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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손학규, '진보' 내걸고 가치 논쟁으로 가라"

[고성국의 정치in]<49>최재천 전 민주당 의원

'열혈청년' 김태일과 최재천이 책을 썼다. <민주당이 나라를 망친다. 민주당이 나라를 살린다>. 제목만으로도 두 '열혈청년'이 격정적으로 민주당과 나라의 미래를 토로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민주당 전당대회 다음 날 오후 광화문에 있는 찻집에서 최재천과 마주 앉았다.

"민주당 전당대회 분위기가 아주 뜨거웠다고 하더라."
"지도부에 진입하려는 분들과 지키려는 정세균 전 대표가 워낙 강하게 대립하니까 뜨거울 수 밖에 없더라."
"정치 노선이나 비전을 둘러싸고 논쟁이 뜨겁게 전개되면 생산적일 수 있는데, 그게 빠지고 뜨거우면 후유증이 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관점의 차이는 있을 텐데, 이번 지도부는 어디까지나 '원포인트 릴리프' 성격이 강한 것 아닐까. 내년 12월에 차기 총선을 이끌 지도부를 뽑고, 대선 주자는 뒀다가 2012년 5월, 6월에나 뽑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노선 투쟁이 전개되기는 어려웠다. 정세균 체제, 당내 소 패권주의를 무너뜨리고 당내 민주화를 가져온다는 게 일차적 목표였기 때문에 그 쪽으로 포인트가 집중됐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성공적이다?"
"일단 바꾸자, 변화를 추동하자는 데는 성공했다."

▲ 최재천 법무법인 한강 대표, 전 민주당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후유증은?"
"어느 정도는 있지 않겠나. 그러나 정당이라는 게 끊임없이 갈등이 생성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비전과 가치가 창출되는 경쟁과 갈등의 장이다. 어설프게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하는 지도체제보다는 시끄러운 게 더 낫다. 시끄러워야 한다. 시끄럽지 않으면 정당이 아니다."
"손 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정세균 최고위원 등은 1년 후에 다 그만 둘까?"
"그럴 것이다. 정동영 의원은 탈당하고 국회의원 자리를 잡았지만 민주당 내 자리를 잡기가 불분명했는데 이번에 지도부에 들어와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손학규 대표도 과거 경력 문제, 민주당의 가치와 비전에 융합될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는데 이번에 1등을 해서 그런 오해를 불식시켰다. 그런 면에서 두 분에게는 굉장히 잘 된 게임이었다."
"본격적인 게임, 본격적인 노선 경쟁은 내년 이후인가?"
"본격적인 노선 투쟁, 노선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정하고 균형된 장을 깔아주는 게 이번에 선출된 지도부의 최고 의무가 아닌가 한다."
"손학규 대표가 잘 할까?"
"'점령군 행세를 하지 않겠다' 이 말에 기대를 가진다. 손 대표의 득표가 20% 정도다. 차점자가 19%이기 때문에 당내 지배권을 독점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손 대표 본인도 잘 알 것이다."
"함부로 독주하지 않을 것이다?"
"구도 자체가 독주하기 어렵다."

"손학규, '진보' 내걸고 가치 논쟁으로 가라"

광화문 거리에 있는 4층 옥상의 야외 커피숖은 그 날 따라 바람이 셌다. 초가을이지만 한기가 느껴졌다.

"민주당 대의원들의 시선이 벌써 2012년에 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대권주자 중심으로 투표가 이루어진 것 같고."
"그렇다. 기존 체제로는 벌써 2012년 준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패권주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다들 공감을 한 것 같다. 급속하게 변화시킬 수는 없고 단계적으로 준비해야 하는데, 변화의 상징으로 손학규 대표나 정동영 최고위원 등 후보군에게 기회를 주고 그러면서 당내 변화를 추동해 나가자는 단계별 선택이 이루어졌다."

