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하겠다는 '탈핵 로드맵'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탈핵 로드맵에는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여부,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에 대한 방침과 이에 따른 원전의 단계적 축소 일정, 국내 원전 제로 달성 시기 등이 종합적으로 담길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기도 전에 "급격한 전환에 대한 우려"라거나 "전기요금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난무하고 있다.
아직 정확한 원전 제로 시점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 공약대로라면 40년이라는 아주 긴 기간을 두면서 진행되는 만큼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했던 나로서는 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2030년 탈핵이라면 또 모를까.
원자력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의 밥줄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탈핵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에너지경제연구원과 같은 국책연구기관(그것도 원자력정책연구실!)이 문재인 대통령에 탈핵 시대를 선언한 19일 다음날인 20일에 기다렸다는 듯이 '신정부 전원구성안 영향 분석'이라는 약식 보고서를 발표하고,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는지 이해하기는 힘들다. 신정부 시대에 걸맞게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국책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또 모를까.
그래서 독립적인 민간 연구기관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탈핵·탈석탄 정책 시나리오 분석 보고서(가칭)'을 빠른 시일 내에 발표할 예정이다. 우선 테스트 차원에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예상되는 문재인 정부의 전력믹스 시나리오를 간략하게나마 비교했다. 7차 전력계획은 시나리오1, 문재인 정부 정책은 시나리오2라고 하자.
2016년 전력 발전설비는 105,866메가와트(MW)이고, 시나리오1에서는 전력 발전설비가 2030년에 16만3868메가와트까지 증가한다. 2016년 에너지원별 발전설비 비중은 LNG가 30.8%로 가장 크고, 석탄(30.3%), 원자력(21.5%)의 순이다. 2030년에는 이 비중이 석탄(26.8%), LNG(26.1%), 원자력(23.4%)의 순으로 바뀐다.
전력 발전량은 설비와는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2016년 전력 발전량은 53만3560기가와트시(GWh)다. 발전량 비중으로 보면, 석탄이 37.2%로 가장 크고, 원자력(30.4%), LNG(21.4%)의 순이다. 기저부하 역할을 하는 석탄과 원자력의 가동률이 높기 때문이다.
기존의 이른바 경제 급전 방식(발전단가가 싼 전원을 우선 공급)을 유지하는 시나리오1에서는 2030년에 전체 발전량이 681,414기가와트시로 증가한 가운데, 석탄(46.2%)과 원자력(40.7%)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LNG는 8.1%까지 감소한다.
이는 2가지 의미로 분석되는데, 석탄과 원전, LNG를 포함한 전체 전력 발전설비가 전력수요에 비해 과잉인 상황에서 석탄과 원전이 원래대로 가동된다면, 나머지 발전설비는 거의 대부분 가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발전설비가 남아돈다는 얘기다.
시나리오2는 문재인 정부의 탈핵·탈석탄 정책(노후 발전소 폐쇄와 신규 발전소 백지화)을 적용했다. 2017년 고리1호기 영구정지를 시작으로 월성 1호기, 고리 2~4호기, 한빛 1, 2호기, 한울 1, 2호기, 월성 2~4호기를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한다고 가정할 경우 사라지는 원전 설비용량은 9716메가와트이다.
또 영동 1, 2호기, 서천 1, 2호기, 호남 1, 2호기, 삼천포 1~4호기, 보령 1~4호기, 태안 1, 2호기, 하동 1, 2호기 등 30년 이상 가동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순차적으로 멈출 경우 폐쇄되는 설비용량은 8465메가와트다.
이렇게 되면 2030년 전체 발전 설비용량은 11만8479메가와트가 되고, 2030년 발전설비 비중은 LNG(36.1%), 석탄(19.8%), 원자력(11.3%)의 순이 된다. 석탄과 원전이 줄면서 상대적으로 LNG의 비중이 높아졌다.
탈핵·탈석탄 이후 전력 공급
시나리오2는 석탄과 원전이 줄었음에도 LNG 등 다른 발전 설비를 추가하지 않았다. 대신 LNG발전에 기저부하 역할을 부여하고, 재생에너지 공급을 우선하도록 설정했다. 그 결과 2030년 전력 발전량은 65만8928기가와트시로, 시나리오1에 비해서는 줄었지만 7차 전력계획의 목표수요인 65만6883기가와트시를 충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탈핵·탈석탄을 점차적으로 실행하면서 추가적으로 다른 발전소를 늘리지 않아도 전력공급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전력 설비예비율이 15%이하로 떨어지는 2024~2025년 이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추가 발전설비를 고려할 수도 있으나 최근 전력수요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전력수요 전망치를 재산정하거나 전력수요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2030년 신재생전력 비중이 원자력보다 커진다?
시나리오2의 2030년 전력 발전량 비중은 LNG(44%), 석탄(23.9%), 신재생(17.6%), 원자력(13.8%)의 순으로 전망됐다. 신재생 비중이 원자력보다 커지는 시나리오인 점이 주목된다. 시나리오1에 비해 전체 전력설비와 발전량이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밝힌 바 있는 2030년 신재생 발전 비중 20% 목표에도 근접해 있다.
이제는 2가지 시나리오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용을 비교해보자. 시나리오1과 2의 2016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5179만9000톤(CO2eq)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시나리오1의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9749만6000톤인 반면, 시나리오2의 경우는 2억8721만3000톤으로 추정돼 1028만3000톤의 차이를 보였다. 누적배출량 차이는 2만500만톤으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나리오2를 선택해야 한다.
탈핵하면 전기요금 폭등? 가짜 뉴스!
마지막으로 논란의 중심인 비용 문제다. 발전소별 건설비용, 유지비용, 정산단가를 비용에 반영했고, 각 시나리오의 누적비용을 누적발전량으로 나눠 발전단가(원/kWh)를 추정했다. 2016년 발전단가 추정치인 83.3원에서 시나리오1은 2030년 85.9원(2016년 대비 3.2%)으로 증가하고, 시나리오2의 경우 2030년 발전단가는 96.2원(2016년 대비 15.5%)으로 추산된다.
2030년까지 15년 동안 발전단가가 연평균 약 1%씩 상승하는 정도다. 참고로 최근의 물가상승률은 2%대 초반이다. 그리고 2015년 기준 전기요금 주택용 판매단가는 124원, 산업용은 107원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탈석탄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언론 보도는 '가짜 뉴스(Fake News)'에 가까워 보인다.
국내 최초로 건설된 고리 원전 1호기가 영구 정지되고, 대통령이 탈핵 시대를 선언한 2017년 6월 19일이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전환이 시작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길 기원한다. 이를 위한 토론과 논쟁,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는 필수불가결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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