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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인' 설정은 '자승자박' 될 수 있다

[정욱식 칼럼] 문재인 "한반도 전쟁 안된다" 옳은 말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 이어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전쟁 불가' 의지를 거듭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며 "우리 국민은 안심하고 믿으시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특히 "대한민국 결정 없이 누구도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며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옵션을 사용하든 사전에 한국의 동의를 받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한미간의 굳은 합의"라고 강조했다.

전쟁 위기설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반복되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에서 대통령이 반전(反戰)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전쟁사를 돌이켜보면 오판과 오인, 격화되는 안보 딜레마 속에서 터진 '원하지 않는 전쟁'도 있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그러나 인류사에서 첫 번째 세계대전으로 기록된 1차 세계대전이 대표적이다.

한반도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자명하다. 하여 문 대통령의 강력한 반전 의지는 전쟁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낮출 수 있는 정책과 전략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안타깝게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이러한 정책과 전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점점 레드라인 임계치에 다가가고 있다"며, "만약 북한이 또다시 도발한다면 북한은 더욱 강도 높은 제재 조치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이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북한에 "위험한 도발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문제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이 상호 간에 상당한 긴장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독자적인 군사 행동에 대한 단호한 반대 의사는 그 자체로 상당한 구속력이 있다. 미국이 동맹국이자 한반도 전쟁 발발시 최대 피해자가 될 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탄두 장착 ICBM 완성을 '레드라인'으로 규정하면서 그 선을 넘으면 "견뎌내지 못할"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는 실질적인 억제 효과를 가질 수 없다. 제재의 강도는 핵탄두 ICBM 보유를 국가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전략적 선택을 바꿀 만큼 강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 개념을 놓쳐서도 안 된다. 아무리 강력한 제재라도 북한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단언컨대, 북한은 이 시간을 '전쟁불사론'을 앞세운 고도의 '헤드 게임'으로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설사 "견뎌내지 못할" 순간이 다가오면, 북한은 '굶어죽느니 싸우다 죽겠다'는 태세로 맞설 것이다. '레드라인' 발언과 추가 제재 경고가 전혀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잉태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발등의 불을 완전히 끄는 게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말 폭탄이 쏟아지던 북미관계에서 반전(反轉)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4일 전략군 사령부를 방문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미국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에 미국에 날린 '괌 포위 사격 경고장'을 일단 서랍 안에 넣어둔 셈이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의 김정은이 매우 현명하고 아주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화답했다.

이로써 급한 불은 꺼졌다. 하지만 잔불은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 잔불을 언제든 큰불로 만들 수 있는 화염물질도 도사리고 있다. 당장 위험한 화염물질은 괌 발(發)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 및 이에 대응한 북한의 괌 포위 사격 가능성이다.

그래서 위기관리의 핵심은 예방외교가 되어야 한다. 현재 한미 양국은 다음달 21일부터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합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관건은 이 훈련에 미국의 전략폭격기를 비롯한 전략 자산의 투입 여부로 모아진다. 지휘소 훈련인 UFG에 전략 자산 투입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2013년 이후 이 훈련 시기나 이를 전후해 전략 자산을 투입하곤 했다.

만약 전략 자산, 특히 괌 발(發) 전략폭격기가 한반도로 전개되면 북한은 고도의 '헤드 게임'으로 응수할 것이다. 일단 북한이 사전 경고한 4발의 '화성-12형' 미사일을 괌의 동서남북 30~40km 인근으로 탄착시키는 '초고강도 도발'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1~2발의 미사일을 괌에서 더 멀리 떨어진 바다로 떨어뜨릴 수도 있고 일종의 성동격서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할 수도 있다. 북한엔 한미 양국을 골치 아프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많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의 평화 의지는 미국에 전략 자산 투입 자제를 요구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북한의 레이더망에 전략폭격기가 잡히지 않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추가 도발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러한 냉각기를 거쳐 대화의 문도 열어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은 작년 9월 9일 이후 아직까진 없는 상태이다. 이에 더해 북한이 어떠한 형태의 탄도미사일 발사도 자제하면 한미 양국이 내세운 대화의 조건은 '일부' 충족되는 셈이 된다. 트럼프가 김정은이 괌 포위사격 유보 방침을 밝힌 것에 대해 "매우 현명하고 아주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말한 만큼, 한미 양국이 이러한 해석을 내리면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할 수 있는 근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을 선언하기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와 같은 일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는 기간을 활용해 대화의 문을 열고 협상을 통해 북한의 약속을 받아내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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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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