를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젊고 진취적인 리더십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런 흐름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나?"
"전적으로 공감이다. 정말 젊고 새롭고 진취적인 리더십, 국민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리더십을 전면에 세우는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내년 총선 상황을 얘기할 때 권 의원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았다. 자신의 선거 전망이, 자신이 소속돼 있는 당의 선거 판세가 좋지 않다는 얘긴데 누군들 안 그러겠는가? 그런 중에도 권 의원은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두세 차례 강하게 피력했다. 정치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초선의원의 결기가 읽혀졌다. 그가 초심을 잃지 않게 되기를 바라며 강바람 사나운 국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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