▲ "민주당은 근본적으로는 지역 연합을 통한 공학주의, 만능주의를 벗어나 가치와 비전으로 연대해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시대로 가야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호남 지역 기반의 민주당이 수도권에 강점이 있는 손학규를 선택한 것은 2002년에 영남에 강점이 있는 노무현을 선택한 것과 같은 전략적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의도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본다. 이제는 가치나 비전을 중심으로 가야 한다. 호남이 가진 정치적 특성이 있다. 개혁성과 정치적 고립에 대한 공포다. 개혁성은 이를테면 가치나 진보 등 노선 투쟁으로 나가는 긍정적 측면이 있고, 공포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으로 나가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나?"
"호남의 자기 부정으로 나간다. '호남 출신 정치인은 어차피 한계가 있다'고 부정하기 때문에 비호남으로 눈을 돌린다. DJP 연합, 노무현을 통한 영남 갈라치기가 그것이었다. (민주당이) 여전히 그런 성공 프로세스의 환상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또 호남+수도권, 즉 손학규를 선택한 것이라면 대단히 부정적인 측면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가진 잠재력으로 손학규조차도 변화시켜서, 그 이상의 플러스 알파를 만드는 긍정적 측면으로 손학규 체제를 선택했다면 발전적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호남 패배주의나 호남 콤플렉스가 자칫 선거 공학주의로, 선거 만능주의로 가는 상황이다. 근본적으로는 지역 연합을 통한 공학주의, 만능주의를 벗어나 가치와 비전으로 연대해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시대로 가야한다."
"부정적으로 갈지, 긍정적으로 갈지, 결국 정치 지도자의 선택에 달려있을 것 같은데 정치공학으로 빠지지 않으려면 손 대표가 어떻게 해야 하나?"
"호남의 장점을 개혁성과 진보, 정치에 대한 탁월한 열정으로 보고 '대표하는 것'과 '대표되는 것'을 일치시켜가야 할 것이다. 대의주의의 불일치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진보, 개혁에 대한 탁월한 열정을 정책과 비전으로 승화시켜서 차기 정권을 진보 개혁 정권으로 만드는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번에 당헌당규에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이 들어갔다. 손 대표가 당선 되고나서 '실천하는 진보만 얘기했지 구체적인 행동을 얘기하지 못했다'는 한 기자의 지적에 '당헌당규 개정안 못 봤느냐 나는 거기에 동의했고 그에 따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따라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손학규의 이념이라고 불려왔던 중도주의를 본인 스스로 넘어서서 민주당 당헌 당규 개정의 정신에 맞게 진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손 대표가)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당헌 당규의 기본 입장에 손 대표가 충실할 의무가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나라당은 중도 보다는 전적으로 보수, 근본주의에 가까운 그런 우클릭을 했다. 그런데 최근 국민들의 정치 성향에 대한 분석을 보면 상당히 좌클릭 돼 있다. (국민은) 본래적 의미의 진보, 즉 사용자보다 노동자를 강조하고 서민 중산층이라는 애매모호한 대표성보다는 솔직히 진보적인 대표성을 원하고 있다. 이런 게 시대의 트렌드다. 손 대표도 애매하고 실체 없는 중산층에 기대기보다는 진보와 개혁 노선에 충실하면서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포섭하고 있는 중간층을, 600만 표를 (이번 전대에서 본인이 내건대로) 도로 가져오게 된다면 차기 집권 가능성, 차기 대권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손 대표가 할 일이 분명히 있다."
"'빼앗긴 600만 표를 가져오겠다'는 얘기를 들으면 정동영 최고위원은 마음이 참 아플 것 같다."
"(웃음) 누가 빼앗겼느냐 논쟁일 것이다. 재미있는 말씀이다. 오늘 아침에 선거 공보물을 다시 한번 펼쳐봤다. 그런데 손 대표가 이기고 나서 든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손 대표의 그 말이 명징했다.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구호보다는 사람들에게 '그래, 우리가 다시 뺏어와야 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수치화되고 구체화 된 목표가 호소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이인영·천정배 지도부 진입, 민주당의 변화 욕구 느꼈다"

