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베트남 신부 탓티황옥(20) 씨는 한국으로 시집온 지 일주일 만에 정신질병을 앓고 있던 남편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사회적 공분과 외교관계를 고려하여 이명박 대통령은 주례 라디오 연설(7.26)을 통해 '다문화 가정에 대한 성숙한 인식'을 촉구하고, 베트남의 고향 빈소에 박석환 주베트남 대사를 보내 조의를 표하고 최선을 다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바 있다.
이벤트라는 의혹을 받았지만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유골을 안고 귀국하는 그녀의 가족과 함께 베트남까지 동행하였다. 과문한 탓인지 인권과 민주주의를 그토록 강조하여왔던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당을 대표하여 부산 빈소를 방문하여 조문하였다는 보도를 접한 바 없다. 그들은 모두 7.28 보궐선거를 챙기는데 몰두하였기 때문이다.
▲ 이주노동, 청소노동자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문제에 민주당은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프레시안(김봉규) |
지난 6월 5일 공공노조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실태를 알고 제대로 된 휴게 공간 마련을 위해 '청소노동자 행진'을 개최하였다. 방송인 김미화는 자신의 어머니가 화장실 청소원이었음을 고백하면서 가슴 따듯한 지지의 글을 보냈다. 그러나 이 자리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단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6.2 지방선거의 승리를 자축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진보를 외치고 있지만 민주당 의원 중 청소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인권 보장을 위한 입법 조치를 준비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면 둘. 서민 대중의 삶에 무관심한 정당
경제적 측면에서 계층을 거칠게 나누자면 우리 국민의 3분의 1은 정규직이고, 3분의 1은 비정규직이며, 나머지 3분의 1은 중소 자영상공인이다. 최근 대형슈퍼(SSM) 문제로 그동안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숨죽이고 당하기만 하였던 지역의 자영 상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지역의 중소상인들이 생존권 보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오자 정치권은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보호 입법에 나섰다. 이와 관련하여 2008년 18대 국회 개원 이래 현재까지 15개 유사 법안이 제출돼 있다. 이 문제를 2년 동안 질질 끌어온 데는 정부와 여당의 보이콧이 주된 원인이지만 민주당의 무능 또한 한 몫 하였다.
민주당 지도부와 관련 상임위원들은 SSM에 대한 규제가 WTO와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하는 외교통상부나 경제 관료들의 논리를 시원하게 통박하지도, 자영 상공인단체와 강력히 연대하여 정부를 압박하지도 못한 채 정부 여당의 시간 벌기에 끌려 다녔다. 최근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공정사회에 대한 강조를 의식하여 이번 정기국회에서 해를 넘겨 법사위에 보류돼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에관한법'(상생법) 제정을 적극 검토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질질 끌려 다니면서 어떻게 서민과 중산층 정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장면 셋. 사회경제 정책에서 한나라당과 큰 차이가 없다
이명박정부와 여당이 틈만 나면 폐지하기를 원하는 제도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최저임금제이다. 실제로 2009년 3월에 한승수 국무총리는 국가정책조정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최저임금제 등의 규제를 2년간 한시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2008.11)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에는 60세 이상 고령자 감액, 지역별 차등적용, 숙식비용 임금공제, 수습기간(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 의결기한 마감 시 공익위원 단독 결정권 부여 등의 독소조항이 들어 있었다.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로 최저임금제 폐지는 무산되었지만 사용자단체와 정부여당은 틈만 나면 폐지 또는 완화를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다시 민주당이다. 당시 정세균 대표는 김성조 의원의 개정안을 반서민 악법으로 규정하고 꼭 저지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발의에 동참한 의원들의 명단에는 김충조, 노영민, 우윤근, 이낙연 등 4명의 민주당 의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입법취지와 효과를 모른 채 발의에 서명했다면 무지한 행동이고, 알고 했다면 한나라당과 이념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신념의 소산이다.
개별의원이 이러한 법안 발의에 동조했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갖고 있는 노동에 대한 인식의 보수성과 적대적 태도이다. 최저임금제는 단순한 임금 설정의 문제가 아니다. 일단 1600만 전체 노동자 중에서 무려 256만 명(15.9%)이 최저임금 적용대상이다. 최저임금액을 기준으로 활용하는 법률은 고용보험법, 사회보장기본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장애인 고용촉진법 등 14개 법률에 달한다.
지난 8월 16일 고용노동부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 해(4110원)보다 5.1% 인상한 4320원으로 고시하였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OECD 기준으로 21개국 중 17위,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으로 59개국 중 48위이다. 전병헌, 박주선 등 일부 의원을 제외한다면 최저임금을 합리적 수준으로 제고하거나, 시행 여부에 대한 엄격한 감사 등 민주당의 이 문제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은 대단히 열악한 수준이다.
사회경제철학과 정책적 실천이 없는 진보는 모두 허구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갑자기 진보라는 슬로건이 넘쳐나고 있다. 담대한 진보(정동영), 진정한 진보(정세균), 따뜻한 진보(박주선), 유능한 진보(천정배) 등 가히 진보담론의 백가쟁명 시대라 할 만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효석 의원은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가치와 이념 중시의 낡은 진보라 은근히 폄하하고 있다.
진보의 표방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정치적 차원에서 진보 담론은 현 정부의 중도실용주의와 차별적이며 복지와 생활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높은 요구에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언행불일치에 있다. 이는 마치 이명박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전략으로 설정해놓고 4대강 사업에 전력투구하거나,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부자감세에 치중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대표 후보자들의 진보 선언이 뜨겁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 모두 어떤 유형의 진보이든 이를 위한 실천의 지난한 궤적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또한 그들이 외치는 진보에는 공통적으로 노동과 산업정책 등 사회경제 철학과 프로그램이 부재하거나 부실하다. 복지에 대한 원론적 강조가 진보로 등치될 수는 없다.
민주당과 새로운 지도부의 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인 김대중은 남북문제를 해결하는데 40여년의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정치인 노무현은 20년 이상을 지역 및 언론문제와 맞서 싸웠다. 수출주도 대기업 중심의 한국경제를 개혁하고, 토건국가에서 생태복지국가로 전환하는 과제는 틀림없이 진보의 길이다. 아쉽게도 민주당 대표를 원하는 정치인들의 진보 프로그램에는 바로 이러한 내용들이 빠져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