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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기 쓰나미', 진단은 내렸는데 처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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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기 쓰나미', 진단은 내렸는데 처방이 없다?

당청 갈등 봉합 국면…'靑 참모 문책' 등 후속 대책은 '쉬쉬'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사퇴 파동을 둘러싼 여권 내 갈등 구도가 예상보다 빨리 수습국면을 맞고 있다. '갈등이 있는 것으로 비치는 것 자체가 레임덕'이라는 공감대가 급속도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동기 파동 이후'다. 정 후보자의 사퇴는 '악화된 민심 확인에 따른 조치'일 뿐이라는 게 정치권의 지적이다.

'자진 사퇴'를 이끌어낸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를 비롯해, 안 대표에게 "잘 했다"고 박수치고 있는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이번 인사 파동을 계기로 악화된 민심을 되돌릴 후속 대책을 내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청 갈등 수습 국면…이재오 "권력 게임은 없다"

처음 정동기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논란'이 불거졌을 에는 당이 먼저 정동기 후보자 사퇴를 요구했고, 청와대가 강하게 반발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이 때문에 안상수 대표가 사안의 주도권을 쥔 듯 했다. 그러나 이후 김무성 원내대표가 "나는 동의한 적 없다"고 사실상 안 대표를 비판하면서 실추된 청와대 이미지를 되살려 놓았다. 결국 당청간 갈등의 균형추를 신속하게 맞춘 셈이 됐고, 서로 자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안상수 대표의 '입'인 안형환 대변인은 12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당분간 안 대표는 말을 아낄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원내대표 역시 전날 안 대표 등과 오찬을 하며 "갈등을 확산시키지 말자"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 12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나라당 지도부 ⓒ뉴시스

'이재오-안상수 VS 이상득-임태희 권력 투쟁설'의 중심에 섰던 이재오 특임장관은 이날 오전 열린 당 중앙위원회 신년하례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언론들이)내가 2인자라면서 왕의 남자라고 하던데, (그런 내가) 누구와 파워게임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언론이 제기하는 당청 갈등론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내심을 강한 어조로 피력한 것이다. 이 장관은 "이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일하는 것이 국회의원과 장관이 할 일"이라며 "아직 임기가 2년이나 남았는데 어설프게 그런 일을 하는 건 정신이 없는 짓"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당내 개혁파들 사이에서도 "청와대를 더이상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기류가 엿보인다. 정태근 의원은 정동기 후보자 사퇴와 관련해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지도부의 판단을 다수 한나라당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평하면서도, 이번 인사를 책임진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 참모진 경질에 대해서는 사실상 반대 의견을 표했다.

정 의원은 "책임(문책) 문제를 논하기 앞서서 (임태희)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들이 정말 대통령을 최선을 다해서 모시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문하고 자성할 필요가 있다"며 참모진 '경질' 혹은 '사퇴 요구'와 같은 민감한 문제를 비켜갔다. 이미 당 지도부는 "청와대 참모 문책은 없다"는데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한나라, '민심 악화' 진단은 했다…처방전은 언제 내나?

문제는 갈등 수습 이후다. 당청간 갈등만 수습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동기 후보자 사퇴는 '민심 진단'에 따른 것 뿐이고, 결국 관건은 '민심 수습용 후속 대책'이 될 전망이다. 이를 빨리 내놓지 못하면 '정동기 사태'는 현 정부 들어 항상 있어왔던 '인사파동'의 의미에서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시급한 것은 후임 인선 문제다. 당 일각에서는 "어차피 측근 기용이 실패로 귀결됐다면 측근이 아닌, 중립적인 인사를 감사원장에 내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들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관료를 지내면서 정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의 이름도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두 번째는 인사 라인 문책이다. 이와 관련해 당청 갈등 국면에서 "청와대 참모 문책론"을 매번 들고 나왔던 정태근 의원이 임 실장 문책론을 거론하지 않은 부분은 주목된다. 한나라당이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청와대에 끌려만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를 덜컥 낙마시킨 한나라당은 스스로 벌인 일에도 화들짝 놀라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다"고 촌평했다.

당이 이런 상황인데다, 청와대 참모들이 이 대통령에게 직언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면 상황은 비관적이다. "정동기 후보자에 대한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이명박 대통령에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이 대통령에게 떠넘기는 참모진이 존재하는 한 '민심 수습'은 물 건너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대통령이 이번에는 어떤 인사를 감사원장에 내정할지,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노력을 할지는 미지수다. 또다시 부적절한 인사를 기용할 경우 같은 갈등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영포라인' 결국 못 털고 가…정권 말까지 부담으로 남을 듯

개각의 배경에 이상득 의원이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명박 정부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영포라인'을 털고 가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는 정동기 후보자의 '전관예우' 논란이 한창일 때, "가장 큰 문제는 전관예우가 아니라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라고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였었다.

특히 이번 인사 파동의 핵심에는 '영포라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명식 인사비서관 있다. 현재 한나라당 소장파 중심으로 "임태희 실장은 청와대의 '얼굴'이라 부담스럽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영포 라인인 김 비서관 정도는 경질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김 비서관을 필두로 영포라인 '수술'이 이뤄져야 하는데 "문책은 없다"는 당 지도부의 입장 때문에 소장파의 요구가 힘을 받을지, 혹은 소장파가 행동에 나설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민간인 사찰 문제가 여권의 '핵폭탄'으로 여전히 노정돼 있는 상황에서, 그 '주역' 중 하나로 의심받던 인물을 검증할 기회가 없어진 것은 단기적으로 한나라당에 '득'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가능성이 많다. 정권 말기까지도 '민간인 사찰' 부분은 두고 두고 이명박 정부의 꼬리표가 될 전망이다. 야당이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데다, '민간인 불법 사찰'을 주도한 '영포 라인'이 청와대에 사찰 보고를 했다는 새로운 정황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2009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국회에 보낸 설명 자료를 통해 "청와대(민정수석실)에서 특정사안에 대해 보고 요구가 있는 경우 보고를 한다"고 했던 사실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출범해 민간인 불법 사찰이 이뤄졌던 시기는 정 후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던 시기와 맞아 떨어진다.

여권의 다양한 세력이 각자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시간은 계속 가고 있다. 4월에는 재보선이 있고,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있다. 한나라당이 악화된 민심을 읽는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정동기 후보자를 의미 없는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정동기 사퇴 촉구'라는 '선상반란' 이상의 카드를 내 놓아야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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