▲ "정치는 어차피 상상력의 산물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최재천은 1963년생이다. 6.2 선거를 계기로 급부상하고 있는 486 세대의 일원이다. 그에게 원외인 이인영 후보의 지도부 진입은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이인영 후보는 선전했다고 봐야 하나. 더 할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다고 봐야 하나. 두 측면이 같이 있나?"
"그렇다. 두 측면이 같이 있다. 3강 체제에서 2순위 표를 누구에게 주느냐가 관건이었는데, 빅3의 경쟁과 나머지 분들끼리의 경쟁이 나눠졌다. 그래서 2순위 표를 누가 가져가느냐의 게임이었는데, 변화를 상징했고, 민주당의 미래에 한표를 달라고 한 이인영의 호소가 먹혔다."
"486이 정치 리더 그룹으로 집단적으로 진입한 것은 지난 6.2지방선거였다. 그 직후 민주당 전당대회 예비 컷오프에서 486 3명이 통과해 이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바로 단일화를 선언했는데 실패했다. 민주당이나 486이나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486이라면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기존의 정치권처럼 편협한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계파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아쉽다."
"486이 기존 정치인보다 나은 게 없다?"
"이해관계 측면에서는 나은 게 별로 없다. 앞으로 정책 비전에서 486이 뭘 보여줄 지가 그들의 미래를 가늠할 잣대가 될 것이다."
"단일화 실패는 결국 최재성 의원이 직접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인 것 같은데?"
"대의원 당원들이 투표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책임을 물은 게 아닌가."
"최재성 후보도 단일화를 마무리하고 싶어했을 것 같다. 그런데, 1위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완주하게 된 것 아닐까?"
"그런 해석도 가능한 것 같다. 워낙 박빙이었으니까.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소설인지 모르겠지만 아쉽다."
"정치는 어차피 상상력의 산물이다. (웃음)"

"천정배, 박주선의 순위도 굉장히 흥미롭더라."
"저도 대단히 재미있게 봤다. 마지막에 표 발표할 때 천정배 의원이 박주선 의원보다 먼저 발표 됐다. 사람들이 '와' 하고 소리 질렀다. 그 다음에 박주선 의원 표가 나왔을 때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두 반응이 대단히 상반됐다. 박주선 의원은 쇄신 연대에 있으면서도 호남 지역 기반이 있어 전통적, 본래적 의미의 민주당 표가 고정표로 있기 때문에 잘될 줄 알았다. 그래서 본인도 자신감을 갖고 중도 통합 노선을 주장했는데, 그것이 이번에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조직과 '딜'에 따른 나눠먹기식 선거도 통하지 않았다. 민주당 안에 변화에 대한 역동적인 욕구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민주당이 '아무리 그래도 천정배를 떨어뜨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 것 아닐까?(웃음)"
"천정배 최고위원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코스피 지수를 주도하는 주식이 있는 반면 가치주도 분명 존재한다. 정치에도 가치주가 있다. 가치주로써 민주당, 민주당의 역사성, 전통성, 진보성을 상징하는 그런 천정배의 가치성을 보고, 민주당이 천정배 하나 정도는 살려놓아야 우리가 체면이 선다. 이런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웃음)"


"민주, 기득권 통한 '폭력적 선거연대'는 안된다"

"<민주당이 나라를 망친다, 민주당이 나라를 살린다>라는 긴 제목의 책을 영남대 김태일 교수(전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대구시당위원장)와 함께 집필했다. 당에서는 뭐라고 하나. '죽일 놈들'이라는 소리는 없었나?(웃음)"
"그렇지는 않았다. 전당대회 때 경상남도 창원의 지역의원이 저를 보고 책 얘기를 하시더라. 본인이 전당대회 전에 이 책을 보려고 서둘러 사 봤다고 하더라. 그 분이 '영남 지역의 민주당 소수파, 비주류의 생각은 당신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 저는 '김태일 교수와 같이 공부를 해서 그렇다'고 했는데, 계속 손을 잡고 안 놓아주더라. 대단히 기뻤다. 제가 제기한 문제의식이나 노선이 어긋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요약하자면 어떤 내용인가?"
"지금까지 민주당의 대안은 지역연합 구조였다. 이제는 가치와 진보 노선을 중심으로 가치 연합으로 가자. 본래적 의미의 진보 연대로 가자. 정말 담대하게 한번 가보자. 뭘 두려워하느냐. 이런 것이다."
"이번 당헌 개정 과정에서 야권 연대, 정치 연합이 적시됐는데 긍정적인 방향인가?"
"연대 의미는 (당헌에) 충분히 들어가 있다. 또 거의 모든 후보자들이 선거 공약이나 연설에서 '내가 대표가 되거나 최고위원이 되면 야권 연대에 나서겠다'고 했다. 선거 연대건, 정책 연대건, 2012년의 연대건, 연대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토대는 만들어졌다고 본다."

