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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누리는 '포용적 건강보장 체제'로 가는 길

[서리풀 연구通] '사각 지대' 없는 건강보장을 위하여

새 정부가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국정전략으로 내세웠다. 보건복지부는 그 설계도를 만들기 위한 협의회를 구성하고, 지난 9월 11일 첫 회의를 개최했다.


'포용적 복지국가'의 구조와 구성 원리에 대해, 앞으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복지 사각지대를 복지체계 안으로 포용하고, 경제발전 수준에 걸맞게 복지급여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라는 의견(☞관련 기사 : 포용적 복지국가), "계층, 제도, 급여, 그리고 정책영역, 네 가지 차원에서 배제를 거부하고 포용하는 복지국가"라는 의견(☞관련 기사 : 어떤 포용적 복지국가인가?) 등이 이미 제안된 바 있다.


더불어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복지국가의 한 영역으로서 건강보험을 넘어선 '건강보장체제'라는 접근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문재인 케어'가 내세우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만으로는 '건강보장'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관련 자료 : "문제는 '건강 보장'이다").


오늘은 '포용적 건강보장체제'라는 관점에서, '건강보험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연구를 소개한다. 최근 < Hygiea Internationalis >지에 게재된 중국 쑨얏센 대학 사회학과 Jiong Tu 교수의 '구별과 규율로서의 건강보험 체제 : 중국의 건강보험 개혁'이라는 논문이다.

먼저 중국 건강보장체제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1950~70년대 집체경제기에는 국가가 인구집단에게 보편적으로 기본적 보건의료를 제공했지만, 1980년대 개혁개방에 따라 보건의료 체계도 변화를 겪었다. 국가가 운영하고 재원 조달하는 의료로부터, 사적으로 재원 조달하고 제공되는 의료로의 변화였다.


무엇보다 소농을 대상으로 하던 '협동의료제도(CMS)'의 붕괴는 중국의 건강보장인구 비율을 최저 수준까지 떨어뜨렸다. 보편적으로 가용했던 기본적 보건서비스는 더 이상 모두에게 가용하지 않았다. 개인의 의료비 부담은 급속히 증가했다. 일부 사람들은 질병으로 인해 빈곤선 이하로 추락했다. 2000년 중국은 보건의료 재원조달의 공평성 평가에서 세계보건기구(WHO) 가입 191개국 중 188위를 차지했다.


2003년 사스(SARS) 대유행은 중국 건강보장체제의 전환점이 되었다. 2009년, 중국 정부는 기존의 시장적 변화 경로를 되돌리기 위한 새로운 보건의료 개혁 계획을 발표했다. 기본적 보건의료를 보편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보건체계를 수립하겠다는 목표였다.


모든 사람에게 보험을 제공하는 기본적 건강보험체계의 수립이 주요 의제로 포함되었다. 건강보험체계는 크게 ① 도시 노동자를 위한 건강보험 (정부, 고용주, 고용인에 의해 재원 조달), ② 실업 상태의 도시 거주자를 위한 건강보험 (거주자 보험료에 의해 조달하되 정부가 재원을 보조), ③ 농촌 거주자를 위한 새로운 협동의료보험제도 (정부와 개인들에 의해 재원조달), 세 종류로 구성되었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이 건강보험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급했으며, 중증질환자와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환자들을 위한 의료비 지원 체계를 운영했다. 국가 건강보험을 보완하는 목적에서 상업적 보험도 권장되었다. 그 결과 어떤 형태로든 건강보험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2003년 인구집단의 1/3에서 2011년 95%까지 증가했다.

연구자는 이러한 중국 건강보장체제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건강보험 제도의 기능을 분석하고자 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 쓰촨성 R현에서 민족지 연구를 수행했다. 환자, 전문가, 보건행정가 및 관료들과의 반 구조화된 면담과 대화, 의료기관에서의 참여관찰, 문헌연구 등이 이뤄졌다.

R현의 보건전문가들은 건강보험 프로그램이 새로운 보건의료 개혁에서 가장 (혹은 유일하게) 성공적인 영역이라고 주장했지만, 연구자는 보다 비판적 관점을 택했다.

