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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에서 핵에너지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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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에서 핵에너지를 생각하다

[김경욱의 데자뷔] 원폭 이후 성장을 거듭한 일본을 은유하는 <아키라>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패니메이션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공각기동대>(1995), <아키라>(1988)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다 좋은데, ‘열광’의 정도가 좀 덜한 편이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던 <아키라>가 재개봉했다. 이 애니메이션은 1989년, 미국과 유럽에서 개봉되어 비평가들의 찬사와 흥행성공을 거두면서, 서구에 저패니메이션의 붐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당시 서구관객들은 주로 아동들을 대상으로 제작되어 왔던 애니메이션에 디스토피아와 세계의 종말 등의 주제를 담아 넣은 <아키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은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오토모 가츠히로가 연재한, 2000 페이지에 이르는 만화이다. 오토모는 1982년에 개봉된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의 영향을 받아 [아키라]를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키라>는 3차 세계대전의 도쿄 대폭발이 일어난 1988년 7월 16일(영화의 최초 개봉일이기도 하다. 같은 해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의 토토로>가 개봉해, 1988년은 저패니메이션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가 되었다)로부터 31년이 지난 2019년에서 시작하는데, <블레이드 러너>의 2019년과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아키라>의 네오 도쿄 이미지는 <블레이드 러너>의 L.A와 비슷하다(사진1과 사진2 참고). 영향의 흔적은 더 찾아볼 수 있다.

▲ 사진 1.

▲ 사진 2.

<아키라>의 주인공 테츠오(鐵男)는 직업훈련학교에 다니는 고아소년이다. 선생들이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 열악한 환경에서, 테츠오를 비롯한 아이들은 오토바이 폭주족으로 거리를 누비며 패싸움을 일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테츠오는 초능력 개발 실험체 어린이와 충돌하고 나서 정부의 비밀연구소로 끌려간다.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테츠오에게 엄청난 초능력(염동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테츠오가 '아키라'에 맞먹는 초능력을 갖고 있다고 추정한다. 오래 전, 소년 아키라는 너무 엄청난 초능력으로 인해 문제가 생겨 생체 분해된 상태로 냉동보관소에 유폐되었다. 아키라를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리키는 동시에 인류 진화와 문명의 원천으로 해석하면,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모노리스(Monolith)를 떠올리게 된다. 아키라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생체 실험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세 명의 아이들을 돌연변이로 만들어버렸다.

테츠오는 연구소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초능력을 각성하게 된다. 만일 그가 마블이나 DC 코믹스에 기반 한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이었다면 슈퍼히어로로 재탄생했을 것이다. 데츠오와 처지가 비슷한 아웃사이더 피터 파커를 예로 들면, 그는 거미에 물린 다음 가지게 된 초능력을 통해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한다. 그는 자신의 초능력을 공동체 더 나아가 인류의 안위를 위해 사용함으로써 슈퍼히어로가 된다.

반면 테츠오는 자신의 초능력을 제어하지 못한 채 폭주하게 되면서,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안티히어로가 된다. 그는 악령에 사로잡힌 <엑소시스트>(1973)의 소녀 또는 염동력을 보유한 <캐리>(1976)의 소녀처럼, 자신의 힘에 압도되어 점점 괴물로 변해가면서 주변사람들과 결국은 자기 자신까지 파괴한다. 슈퍼히어로처럼 '붉은 색 망토'를 걸치기는 하지만, 공포영화의 주인공의 운명을 따라간다.

테츠오와 달리 저패니메이션의 주인공이 슈퍼히어로처럼 될 수 있는 순간은 거대한 로봇이나 생체병기 같은 것에 올라탔을 때이다. 예를 들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소년 신지는 생체 전투병기 에바를 조정해서 인류를 위협하는 사도와 맞서 싸운다. 반면에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들은 자신의 신체 자체가 막강한 병기로 변신해 직접 대적한다. 여기서 서양인들의 거대한 신체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등감을 읽을 수 있다. 만일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신체의 차이에 대한 문제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을 것이다.

테츠오가 사춘기 소년이라는 점에 주목해 그의 초능력의 원천이자 폭주하는 원인을 생각해보면, 부모에게 버려진 분노 그리고 친구 카네다에 대한 시기심과 열등감을 들 수 있다. 테츠오는 소심하고 나약한 소년으로서, 고아원에 온 첫날부터 카네다의 도움을 받고 의존하게 된다. 폭주족의 리어가 되는 카네다는 싸움 잘하고 의리 있고 용감한 소년이다. 테츠오는 초능력을 사용해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카네다를 제압하려고 한다. 그는 어떤 어른의 말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반항하고 공격한다. 테츠오가 폭주하면서 그의 신체는 기괴하게 변형되어 간다. 그러므로 <아키라>는 통제할 수 없는 신체의 변화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키라>는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절정에 이른 시기에 등장했다. 오토모는 전후 경제성장의 기적을 냉소하듯 테츠오를 통해 네오 도쿄를 파괴한다. 네오 도쿄는 고층빌딩이 즐비한 첨단 도시지만, 폭주족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의 공간이다. 그리고 경제성장 뒤에 감추어진 일본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낸다. 경찰들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고, 과학자들은 사태를 방관하면서 무책임하게 위험한 실험을 계속한다. 군국주의 국가인 듯, 군의 지휘관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일반 시민들은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수수방관 한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떼 지어 다니며 쉽게 선동당하는 군중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아키라>는 원자폭탄으로 막을 내린 2차 세계대전 이후 성장을 거듭한 일본사회를 은유하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무대는 경제성장을 과시하려고 유치했던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연상하게 만든다. 파괴된 올림픽 경기장의 왕좌 주변에는 아키라의 신체가 담긴 캡슐들이 놓여있다(사진3). 인류의 진화와 발전을 명목으로 행해지는 과학기술의 위험성과 실패를 경고하는 산물이다. 이 상징적인 공간에서 테츠오와 돌연변이 아이들은 아키라의 빛 속으로 합체되고, 그 빛은 도시를 거의 파괴시킨 다음 우주로 사라진다. 그 중 한 아이는 빛 속으로 사라져가면서 인류의 진화를 예고하듯 '우리에게 이미 시작되고 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마지막 장면처럼, 데츠오의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붉은 망토의 테츠오와 밝다는 의미의 아키라의 합체는 일장기를 상징하며, 새로운 일본의 탄생을 기약한다. 폐허가 된 도시 곳곳에 구원처럼 빛이 비추고 푸른 하늘이 점점 나타날 때, 카네다 일행은 신나게 오토바이를 질주해간다. 이것은 해피엔딩인가? 오토모가 꿈꾸는 새로운 인간, 새로운 세계(일본)는 어떤 것일까?

▲ 사진 3.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해 초능력을 가진 새로운 인간으로 도약할 수 있다면,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패했을 때의 위험이 너무 크다. 이러한 설정은 전쟁의 패배와 원폭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것 같다. 아키라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면 너무나 위험한 핵에너지로 본다면, 올림픽 경기장이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오버랩 된다(다시 보면서 묵시록을 접한 듯 기이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므로 위에서 인용한 대사처럼,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모든 것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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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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