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정치인‧교수에 대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온라인 심리전을 단행한 사실이 국정원 개혁위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조금이라도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격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국정원 개혁위가 25일 위원회 산하 적폐청산TF로부터 받은 '정치인‧교수 등 MB 정부 비판 세력 제압 활동' 보고 내용에서 거론되는 인물은 20명이 넘는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송영길 인천시장, 박지원 의원, 조국 서울대 교수 등 야권 인사는 물론이고 홍준표‧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등 여권 지도자들도 눈에 띈다.
적폐청산 TF가 분석한 기간은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2012년까지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임 시기다. 개혁위는 "원 전 원장은 취임 이후 심리전단의 조직‧인원을 확대, 정치‧MB정부 비판세력에 대해 문화‧연예계는 물론이고 정치인‧교수 등 사회 각계인사에 대하여 전방위적으로 비판활동을 전개했다"고 밝혔다. 여타 활동과 마찬가지로, 심리전단팀의 비판 활동 무대는 '아고라' 등 포털사이트 게시판, 트위터 등 SNS였다.
당시 국정원의 비판 활동 대상에 오른 야권 주요 인사는 △노무현, △송영길, △박지원, △곽노현, △조국, △이상돈, △천정배, △손학규, △정동영, △최문순, △김진애, △유시민, △장하준 등이다.
국정원은 2011년 2월 당시 송영길 인천시장 "인천시를 대북 평화 전진 기지로 조성하겠다"는 발언을 '종북 행위'로 규정하고, '인천시장 종북행각 규탄 전략 심리전 계획'을 작성, 실행했다. 인천시 홈페이지, 인터넷 카페 등에 비판글을 올려 비판 여론을 조성하는 식이다.
박지원 의원은 김황식 당시 총리 후보자에 대한 비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 대한 폄훼 발언 등이 빌미가 됐다. 국정원 직원들은 '박지원 망동 강력 규탄 사이버 심리전 전개'라는 이름으로 보고하고 박 전 의원에 대한 비판 활동을 수행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해선 금품 매수 의혹과 관련, 다음 '아고라', 트위터, 전교조 홈페이지 등을 통해 '양 가면 쓴 이중인격자'라는 비난과 함께 구속 및 사퇴 촉구 서명 활동을 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일간지에 규탄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조국 교수에 대해선 'KAIST 경쟁체제 비판', '4대강 사업장 폐콘크리트 매립 주장' 등을 이유로 '정치 교수'라고 심리전을 전개했다. 트위터에는 "서울대 조국 교수는 교수라는 양의 탈을 쓰고 체제변혁을 노력하는 대한민국의 늑대다. 93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산하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에 연루돼 국보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천안함, 연평도 北 도발을 옹호하는 대한민국의 적"이라는 비난글을 올렸다.
홍준표에 "사돈 남보듯 집안 흉", 원희룡에 "회색분자"
국정원의 총구는 야권으로만 향하지 않았다. △홍준표, △정두언, △안상수, △원희룡, △권영세 등 이 전 대통령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여권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회색 분자'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압박 활동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다. 트위터에 "홍준표 의원은 저격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자꾸 총부리를 아군에 겨누고 있다. 그러다 아군이 전멸하면 홀로 정치하려는가? 적군 앞에선 단합할땐 해야지, 사돈 남보듯 집안 흉을 봐서 뜨려는 구시대적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는 비난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지금도 트위터 검색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늑한 정원'이라는 닉네임의 계정 이용자가 2011년 1월 13일 올린 이 게시글은 이날 개혁위가 발표한 홍 전 의원에 대한 비방 내용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원희룡 전 의원에 대해선 "회색분자이자 카멜레온의 원희룡 의원은 애국 인사들에게 언제든 뒤에서 칼을 꽂을 수 있는 사람같다",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선 웬 견제! 보온병 등으로 꺼져가는 본인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돌출발언 한 거 같은데 여당내 본인 위치를 생각해서 신중 발언해야지 한마디로 중용해선 안 될 인물"이라고 했다.
국정원 직원이 직접 <미디어워치> 광고 수주 나서기도
당시 국정원은 비판 활동을 위해 트위터 등 SNS을 활용하는 한편, <미디어워치> 등 보수 언론에 '보도 협조'를 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중권 교수에 대한 비판,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비난 기사가 대표적인 보도 협조의 결과물이다.
국정원은 이같은 보도 협조를 위해 <미디어워치> 지원에 적극 나섰다. 개혁위는 "2009년 2월 <미디어워치(대표 변희재)> 창간 시부터 국정 지지여론 조성을 위한 지원 필요성을 인식하고 창간 재원 마련 관련 조언을 해주거나, 여권 측면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지휘부와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또 <미디어워치> 재원 마련을 위해 경제 및 기관 담당 수집관에게 전경련, 삼성 등 26개 민간기업 및 한전 등 10개 공공기관에 <미디어워치> 광고 지원을 요청토록 지시했고 그 결과, <미디어워치>는 2009.4월~2013.2월간 4억여 원 가량의 기업 광고비를 수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개혁위는 정치인‧교수 대상 심리전에 대한 청와대 개입 여부에 대해선 "직접적인 비방 지시 사실은 확인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반면 원 전 원장에 대해선 "'전부서장 회의'와 '일일 모닝브리핑'에서 야권 및 특정 정치인과 선거 관련 대응활동을 수시 지시하였고, 이에 담당부서는 '외곽팀' 등을 활용한 현안대응 심리전을 전개했다"며 정치관여 및 업무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원 전 원장 등을 검찰에 수사의뢰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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