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 대선을 앞둔 시기에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화려한 휴가>(김지훈 감독)가 개봉을 했다. 그리고 올해 여름, 동일한 소재의 영화 <택시운전사>(장훈 감독)가 개봉을 했다. 만일 지난겨울, 활활 타올랐던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지금은 대선을 앞둔 시기이다. 그랬다면, 여당 대통령 후보는 <군함도>(류승완 감독)를 보고, 야당 대통령 후보는 <택시운전사>를 보았을까? 또 다른 대통령 후보는 두 영화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이리저리 간을 보았을까? 정국이 급변하기 전에 기획되었을 <군함도>와 <택시운전사>를 두고, CJ E&M과 쇼박스는 '정권교체'라는 화두 앞에서 일종의 도박을 한 것일까?
2007년 당시 여당의 대선 후보 진영에서는 '<화려한 휴가>가 관객 500만 명을 넘으면 대선은 문제없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 영화는 68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결과를 보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2017년 '1000만 관객' 영화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택시운전사>는 만일 대선이 끝나지 않았다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연이겠지만,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는 거의 비슷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극화한 것입니다'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반면, 박근혜 시대에 개봉한 <변호인>(양우석 감독, 2013)은 굳이 '본 영화는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였으나 허구임을 밝힙니다'라는, 불필요해 보이는 자막을 넣었다. 이 자막의 차이에서 시대가 바뀌었다는 실감을 했다). <화려한 휴가>의 강민우와 <택시운전사>의 김만섭은 직업도 같다. 강민우는 광주의 택시운전사인데, 1980년 5월 21일, 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기 전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은 시위 현장을 목격하기는 했지만, 민감한 정보를 차단한 상황 때문인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독일기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간다.
한국현대사에서 특히 박정희 시대 이후를 다루는 한국영화에서 우리는 흔히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알 수가 없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설정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꽃잎>(장선우 감독, 1996)의 소녀와 떠돌이 공사장 인부 장, 영문도 모른 채 광주로 차출되는 <박하사탕>(이창동 감독, 1999)의 계엄군 김영호, 박정희 시대를 다룬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감독, 2004)의 소년 등이 있다. 또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무시무시한 시대를 향수의 시간으로 치환해버리기도 한다(<해적, 디스코왕 되다>(김동원 감독, 2002) <품행제로>(조근식 감독, 2002) <써니>(강형철 감독, 2011) 등).
<택시운전사>의 힌츠페터는 기자임에도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이므로 잘 알지 못할 것으로 치부된다. 그들은 분명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처해있지만, 왜 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영화는 그들의 좁은 시야 속에 머물면서, 그에 따라 한정된 정보만을 제공하면서, 다루기 난처한 지점들을 슬그머니 피해 나간다. <택시운전사>에서 만섭이 "군인들이 가만히 있는 사람들한테 왜 그러느냐"고 물을 때, 재식은 <대학가요제>에만 관심이 있는 대학생이기 때문인지 "우리한테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힌츠페터가 찍은 실재 사진(☞참고 http://blog.changbi.com/)에서, '전두환 찢어 죽이자'는 플래카드를 볼 수 있는데도 <택시운전사>의 인물들은 학살의 원인도 주범도 알지 못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임권택 감독이 <태백산맥>(1994)을 찍을 때, 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언급한 인터뷰가 생각난다. "내가 어렸을 때 체험했던 일들이 어떤 배경에서 그렇게 되었는지 몰랐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거기서 제시된 많은 정보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는 게 놀라웠다"(<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 311쪽) 그 결과 <태백산맥>에는 한국전쟁 시기의 전모를 최대한 드러내려는 감독의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반면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대한민국의 군인이 국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는 정보만을 제공할 뿐이다. 이건 10년 전의 <화려한 휴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대미문의 가공할 사건이기에 일부만을 재현해도 관객에게 주는 충격 효과는 물론 크다.
오카 마리는 <기억 서사>(김병구 옮김, 소명출판사 펴냄)에서 "집단적 기억, 역사의 언설을 구성하는 것은 '사건'을 체험하지 않은 살아남은 자들, 타자들이기 때문에 사건의 기억은 어떻게 해서든지 타자 즉, '사건'의 외부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택시운전사>는 사건을 '기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영화는 왜 1980년 5월 광주에 대해 여전히 그 정도 수준에서 다룰 수밖에 없는지 질문하고 싶다(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는, '그것은 재현 가능한 사건인가?'). 질문을 바꿔보면, 우리는 왜 역사적 사건과 그 인물들(<암살>(최동훈 감독, 2015)의 김원봉 같은 독립운동가)을 영화를 통해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 만일 학교에서 충분히 배울 수 있었다면, 영화는 좀 더 다른 수준에서 그 소재들을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는 이 영화에서 제시한 한정된 정보마저 당당하게 날조라고 주장하거나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이 영화의 한계는 한국사회의 한계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택시운전사>의 한계를 더 지적하는 것보다 일주일 간격을 두고 개봉한 <군함도>와 비교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다. 특히 <군함도>를 나쁜 영화, <택시운전사>를 좋은 영화로 규정한 다음, 전자의 결함은 부각하고 후자의 결함은 대충 넘어가는 태도는 한국영화의 질적인 발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영화에서 관점과 주제가 중요하지만, 시나리오의 구성이나 연출만을 놓고 볼 때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사이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하면, <군함도>에서 지적되는 문제점을 <택시운전사>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에 대한 이분법적인 평가는 2012년 이후, 한국사회가 역사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심각하게 휘말려온 후유증으로 보인다.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 2012), <변호인>, <명량>(김한민 감독, 2013), <국제시장>(윤제균 감독, 2014), <암살>로 이어진 1000만 관객 영화의 순서를 보면,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한국영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분법의 잣대를 들이댈 때, 영화는 일종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전 정권에서는 분명 영화를 그렇게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 다양한 시각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다양한 평가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경욱
영화평론가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