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3일 기자회견은 G20에 무게를 실은 것이었지만, 그간 알려진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 강조됐던 탓에 오히려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았다.
특히 FTA와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중국 및 일본과 FTA에 대해 미온적 모습을 보인 점, 개헌 대신 행정구역과 선거제도 개편에 방점을 찍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과 중국-일본은 다르다?
FTA 문제에 대해선 블룸버그 통신, 니케이 신문 등 해외 언론의 질의가 집중됐다.
이 대통령은 미국과의 FTA는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일본과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국내 수출산업의 피해를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며 "(한미 FTA는) 한미 양국뿐 아니라 세계에 주는 영향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미국과 FTA 체결에 적극성을 보이는 이유는 대외적으로 G20을 앞두고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대내적으로는 한미동맹 강화를 재확인 하는 차원일 수 있다.
실제 이 대통령은 "한미 FTA는 세계 경제에 자유무역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도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각시켰으며 "한미관계는 동맹이라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한국은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불가 방침을 고수했고, 미국은 한국의 자동차 수입 확대를 요구해 왔다. 재협상은 초점도 이 두 분야에서 양국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맞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일본, 중국과의 FTA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한중일) 3개국은 사실은 농산물이나 중소기업 보호차원에서 예민한 분야가 있다"며 "이 분야가 각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정서적, 정치적으로 많은 영향이 있어 그런 문제를 넘어서 (FTA를 추진)하기 힘들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는 일본, 중국과 FTA를 원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일본도 어떻게 하면 한국과 FTA를 할 때 윈윈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일본의 이익만 생각하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취임 당시부터 자유무역주의를 강조한 이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인 발언이다. 원론적 차원에서 "좋은 것"이라는 수준의 말로 그친 게 아니라, 양국의 이해관계자의 반발을 선명하게 부각시킬 정도로 메시지도 분명했다. 과거 참여정부 당시 양국은 FTA 체결을 추진했으나 국내 제조업체, 일본 농가의 반발로 논의를 중단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다만 무조건적 FTA 반대로 비춰질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3개국 학자와 전문가가 모여서 FTA의 가능성과 타당성에 대한 검토를 끝냈다. 2012년까지 2차 보고를 위해 연구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경제이슈 다룰 기구 G20 유일하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의 많은 시간을 G20의 의의를 강조하는데 할애했다. 세계 각국 정상이 서울 정상회의에서 결과물을 도출할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결과적으로 G20를 강력하게 홍보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 대통령은 "많은 정상들이 G20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고, 적극적 지지를 보냈다"며 "개별적으로 만나기도 했고, 만나지 못한 사람은 전화로 통화하면서 뭔가 G20에서는 우리가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또 "세계 모든 정상들이 세계의 중요 경제 이슈를 다룰 수 있는 것은 G20밖에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며 "세계가 위기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정상간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달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각국은 '시장결정적' 환율제도를 따르고, 경상수지 규모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자는 내용의 경상수지목표제를 도입키로 합의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번 경주 합의는 환율 하나만이 아니라 경상수지라는 종합적 평가를 갖고 (각국의 환율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었다"며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G20 정상회의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주도한 의제(코리아 이니셔티브)인 저개발국 개발 의제와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최빈국의 경제성장은 빈국만을 위한 게 아니라 빈국 경제가 성장해 수요를 창출하고, 선진국에도 도움이 된다"며 "G20 정상회의는 G20 국가만의 이해를 다루는 기구가 아니라, 빈국과 개발도상국도 다루는 게 주요 의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북한에 보낼 특별한 시그널은 없어
이 대통령의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G20' 이후에 대한 전망을 가능케 하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먼저 대북 문제와 관련해, 여권 주변에서도 "이렇게 꽉 막힌 상태로 계속 갈 순 없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지만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그같은 전망을 무색케 했다.
이 대통령은 개발의제를 강조하면서 "빈국과 개발도상국이 대부분인 G20 비회원국 170개국의 발전을 돕는 것이 그 나라 뿐 아니라 선진국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수차례 힘주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빈국의 하나인 북한도 해당될 수 있다"고도 말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문제 등에 대해선 직접적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국제사회에 참여', '중국과 같은 모델로 개방'을 전제조건으로 걸고 "언제든지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 있다. 북한 당국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임태희 대통령실장도 "공은 북한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의지와 성사조건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아예 답하지 않았다.
청와대와 정부가 G20 이후를 내다보고 대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물밑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별다른 전향적 시그널을 공개적으로 전달할 뜻이 없음을 이날 분명히 한 것이다.
선거제도 변화, 과연 가능할까?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서 이 대통령은 개헌 논의에선 발을 뺄 뜻을 밝혔지만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 논의에 시동을 걸 뜻을 분명히 했다.
행정구역 개편 문제는 애초부터 이명박 정부의 역점사업이긴 했다. 하지만 여권의 지역적 기반인 영남에서조차 호응이 크지 않았고 마산-창원-진해 통합 외엔 별다른 성과를 낳지 못했었다. 도 폐지 방안에 대해선 김문수 지사가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비효율적 행정구역을 개편해야한다는 취지 자체에 대해선 공감이 적지 않은 편이지만 구체적 국면에 들어가면 걸림돌이 매우 많고 엄청난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과연 현 상황에서 소모적 논란과 비용을 무릅쓸만큼 시급한 의제냐는 질문에 여론이 어떻게 답할지도 미지수다.
선거제도 개편도 마찬가지다. 행정구역이 개편되면 현행 선거구도 바뀔 수 있지만,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과거 논의에서도 선거구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었다. 또 이 대통령이 지역감정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호남에서도 다른 당이, 영남에서도 또 그 반대 당의 정치인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연정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경우에 따라선 시민사회나 야당 일부의 동의도 이끌어 낼 만한 정당성이 깔려 있긴 하다.
하지만 대선과 총선을 앞둔 정략적 제안이라는 반발이 뒤따를 수 있다. 게다가 이 문제는 한나라당 내 친이와 친박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릴 수 있는 사안이다. 수도권 현역 의원에 대한 불신임률이 극히 높았던 최근 여론조사가 보여주듯, 차기 총선에 대한 수도권 친이계의 불안감은 심각하다. 이들은 중대선거구제를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영남권 친박계는 사정이 다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