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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사는 우리도 생활권이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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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사는 우리도 생활권이 있지 않나"

[현장] 강남 세곡지구 세입자들의 '보금자리'는 어디에…

강남 재건축 아파트와 전세 시장을 중심으로 수도권 집값이 들썩이면서 정부가 '공급 확대'라는 해법을 내놓았다. 수도권 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들어설 보금자리 주택을 늘리는 방안이다. 애초 2018년까지 단계적으로 풀릴 예정이었던 보금자리 주택의 공급 시기를 앞당겨 2012년까지 20만 호 늘어난 32만 호를 공급할 예정이다. 2012년까지 수도권 전체에 공급될 물량도 40만 호에서 60만 호로 늘어난다.

주변시세의 절반에 분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에 앞다퉈 '보금자리주택 청약 방법' 등이 보도되는 등 한껏 들뜬 분위기다. 하지만 정작 개발 지역 주민들의 표정은 썩 밝지 않다. 보금자리주택 개발로 인한 이득의 대부분은 이들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개발 지역의 토지 소유주들과 세입자들은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양자가 모두 '개발 반대'를 외치고 있지만 온도는 조금씩 다르다. 토지 소유주들은 토지 수용에 따른 보상액을 기대할 수 있고 조건에 따라 보금자리 주택을 우선 분양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개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반대로 세입자들에게 보금자리 주택 개발은 짐을 싸서 나가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린벨트 내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은 사실상 보금자리 주택 분양을 신청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 또 비닐하우스에 불법 거주하는 이들은 보상을 제대로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지난 1월 '용산 참사'의 비극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생존권과 연관된 또 한 번의 극렬한 갈등이 우려되는 이유다.

▲ 세곡동 마을 어귀에 걸린 현수막에 '잘못된 비닐벨트 개발은 또 다른 비닐벨트를 양산할 뿐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월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서울 근교 그린벨트엔 비닐하우스만 가득차 있다. 이런 곳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토지 소유주 "개발을 반대하는 건 아냐…적절한 보상 바랄 뿐"

8월 31일 6990세대의 보금자리 주택이 들어서기로 예정된 서울 강남 세곡지구의 세곡동을 찾았다. 세곡동의 개발예정 지역은 대부분 비닐하우스로 만든 화훼농가다. 주택은 6채에 불과하고 화훼업에 종사하는 150여 세대 대부분이 비닐하우스 안에 거주하는 세입자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개발을 반대하는 내용의 5~6개의 현수막이 보였다.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개발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강한 어조의 글귀도 눈에 띄었다.

토지 소유주들이 모여 만든 세곡지구 토지대책위원회의 김윤석 부위원장은 "사실 건설 반대는 표면적인 입장이고 정부의 정책을 못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여기서 150년 가까이 땅을 물려받으면서 대대로 거주한 이들에게 나라가 섭섭한 대우를 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차원"에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는 설명이다.

김 부위원장은 "보금자리 주택과 함께 들어설 근린생활시설들은 사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양보하면서 생기는 부산물"이라면서 "나라 정책을 위해 양보한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그런 시설을 원주민에게 우선 분양하는 것, 또는 소유주나 자녀들에게 보금자리 주택의 우선분양권을 주는 정도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 강남 세곡동의 보금자리 주택 개발 지역 대부분은 화훼농민들이 만든 비닐하우스가 세워져 있다. 150여 세대의 세입자들은 대부분 비닐하우스에 거주한다. ⓒ프레시안

위축된 세입자들, 극도로 말 아껴

그에게 세입자들에 대해 묻자 "그건 영농대책위원회에 가서 물어보라"고 답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김 부위원장은 "세곡동은 다른 개발 지역과는 달리 세입자 비율이 낮아 예전에 다른 곳에서 있었던 철거민 시위 같은 일이 벌어지는 상황까지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용풍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을 찾았다. 길 양쪽에는 꽃과 분묘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늘어섰다. '추억 어린 내 고향 산천을 난도질하려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적힌 현수막이 한 비닐하우스 앞에 걸려 있었다. 보금자리 시범지구 공고문이 쓰인 안내판 맞은편에 컨테이너 건물에 차린 용풍주민대책위 사무실이 눈에 들어 왔다.

사무실에 모여 있던 세입자들은 "보금자리 주택과 관련된 일은 위원장 및 지도부와 상의하라"며 대화를 피했다. 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우린 그저 그린벨트가 훼손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화훼농가의 거주 여건만 살피고 가겠다는 요청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정부에 의해 삶의 터전 뺏긴 채 내쫓기고 싶지 않을 뿐"

하지만 세입자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사무실 구석에 홀로 앉아있던 한 60대 여성 세입자는 "꽃 기를 수 있는 자리는 뺏겨도 여기서 살 수 있게만 해줬으면 좋겠다"며 "비닐하우스에서 살지만 우리도 생활권이라는 게 있지 않나"며 한숨을 쉬었다. 세입자들의 완강한 태도로 더 이상의 취재를 하지 못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뒤늦게 김재호 용풍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과 통화가 됐다. 김 위원장은 "보상 협의가 진행될 때까지 주민들끼리 언론과 접촉을 피하자는 합의가 있었다"며 "(보금자리 주택) 발표가 나자 여러 언론이 몰려와 일부의 말만 듣고서 우리 입장을 반영하지 않는 보도를 내보냈다"고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 주택공사와 국토해양부 보상 협의를 앞두고 섣부른 언론 보도가 나가면 우리가 불리한 입장에 취할 수도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다만 우리가 바라는 건 큰 게 아니라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것뿐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며 "정부에 의해 삶의 터전을 뺏긴 채 알몸뚱이로 내쫓기는 처지가 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 세곡동 개발 지역 세입자들은 언론 보도로 보상에 문제가 생길까 염려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프레시안

"이번 세입자 문제, 다른 개발 지역에 선례 남길 것"

재개발 지역에서 원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삶의 터전 자체를 빼앗기는 것은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해법은 마련되지 않았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보금자리 주택) 사업자가 정부인만큼 수익성을 고려하면서 짓지는 않겠지만 세입자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는 앞으로 다른 보금자리 주택 개발 지역에 중요한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은 결국 규정이 바뀌어야 하는데 지역마다 그 규모가 다르고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며 쉽지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세입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걸림돌은 세입자들이 투기를 목적으로 거주하는지, 생계가 어려워 비닐하우스 등의 시설에 거주하는지 가리기 힘든 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공공주택을 분양이 아닌 임대의 형식으로 바꾸는 것에 많은 시민단체가 공감하고 있지만 '옥석 구분' 문제가 항상 걸리고 있다"며 "비닐하우스에 불법 거주할 수 밖에 없는 이들과 셋방살이를 하며 분양만을 바라는 세입자들 중 누구의 손을 먼저 들어줘야 하는지 선택하는 것도 참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 "세입자 관련 계획 없어"

정부는 법에 정해진 바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국토해양부 공공주택건설추진단의 양의관 사무관은 "보금자리 주택이 반값에 공급된다고 보상비가 깎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주택공사가 정한 기준에 따라 보상액을 산정해 연말 내에 시범지구 주민들에게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 사무관은 "토지 소유주가 개발 지역 내에서 거주 및 상업 활동을 한다면 우선분양이나 이주대책을 마련하겠지만 그 이외의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세입자 문제에 대해서는 "이주 및 생활대책을 수립하겠지만 현재는 아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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