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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나'를 마중하려, 과거 '나'를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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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나'를 마중하려, 과거 '나'를 반성한다

[문학의 현장] 리좀 - 2017. 7. 15. 전시에 부쳐

리좀 - 2017. 7. 15. 전시에 부쳐

안성이 떠돈다, 흔들린다. 안성에 사는 내가 마산에 있는 갤러리 리좀에 도착한다. 무사히 안성이 펴진다. 나무를 그린다. 낯선 지명을, 긋는다. 다 그린 거 맞나요, 캔버스 틀을 짜기 위해 화방에 들렀다. 그는 틀 안에서 자른다. 나뭇가지에 앉았던 바람을 자르고, 새의 발톱이 가로채던 먹잇감을 자르고, 이웃나무에서 다투었던 새의 부리를 자른다. 틀에 들어서지 못한 물소리, 개미소리를 자른다. 잘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입술 안에는 금방 뱉어내고 싶은 비밀이 가득하다. 아저씨는 규격으로 본다. 액자 안에 꽃을 담고 구름을 담고 바다를 담고 규칙을 담는다. 나무는 어디에 있나. 솜털에, 겨드랑이에, 손으로 물감을 뭉개었던 손톱 아래, 나무는 머무른다. 몸에 씨앗을 뿌린다. 파라핀유가 코끝을 건드릴 때 나무가 자란다. 바깥으로, 바깥으로 나무가 달린다. 가지를 뻗는다. 잎사귀가 자란다. 파랗게, 파랗게 탈출한 꽃잎이 입술을 벌린다. 도주한 수피가 바다로 길을 만든다. 그래, 도망이다 도망가자. 탈출이다 탈출하자. 저 나무가 빵을 얻으려고 해서 기쁘다. 저 돌이 바다를 행해 뛰어들려고 해서 기쁘다. 뜻밖의 하늘에 검정을 칠하는 일. 뜻밖의 돌 속에 불을 지르는 일. 뜻밖의 창문에 토마토가 뭉개지는 일. 뜻밖의 들판에 나를 심는 일. 새로운 법으로 잎사귀가 태어난다. 새로운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면, 안성이 죽는다. 안성은 안성이 아니어야 한다. 금은돌은 금은돌이 아니어야 한다. 틀을 짜는 아저씨는 나무를 갖지 못한다. 은돌을 갖지 못한다. 그는 아저씨이므로, 아무 것도 아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시작노트

정권이 바뀌었다. 촛불혁명 이후의 정부이다. 스마트폰에 떠오르는 뉴스를 보느라,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국가적인 차원의 뉴스와 개인의 사생활이 스마트폰을 통해 수시로 조응한다. 문재인 정부의 뉴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제37주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이었다. 내러티브가 있는 기획과 감동이 있는 기념사였다. 세상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뉴스를 본다. 시간이 흔들린다. 내가 흔들린다. 장소가 흔들린다. 나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국가만 변하라고, 시스템만 바뀌라고 요구할 수 없다. 틀에서 벗어나는 일. 미래의 '나'를 마중하기 위해, 과거 '나'를 반성한다. 현재의 '나'가 방향을 바꾼다. 몸안의 경첩이 삐걱댄다. 안성에서 ‘마산’으로 자리를 옮긴다. 한 달 동안의 전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에스빠스 <리좀> 갤러리 주인장 하효선 님이 말한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장소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아, 장소에 따라 몸이 바뀌는구나' 공교롭게도 갤러리 이름이 '리좀'이다. 마산에서 안성의 뿌리를 지운다. 낯선 장소에서 신선한 공기를 얻는다. 그래서 도망친다. 당당하게 변화한다. 변주하며 위치 이동한다. 성추행하는 남성에게, 갑질하는 권력에게, 해시테그(#)를 건다. 고소장이 누구나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녹슨 경첩이 틀어진다. 우리의 일상적 폭력을 되돌아보는 일. 발밑 아래 고정관념을 부수는 일. 다른 뿌리와 접속하는 일. 대안 속에 퍼진 독이 더 위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서로의 중간에서 거짓과 위선을 살피는 일. 서로의 중간에서 다른 이와 손잡는 일. 틀을 깬 장소에서, 우리를 더 낯설게 바라보는 일. 발상을 바꾼 시스템에서 “새로운 법으로 잎사귀”가 태어난다. 새로운 정책만 펼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리라. 한 사람 사람, 시민의 이름이 꿈틀거리는 국가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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