▲ "전당대회 때 맨 마지막까지 민노당 이정희 대표가 남아 있어서 사회자가 '이정희 대표가 남아 있다. 박수 한번 달라'고 했다. 아주 상징적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다른 야당의 반응은 어떤가?"
"아직은 반응이 없지만, 최근 그 분들의 메시지나 인터뷰를 보면 긍정적인 징후가 있다. 전당대회 때 맨 마지막까지 민노당 이정희 대표가 남아 있어서 사회자가 '이정희 대표가 남아 있다. 박수 한번 달라'고 했다. 아주 상징적이었다. 노회찬 후보의 인터뷰가 전당대회날 아침에 나왔는데, 메시지가 이렇다. '반 MB 연합 선거 연대가 이번 지방 선거나 현 시점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가장 먼저 연대해야 할 블록이 민노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라면, 최고위원 선거에 당선된 분들은 확실한 의무감을 느껴야 하고 당장에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어떻게 해야 하나?"
"선거 연대건 정책 연대건 중요한 것이 있다. 지방선거 때 일부 연대가 이뤄졌지 않았나. 그리고 공동의 강령과 정책을 발표한 게 있다. 지역 단위건 중앙 단위건, 그것을 실천해 내는 것이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민주노동당에서 부지사를 영입했다. 이런 것이 중요한 실천이다. 저도 그것을 저희 지역(성동 갑)에서부터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민노당 분들과 만나서 정책 연대를 하고 있다. 풀뿌리 정치 단계에서부터 이런 것들이 실천이 되고 무상급식 같은 공감대 있는 정책을 만들어낸다면 중앙정치의 연대도 쉬워질 것이다. 중앙 정치 무대에서 예산 투쟁이면 예산 투쟁, 4대강 사업이면 4대강 사업, 이런 이슈들을 공동으로 정기국회나 국감에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가치와 비전과 희망을 남겨 주고, 그 다음에 세력 연대로 가야 한다. 그 이후 선거 연대가 될 것이다. 선거 연대는 단계적으로 보궐선거 연대, 총선 연대, 그 다음에 대선연대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나 하나 단계를 밟아가면 2012년 민주 개혁 진보 진영의 집권이 가능하지 않겠나."
"지난 6.2 선거를 보면 5+4에서 시민단체 쪽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당의 이해관계를 완충시키고 때로 야단도 치면서. 시민단체들이 포함된 연대 논의구조를 조금 빨리 띄울 필요는 없을까?"
"필요하다. 진정으로 2012년 진영의 대 전환을 꾀하고 싶다면 이쪽 진영을 지지하는 시민단체가 키를 쥐고 지금이라도 그런 작업을 시작해 주면 고맙겠다. 이쪽을 지탱하는 진보적 지식인 그룹이나 언론 그룹에서도 미리 촉구를 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지난 5+4 회담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기득권 고수 행태나 다수결에 의한 강압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정을 잘 거치면 정치연합의 대의를 세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긴데, 지난번 6.2선거 때도 경기도를 보면 유시민-김진표 단일화까지는 잘 갔지만 심상정은 완전히 밀어내기처럼 해 버리지 않았나?"
"그렇다. 그것은 연대가 아니다. 폭력으로 굴복시킨 것이다. 연대는 기본적으로 대등성 동등성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심 전 대표는 진보신당에서 징계까지 받았다."
"결국 사람 하나 망쳐놓았다. 이 시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뚜렷한 정치 지향을 가진 정치인을 민주당이 상처만 줬다. 진보신당에서는 '야 어디에서 얻어맞고 왔느냐'고 했고."
"연대 논의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저는 '안티 이명박' 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주의다. 이명박 이후, 이명박 너머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 이후가 문제다. 다음 정치 시대를 대비하는 새로운 가치와 비전 노선 조직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시민 사회가 이니셔티브를 행사해서 이런 문제들을 조율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 미래 얘기하는데 과거 가치로 뭘 할 수 있겠나"

바람이 더 세게 불었고, 우리는 덜덜 떨면서도 인터뷰를 계속 했다.

▲ "저는 '안티 이명박' 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주의다. 이명박 이후, 이명박 너머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 이후가 문제다. 다음 정치 시대를 대비하는 새로운 가치와 비전 노선 조직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전 대표는 어느 정도 센 후보 같나?"

