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박원순 제압 문건'에 대해 검찰이 4년 만에 다시 수사에 착수했다. 4년 전 검찰은 무능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건이 은폐됐던 것일까? 지금 밝혀진 사실이 4년 전에 밝혀지지 못했던 데 대해 검찰도 책임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은 20일 서울중앙지검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 전 대통령과 국정원 원세훈 전 원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신승균 전 국익전략실장, 실제 문건을 작성한 추명호 팀장과 직원 함모 씨·조모 씨, 심리전단 사이버외곽팀 관여자와 어버이연합 관련자 등 11명을 고소·고발한 사건을 공안2부(진재선 부장검사)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중앙지검 2차장 산하인 공안2부는 공공형사수사부(김성훈 부장검사)와 함께 민간인 댓글부대 운영 등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의 전담 수사팀의 주축을 이루는 부서다.
박 시장은 과거 국정원이 자신에 대한 제압 문건을 만들어 시정 활동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19일 이 전 대통령 등을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하고, 서울시와 함께 국정원법 위반(정치관여·직권남용)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고발했다.
박 시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6차 회의에 참석해 "박원순 제압 문건과 그 실행은 저와 제 가족뿐 아니라 청년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제압이었고 서울시민을 향한 제압이었다"며 "서울시와 시민, 그리고 저는 이 전 대통령을 고소‧고발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가 발각된 것은 사실 박근혜 정권하에서였다"며 "그러나 여러 가지 은폐가 이뤄졌고 이것을 수사하지 않았다"며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
'박원순 제압 문건' 사건은 지난 2013년 당시 민주통합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의 고발로 한 차례 검찰이 수사한 바 있다.(☞관련 기사 : 최순실의 국정원 인맥 '추통령'은 도대체 누구인가?)
당시 수사에 착수한 서울 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민주당이 검찰에 제출한 문건과 사실조회 등을 통해 국정원으로부터 넘겨받은 문서 양식을 대검찰청 문서감정반에 보냈으나, 폰트와 편집 형태 등이 국정원이 생산하는 문서 양식에 맞지 않는다며 사건을 각하 처리했다. 이해할 수 없는 조치다. 현재 이 문건은 국정원 생산 문건으로 확인된다. 직무유기 내지는 은폐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검찰은 결국 해당 문건의 작성자로 지목된 국정원 직원에 대한 소환조사도 하지 못한 채 수사를 접었다. '국정원이 작성한 게 아니라고 결론이 났다면 응할 이유가 없다'며 국정원 측에서 조사를 거부한 탓이다.
당시 민주당이 폭로한 문건에는 작성자인 국정원 직원의 실명과 전화번호까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소환 조사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당시 검찰 수사는 총체적 실패로 드러났다. 국정원 적폐청산TF 지난 11일 "'서울시장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안',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 등 두 건의 문건은 국정원이 작성하여 이와 관련한 심리전 활동을 수행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특히 이같은 지시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검찰은 4년 만에 이 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그러나 과거와 지금은 수사 환경이 다르다. 당시 특별수사팀장에 발탁됐으나 당시 검찰 지휘부와 마찰을 빚어 좌천됐던 윤석열 검사가 현재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국정원 관련 사건 전반을 다시 총지휘한다. 또 국정원이 과거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직접 수사의뢰를 하는 등 오히려 검찰 수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다.(☞관련 기사 : "이명박의 지시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관건은 검찰의 칼 끝이 원 전 원장을 넘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로까지 향할지에 쏠리고 있다.
이와 함께, 당시 검찰이 왜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 못했는지 그 배경도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에 대한 재수사는 재수사대로 가되, 검찰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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