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코리아컨센서스연구원(KCI, 원장 : 백준기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과 <프레시안>이 '문재인 정부 100일'을 맞아 그간 보여진 정부 정책 역량과 국가 전략의 체계성을 가늠해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 100일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일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적폐' 중 당장 시급한 문제들을 걷어내는 작업이 국가 전략 구상과 함께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KCI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 의지'를 평가함과 동시에 향후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과제와 관련된 '제언'에 집중해 보았다.
지난 8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과 함께 연 '문재인 정부 100일 주요정책 평가' 세미나를 통해 발표된 전문가들의 견해를 지면에 소개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여러 정책분야 중 비교적 주목을 받고 있는 세 분야(환경·에너지/경제·일자리/외교안보·남북관계)에 한정하여 각 분야별 두 편씩 총 6회에 걸쳐 평가하고자 한다.편집자
에너지전환 정책이 불꽃관심사로 떠올랐다.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폐쇄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이후 뜨거운 논쟁이 시작되었다. 보수언론과 원자력계가 연일 기사와 칼럼을 통해 전력수급 위기, 전기요금인상, 재생가능에너지 한계를 보도했다. 정권 초기에 가장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 정책이 에너지 정책이다. 1958년 원자력법 제정 이후, 60년 가까이 핵발전을 중심으로 작동해온 정책과 이해당사자들이 있기에 저항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순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 정책 전개
우리나라는 원전 24기를 운영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수립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29년까지 원전 11기 추가건설이 예정되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신규건설계획(6기)을 백지화하고,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건설 중인 5기 중에서 공정률 20%대인 신고리 5.6호기는 공론화를 통해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 8월 25일부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 참여단 모집이 시작되었다. 2만 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을 거쳐 500명의 시민참여단을 모집해 10월 13일부터 2박 3일간 합숙 토론을 거쳐 표결하게 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는 중단이든 재개이든 향후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직후 봄철 노후 석탄발전소 8기에 대해 셧 다운을 지시했다. 석탄발전소는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대책과 연결해 신규 발전소 건설은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공정률 10% 미만의 석탄발전소 9기에 대한 재검토 입장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탈원전 논쟁이 격화하면서 상대적으로 탈석탄 정책은 부각되지 않고 있는데, 산업부는 삼척포스파워 석탄화력발전소 인허가 기간을 6개월 연장한 상태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바뀐 정부 정책을 반영해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을 수립 중인데, 최대 전력수요 전망과 적정 설비예비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초안이 작성되고 있다. 올해 중에 203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 20%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에너지전환 국민소통 태스크포스(TF)'를, 환경부는 '친환경 에너지전환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새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디자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너지 정책 평가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 탈원전 에너지 전환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국정 5개년 100대 과제에 '탈원전'과 '친환경미래에너지정책'을 반영했으며, 탈원전로드맵수립, 에너지세제개편, 전기요금요금체계개편 로드맵과 같은 핵심정책을 목표년도를 명시해 제시했다. 이것은 향후 5년 동안 문재인 정부에서 에너지전환에 정책이 주요 정책으로 부각될 것임을 시사한다.
특히 2018년까지 발전용 연료 세율 체계를 조정하는 에너지세제개편과 산업용경부하요금 차등 조정을 추진하고, 2019년까지 전기요금체계개편 로드맵을 마련할 예정이다. 세제개편과 전기요금 조정은 에너지전환을 위한 핵심정책이자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올해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전력정책 방향이 설정되면, 내년에는 3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탈원전이나 에너지전환에 대한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이다. 지금껏 에너지정책을 결정하면서 정부가 시민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다만 정부가 공론화 발표를 갑작스럽게 추진하면서 공론화 준비 과정이 원활하지 않았다. 지난 8월 1일 한수원 노조와 원자력공학과 교수들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중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고, 지역주민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공론화 이전에 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과 한수원 노동자들을 만나 공론화 목표와 과정을 알리고 논의하는 작업이 필요했었다. 지역주민들과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에너지전환을 지역의 전환, 노동의 전환으로 확장하기 위한 세심한 정책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탈원전정책에 대한 원자력계와 보수 언론의 반발이 극심해지면서 정부 입장이 후퇴하고 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의 탈원전은 60년 이상 걸리는 점진적인 정책임을 강조하며, 탈원전 시점을 2079년으로 제시했다.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 가동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동안 원전기수와 용량이 늘어나는 것으로 탈원전 선언이 무색해진다.