"박근혜 전 대표의 경쟁력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다. 과거 집권사를 생각해보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의 상징이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렇다. 국가적 위기 국면에서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대안성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존심을 바탕으로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이런 새로운 상황을 만든 상징성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나름 'CEO대통령'이라는 게 있었다. 어찌됐든 '이명박을 찍으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이 뽑았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가 상징할 수 있는 게 뭐냐. 아버지의 권위, 원칙, 소신, 그런데 그 원칙과 소신도 과거회귀적이다. 박근혜의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철저히 보수파고, 철저히 근본주의자고 철저히 과거의 가치가 빛나는 인물이다. 오히려 민주당이 집권할 때 박근혜의 가치가 빛날 것이다. 보수당이 집권하면 할수록 박근혜의 가치는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실정을 거듭할 수록 민주당에 도움이 되지 박근혜 전 대표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후보가 나서면 싸우기 쉽다?"
"그렇다."
"그렇다면 누가 힘든 후보인가? 김문수인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나름대로 원칙, 그리고 지난 선거 등을 통해 보여준 실체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표보다 더 어려운 후보라고 본다. 그런데 한나라당 내부의 보수파들이 이재오 특임장관이나 김문수 지사의 과거 전력, 민중당 활동, 노동운동 경력 등을 어떻게 해석할까? 그게 관건이 될 것이다."
"김문수 지사는 본인이 TK(대구, 경북)주류라고 자임하고 있는데?"
"그게 한나라당 정치인들의 정치적 특징이다. 끊임없이 시대에 따라 자신의 메시지나 상징을 바꿔나갈 수 있는 능력, 번신(飜身)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민생정치모임이 민주당 변화의 밀알"

최재천의 열정으로 추위를 이겨냈지만 1시간쯤 지나자 더 계속하기 어려웠다. 마무리를 서둘렀다.

"김태일 교수와는 어떤 인연인가?"
"김태일 교수님은 강단에 있지만 늘 소수파적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가장 바른 길, 대도를 추구하는 그런 학자적 양심과 정치가적 양심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분이다. 저는 지금까지 당 중진으로 정치를 한 적도 없는데, 김 교수가 학자의 눈으로 제자를 바라보듯이 저를 본 모양이다. 제가 열린우리당 탈당(탈당 후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을 하고, 민생정치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때 행보를 같이 하면서 함께 모이고 토론하고 공부하면서 존경하게 됐다."
"문제의식에 공감해서 같이 책 작업을 한 것인가?"
"그렇다. 저도 늘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나 판단을 내릴 때 여쭤본다. 그 분도 늘 정치학은 현실 과학이기 때문에 현실 정치 문제를 포기하고 강단 정치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서로에게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민생정치 모임은 지금도 있나?"
"있다. 자랑해야 할 게 있다. 저는 낙선한 후에 민생정치모임에 게을러졌지만 천정배, 이종걸 의원 등 나머지 분들이 쇄신연대의 모태가 됐고, 쇄신연대가 이번에 '당 지도부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당원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노선 투쟁을 끊임없이 벌였다. 그러면서 천정배, 박주선 의원 같은 분들을 세력화해서 결과적으로 바꾼 것 아닌가. 이것은 전대에서 우리가 거둔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다. 지금까지 소수파로 머물던 진보 개혁 블록들 비주류들이 어떻게 정치화하고 세력화를 해서 주류가 되는지 어떻게 당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

▲ 고성국 박사와 최재천 전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민생정치모임 소속 문병호 전 의원도 이번에 인천시당위원장이 됐다. 이번 16개 시도당 선거도 이변이 많이 연출된 것 같다."
"그렇다. 가장 대표적인 게 서울시당위원장 선거다. 범 주류 연합은 전당대회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김근태계의 우원식 의원을 내세웠지만 의외로 비주류인 쇄신연대의 김성순 의원이 당선됐다. 경기도는 주류 쪽이 됐지만 광주도 쇄신연대인 김재균 의원이 됐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비주류가 주류가 된 것인가?"
"당내 역학 관계는 확실히 바뀌었다. 이번 최고위원 경선 결과를 봐도 그렇다."

최재천의 말대로 지금 민주당은 주류가 비주류되고 비주류가 주류 되는 일대 혁신과 변화를 겪고 있다. 순수 집단 지도 체제로 운영될 민주당에서 손학규 대표 못지않게 주목해야 될 부분도 바로 쇄신연대다. 최재천의 열정이, 쇄신연대의 열정으로, 민주당의 열정으로 어떻게 불타오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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