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사이버사령부 등 이명박 정부 국가기관에 의한 정치공작 의혹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당시 국정원의 '심리전' 대상에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간질"이라며 개의치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벌이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적폐 청산'에 대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걸어 맞대응을 시도하고 있다.
홍 대표는 26일 오전 서울 송파우체국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나, 전날 국정원 개혁위가 자신과 원희룡 제주지사, 안상수 창원시장, 권영세·정두언 전 의원 등 당시 여당 인사들도 국정원의 '심리전' 대상이 됐다고 발표한 데 대해 "말도 안 된다. 이간질을 붙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이 정부 국정원은 할 일이 없나. 과연 국정원이 필요한가 의심된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앞장서서 강아지처럼 앞장서서 저 짓을 하는데, 그런 기관에 국민 세금을 수 조 원씩 주고 존치시킬 필요가 있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이가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간질을 붙이려는 게 비열하다"고 했다.
한국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있었던 국정원의 정치 공작 등 '적폐' 청산 작업에 대해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부부싸움 끝에 권양숙 씨가 가출하고 혼자 남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벌어진 것도 그 단면이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인 정 전 원내대표가 이런 글을 올린 것 자체는 우발성 사고일 수 있지만, 이후 한국당 지도부의 대응은 의미심장하다. 정 전 원내대표 사태를 '진화'하려는 게 아니라 고의로 키우고 있는 것.
전날 홍 대표는 정 전 원내대표의 글에 대해 "결국 노 전 대통령의 640만 달러 뇌물 사건의 재수사나 범죄 수익 환수 문제에 귀착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했다. 이날 정우택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제 어쩔 수 없이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과 관련된 640만 달러 뇌물수수의 진상과 돈의 행방, 자살 경위 등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 재임 중 일가가 수백만 달러 뇌물을 받은 것은 덮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고, 이를 규명하는 것이 적폐 청산"이라며 "검찰 수뇌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의문이 있는 만큼 특검을 통해 모든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한국당이 특검법을 제출해 놓았기 때문에 당의 입장에서 특검법이 이뤄지도록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국정감사 대책 회의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적폐' 운운하고 있지만 북한이 핵폭탄과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도록 엄청난 액수를 '퍼준'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다. 대북정책 '원조 적폐'"라며 "국정원을 동원해서 정치인과 국민에 대한 대대적 불법 도청을 일삼은 것도 김대중 정권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을 노골적으로 탄압하고, 현직 대통령 일가가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것도 언론 탄압, 부정부패 '원조 적폐'"라며 "문재인 정권이 이러한 '원조 적폐'에는 눈을 감은 채 전임 정권이 한 일을 모두 적폐라고 부르면서 보복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은 위선이고 자가당착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비리도 같이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이 이처럼 현직 당 대표에 대한 국가기관의 사찰 의혹까지 못본 체하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적폐 청산'이라는 의제 자체가 한국당에 불리하다는 판단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전날 국정원 개혁위 발표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백혜련 대변인 논평에서 "'MB 정부 비판세력 제압활동' 보고서는 MB 정부 국정원의 비열하고 은밀한 정치공작의 민낯이 드러난 것으로 충격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백 대변인은 "당시 국정원은 국민의 혈세를 이용하여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위기구로서 역할을 한 것이고, 이 자체만으로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는 또 다른 헌정을 유린한 범죄"라며 "성역 없는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이날 의원총회에서 "국가기관을 동원한 천인공노할 행태는 반드시 단죄해야 한다"며 "이번에 제대로 단죄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행태는 언제든지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노 원내대표는 "그 단죄의 정점에 이 전 대통령이 있습니다. MB를 단호히 조사하고 조금이라도 관여사항이 나올 경우 응당 사법처리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국민의당은 이행자 대변인 논평에서 "관련된 사람이 누구이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며 "한국당 등 보수 야당은 진상 규명을 '보복정치' 운운하며 물타기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다만 당내 일각에서는 경계론이 나오기도 했다. 이용호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집권 여당이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은 좋지 않다. 전전 대통령 이름이 거론되고 거기에 전전전 대통령 이름이 거론되며 맞서는 상황"이라며 "적폐 청산은 필요하나, 그게 한풀이 굿판이 되어 국론 분열의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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