흔히 사회보험의 원리는 '정의'와 '사회연대'로, 상해의 원인을 가려 사고 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적 모델'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중국의 새로운 건강보험 제도는 두 가지 상반된 원리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사회연대의 목적에서 조직되었지만, 실제 제도의 실행은 사법적 모델을 따랐다.


예컨대 세 종류의 건강보험제도는 공통적으로 ① 교통사고, 의료사고 등 부주의로 인한 사고로 입은 상해, ② 약물, 폭행 등 불법적 행동으로 입은 상해, ③ 자해, 자살,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치료, ④ 자의에 따른 의학적 치료 (거주지 외 병원 방문 혹은 진료의뢰 없이 상급병원 방문), ⑤ 출생계획 정책에 부합되지 않는 의학적 치료에 대해 보상하지 않았다.

중증질환자,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환자들을 위한 의료비 지원 체계는 항상 신청자에 비해 재원이 부족했다. 2009년에는 3만 위안을 초과하여 의료비를 지출한 415명의 중증질환자에게 약 114만 위안이 지원되었는데, 신청자 1인당 평균 2700위안을 받은 셈이었다.

이 조차도 건강보험 급여가 최종 승인된 뒤에야 신청이 가능했다. 환자들은 먼저 자비로 의료비를 지출하고 나중에 보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제도와 지역에 따라 분절된 건강보장체제는 이 모든 과정을 복잡하고 오래 걸리게 했다. 어떤 환자는 최초 입원 뒤 몇 달을 걸려 최종 '전액 비급여'를 통보받기도 했다.

연구자는 새로운 건강보험이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고 분석했다. 첫째, 환자의 '자격'에 대한 정의는, 보험 재정을 보호하기 위한 '문지기'로 기능하면서 환자들 간의 새로운 구별과 차별, 불평등을 낳았다. 둘째, 건강보험 정책은 다른 국가 정책들 (가구 등록, 인구 통제, 고용 지위 등)과 결합되어 '범주'와 '자격'을 만들어냈고, 이는 환자들을 '선별'과 '자산조사'라는 구조에 종속시켰다. 셋째, 건강보험 정책은 새로운 감시와 통제의 기전을 통해 '권한'을 제공했고, 더 효율적인 '통치'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연구자가 보기에 환자들은, 단순히 정해진 보험 규칙에 굴복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었다. 예컨대 일자리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직장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 사고를 당한 뒤 보험을 가진 친지의 이름으로 등록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러한 능력에 한계가 있다. 게다가 단기적으로는 이러한 전략이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이들이 체제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환자들은 구조와 자격 기준에 저항하기보다는, 기준에 맞게 스스로를 개조한다.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체제 안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연구자는 '동등하고 양도 불가능한 권리'에 기초하지 않은 보건의료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개개인의 실존적 필요가 정치경제, 제도로부터 침해당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기본적 보건의료에 대한 권리는 '자격'이 아니라 모든 신체가 필수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취약성', 모든 개인의 '삶에 대한 권리'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적 복지국가, 특히 완전고용을 전제로 하는 사회보험 제도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같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 체납자 등 각종 사각지대가 바로 그 결과다. 대안으로, 세계 각국에서는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관련 자료). 한국에서도 지방자치단체의 청년배당 혹은 청년수당, 소셜 펀딩을 통한 기본소득 실험 등이 진행 중이다(관련 자료).


일각에서는 복지국가조차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한 한국에서 기본소득은 시기상조라는 우려를 표한다(
관련 기사 : 기본소득보다 복지국가가 먼저다, 기본소득보다 사회보장이 우선). 기본소득 보장이 복지국가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추구하는 가치가 전통적 사회보험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도 명백하다. '자격'을 따지지 않는 것.


'포용적 건강보장체제'를 복지국가의 연장으로 볼 수도, 또는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논의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그 원리는 '포용하는 자'와 '포용을 받는 자'를 구분하지 않는, 보편적, 무조건적이고, '이용 시점에서 무료'인 건강보장체제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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