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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과 2017년 사이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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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과 2017년 사이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김경욱의 데자뷔] 영화의 시대가 끝나는 징후 <블레이드 러너 2049>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해 개봉될 할리우드영화 목록을 접했을 때, 가장 기대를 했던 영화가 <블레이드 러너 2049>였다. 이 영화의 전작인 <블레이드 러너>(1982)를 연출한 리들리 스콧이 제작하고, 드니 빌뇌브가 감독을 맡았으며, 해리슨 포드가 등장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블레이드 러너>는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한, '저주받은 걸작'(영화사를 빛낼 SF영화의 걸작이다)으로 잘 알려져 있다. 쟁쟁한 흥행영화들(대표적인 예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E.T.>)에 치인 탓도 있었지만, 할리우드의 상업영화로 접근한 대중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영화였다.

예를 들어 도입부를 보면, 타이렐사가 만든 복제인간 '리플리컨트'와 리플리컨트를 제거하는 특수경찰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 설명하는 자막이 올라가는데, 당시로서는 접하자마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블레이드 러너 웨버는 튜링테스트를 통해 리온이 리플리컨트인지에 대한 식별을 시도한다. 웨버는 사막에서 뒤집혀진 자라가 버둥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예시를 통해 '감정'을 가늠하고, '추억에 대해,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해보라'고 하면서 '기억'의 유무를 판단하려고 한다. 인간과 리플리컨트를 가르는 잣대로서 감정과 기억(시간과 경험)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 장면 또한 보자마자 그 진의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제작진은 영화가 너무 어렵다고 판단해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가 설명하는 내레이션을 추가하기도 했으나 난관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35년이 흐르는 동안 <블레이드 러너>에서 제시한 토픽들은 클리셰가 되었고, 리플리컨트가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 시대가 되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제작진들은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면서, 전편과 미묘하게 대구를 이루는 속편을 만들었다.

전편의 2019년에서 30년 후인 2049년,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는 영화 첫 장면에서 리플리컨트 새퍼를 제거한다. 튜링테스트 중에 리온이 웨버를 살해하는 장면과 반대되는 설정이다. K는 새퍼의 은신처를 수색하다가 리플리컨트 레이첼의 사체를 발견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생식능력이 불가능한 리플리컨트에게 출산의 흔적이 있다. 아마도 데커드와 레이첼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살아남은 것으로 판단되자, K는 그 아이를 찾는 임무를 맡게 된다.

전편에서 데커드를 중심으로 제기된 가장 큰 쟁점은 그가 리플리컨트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였다. 1982년의 제작자판에서는 데커드가 인간으로 설정되었다. 따라서 리플리컨트 로이가 자신을 제거하려고 하는 데커드를 죽을 위기에서 구해줄 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인간(타이렐사의 모토이기도 하다)에 대해 논하면서 ‘인간성’에 대한 많은 말들이 오갔다. 그런데 1992년에 재개봉된 감독판에서, 리들리 스콧은 데커드의 내레이션과 해피엔딩의 장면을 제거하고, 데커드의 유니콘 꿈 장면을 추가했다. 이 장면을 통해 데커드를 리플리컨트로 볼 수 있는 여지가 훨씬 커졌다. 그 결과 데커드의 정체성을 둘러싼 더 많은 말들이 회자되었다.

▲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그러나 속편에서는 K가 리플리컨트인지 여부는 더 이상 쟁점이 아니다. K는 자신이 리플리컨트인지 잘 알고 있다. 전편의 로이와 비견되는 리플리컨트 여성전사 러브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정의 문제가 더 이상 인간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아님을 명시한다. 문제는 K가 리플리컨트의 아이를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여러 가지 정황에 따라 그는 자신이 혹시 그 아이가 아닐까 의심하게 되고, 정체성 문제가 전편에서 변형된 형태로 다시 쟁점이 된다. 그가 진짜 그 아이라면 그는 완전히 다른 리플리컨트 K가 되는 셈이다. 그는 필름느와르의 주인공처럼 사건을 해결하려다 자신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전편에서, 우주 식민지를 개척하는 용도였던 리플리컨트들이 지구로 찾아온 이유는 4년으로 제한된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리더인 로이는 자신의 창조주 타이렐을 찾아가 "아버지, 더 살게 해 주세요"라고 요구한다. 속편의 K는 아버지로 추정되는 데커드를 찾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한다. 그 과정이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드니 빌뇌브는 매우 느린 속도의 리듬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연출 솜씨를 한껏 펼쳐놓는다. 로이의 요구에 대해 타이렐은 '만들 때 결정되었기 때문에 수명 연장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한다. 데커드는 K가 듣고 싶었던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대사 "내가 네 아버지다"가 아니라, "너는 내 아이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데커드가 자신의 딸과 마주할 때, K는 눈이 내리는 그 건물 바깥 계단에서 죽은 듯 쓰러져있다. 이러한 설정은 전편의 대구 또는 필름느와르의 컨벤션, 반전의 효과 등으로 보면 설명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K의 의문이 해결되는 이 지점부터 영화는 페이스를 잃고 전형적인 액션영화의 틀을 따라간다. 더 나은 대안은 없었는지, 아쉬운 대목이다.
전편에서, 튜링테스트를 할 때 웨버는 리온의 대답과 표정뿐만 아니라 동공의 반응에 집중한다. 또 눈의 클로즈업 쇼트가 반복되는 등, 이 영화에서는 현대문명이 시각중심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의식한 설정이 많다. 로이는 ‘남은 시간을 충실하게 살라’고 충고하는 아버지 타이렐의 두 눈을 찔러 죽인다. 속편에서, 천재과학자 니앤더 웰레스는 파산한 타이렐사를 인수해 다시 리플리컨트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는 두 눈이 망가진 상태이다. 이것은 도수가 아주 높은 안경을 쓰고 있다 눈이 찔려 죽은 타이렐과 대구를 이루면서, 시각중심주의 문명에 대한 아이러니한 태도를 보여준다. 아울러 그가 타이렐을 복제한 리플리컨트는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전편과 속편의 또 다른 대구는 데커드와 레이첼, K와 조이 커플이다. 전자가 사랑에 빠져서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한다면, 후자는 K가 필요할 때 조이를 불러내어 욕망을 충족하는 식이다. 전자가 고전적인 로맨스 커플이라면, 후자는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인스턴트 커플이라고 할 수 있다.

전편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열광하게 만든 많은 요소들 가운데 특히 L.A를 배경으로 한 공간의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거대한 첨단 네온사인과 고대 피라미드를 닮은 타이렐 빌딩, 도쿄와 홍콩 등의 도시 풍경이 혼재한 거리 등은 패스티시(혼성모방)의 전시장이었다. 후편에서는 이러한 공간 이미지를 답습하거나 변형했다. 그 가운데 고아원을 묘사한 장면을 보면, 열악한 환경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기계쓰레기더미에서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고 있다. 이 장면에서 빈곤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쓰레기장을 뒤진다는 뉴스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1982년과 2017년 사이,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광풍을 경험했다. 영화의 비참하기 짝이 없는 고아원 장면이 현실이 되어버린 시대를 통과해 어쩌면 그 끝자락에 와 있다. 1982년의 <블레이드 러너>는 시대를 앞서가면서 세계화의 문화적 버전인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2017년의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 제작진의 한계 일 수도 있지만, 영화의 시대가 끝나는 징후처럼 보여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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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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