원전 안전을 꼼꼼히 챙기겠다고 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원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울원전 증기발생기 틈새 발생이나 한빛원전 철판 부식, 콘크리트 방호벽 구멍 발생, 증기발생기 쇠망치 발견까지. 핵발전소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이 연달아 터지지만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지난해 방사성폐기물 무단 폐기에 따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처분에 불복해 법률회사 김&장을 동원, 과태료와 과징금에 대한 이의신청을 한 것도 현 정부 들어서 발생했다. 이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상강화와 연계해 풀어야 할 숙제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탈원전정책에 집중되면서 탈석탄과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 에너지신산업을 활성화하려면 공기업 중심의 전력산업구조 개편 논의도 병행해야 하는데, 관련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대통령의 핵발전소 수출지원이나 핵잠수함 건조 관련 발언은 탈원전정책과 정합성이 떨어진다.
전망과 제언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을 추진하려면 에너지 세제와 요금제도를 개편해서 수요관리 정책을 바로세우고, 재생가능에너지와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늘려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대체해 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역할은 지역기반 분산전원이 구축되도록 에너지전환 정책의 기본설계도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기본 설계도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3차 에너지기본계획, 그리고 탈원전로드맵에 담기게 된다.
에너지기본계획은 향후 20년간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2차와는 확연히 달라야 한다. 논의할 것도 많고 이해당사자간에 합의가 필요한 내용도 많다. 에너지전환은 '핵발전 대신 재생가능에너지'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에너지 생산, 유통, 소비, 산업구조, 일자리, 시민의 에너지 인식, 가격과 세제 등을 모두 전환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정부 부처 간 협업은 당연하고 기업과 지자체, 지역주민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민관거버넌스를 잘 구축해야 한다. 거버넌스는 상호 신뢰와 학습, 조율이 필요하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철저히 참여형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산업부가 독주해서는 안 되며, 여러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 거버넌스를 잘 구축해야 한다. 환경부,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고용노동부 등에서도 에너지전환 정책에 참여해야 한다. 전환에 따른 노동자들 생계와 일자리 전환대책도 세워야 하고, 지역에너지 분권을 위해 지자체와도 연결되어야 한다.
이 정부의 과제는 계획만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수요관리정책으로 에너지 총소비량을 줄여야 한다. 동시에 5.4기가와트(GW)대에 불과한 재생가능에너지가 실질적으로 늘어나서 전력생산에서 주역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수요관리 정책의 핵심은 조세정책과 요금정책이다. 서울대학교 홍종호 교수는 "에너지정책 좀 솔직해지자"라는 칼럼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을 우려하는 목소리 앞에서 과거 정부가 고수해 온 값싼 전력공급 정책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용기있게 말해야 한다. 원자력 및 석탄화력 발전연료에 대한 효율적이고 형평성 있는 과세로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경제구조를 만들겠다고 말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에너지원에 환경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다수의 연구기관이 참여해 검증하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활발한 토론을 통해 에너지원별 상대가격 조정과 이동과 난방, 용도별로 각각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공정하게 산정하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정부는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 20%까지 확대하기 위해 전력 고정가격매입제도 도입, 풍력 등 계획입지제도 도입, 재생가능에너지 이격거리 규제 개선, RPS 의무부율 2030년 28% 상향조정을 준비하고 있다. 산업부의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정책은 지자체 에너지분권 정책과 결합하면 상승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갈등은 산업부가 일일이 해결하기 어렵다. 산업부가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주민 수익창출 또는 참여형 모델을 개발하고, 갈등해결도 역할 분담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원전하나줄이기 정책을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경기도 에너지자립 2030, 충청남도 탈석탄 에너지전환 정책, 부산의 클린에너지시티 등 지역에너지 정책을 펼치는 지자체들이 있다. 지자체장에게 수요관리 권한을 대폭 넘겨주고, 포괄예산제 등 인력과 예산을 지원해서 지역의 자립률을 높이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지자체도 에너지전환을 위한 인프라가 필요한데, 광역지자체는 에너지공사를, 기초지자체는 지역에너지센터를 구축해서 지자체가 에너지 생산시설을 소유,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고민해볼만하다. 지역에너지센터는 시민들에게 에너지 교육과 정보제공, 에너지효율서비스 제공, 주민참여와 공동체 재생가능에너지 생산 모델 지원 등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전환이 편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체감하는 시민이 많아질 때 전환 정책이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과 에너지전환 정책이 가져다 줄 사회의 변화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에너지전환으로 얼마나 더 안전해지는지,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사회가 가능한지, 에너지전환을 통해 어떤 일자리가 얼마나 만들어질지에 대한 정보와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구체적이고 명확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수록 에너지전환 이해당사자들이 확대되고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정책은 시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내는 만큼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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